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175화 (175/430)

제175화

사소연은 사부가 자신을 버렸음을 알아챘다.

노파가 다시 말했다.

“소연아, 이 사부는 너를 거두며 네가 더 나은 삶을 살기만을 바랐다. 풍 공자께 선택받으면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 될 거다. 그때 이 사부를 잊지 말거라!”

노파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내포된 뜻은 위협이나 다름없었다.

노파가 사소연에게 지금의 삶을 주었으니, 단번에 빼앗아갈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노파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만약 사소연이 거절한다면, 즉시 죽이겠다는 뜻이 선연했다.

사소연은 짙은 슬픔을 느꼈지만, 웃음을 잃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제자는 우선 사부님의 호의에 감사드리지만,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화장을 할 수 있게 이 각만 주시지 않겠나요?”

“괜찮단다. 지금도 사람을 홀리고도 남는단다.”

노파가 가볍게 손짓하자, 영단경의 힘이 사소연을 감싸 가볍게 하늘로 날려 보냈다.

***

마종을 제거한 후, 운청휘의 심신은 몹시 허약해졌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입에는 미리 준비한 단약을 물려 두었으나, 깨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었다.

반면 진관해는 여느 때보다 상태가 좋았고, 몹시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운청휘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사, 사부님! 제자가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제자가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아낌없이 써 주십시오! 일단 심신이 허약해지셨으니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관해가 운청휘의 등에 손을 얹고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영혼이 영변경의 경지이기에, 무궁무진한 힘이 밀려들어오는 듯했다.

이 각 후에 진관해가 힘을 불어넣길 멈추었는데, 약간의 피로감만 느낄 뿐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운청휘는 단약과 진관해의 도움으로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본체가 여기까지 도착하는 데 보름이 걸리느냐?”

운청휘가 땅에서 일어났다.

“네, 사부님. 제 본체가 미욱하여 전송진은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름이면 반드시 도착할 수 있습니다.”

진관해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답했다.

과거, 오만불손하고 진법에 미쳐있던 터라 천인공노할 짓도 스스럼없이 저지른 진관해다.

그 때문에 혈문노조라는 별호를 얻지 않았던가.

손에 묻힌 피가 얼마나 짙은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운청휘의 제자를 자청한 후, 운청휘는 진관해에게 이전과 같은 일을 금지했다.

그 순간이었다.

‘도도가 돌아왔군. 보아하니, 채아를 만나지 못했구나.’

운청휘의 신식이 방금 저택에 도착한 소도도를 발견했다.

“이만 가지.”

진관해가 앞장서서 진법을 제거하며 나아갔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지하에서 앞마당 대청으로 나왔다.

“운 형제. 채아 동생은 궁우신의 사람에 의해 보호받고 있고, 궁우신 본인을 제외하고 누구도 그녀를 만날 수 없다고 하지 뭔가.”

소도도는 운청휘가 보이자 달려가 말했다.

“또한 성성의 통로도 닫혔네! 아무리 나라도 출입에 보고가 필요하니, 운 형제가 성성에 들어가는 건 어려울 것 같으이.”

천검종 전체가 봉천진지진 안에 세워져 있었다.

더욱이 성성에는 또다른 진을 설치해, 궁우신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때문에 누구라도 성성을 드나들며 궁우신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운 형제, 내가 누군가? 저번에 말했던 일, 파악한 게 있다네.”

별안간 소도도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음?”

운청휘의 눈이 번뜩이며 빛났다.

천검종에 왔을 당시, 신식으로 채아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채아는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고 중얼거렸고, 운청휘는 그 말에서 부모님이 연금되었음을 추측해냈다.

그리하지 않았다면 채아가 어찌 목숨을 걸고 수련을 했겠는가.

하여 운청휘는 소도도에게 천검종 내에 사람을 연금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살펴봐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운 형제, 자네도 알다시피 천검종은 외성, 내성, 시련곡, 낙성산맥, 성성으로 나뉘어 있다네. 시련곡은 내‧외문 제자들의 수련지고, 낙성산맥은 전수 제자들을 위해 만든 험지지. 인공적으로 키운 흉수들이 그곳에서 산다네. 최근 내가 그곳들을 둘러보다 낙성산맥에서 기이한 동굴을 하나 발견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음습하지만 때때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들을 수 있었네. 하지만 소리만 들릴 뿐, 접근해도 모습이 보이지 않더군. 더욱이 동굴의 반경 삼만 장 내에는 어떠한 동물도 살지 않는다네. 흉수마저도 그곳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게다가 동굴에 들른 이후에 궁우신에게 혼쭐이 났지 뭔가? 다시는 나더러 동굴에 접근하지 말라더군. 옳지, 기이한 일이 하나 더 있다네. 동굴에 다녀온 후, 이틀간 몹시 허약해지더군. 마치 정력을 빼앗긴 느낌이었지.”

그 말에 운청휘는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그 동굴은 저승으로 가는 통로일 가능성이 컸다.

소도도가 다녀오고 허약해진 건 저승의 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다만 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점이 의외였기에, 직접 확인해 볼 마음이 들었다.

운청휘는 진관해의 숙소에서 밤까지 기다려, 어둠을 틈타 낙성산맥으로 이동했다.

그의 모습은 어둠에 완전히 녹아들어, 직접 보지 않으면 영단경의 무인이라 해도 그를 감지하지 못할 터였다.

