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운청휘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오행의 힘이 화살처럼 날아가 9명의 영단경 무인의 미간을 관통했다.
이때 다급히 날아오던 천검종의 원로들은 그들이 끈 떨어진 연처럼 힘없이 추락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역 이가, 안역 안가, 낙역 낙가의 가주들…….”
하나같이 명성이 자자한 자들이 일수에 죽었으니, 천검종의 원로들도 어찌 놀라지 않을까? 운청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어쩔 수 없는 경외감과 경악이 혼재되어 있었다.
“모든 전수 제자는 물러나라!”
원로들 중 백여 세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 한 명이 손을 내저었다.
“네, 궁 노조!”
100여 명의 전수 제자들은 그들이 목도한 광경에 이미 두려움이 생긴 터였다. 하여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재빠르게 후퇴해 거리를 두었다.
“궁 노조라. 궁우신과 무슨 관계더냐?”
운청휘의 시선은 유일하게 반절 현경의 무위를 지닌 원로에게 향했다.
성이 같은 것도 운청휘의 주의를 끌었지만, 그와 궁우신의 외모가 상당 부분 비슷했다.
비록 궁우신이 현력으로 얼굴을 가려왔다지만, 운청휘의 신식은 현력의 힘을 넘어 그의 외모를 일찍이 파악한 터였다.
“궁 노조는 종주님의 친동생이시지. 운청휘, 그러니 순순히 사로잡히거라. 우리가 직접 나서서 나쁜 결과를 만들어야겠느냐?”
“그 말대로다. 종주님의 명령은 생포일 뿐, ‘무사히’라는 말씀은 없었네. 네놈의 두 손과 발을 잘라 종주님께 데리고 갈 수도 있으니 잘 판단하게.”
“흥, 이놈이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두 손과 발이 대수일까! 이목구비를 다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일세!”
원로들의 노기등등한 말에 운청휘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옅게 웃었다.
“잘도 떠드는군. 주인 대신 맹렬하게 짖어 대는 개와 같은 꼴이로구나.”
“감히 뭐라고 했느냐!”
유일한 여걸 가설이 호통쳤다.
“개 노릇을 한다고 하였다. 그것도 두 마리 짐승의 개가 되다니, 참으로 보는 눈이 없군.”
운청휘가 가설에게 직접 말했다.
“감히 궁 노조와 종주님까지 욕되게 하다니!”
원로들의 얼굴에 분노가 차올랐다.
“다 조용히 해라!”
궁 노조가 오히려 원로들을 진정시키더니,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알아차린 게냐?”
“응?”
원로들의 눈에 의혹이 스쳤다. 운청휘의 말과 궁 노조의 반응은 노회한 그들의 마음에 금세 의심을 피워 올렸다.
그 의심을 훅 꺼트리듯, 운청휘가 가볍게 내뱉었다.
“네 본체는 영수 빙백사가 아니더냐.”
그간 궁우신과 몇 번 맞닥뜨리면서도 궁우신의 정체는 몰랐던 운청휘도.
그도 그럴 것이, 궁우신은 현력으로 운청휘의 눈을 속였고, 자연스레 얼굴에 주의를 돌리게 함으로써 그의 정체보단 외모에 관심을 두게 했다.
다만 눈앞에 있는 ‘궁 노조’라는 자는 얼굴을 가리지 않을뿐더러, 운청휘가 굳이 신식을 발휘하지 않아도 영수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는 형인 궁우신에 비해 능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뭐, 구…… 궁 노조와 종주가 빙백사라고?”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이 궁 노조에게 쏟아졌다.
궁 노조는 이미 한 번 운청휘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알아차렸느냐는 반문은 자신이 빙백사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과 다름없었다.
“왜 그러는가. 형님의 마종이 심어졌는데, 이제 와서 다른 마음이 드느냐?”
오히려 궁 노조는 쏟아지는 시선을 무거운 바위처럼 견디며 무뚝뚝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오해입니다. 영수와 인간은 마찬가지로 생령이니, 저희의 충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가설의 말이 맞습니다. 종주님께 충성하는 것이 저희의 영광입니다!”
“저희가 운청휘를 사로잡는 것을 지켜봐 주십시오!”
원로들이 일제히 입을 모았다.
궁 노조의 말처럼, 그들은 궁우신이 직접 마종을 심은 이들이였다. 생사가 궁우신의 손에 달려 있으니, 그의 정체가 영수이든 흉수이든 마도이든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운청휘, 이제는 우리를 탓하지 말거라!”
“연계 공격하여 저자를 잡고 손과 발을 제거함세!”
10명의 원로들은 곧바로 영단경의 힘을 휘감은 채 운청휘에게 달려들었다.
운청휘 또한 열여덟 가지 오행의 힘을 전부 방출하며, 검집을 들어 그들을 맞이했다.
영단경이 오든, 현경이 오든 전력을 다하는 운청휘 앞에서 숫자가 대수일까.
“뭐, 우…… 운청휘가 18가지 오행의 힘을 깨우쳤다니!”
“18계 오행의 힘, 그…… 그는 사람인가 괴물인가!”
“상황이 좋지 않군. 전력을 다함세.”
그들이 경악하는 사이, 단번에 두 사람이 운청휘의 공격에 맞아 피를 뿜어냈다.
이에 정신을 차린 8명은 서둘러 운청휘를 향해 공격을 쏟아 부었다.
펑펑펑!
운청휘와 그들의 그림자가 얽혀들었다. 언뜻 눈으로 보기엔 무수한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듯했다.
