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천검종의 성성, 지극히 호화로운 빈관.
궁우신과 풍소우가 상석에 앉아 눈앞의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들은 얼굴을 면사로 가린 채 춤을 추었고, 그 사이에서 면사를 쓴 소녀가 거문고 연주를 선보였다.
“궁 종주, 당신네 천검종 제자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해. 영주에 있어도 손색이 없겠네.”
풍소우가 술을 마시며 말했는데, 두 눈은 궁우신을 보는 것이 아닌 춤을 추는 10명 소녀와 거문고를 타는 소녀에게로 향했다.
눈에는 감출 수 없는 음란함이 가득했다.
“과찬이십니다, 풍 공자. 부디 오늘 저녁에 제자들을 잘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궁우신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암요, 암요!”
풍소우가 일어나더니 궁우신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궁 종주, 천검종은 줄곧 영주로 돌아오고 싶다고 들었네. 이번에 천검종에서 수확이 있다면 반드시 내 형에게 천검종을 위해 좋은 말을 해주겠네.”
“그…… 그렇다면 풍 공자 부탁 좀 드립니다!”
궁우신이 감격하며 말했다.
“응?”
갑자기 궁우신의 안색이 변했다.
“풍 공자, 노부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물러가겠습니다!”
“음, 가보게!”
풍소우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속으로는 욕을 했다.
‘이제야 떠나다니, 눈치 없는 늙은이!’
“검동(剑童), 관계자 외 전부 쫓아내라!”
풍소우가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네, 공자님!”
줄곧 풍소의 곁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던 하인 검동이 명령을 받들었다.
“너, 너너, 그리고 너너너……, 다 나가!”
검동이 지적한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빈관을 나섰다.
곧 춤을 추던 10명의 소녀와 거문고를 타던 소녀만 남게 되었다.
“좋아. 모두 멈춰라. 춤도 멈추고 거문고도 멈춰!”
풍소우가 말을 내뱉는 순간, 압도적인 위압감이 밀려왔다.
그 소리에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
풍소우는 춤을 추고 있던 소녀들에게 다가가더니, 그중 한 명의 면사를 벗기고 별안간 함박웃음을 지었다.
“쯧쯧, 아름답긴 한데 상등품에 불과하구나!”
풍소우의 음침한 눈빛에, 소녀는 벌벌 떨기만 했다.
“너희들은 가만히 서서 본 공자가 면사를 벗기게 두거라!”
풍소우가 면사를 벗겨낼 때마다, 경국지색의 미모가 눈앞에 떠올랐다.
“하하하, 좋아. 이번에 천검종에 오길 잘했구나!”
풍소우가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가 거문고를 타던 소녀에게로 향하는데, 그 소녀가 별안간 일어나더니 스스로 면사를 벗어던졌다.
물 위에 피어난 연꽃처럼 청초하고 아리따운 얼굴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풍소우는 별안간 멍해지고 말았다.
무수한 여인들을 봐 왔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이었다.
“소, 소저의 이름은 무엇이지?”
풍소우의 숨이 절로 가빠졌다.
“사소연이라 하옵니다.”
거문고를 타는 소녀의 목소리는 마치 운율처럼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좋은 이름이로군. 그 이름과 그 자태, 본 공자는 기쁘게 받아들이지. 소저가 본 공자를 흡족하게 한다면, 첩으로 맞아들이는 것도 고려하겠네!”
풍소우가 활짝 웃더니 황급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풍 공자, 잠깐만요!”
사소연이 별안간 소리쳤다. 어느새 그녀는 단검을 쥐고 스스로의 목에 대고 있었다.
“풍 공자, 우리 거래할래요?”
***
운청휘가 낙성산맥을 떠나고, 동굴에는 다시 음습한 적막만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궁우신이 허공에서 나타나 손에 든 검은 깃발을 휘둘렀다.
그러자 동굴을 막고 있던 진법에 입구가 생겨났고, 궁우신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깃발로 몸을 감싼 궁우신은 약 삼백여 장의 거리를 돌파해, 동굴 끝자락에 도달했다.
눈앞에 단단한 벽이 보이자, 궁우신은 망설임 없이 다시 검은 깃발을 휘둘렀다.
돌 벽이 별안간 사라지더니, 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며 문이 열렸다.
궁우신의 몸은 간단히 그 안으로 녹아들었다.
궁우신이 넘어온 금빛 세계는 단촐한 다락방이었다.
다락방 안에는 중년 남자와 부인이 서로를 위로하며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궁우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들이 모르게 조용히 금빛 세계를 둘러보았다.
만약 운청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이곳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보았으리라.
이 금빛 세계의 너머는, 흡혈 박쥐족이 사는 서북쪽 황무지였다!
운청휘가 진관해의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아직도 어둠이 짙게 내린 밤이었다.
그는 방에 틀어박혀 밤새 가부좌를 튼 채 수련에 몰두했다.
아침이 되어 하인이 식사를 가져왔고, 운청휘는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오후 무렵까지 수련을 이어갔다.
오후 무렵, 강해와 엽추월, 소도도가 진관해의 숙소를 찾았다.
