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사부님!”
“운 형제!”
운청휘를 보자 두 사람이 급히 달려왔다.
“모두 마중을 나갔나 보군. 영주에서 손님이 왔다고 들었다.”
운청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천검종에 돌아왔을 때부터 영주에서 온 손님 이야기로 떠들썩했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은 터였다.
제자들도 그저 귀한 손님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네. 궁우신도 크게 환대하던데, 이 몸이 보기엔 평범한 자였다네.”
소도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영주 8대 가문 중 하나인 풍가에서 온 풍소우라고 합니다. 비록 그는 사생아이나, 형이 천부적인 자질을 지녀 영주 8대 공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 역시 그 가호를 누리고 있습니다.”
진관해가 불쑥 내뱉었다.
“진 장로, 그를 아는 건가?”
소도도가 의외라는 듯 진관해를 봤다.
소도도는 풍소우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없었기에, 다소 놀란 기색이었다.
-관해. 자네의 본체는 영주에 있군?
운청휘가 전음을 보내 물었다.
-네. 공교롭게도, 풍가의 장로에게 바쳐졌습니다.
진관해도 전음으로 대답했다.
진관해의 본체가 영주에 있다는 건 뜻밖이었으나, 그뿐이었다.
선제인 운청휘에게 영주 8대 가문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도도, 지금 성성에 가서 채아를 데려와주길 부탁하지.”
운청휘가 소도도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는 선천경에 도달했기에, 영신과를 써서 채아에게 있는 소도원마종을 녹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
“그래, 지금.”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오늘 풍소우가 오지 않았는가. 모든 사람들이 그를 맞이하러 갔지만, 채아는 특별히 숙소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네. 때문에 내가 지금 만나러 가도 얼굴을 볼 수 없을 걸세.”
소도도가 말했다.
“풍소우 때문입니다. 채아 성녀에게 이상한 마음을 먹을까 봐 미리 성녀를 숙소에 숨겨둔 것이지요.”
진관해가 설명했다.
그도 풍소우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영주에서도 그에게 피해를 당한 여인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그자가 정말로 채아에게 흑심을 품으면, 영주 풍가는 내 손에 멸망할 것이다.”
운청휘가 냉소하자, 두 눈에서 살기가 넘실거렸다.
운청휘가 다시 소도도에게 일러주었다.
“일단은 채아를 불러보도록. 불가능하다면 내가 성성으로 가는 것으로 하지.”
당장이라도 소도원마종을 없애고 싶었기에, 운청휘는 자신이 직접 가는 것도 불사할 작정이었다.
“응! 그럼 먼저 가보겠네!”
소도도가 고개를 끄덕이고 진관해의 저택을 떠났다.
“관해. 정말 나를 사부로 모시고 있느냐?”
운청휘가 이번에는 진관해에게 불쑥 물었다.
“사부님, 왜 그러시는지요?”
진관해는 본능적으로 놀라서 운청휘를 바라봤다.
“제자가 잘못한 것이 있어 사부님을 만족시키지 못한 점이 있습니까?”
운청휘의 시선은 흐트러짐 없이 담담할 뿐이었다.
“대답하거라. 나를 진심으로 사부로 여기느냐? 네 본체도 같은 마음이더냐?”
털썩!
진관해가 돌연 무릎을 꿇었다. 운청휘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사부님. 제자는 세속의 서당에서 수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몇 백 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서당에서 배운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자는 사부를 아버지처럼 존경하여 그의 도를 따르고 그의 말을 배우는 법입니다. 제자는 한번 사부는 영원히 사부로 모십니다.”
말을 끝내고 진관해가 연달아 아홉 번 머리를 찧었다.
쿵! 쿵! 쿵!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 운청휘지만, 이때 진관해가 머리를 찧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진관해가 아홉 번 머리를 찧은 이후.
운청휘가 활짝 웃었다.
“옳다. 한번 사부는 영원한 사부. 진관해, 지금부터 내 진짜 제자임을 기억하라.”
“사부님, 이 제자는 속상합니다. 사부님께서 이제서야 저를 진짜 제자로 여기시다뇨!”
진관해는 억울한 듯했다.
“하하하. 그리 속상해하지 말고 일어나라. 사부로서 제자에게 선물을 주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운청휘는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진관해의 말은 운청휘를 감동시켰고,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알았기에 그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사부님, 설마……!”
진관해가 숨을 들이켜더니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이 커졌다.
“그래. 네 마종을 없애 주겠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나를 볼 때 무릎 꿇지 말거라. 너는 내 제자지 노예가 아니니다.”
운청휘가 진관해가 흥분하여 또 무릎을 꿇으려고 하자 급히 막아섰다.
