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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168화 (168/430)

제168화

운청휘가 신식을 아무리 펼쳐도, 심연의 밑바닥은 볼 수 없었다.

기이한 힘이 그의 신식을 구속해, 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운청휘는 이염죽을 안고 천천히 내려가며, 그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천천히 헤아려보았다.

육천 장 아래로 내려왔을 때, 휘몰아치던 바람은 사라졌지만 그를 선계로 이끌었던 그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운청휘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운청휘는 이염죽을 안고 올라가려 했지만,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과 폭풍이 그의 육신을 억누르고 있었다.

다음 순간, 폭풍이 두 사람을 감쌌다.

그때 운청휘는 귓가를 때리는 무수한 소리를 들었는데, 마치 큰 종 수십 개가 그의 귀 옆에서 울리는 듯했다. 순식간에 수많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듯했고,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후 귓가를 울리던 소리가 멈췄다.

그와 이염죽은 먹빛으로 물든 황량한 세계에 있었다.

곳곳에 번갯불이 내려치며 지면을 무수한 덩어리로 갈랐고, 강은 물 대신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몰아치는 바람은 죽음의 기운을 품은 채 음습한 소리를 내었다.

운청휘의 시선이 문득 한곳에 머물렀다.

무덤, 사방에 무덤이 있었다.

용암 속에도, 번갯불이 내려친 자리에도, 갈라진 땅속에도 무덤, 온통 무덤이었다!

문득 이염죽이 운청휘의 품에서 움찔거리기에, 운청휘는 그녀를 풀어주었다.

이염죽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눈가에서 핏빛으로 물든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며 소리 없는 오열이 흘러나왔다.

분명 감정에 무뎌지는 수련을 한 그녀였지만, 이때만큼은 소리 없는 오열로 운청휘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그때, 운청휘는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일족 여러분, 그대들의 제를 지내겠어요…….”

정겁의 바깥, 서북쪽 황무지의 지하.

운청휘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던 이염죽이 돌연 무릎을 꿇었다. 매끄럽고 아름다운 얼굴에 두 줄기 피눈물이 길게 이어졌다.

곁에 있던 김태연은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짙은 슬픔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영단경 무인인 만큼 그 기에 눌리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염죽을 바라보았다.

‘도, 도대체 무엇을…… 겪은 거죠?’

김태연마저 슬픔에 잠겨 속으로 외쳤다.

이염죽의 몸에서 일어나는 서글픈 기는 다른 이들이 상상도 못 할 과거를 담고 있었다.

정겁 속의 운청휘는 다시 한 번 이염죽을 껴안고 힘주어 말했다.

“감정이 무뎌졌다 한들, 묻혀 있는 슬픔은 억누를 수 없나 보군. 어떤 경험을 했는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일족 전체가 멸망했다고? 이곳의 무덤에 묻혀있는 영혼마저 파멸된 시체들이 바로 그들이로구나. 이제야 이곳의 이름이 왜 장신연인지 알겠군. 세월 속에 잊힌 신들의 무덤이 아니더냐.”

운청휘는 속삭이듯 이염죽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

“그대의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대의 심신을 찢고, 한 점의 빛도 없는 망망대해를 홀로 떠돌아다니는 듯한 외로움이 보여지는 군. 그대는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 감정을 짊어지고 살겠지. 이염죽, 나는 다른 이들을 위로하지 않고 그대도 위로하지 못한다. 어차피 그대에게 닿지 않음을 알기에. 다만 한 가지, 운명은 뛰어넘을 수 있고, 헤쳐 나가지 못할 난관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정겁의 바깥, 운청휘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던 이염죽의 얼굴에 조소가 걸렸다.

“알면서도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운청휘? 운명이라, 나는 이미 뛰어넘었는걸.”