운청휘는 밖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신식을 펼쳐 그들의 대화를 듣기 시작했다.
영주에서 왔다는 귀한 손님이 연회를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천검종의 모든 전수 제자와 장로, 더불어 일부 우수한 내문 제자들을 초청했다고 한다.
강해와 엽추월은 내문 제자의 명단에 있었고, 소도도는 종주의 제자였기에 명단에 올라 있었다.
뜻밖에도 운청휘가 내문 제자의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세 사람은 운청휘를 찾기 위해 숙소를 찾아온 터였다.
“운 형제, 풍소우가 거드름을 피우고 싶어 하네. 연회를 명목으로 우리를 수련시킬 생각인 모양이야. 다만 그는 약관의 나이에 이미 영단경 9단계의 무위라고 들었네.”
운청휘는 소도도의 설명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기만 했다.
스무 살의 나이에 영단경 9단계라면 천성대륙 내에서는 기재라 불릴 만하나, 운청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풍소우의 무위는 직접 수련해서 얻은 무위가 아니라, 단약 등으로 쌓아올렸다는 말도 진관해가 전해준 터였다.
“사부님, 이 연회는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관해가 돌연 다가와 말했다.
“사부님께서 초청받은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사부님께서 비록 내문 제자이나 천형대에서 전수 제자 정지가를 죽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강해와 엽추월은 ‘우수한’ 내문 제자의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들마저 초청했다면 꿍꿍이가 있는 게 당연한 겁니다.
진관해가 뒤의 두 마디는 음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청휘에게 말했다.
-그러니 이 연회는 나를 겨냥했다는 뜻이로군.
운청휘도 의심이 갔지만, 역시 음으로 대답했다.
강해와 엽추월은 운청휘와 함께 사해왕조의 임무를 수행한 후 이미 운청휘의 사람이 되었다.
“제자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부님과 풍소우는 만난 적도 없는데, 이론상으로 그는 사부님의 이름을 모르는 게 당연한 거죠.”
진관해가 말했다.
“운 형제여, 우리 이 연회에 참가할 건가?”
소도도가 묻자, 강해와 엽추월도 운청휘를 힐끔거렸다.
“가자꾸나.”
운청휘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는 보름 안에 거수 운청휘가 선천경에 도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불어 진관해의 본체도 천검종에 다다를 테니,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나았다.
더군다나 이번 연회에서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가령, 그의 부모가 감금된 곳이라든지.
풍소우가 자신을 겨냥했다고 해도, 운청휘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영단경 9단계의 정학도 죽인 와중에, 풍소우 따위가 두려울까?
더욱이 정학은 수백 년을 살며 무위를 다져왔으니, 그 전투력을 풍소우와 비할 수 없었다.
“강해, 엽추월, 둘은 나와 함께 연회에 간다.”
운청휘가 강해와 엽추월을 보며 말했다.
“운 사형 걱정 마세요. 저희는 당신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겠습니다.”
강해와 엽추월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관해, 안전을 위해 너도 내 곁에 있도록.”
운청휘가 진관해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연회가 열리는 시각은 저녁, 장소는 성성 내부였다.
운청휘는 성성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회 참석에 응했다.
일행은 성성으로 향했고, 소도도가 있는 덕분에 순조롭게 전송진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연회에 도착한 첫 번째 손님이 되었다.
“종주께서 연회에 참가하는 사람은 연회 구역에서 자유롭게 활동이 가능하며, 성성의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성성을 지키는 사람이 일행을 보며 말했고, 일행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연회가 열리는 장소로 날아가며 운청휘가 신식을 펼쳤다.
그러나 그는 곧 실망하고 말았다.
성성이 너무나도 넓은 나머지, 그의 신식이라도 일 할 정도의 구역만 탐색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때를 기다려서 채아를 찾아야겠군.”
운청휘가 중얼거렸다.
그는 이미 보름 뒤에 궁우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고 결정했는데, 지금이 채아와 연락할 기회였다.
잠시 후.
운청휘 일행은 풍소우가 연회를 여는 저택에 도착했다.
“잠시 멈추고 초청장을 보여주시길!”
입구에 문지기가 있었는데, 영단경 무위였지만 천검종의 제자는 아니었다.
문지기는 풍소우의 수행원인 듯했다.
“확실히 우리가 보낸 초청장이군, 들어가시오!”
문지기는 초청장을 확인하자마자 그들을 들여보냈다.
다만 운청휘는 신식으로, 자신들의 뒷모습을 주시하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연회장은 야외에 차려졌고, 30여 개의 탁자에 진귀한 과일과 선천경 흉수 고기가 차려져 있었다.
맨 앞에는 임시로 만든 무대가 있었고, 주변에 수많은 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영단경 무인이라도 단번에 무대를 파괴하기는 어려울 성싶었다.
“운 형제, 연회 시작까지는 반 시진에서 한 시진 정도 남았다는군. 미리 자리를 잡으세.”
소도도가 말했다.
“그리하지.”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휘 등이 자리를 잡은 뒤,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