“이 제자가 경솔하였습니다!”
진관해의 얼굴이 붉어졌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자꾸나. 마종을 없애는 과정에서 남의 눈에 띌 수 있다.”
운청휘가 말했다.
“네. 제자 집에 밀실이 있습니다.”
진관해는 바로 운청휘를 밀실로 안내했다.
지하 삼백여 장 아래, 진관해가 마련한 밀실이 있었다.
위로 백오십 장 높이는 삼십 장 간격으로 기의 흐름을 가리는 진법을 쳤고, 아래로 백오십 장에는 방어 진법을 일정 간격으로 쳐 두었다.
아무리 운청휘라도 이 진법들을 파훼하려면 일 다경은 걸릴 터였고, 영단경 무인이라면 파훼에 몇 시진이 걸릴 터였다.
밀실에 들어선 후, 운청휘가 손을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오행이 힘이 전부 방출되었다.
“맙소사, 이토록 많은 오행의 힘이라니,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운청휘 뒤로 일제히 떠오른 열여덟 가지 오행의 힘을 본 진관해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라지 말고 가부좌를 틀도록. 이제 이 힘을 네 몸에 넣을 테니, 절대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운청휘의 당부에 진관해는 얼른 가부좌를 틀었다.
곧 열여덟 개의 오행의 힘이 진관해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전에 흡혈 박쥐족 두 명의 마종을 없앤 경험이 있기에, 운청휘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일단 마종을 빼낸 후, 진관해의 영혼과 무위를 마종에서 떼어낼 생각이었다.
다만 진관해의 영혼이 영변경의 영혼이기에, 운청휘는 다소 조심스러웠다. 그 난이도가 선천경에 비해 수십 배, 혹은 수백 배 이상이기 때문이다.
무위를 떼어내는 데는 일각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어서 영혼을 마종에서 분리하기 시작했다.
이때 진관해는 자신의 무위가 몸에 돌아온 것에 격동을 느끼고 있었다.
운청휘는 이제 신식까지 진관해의 몸에 불어넣어, 그의 영혼을 제압했다.
“쓰읍…….”
운청휘의 신식이 마종에 침투하자, 진관해가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마치 하늘의 위엄을 마주한 듯 두렵고도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사부의 신식이 끝이 없는 바다라면, 진관해의 영혼은 그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와 같은 심정이었다.
“네 본체가 영주에서 천검종으로 오는 데 얼마나 걸리겠느냐?”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운청휘가 불쑥 물었다.
이때 진관해의 영혼은 구 할 이상 마종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궁우신을 치려 하십니까?”
진관해가 그의 뜻을 파악하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마종을 없애기 시작할 때부터, 본체는 이미 천검종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이변이 없다면 아마도…….”
***
성성 밖에 도착한 소도도는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 성녀의 성전을 지키는 호위는 반 이상이 영단경의 무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4명의 영단경 전수 제자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소도도, 여기 왜 온 거지?”
그들이 소도도를 알아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종주 사부의 명령으로 성녀 채아와 상의할 일이 있다!”
소도도가 궁우신이 준 영패를 내밀며 당당하게 말했다.
“소도도, 또 가짜 명령을 가져왔군!”
전수 제자 4명이 조롱하듯 내뱉었다.
“또라고?”
소도도의 눈에 의혹이 들었다.
“지난번에 종주님의 영패로 성녀를 만났잖나! 그 후로 종주님께서 네놈을 성전에 들이지 말라고 하셨다!”
“이 명령은 성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영주의 손님이 천검종을 떠나기 전까진, 종주님 외에 누구도 이 안에 발을 들일 수 없다!”
***
천검종 성성의 어느 저택.
면적이 삼십만 장이나 되는 호화로운 저택에는 인공호수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중앙에 정자가 있어 운치를 더했다.
사소연은 정자에 앉아 거문고를 타며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허공에서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부님, 영주의 귀한 손님은 잘 접대하셨나요?”
사소연이 연주를 멈추고 눈에 웃음을 머금은 채 노인에게 다가갔다.
“신분이 존귀할 뿐만 아니라 허례허식이 없고 겸손하더구나. 그 나이에 벌써 영단경 9단계에 이르렀다지.”
노인이 눈을 부릅뜨고 칭찬하더니 사소연을 바라봤다.
“소연, 너도 어리지 않으니 사부의 뜻을 알 게야. 오늘 귀한 손님을 대접해야 하니, 그의 눈에 들어야 한다. 네게도 행운이 될 게다!”
“뭐라고요……?”
사부가 말하는 손님이 풍소우임을 어찌 모를까! 사소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