삼천 장 고공에서 이 각여를 날아간 끝에, 운청휘는 소도도가 말한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고 음습한 기운이 흘러나와 음침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그뿐이었다. 육안으로 살폈을 때는 음침한 느낌 외에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다만 신식으로 살펴보니, 동굴의 안쪽이 안개에 싸인 듯 사령의 기가 자욱했다.

그때.

운청휘의 귓가에 젊은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청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상공, 꿈에서 또 우리의 불쌍한 아이를 봤어요.”

젊은 부인의 목소리는 어둠을 뚫고 운청휘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기이한 것은, 그의 신식을 아무리 펼쳐도 그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알 수 없었다.

“이것은 공앙신루(空映蜃楼)인가…….”

붉게 충혈된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운청휘가 중얼거렸다.

공앙신루는 신기루와 유사한 현상으로, 공앙신루는 신기루보다 드물게 나타났다.

공간과 공간이 만나는 지점에서만 공앙신루가 나타나며, 반대편 공간에 있는 목소리가 전해지는 현상이었다.

그러니 운청휘가 듣고 있는 이 목소리는 지금의 낙성산맥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며,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세계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지약(芷若),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자러 가. 만약 우…… 우리가 진짜 아이를 생각한다면, 우선은…… 우리를 잘 보살펴야 해.”

이번에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물결치듯 들려왔다.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목소리였지만, 부인을 위로하는 듯했다.

운청휘가 견디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볼을 타고 두 줄기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3천 년간 듣지 못했지만, 긴 세월이 지나도 그의 영혼에 깊이 새겨져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아버지, 어머니……!”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던 운청휘가 울부짖었다.

그는 동굴을 향해 쇄도했다.

이윽고 운청휘가 동굴 밖 쳐진 봉천진지진을 자신의 기를 결계에 융합시켜 목숨을 걸고 진을 넘기 시작했다.

진법의 결계는 운청휘를 막을 수 없었으나, 그 순간 다른 세계의 힘이 그를 밀어냈다.

어떤 수를 써도 동굴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없는 듯, 막막함이 밀려왔다.

“도덕, 질서, 인애!”

운청휘는 곧바로 왕자 오행의 힘을 끌어냈다.

콰아앙!

운청휘를 밀어내는 이계의 힘과 왕자 오행의 힘이 강하게 부딪치자, 주변이 대낮처럼 번쩍였다.

“참천검집!”

운청휘는 이어서 참천검집을 뽑아들었다.

“일검쇄성진(一剑碎星辰)!”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함께, 운청휘는 단숨에 자신을 밀어내는 힘을 베어냈다.

콰르릉!

격렬한 폭발과 함께 화염이 넘실거리며 동굴 주변을 감쌌다.

이때 운청휘는 육신에서 영혼을 분리시켜 동굴 속으로 돌진했다.

일검쇄성진.

그가 전성기 때 참천신검(斩天神剑)으로 별을 베었고, 그 때 사용한 기술이었다.

지금의 운청휘가 비록 전성기의 무위는 아니라고 하나, 힘을 집중하여 검집으로 저승의 밀어내는 힘을 베어낼 정도는 되었다.

동굴에 진입한 후, 운청휘는 다른 세계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하늘에는 해도 달도 없이 어둡기만 했고, 주변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승이군!”

저승에 도달한 순간, 운청휘는 신식으로 어두운 땅에서 우글거리는 무수한 망령들을 발견했다.

“들었어? 수백만 리 밖에서 저승 겁화가 속세의 여자와 싸우고 있다더군.”

“그 여자 너무 무서워. 화살 한 번에 수많은 망령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어.”

“에휴, 그 여자가 저승겁화를 이겼으면 좋겠어. 그래야……우리도 진정한 저승 세계로 갈 수 있잖아!”

“그래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저승겁화의 자양분이 되겠지.”

망령들은 제각기 떠들며 한 여자와 저승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염죽이 아직 저승겁화를 얻지 못한 모양이군.’

운청휘는 그들의 대화로 저승겁화와 싸우는 사람이 이염죽임을 알아냈다.

보통 때였다면 운청휘는 이염죽을 도우러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콜록!”

그때, 중년인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로구나!”

운청휘는 단번에 아버지 운양(云阳)의 소리임을 알아차렸다.

“상공, 여긴 너무 기이해요. 우리 몸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잖아요.”

이어서 젊은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임지약(林芷若)의 목소리였다.

‘저승에서 한 달을 갇혀 계셨다면, 최소 1년 이상의 수명이 단축되셨을 것이다.’

운청휘의 마음이 초조해졌으나, 부모님이 감금된 장소를 파악할 수 없었다.

‘방금 소리도 공앙신루의 소리였다. 그렇다면 부모님께서는 이 공간에 갇힌 게 아니로군. 공앙신루는 공간과 공간이 있어야 나타나는 현상이니. 그렇다면…… 두 세계의 경계를 넘는 다른 공간이 존재한단 말인가?’

운청휘는 스스로의 추측에 확신을 더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곧 영혼이 육신으로 돌아왔고, 그는 봉천진지진의 결계를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각이 지나도록 또 다른 공간의 기가 감지되지 않았다.

“천검종도 저승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 계신 것이란 말인가.”

운청휘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부모님이 지척에 있는 것만 같은데 닿지 않는다. 감금된 그들을 구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절박함을, 다른 이들이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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