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180화 (180/430)

제180화

검동은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뿐이었다.

“그럼, 생사결을 해 보겠느냐?”

“뭐라고?”

운청휘는 빙그레 웃었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경악하는 반응이었다.

검동은 비록 하인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풍소우를 대신하고 있었다. 천검종의 전수 제자보다도 고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운청휘가 생사결을 청한다는 건, 풍소우에게 전면적으로 도전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줄곧 풍소우의 곁을 지키던 사소연이 처음으로 얼굴을 굳혔다. 이제 상황은 그녀의 예측을 벗어나고 있었다.

‘운청휘, 왜 그렇게 무모한 거야!’

사소연은 속으로 운청휘를 원망하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렇게 말했으니, 이제 나도 당신의 목숨을 지켜줄 수 없어!’

“풍 공자, 운청휘가 너무 오만방자한데 제가 따끔히 가르치겠습니다!”

“풍 공자, 운청휘의 안하무인이 하늘을 찌르니, 이 은도염이 풍 공자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이 임소산도 풍 공자를 위해 나서겠습니다. 저런 허풍쟁이는 가만 두어선 안 되지요!”

은도염, 웅가휘, 임소산이 모두 분노에 찬 마음으로 말했다.

“괜찮소. 운청휘를 상대하는 데 내가 나설 필요가 있을까!”

풍소우가 음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검동의 무위는 영단경 6단계이니, 상대하기에 차고넘칩니다!”

“뭐라고요!”

은도염, 웅가휘, 임소산은 말을 듣고 안색이 변했다.

그들이 비록 천검종에서 손꼽는 전수 제자라고 하나, 셋의 나이를 합치면 100세가 넘었다.

한데 검동은 고작해야 약관의 나이에 영단경 6단계의 무위를 지녔다는 것이다. 천검종에서도 유례없는 절세 기재라고 봐야 했다.

“영주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부유하고 풍요로운 땅입니다. 수련 자원이 풍부한 데다 인재가 넘쳐나니, 검동도 영주에서는 그저그런 기재 중 한 명입니다.”

풍소우의 설명에 세 사람이 기함했다. 자연스레 풍소우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표정이 넘쳐흘렀다.

“영주에서 혈살군은 아직도 오랑캐의 땅이라 불립니다. 무도(武道)는 낙후되었고, 자원도 부족한 데다 야만인이 넘치지 않습니까.”

천검종 내의 모든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 혈살군으로, 이후 혈살종으로 바뀌었지만 영주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이곳을 혈살군이라고 불렀다. 어느 정도 멸시의 뜻이 담겨 있는 부름이었다.

세 사람이 어찌 그 뜻을 모를까. 풍소우의 말에 분위기는 다소 어색해졌다.

“그러나 본 공자는 당신들의 깊은 충심을 보았습니다. 이대로 잘해 준다면, 영주로 당신들을 데려가지요.”

풍소우가 수습하려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감사합니다, 풍 공자!”

세 사람이 급히 부복하며 감격에 겨워 외쳤다.

“하하하! 감히 내게 생사결을 운운해? 하찮구나. 네놈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알려 주마!”

그때, 검동이 냉소를 흘리며 기세를 폭발시켰다.

무대 가까이에 있던 이들은 모두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에 눌려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마, 맙소사! 정말로 영단경의 기재였어!”

“저 하인은 풍 공자와 나이가 비슷하지 않던가?”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하인이 영단경 6단계라니, 영주는 참으로 무서운 곳이군!”

“운청휘가 자초한 일이니, 남을 원망할 수 없을 걸세, 하하!”

퍼엉!

검동은 영단의 힘으로 운청휘를 공격해 들어갔다.

“하찮다? 누가 하찮다는 것이냐?”

두 눈을 가늘게 뜬 운청휘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영단의 힘에 맞섰다. 그의 주먹은 거센 영단경의 힘을 막아내더니 그대로 검동에게 내리꽂혔다.

쾅!

검동은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돌아오너라!”

피할 새도 없이 날아갔던 검동은 운청휘가 손바닥을 내보이자 그대로 끌려왔다. 마치 스스로 운청휘에게 뛰어드는 모양새였다.

검동이 반격하려 했으나, 그의 몸이 거대한 손바닥에 눌린 것처럼 그대로 무대에 내리꽂혔다.

쿵!

운청휘의 영력화장이 오행의 힘과 어우러지더니, 허공에서 거대한 칼 한 자루를 만들어 내었다. 검동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푸욱!

거대한 검이 순식간에 검동의 사지를 집어삼켰다. 검동은 제 팔다리가 없어지는 걸 알아차린 순간, 심장이 꿰뚫리고 말았다.

허공에 흩날리는 핏물만이 이 광경이 꿈이 아니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푸, 풍 공자의 격노를 어찌 견디려고!”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폭뢰가 터지듯 불쑥 터져 나온 말이 좌중을 뒤흔들었다.

아무리 검동이 운청휘를 자극했다 한들, 주인인 풍소우의 체면을 생각해 주는 것이 도리였다.

그러나 운청휘는 도리에 연연하지 않고, 검동을 잔인하게 학살하지 않았던가.

풍소우가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운청휘는 끝났어. 이번에 진짜 끝났다구!”

“종주님께서도 풍 공자의 체면을 세워주는데 운청휘는……! 쯧쯧, 종주님이라도 구해줄 수 없어!”