정겁 속의 이염죽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피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운청휘는 이 순간, 그녀를 대신해 모든 슬픔을 감당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대가 감정에 무뎌질 만큼 수련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대의 어깨에 있는 무거운 짐을 보았다. 그저 피맺힌 원수라고 생각했는데 일족의 무게였구나. 이염죽, 그대는 지쳤다. 지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슬픔을 보이겠느냐? 나를 믿거라. 모든 책임을 내게 넘기거라. 그 운명을, 그대를 위해 이 운청휘가 지탱해 주마!”

운청휘의 품에 안긴 이염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름다운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굳어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리며 그녀의 생기도 빠져나간 듯했다.

이때 황무지의 이염죽은 결연히 일어나 얼굴의 핏자국을 닦아냈다. 그녀를 감싼 슬픔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미안해, 운청휘. 정겁이 나를 다시 장신연에 들어가 일족을 기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하마터면 널 영원히 정겁에 잠기게 할 뻔했어.”

이염죽의 눈에 희미한 미안함이 깃들었다.

꿈속에서 일족의 사망으로 슬픔에 잠긴 자신이, 운청휘를 동요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염죽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숨을 내쉬기도 버거운 일족의 목숨이라는 짐이, 그녀의 어깨에 놓여 있었다.

그 짐으로 인해 그녀는 남녀 간의 정에 신경 쓸 수 없었고, 감정에 무뎌지는 수련을 하며 누구에게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운청휘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그의 실력에 감탄했을 뿐, 남녀의 정이 생겨나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일찍이 정해진 운명이자,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운청휘가 그녀의 짐을 덜어주려 했지만, 이염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 짐을 덜어낼 수 있었더라면, 진즉에 해낼 수 있을 터였다.

이염죽이 운청휘의 이마에서 손을 거두었다.

이다음에 일어날 일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정겁 속에서 자신은 죽을 테고, 정겁에 휘말린 운청휘라 해도 같은 길을 걸으리라.

그때, 거수 형태의 운청휘는 쉴 새 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월경과 양경 흉수의 활동 구역에 이르자, 양경의 늑대왕이 이끄는 암흑 늑대 무리가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라지거라!”

지금은 그들을 삼킬 때가 아니었다. 운청휘가 쉰 목소리로 호통치며 계속해서 날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자가 돌연 땅으로 떨어졌고, 가슴을 찢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나…… 나와 인간 영혼의 연결이 끊어졌구나!”

운청휘가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정겁에 걸려들었군. 대상은 이염죽인가…….”

“아우우!”

늑대 무리의 울부짖음이 들렸고, 무수히 많은 암흑 늑대들이 성공 거수 형태의 운청휘에게 몰려들었다.

거수 운청휘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자양분으로 삼아 주마!”

거수 운청휘가 흉포한 주둥이를 벌리자, 주변에 있던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그 입안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우우우!”

양경의 늑대 왕은 본능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운청휘는 몸을 돌릴 여유마저도 주지 않았다. 운청휘는 또다시 입을 벌려 단숨에 빨아들였고, 단숨에 늑대 왕을 빨아들여 삼켜 버렸다.

소화조차 귀찮았기에, 그는 다시 신형을 날려 천운왕조로 날아갔다.

정겁 속의 운청휘는 이염죽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의 기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미약했다.

그녀를 향한 감정이 단순한 설렘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기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왜 나를 믿지 않지? 나는 선제다! 어찌하여 이 운청휘를 믿지 않느냐? 하늘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가 그대의 하늘이 되어 줄 수 있다! 그대가 짊어진 짐을 모두 떠안고, 그대의 피맺힌 원한을 갚아 주겠다! 상대가 누구든, 그리해 줄 수 있단 말이다! ……이염죽, 대답하거라, 대답해!”

정겁 속의 운청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죽으면 안 된다. 그대를 죽게 할 수 없다!”

