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도덕, 질서, 인애!”
순식간에 도덕과 질서, 인애의 힘이 짙은 안개가 되어 운청휘의 몸을 감쌌다.
이어서 한 줄기 빛이 번뜩인 순간, 운청휘의 영혼은 그의 몸을 떠났다.
영라 반지와 검집, 붉은 장포까지 그의 영혼을 따라 하늘 끝의 진법 결계를 향했다.
“네놈이 어찌 저승에 가려는 게냐?”
운청휘에게 소도원마종을 심으려 했던 궁우신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잠시 그를 보았다.
무언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궁우신이 재빨리 검은 깃발을 휘둘러 운청휘의 영혼을 가두려 한 순간, 운청휘의 육신이 궁우신에게 밀쳐지듯 달려들었다.
운청휘의 육신은 공기를 잔뜩 주입한 가죽 주머니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궁우신과 삼 장 거리를 두고 그대로 폭발하였다.
퍼어엉!
반경 수십만 장이 폭발의 여파에 휩쓸려 무사하지 못했다.
유성군이 내린 듯 한때의 빛무리가 하늘을 휩쓸다 잠잠해졌다.
“후……!”
궁우신도 이 여파에서 온전하진 못했다. 그가 피를 뿜어내며 얼굴을 굳혔다.
“젠장, 자폭하다니……!”
궁우신이 포효하듯 외치며 이를 갈았다.
그는 한 시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주변을 탐색했으나,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어느덧 사방의 연기도 다 가라앉을 무렵,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 어서 채아를 영단경에 도달하게 해야겠어…….”
궁우신이 몸을 돌려 아래쪽 땅으로 날아가니, 마치 하얀 교룡이 구불구불하게 땅을 기는 듯했다.
서북쪽, 흡혈 박쥐족의 성지.
운청휘가 육신을 자폭시킨 지 반 시진 후, 묵빛 화살이 두 사람을 태우고 성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에는 운청휘의 영혼도 있었다.
화살에 탄 수려한 중년인과 아름다운 부인은, 서로를 꼭 붙든 채 불안한 얼굴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니, 휘야. 네가 영혼이라니. 3년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아름다운 부인의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겨우 울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중년 남자는 묵묵히 주먹을 쥐고 있었지만, 시선은 운청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으나, 소자가 반드시 두 분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 후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운청휘의 두 눈가가 붉어졌다. 그의 지금 심정이 두 사람과 어찌 다를까.
다만 파신전을 무리하게 다루고 있기에, 영혼의 소모가 극대했다. 부모님을 안전한 곳에 모시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는 말을 아끼고 파신전의 조종에만 전념했다.
그는 저승으로 간 직후, 저승을 넘어 금빛 세계에서 부모님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운청휘는 파신전으로 부모님을 무사히 결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가 이전에 쳐 둔 진법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 각쯤 쇄도했을까, 운청휘는 지하 궁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천운왕조 황성에서 거수 운청휘가 눈을 떴다.
폐관을 마친 운청휘는 신식으로 황성 내에 있는 김태연을 불러냈다.
“월경 무인이 필요한 모든 것을 챙기거라. 최대한 빨리, 서북쪽 황무지로 돌아가도록.”
운청휘는 자신의 영혼과 부모님이 있는 곳을 김태연에게 알린 후, 그녀가 물자를 준비하여 출발할 수 있도록 안배했다.
한편, 서북쪽 황무지의 숨겨진 지하 궁전에서는 비로소 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불초 소자가 3년이나 부모님을 걱정시켜 드렸습니다!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던 운청휘였으나, 그토록 그리던 부모님 앞에서 어찌 이 감격을 표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휘야, 어서 일어나렴!”
어머니 임지약이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그녀의 고운 손은 운청휘의 어깨를 뚫고 지나갈 뿐이었다.
-소자는 지금 영혼 상태라 저를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육체가 이미 부활했으니, 머지않아 두 분과 만나게 될 겁니다.
비록 눈가가 붉어졌지만, 운청휘는 다부지게 말했다.
지금 영혼 상태만 아니었다면, 부모님을 포옹하고 해후를 만끽했으리라.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휘야. 채아가 궁우신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채아를 구해낼 방법은 있느냐?”
운양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 또한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으니 마음의 기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동시에 잡혀 있는 딸이 떠올랐다. 그는 재회의 기쁨을 잠시 감추고, 신중하게 물었다.
-14일 후면 소자가 천검종을 무너뜨릴 겁니다. 그때 채아를 구할 뿐만 아니라, 궁우신이 한 짓을 톡톡히 갚아 주고 말겠습니다.
운청휘는 두 눈에 냉랭한 기운을 흘리며 이를 갈았다.
-아버님, 어머님. 두 분이 감금된 곳에는 저승의 기운이 새어 들어갔습니다. 소자가 한 권의 무공서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 무공이라면 두 분의 몸에 스민 저승의 기운을 방출할 수 있습니다.
이미 신식으로 두 사람의 몸에 스민 저승의 기운을 알아차린 운청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사람의 수명은 빠르게 줄어들 터였다.
이를 막고자, 운청휘는 무공의 구결을 기억으로 바꾸어 부모님의 머릿속에 옮겨 주었다.
“구전성진결(九转星辰诀)?”
잠시 후, 운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무공을 처음 듣지만, 운청휘의 신식 덕분에 완벽히 이해한 터였다.
