제166화
정학을 필두로, 그들은 황궁에 돌입했다. 영단경 1단계의 전수 제자부터 영단경 9단계의 정학까지, 고수들로 이루어진 만큼 금란전에 잠입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이때 금란전은 한밤중임에도 환하게 불을 켜고 있었다. 황제 운현이 아직 깨어 있는 탓이다. 그는 귀가 뾰족하고 검은 날개가 달린, 아리따운 여인과 목소리를 낮춰 의논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운 공자와 연락할 방법을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의 족장은 천검종의 습격으로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운 공자만이 천검종의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들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폐하, 이렇게 간청 드립니다. 부디 운 공자에게 이 소식을 전해 주십시오!”
금란전 밖.
“어? 흡혈 박쥐족이로군!”
“종주께서 생포하라고 하신 선천경의 흡혈 박쥐족이야!”
“아쉽게도 그 영단경은 없구나.”
“뭐, 몇 마리 잡아서 영단경의 흡혈 박쥐족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그만이야!”
정학 일행의 시선은 순식간에 삼백여 장을 훑었다. 그들의 시선에 금란전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운현과 흡혈 박쥐족이 포착되었다.
“누구냐!”
“이곳은 황궁이다. 감히 발을 들이다니!”
순찰하던 어림군이 그들을 발견하고 곧바로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찮은 놈들이 날뛰는구나!”
정학이 혐오스러운 눈빛을 던진 순간, 영단경의 힘이 솟구쳤다.
펑펑펑!
100명이 넘는 어림군이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바깥에서 들려온 폭음에 운현과 흡혈 박쥐족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천검종의 사람들이에요!”
3명의 선천생령 흡혈 박쥐족이 곧바로 그들을 알아보았다.
“오호라. 코가 예민한 놈들이구나.”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정학을 필두로 금란전 안에 12명의 사람들이 날아들었다.
“네놈이 운청휘의 사촌이라는 운현이냐?”
정학의 뒤를 지키고 있던 이명이 음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용포를 입은 운현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대는 누구지?”
운현에게는 마치 흉수를 만난 듯 깊은 두려움이 일었으나, 그는 침착하게 되물었다. 그 또한 황제로서 군림해 온 터라 위엄을 잃지 않았다.
“나?”
운현을 내려다본 이명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네놈이 평생 올려다봐도 부족한 존재라고 해 두지. 또 다른 이름은, 네놈의 사촌 운청휘의 적이다!”
이명이 손을 내밀자 운현의 몸이 그에게 끌려왔다.
“선천생령은커녕, 천박한 범인이군! 감히 쳐다볼 가치도 없는 놈이 아닌가! 네놈이 운청휘의 사촌이라는 게 안타깝구나!”
이명은 살기가 등등하여 운현의 목을 베려 했으나, 뒤에서 들려온 청년의 목소리가 그를 멈춰 세웠다.
“이명 사형, 잠시만요! 이렇게 간단히 죽이면 아쉽지 않습니까!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운청휘에게는 백부와 조부가 있고, 성공학관의 원장과 부원장 모두 운청휘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을 전부 모으고, 천운왕조의 사람들 앞에서 능지처참하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이명의 눈이 번쩍 뜨였다.
천운왕조의 수많은 이들 앞에서, 운청휘와 관련된 이들을 죄다 처형한다. 운청휘가 그 사실을 안다면, 분노하다 못해 실성하지 않을까?
이명뿐만 아니라 정학도 눈을 빛내더니 호쾌하게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하세! 장호백(张浩白), 당장 성공학관으로 가도록. 운청휘와 관련된 모든 자들을 잡아 오너라!”
명령을 받은 청년 장호백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영단경 1단계의 무위인 그는 천검종의 전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네, 정 노조!”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자 장호백은 희희낙락하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의 무위라면 한 시진 내로 성공학관과 금란전을 왕복할 수 있었다.
“운청휘의 백부와 조부도 황궁에 있겠지. 이명, 가서 그들을 잡아 오너라.”
정학은 이명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노조!”
이명이 급히 대답하더니, 그의 신형이 대전 밖으로 훌쩍 사라져갔다.
“자네들은 저 흡혈 박쥐족에게서 정보를 알아내라.”
정학은 남은 9명에게 분부하다 덧붙였다.
“만약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도 써도 된다네.”
“어떤 수단도요?”
그 말을 들은 9명의 눈에 음흉한 빛이 번들거렸다.
“운현, 노부와 운청휘가 어떤 원한이 있는지 아는 게냐? 녀석은 노부의 손자 정지가를 죽였단 말이다!”
말을 마친 정학이 운현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운현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정학의 매서운 발길질이 그의 아랫배로 향했다.
퍼억!
아랫배를 걷어차인 운현이 울컥 피를 토했다.
* * *
어두운 밤하늘에 밝은 달이 내걸렸다.
서북쪽 황무지 상공에 도달한 운청휘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리 신식을 펼쳐도, 살아 있는 흡혈 박쥐족이 감지되지 않는다.
“시체에도 어혼성숙비전의 기운이 없군. 이들은 조종되지 않은 이들인데 어찌……? 더욱이 죽은 지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서북쪽 황무지 안쪽으로 이동하며, 운청휘는 점점 더 많은 흡혈 박쥐족의 시체를 마주했다. 어느덧 그 수가 1만 구에 이르렀는데, 제각기 이성을 지닌 흡혈 박쥐족이었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 운청휘는 반 시진 후에 거대한 장벽 앞에 도달했다. 흡혈 박쥐족의 성지로 통하는 입구이자, 그가 이전에 봉천진지진을 설치해 둔 장소였다.