이염죽의 기는 점점 더 약해져, 거센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았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피눈물은 아름다운 얼굴을 온통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운청휘는 그녀를 단단히 끌어안은 채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녀는 정신이 조금 돌아온 듯했지만,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녀에게 영력을 불어넣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영력을 불어넣기를 여러 번 거듭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대체 왜! 그래, 무언가를 간과했군! 피맺힌 원수가 아니라면 무엇을 간과한 거지? ……그래, 일족. 그녀의 일족을 부활시키면 희망이 생길지도 몰라!”

실마리를 잡은 운청휘의 눈이 생기를 띠었다.

“정신을 차렸군. 나를 봐라. 그대가 원하는 건 복수가 아니라, 일족의 부활이 아니더냐?”

아니나 다를까, 절망과 비통에 잠겨 있던 이염죽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피맺힌 눈망울이 운청휘를 직시했다.

“그들을 부활시키고 싶지만 불가능해. 그들은…… 영혼마저 소멸당했으니까!”

영혼마저 소멸당했으니, 환생할 기회마저 잃어버렸을 터.

철저한 죽음이자, 완벽하게 세상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이염죽은 그 사실을 알기에 이리도 절망하고 있었다.

“내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

운청휘가 단언했다.

“그래, 그대의 일족은 영혼마저 소멸되어 환생의 기회를 잃었지.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이냐? 그들의 부활이 반드시 영혼을 되찾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염죽은 어떠한 감흥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영혼이 소멸되어도 부활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녀는 지금껏 이리 깊은 슬픔에 잠기지 않을 터였다.

“하하. 믿지 않는구나.”

운청휘가 광소를 터트렸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뒤집어 주마. 시간을 역행할 것이다!”

그 순간, 이염죽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의 눈에 처음으로 삶에 대한 욕망이 드러났다. 그 욕망은 순식간에 그녀의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 있던 핏자국마저 사라졌다.

그녀는 다시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염죽의 형상이 되었다.

운청휘의 마음속에도 번지듯 기쁨이 퍼져나갔다.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게, 운청휘. 나를 위해 시간을 되돌릴, 그때를!”

이염죽의 몸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운청휘의 시야에는 봄바람처럼 온화하고 여름의 햇살처럼 찬란한 그녀의 웃음이 가득 들어왔다.

운청휘가 본 웃음 중, 가장 아름답고 반짝이는 웃음이었다.

그 순간, 이염죽의 모습이 사라졌다.

운청휘는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가쁜 숨을 들이켰다.

“이염죽……!”

운청휘는 무의식적으로 소리쳤는데, 그가 눈을 뜬 순간, 이염죽이 등을 돌리고 있었다.

운청휘는 생각지도 못하고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래! 내가 그대에게 반드시 약속하겠다! ……음?”

격동적으로 소리치던 운청휘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 안고 있었던 이염죽과는 이질감이 다가왔다.

눈앞의 이염죽은 기이할 정도로 몸이 차가웠는데, 마치 만년빙산을 안은 듯했다.

“정겁이었군!”

이제야 상황을 이해한 운청휘가 이염죽을 껴안았던 손을 풀었다.

그의 볼이 드물게 붉어져 있었다. 지금 당장 땅속을 뚫고 영영 사라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럴 수가, 그 정겁에서 깨어나다니!”

이염죽은 운청휘의 행동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겁에서 깨어날 유일한 길은, 정겁 속의 상대를 감동시키는 것뿐이다.

정겁 속에서 만들어진 형상은 현실의 본체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정겁의 이염죽이 감동했다면 현실의 이염죽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뜻과 같았다.

그러나 현실의 이염죽은 여전히 무감정한 얼굴로 운청휘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내게 뭘 약속한 거야? 약속의 내용이 뭔지 당장 말해!”

이염죽이 불쑥 또 물었다.

운청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정겁의 상대가 그대임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이염죽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운청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운청휘가 낮게 읊조렸다.

“그대에게 ‘약속’한 것은 그대 일족의 부활이다.”

“거짓말!”

이염죽이 생각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내 일족은 절대 부활할 수 없어.”

“정말 그리 생각하나?”

운청휘가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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