-구전성진결은 수련할 때마다 몸을 한 번씩 정화시키고, 삼 전 후에는 몸의 모든 불순물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총 아홉 번의 정화가 이루어진다고 하여 구전성진결이라 부릅니다. 수련 방법은 이미 아실 테니, 시간이 날 때마다 익히시면 됩니다. 또한, 사람을 시켜 물자를 가져오게 했으니, 소자가 채아를 구해 올 때까지만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운청휘가 단숨에 말했다.
“휘야, 지금 떠나려는 거니?”
어머니는 자식을 잘 이해한다. 어머니 임지약이 바로 얘기했다.
-네. 불초 소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대로 있을 수록 영혼의 소모가 크니, 반드시 육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휘야. 구전성진결은 어떤 등급의 무공이더냐?”
운청휘가 떠나려고 할 때, 아버지 운양이 갑자기 물었다.
-대천급(大天级) 무공입니다…….
운청휘는 왠지 부끄러워졌고, 더 높은 등급의 무공을 구하지 못함에 죄책감을 느꼈다. 운청휘는 드물게도 변명하듯 덧붙였다.
-부모님께서 지금 월경이시니 너무 높은 등급의 무공을 수련하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대…… 대천급!”
머쓱해하는 운청휘와 달리, 운양은 넋이 나간 듯했다.
금빛 세계에 갇힌 2년간 한 달 간격으로 채아와 대화를 나눈 그다.
단순히 안부만 묻기만 한 게 아니라, 무도의 길도 논하였기에 그는 새로운 지식에 눈을 뜬 터였다.
가령, 천급 무공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최고급 무공이 아니었다.
천급 위에는 소천급이 있고, 소천급 위에는 대천급의 무공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대천급 무공은 천검종 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무공이라 들었다.
한데 지금, 운청휘가 아무렇지 않게 대천급 무공을 주지 않았는가.
더욱이 그가 말하는 투를 보니 더 높은 무공이 존재하는 듯했다.
지하 궁전을 나서자마자, 운청휘는 천운왕조의 황성으로 향했다.
영혼 형태인 그는 비행 속도가 육신에 들어 있을 때보다 몇 배나 빨랐다.
-앞으로 14일이니, 부디 채아 쪽에 변수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야겠군.
운청휘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도심종마대법, 어혼성숙비전. 궁우신은 대체 어디서 그 무공들을 얻었단 말인가?’
궁우신이 채아와 운청휘를 탐내듯, 운청휘도 궁우신의 무공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의 눈이 알 수 없는 빛으로 언뜻 빛났다.
한 시진 후, 운청휘의 영혼은 황성의 상공에 도달했다.
그는 곧바로 황궁 최심부로 향해 거수 형태의 자신이 폐관한 장소로 들어갔다.
스으으…….
그가 거수 안으로 들어가자, 거수의 앞에 인간의 육신이 조금씩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 속도라면 2~3일 후에는 육신이 완전히 부활할 듯했다.
눈 깜짝할 사이 이틀이 지나고, 운청휘의 예상보다 육신의 부활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운청휘는 영혼의 일부를 분리하여 인간 형태의 육신에 집어넣었다.
* * *
운청휘가 방법을 가르쳐 주고 떠난 후, 채아는 줄곧 소도원마종을 영신과에 옮기는 데 전념했다. 그녀 또한 이틀 후에 소도원마종을 벗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궁우신이 갑자기 사람을 보냈다. 풍소우보다 더 귀한 손님이 왔으니 그녀가 직접 시중을 들라는 분부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7일이 지나갔다.
그간 운청휘는 육체의 무위를 자폭 이전으로 회복했고, 가족들도 안전한 곳에 두었기에 별다른 걱정 없이 무위의 회복에 전념했다.
운청휘는 서북쪽 황무지에 들러 부모님을 뵌 후, 천운왕조를 떠났다.
운역의 안양성에서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사부님!”
“운 형제!”
운청휘를 보자 진관해와 소도도는 감격에 겨워 달려왔다.
“오랜만이로구나. 관해, 5일 후에는 네 본체가 이곳에 오겠느냐?”
운청휘가 진관해를 보고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사부님. 5일 후 아침에 제 본체가 당도합니다!”
진관해가 장담하자,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이곤 소도도에게 시선을 주었다.
“도도, 일단은 가족들에게 돌아가. 그리고 즉시 모든 가족을 천운왕조로 대피시켜. 이미 사람을 보내 두었으니, 그들이 너와 네 가족을 안전한 장소로 데려다줄 거다.”
이윽고, 운청휘는 그간 벼르고 있던 각오를 터트렸다.
“5일 후, 천검종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겠다.”
“뭐라고……?”
소도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운 형제, 자…… 자네 농담이지?”
“농담으로 들리나?”
운청휘가 희미하게 웃어 보이자, 소도도는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하하하, 알겠네. 내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5일 후 자네를 따라 천검종을 평정하겠네!”
아무리 놀랐다고 해도, 운청휘는 자신의 형제였다. 소도도는 사람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천검종.
종파의 의사전 안. 뜻밖에도 궁우신이 공손한 표정으로 한 노인 앞에 서 있었다. 노인에게서는 음침한 기가 흘러나왔다.
“육(陆) 노조, 설마 운청휘가 죽지 않았다는 말씀이십니까?”
궁우신의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기색이었는데, 그는 운청휘가 육신을 자폭시키는 것을 친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거라…….”
음침한 기가 흐르는 노인이 손을 흔들자, 허공에 한 풍경이 그려지듯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