‘봉천진지진이 유지되고 있군. 그동안 아무도 통과하지 못했다는 뜻이로군!’
거대한 장벽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았으나, 여전히 생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 한 시진에 걸쳐 생명체의 기척을 찾았으나, 운청휘가 발견한 것은 100만 구에 달하는 시체뿐이었다.
깊은 실망과 함께,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그의 안에서 솟구쳐 올랐다.
‘비록 인간이 아니더라도, 흡혈 박쥐족은 자신들의 영지에서만 생활하건만. 대체 어느 세력이 이리 잔인하게 학살한단 말이냐!’
분노를 이기지 못한 운청휘는 이 각에 걸쳐 서북쪽 황무지를 샅샅이 뒤졌고, 그 결과 진법이 설치되어 있는 감옥을 찾아낼 수 있었다.
무려 3백만 명에 달하는 흡혈 박쥐족이 갇혀 있었다. 모두 월경과 양경의 경지로, 하나같이 진법을 해체하지 못해 갇힌 듯했다.
‘선천생령급의 흡혈 박쥐족은 한 명도 없군!’
자연스레 궁우신을 떠올린 운청휘는 곧바로 영력화장을 형성해 휘둘렀다.
콰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다. 진법으로 형성된 감옥은 눈 깜짝할 사이에 파괴되어 먼지 속으로 흩어졌다.
“누가 너희를 가두었지?”
개중 무위가 가장 높은 흡혈 박쥐족 몇 명을 이끌어온 운청휘가 준엄하게 물었다.
“처, 천검종의 사람입니다!”
“그, 그들이 우리 종족의 모든 선천생령을 잡아갔고, 우리 족장님도 중상을 입어 숨어서 치료받고 있어요!”
흡혈 박쥐족 몇 명이 급히 말했다.
“모든 이들을 데리고 성지로 가도록. 너희의 족장을 찾아 데려가겠다.”
말을 마친 운청휘가 번개같이 신형을 날렸다.
이 각 후, 운청휘는 드넓게 펼쳐진 황량한 사막의 상공에 떠 있었다. 그가 신식을 펼쳐 주위를 샅샅이 살피니, 아래로 삼백여 장 떨어진 지하에서 김태연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전에 그녀와 마주친 장소였다. 그때도 김태연은 그 장소에 숨어 있었기에, 운청휘는 흡혈 박쥐족에게서 소식을 듣는 순간 이 장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응?”
신식을 조금 더 뻗어 보니, 김태연에게서 삼십여 장 떨어진 혈옥에서 29개의 혈정이 기를 뿜고 있었다. 운청휘는 단번에 토 속성 오행의 힘을 일으켜 사막의 바닥을 뚫고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범인이 숨을 한두 번 쉴 시간에, 이미 그는 삼백여 장 지하에 발을 딛고 있었다.
“운 공자, 마, 마침내 오셨군요!”
운청휘를 알아본 김태연의 얼굴에 화색이 만면했다.
“운 공자, 당신의 말대로 하려고 했지만 며칠 전 영단경 고수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목표도 선천생령급의 흡혈 박쥐족이었어요. 나는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어혼성숙비전에 조종된 이들을 넘기지 않으려고 독단적으로 혈정을 제거했어요.”
김태연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하며 운청휘를 응시했다.
운청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가까이 있는 혈정 29개를 영단의 힘으로 끌어당겼다.
허공에 떠오른 혈정들을 망설임 없이 흡수한 운청휘가 옅은 만족감이 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표는 그 혈정이었다. 애썼다.”
운청휘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부족에 큰 사달이 났건만, 김태연은 그를 보고도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맡겼던 일부터 꺼내는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흡혈 박쥐족이 공격을 당한 일로, 운청휘는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
사흘 전, 천형대에서 소도도가 이명을 거의 죽이기 직전, 정학이 나타났다. 그가 종주의 임무를 핑계로 이명을 데려갔는데, 이제 보니 궁우신은 정녕 임무를 맡긴 것이었다.
그 임무가 바로 서북쪽 황무지의 흡혈 박쥐족을 습격하는 일과 연관이 있으리라.
‘아직도 꿍꿍이를 버리지 못했군, 궁우신. 성지를 진법으로 막아 두니 천검종의 일원을 보내 선천생령급의 흡혈 박쥐족을 잡아오게 하는가!’
운청휘의 마음에 시린 살기가 피어올랐다.
궁우신의 잔인함은 이미 운청휘가 눈감아 줄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저번만 해도 그는 어혼성숙비전을 사용하여 흡혈 박쥐족을 궤멸 직전까지 몰아갔다.
그 후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영단경 무인들을 보내 이들을 학살하지 않았는가.
흡혈 박쥐족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날개가 달린 걸 제외하면, 인류와 어떤 차이도 없이 지혜와 문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종족이었다.
한데 궁우신은 수련을 명목으로 흡혈 박쥐족을 재료로 삼았다.
운청휘는 궁우신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했다.
채아의 마종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를 살려 둘 수는 없었다.
혈정을 받은 후, 운청휘가 연화를 시작했다. 이미 그의 무위가 반절 선천의 절정에 이르렀으니, 조금만 더 무위를 쌓는다면 선천생령에 도달할 수 있었다. 두 개의 혈정이 빠르게 연화되었다.
“마침내 도달하는 건가……!”
운청휘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그의 두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위이잉…….
참천 검집도 이 순간을 기뻐하는 듯, 운청휘의 등에서 가볍게 진동했다.
멀리 수만 리 밖, 흉수산맥.
성공 거수 형태의 운청휘가 양경 흉수 한 마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문득 거수 운청휘가 천운왕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