“그렇지만, 운청휘 같은 녀석은 일찍 죽는 게 좋아!”

“수단이 악랄하고 성정이 포악하니, 혈살종 놈들과 다름없잖아!”

“공생에 이어 풍 공자의 하인까지 죽였으니, 내버려둔다면 반드시 화가 될 거야!”

어느새 좌중의 흐름은 운청휘를 처단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가 왜 나섰는지는 잊혀진 지 오래였다.

공생과 검동의 압박으로 소도도와 강해, 엽추월이 중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이 상황에 이르렀을까?

그러나 아무도 그 점을 생각하는 이는 없으리라.

다들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풍소우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감히 이런 곳에서 야만인 따위가…….”

풍소우가 낮은 소리로 말했는데, 목소리에도 음산함이 깔렸다.

“개가 죽었는데, 주인이라는 자는 가만히 있을 테냐?”

어느새 운청휘는 풍소우를 향해 담담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우…… 운청휘, 감히 풍 공자를 도발하디니!”

사방이 떠들썩해졌다. 이 상황이라면 운청휘는 마땅히 고개를 조아려 용서를 구하거나, 최소한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운청휘가 그들의 생각 따위를 무엇 하러 알고자 하겠는가. 운청휘는 할 말을 했을 뿐이다.

“풍 공자님 화를 푸소서. 운청휘 같은 자에게 화를 낼 가치가 없습니다. 이 은도염이 운청휘를 처치하겠습니다!”

“이 웅가휘도 마땅히 풍 공자를 위해 나서겠습니다!”

“임소산, 풍 공자의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도염, 웅가휘, 임소산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내뱉었다.

“……좋소. 기회를 주지. 운청휘의 숨은 붙여 두고, 그 외는 알아서 하시길!”

풍소우가 음침한 얼굴로 말했다.

“네!”

세 사람은 동시에 명령을 받아 무대 위로 올라갔다.

“운청휘, 운도 나쁘고 머리도 좋지 않은 놈이로군. 하찮은 처지에 어울리게 납작 엎드려 지냈어야지. 이 죽음은 네가 자초한 일이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은도염이 말을 꺼냈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달려들었다.

나설 기회를 놓친 나머지 두 사람은 속으로 은도염이 공을 독점하려 한다며 욕할 수밖에 없었다.

펑펑펑……!

은도염은 정말로 두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듯, 쉴 새 없이 운청휘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운청휘 또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은도염에게 맞섰다. 단번에 수백 합이 오가며 사방에 충격음과 파동이 퍼져나갔다.

쾅!

돌연 큰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무대 아래로 떨어지며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자리에 있던 이들은 연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떨어진 사람이 운청휘라 믿었다.

“함께 덤비거라. 그래야 한 번에 죽이지 않겠느냐.”

그러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조용하고 침착하기만 했다. 모두가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붉은 장포의 청년은 연기를 몰아내며 고고히 서 있었다.

“설마, 방금 떨어진 게 은도염인 건가?”

“내가 가볼게!”

어느 용감한 이가 자리를 벗어나더니, 무대 아래로 갔다. 그가 이내 시체 한 구를 발견하고 비명처럼 외쳤다.

“으…… 은도염이, 심장이 터져서 죽었어!”

시체를 확인한 이가 외치자 사방에서 기겁하는 소리가 났다.

“말도 안 돼!”

“설마 은도염이 운청휘에게 죽을 줄이야…….”

“방금 숨 쉴 틈도 없이 100합을 겨루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은도염과 막상막하의 실력이라는 것인데…… 실은 그보다 위였다는 뜻인가!”

여기저기서 경악이 터져 나왔지만, 운청휘의 손속은 쉴 틈을 몰랐다.

어느새 그는 웅가휘와 임소산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상대해야 하네. 저자의 무위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으니!”

순간 서로를 마주 본 웅가휘와 임소산은 전력을 다해 운청휘와 맞섰다.

콰앙! 쾅!

운청휘는 공격마다 살초를 아낌없이 써 댔다. 운청휘가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 두 사람은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뿐이었다.

“죽여 주마!”

그 순간, 열여덟 가지 오행의 힘이 운청휘의 주먹에 실리니, 가히 공포스러웠다. 그의 일권은 보다 가까운 웅가휘에게 직격했다.

펑!

웅가휘는 마치 땅에 내려친 수박처럼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임소산의 얼굴에 그 잔해가 튀자, 눈에는 저도 모르게 공포가 어렸다.

“아, 안 돼!”

임소산은 속절없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미 운청휘의 공격은 그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만!”

아슬아슬한 순간, 풍소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

운청휘는 피식 웃더니 그대로 손가락을 튕겨 임소산의 머리를 폭발시켰다.

“멈추라고 했는데 듣지 못한 게냐?”

안색이 음침해진 풍소우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무대 위로 날아들었다.

영단경 9단계의 기세가 사방을 뒤덮었고, 운청휘의 목을 조르듯이 덮쳐들었다.

그러나 운청휘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그 기세를 녹여낼 뿐이었다.

“나와 연이 없거늘, 어찌 나를 노리느냐?”

길을 묻듯이 평온한 어조로 묻던 운청휘의 시선이 사소연에게 닿았다.

“저 여인 때문인가?”

“흡!”

시선이 닿자 사소연이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순간 살을 에이는 한기가 들어,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알아서 무엇하겠느냐?”

풍소우가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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