이들은 단순한 접전을 벌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반경 수십만 장의 대지를 황량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부상당했던 이들도 전투에 합류하더니, 지면에서 두께 삼백 장의 흙벽을 쌓아올려 운청휘와 자신들을 가두었다.
이로써 배수진을 친 셈이니, 그들의 얼굴에서 비로소 여유가 보였다.
한편 운청휘는 동시에 영단경 9단계의 무인 10명을 상대하면서도 패색을 보이지 않았다. 비록 벅찰지언정 전투는 대등했고, 도망갈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 * *
마침내 마종을 완전히 연화시킨 거수 운청휘는 선천경 2단계에 도달함을 느꼈다.
그 순간, 그는 사람의 형태가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햇살이 잠시 닿았다 사라지는 듯했다.
거수 운청휘는 전력을 다해 낭야산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선천경 1단계의 인간과 2단계 거수의 융합이라……. 나로서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겠군.”
인간 형태로 변한 거수 운청휘가 중얼거렸다.
“그들을 상대로 시험해 봐야겠군. 영단경 9단계의 마종 10개라, 궁우신. 귀한 선물은 잘 받아가겠다.”
이 각 후.
수세에 몰린 운청휘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몸 곳곳에 크고 작은 부상이 가득했다.
천검종의 원로들도 경상을 입은 채였다. 언뜻 보기에 전투는 그들이 우세를 점하는 듯했으나, 운청휘를 속박하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다른 몸과 합류해야겠군.”
상황을 살핀 운청휘는 망설임 없이 검집을 휘둘러 흙벽을 베어냈다.
칵, 카가가……!
두께 삼백여 장의 흙벽에 거미줄과 같은 금이 퍼지기 시작했다.
검집이 다시 한 번 흙벽에 긴 선을 그어냈다.
콰르릉!
흙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자, 운청휘는 오행의 힘을 추진력 삼아 몸을 앞으로 튕겨내었다.
“지금 도망치는 게냐? 늦었어!”
“가설, 원야, 너희들은 왼쪽에서 운청휘를 막아!”
“너희들 셋은 오른쪽에서 그를 막아라!”
“우리는 후방에서 운청휘를 공격한다!”
원로들이 빠르게 대책을 논하더니 신형을 움직였다.
휘이이……!
개중 후방에서 공격하는 5명의 원로들은 동시에 영단의 힘을 방출했다. 그들이 뿜어낸 영단의 힘은 거대한 화살의 무리를 이루었고, 운청휘를 관통할 듯 쏘아져나갔다.
운청휘는 몸을 옆으로 빼며 검집을 가로 그었다.
직경 삼십여 장의 붉은 검기가 검집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쇄도하는 화살과 부딪쳐 충격파를 만들어 내었다.
연기에 몸이 가려진 틈을 타, 운청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삼천여 장을 나아갔을 때, 그의 왼쪽에서 백만 근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바위가 돌연 날아들었다.
가설과 원야가 영단의 힘을 합쳐 만든 거대한 바위였다.
“무너져라!”
운청휘는 급히 토 속성 오행의 힘을 일으켜 바위를 감쌌다.
돌도 토 속성의 힘에 해당하니, 운청휘가 오행의 힘으로 짓누르자 자연스럽게 쪼개지며 무수한 자갈로 변해 운청휘에게 쏟아졌다.
콰르르르…….
수십만 평의 대지가 자갈에 휩쓸려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운청휘는 재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고고히 서 있는 키 큰 소나무 위로 올라가려는데, 소나무가 갈라지며 운청휘를 집어삼키려 들었다.
촤악!
운청휘는 거의 반사적으로 검집을 휘둘렀다. 사방에 나뭇가지와 뾰족한 솔잎들이 난무했다.)/
“토룡 포효!”
원로들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운청휘가 잠시 소나무에게 묶여 있는 틈에, 지면을 박차고 거대한 토룡이 솟구쳐 올랐다.
쾅!
운청휘의 머리와 부딪친 토룡은 긴 포효를 남기며 구불구불하게 지면을 기었다.
푸우……!
운청휘는 눈앞이 아찔해짐과 동시에 피를 흘리며 밀려 나갔다.
“폭우화침(暴雨花针)!”
그가 균형을 잡기도 전에 사방팔방에서 반짝이는 가는 침들이 쏘아 들어왔다. 수 속성의 힘으로 만든 수침이 전부 운청휘를 노리고 있었다.
푸퓩!
섬뜩한 소리와 함께 운청휘의 전신에서 피가 흘렀다.
“바람의 포효!”
“토룡 포효!”
“목화지애!”
“폭우화침!”
카랑카랑한 외침과 함께 원로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10명의 공격을 막고 있자니 전투는 운청휘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운청휘는 이 각이 넘도록 버텼지만, 끝내 가쁜 숨을 내쉬며 비틀거리고 말았다.
검집에 기대어 겨우 서 있는 그는 전신이 피투성이였고, 눈과 귀, 입과 코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쯧쯧, 이리 고생할 필요도 없었는데, 어리석군.”
“흐흐, 그가 자초한 일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확실히 악질이로군. 우리들이 연계하지 않았다면 잡을 수 없었을 게야.”
“우리들 중 일대일로는 운청휘를 상대할 이가 있을지 궁금하군.”
“이야기는 나중에 함세. 어서 그를 궁 노조께 데려가자고!”
가설이 잡담을 멈추게 하더니 영단경의 힘으로 운청휘를 꽁꽁 옭아매었다.
운청휘는 저항할 힘도 없이, 그대로 궁 노조가 있는 곳까지 끌려갔다.
개중 한 원로가 운청휘의 포박된 모습을 보며 입술을 축였는데, 궁 노조의 앞에 도달하자마자 성급히 입을 열었다.
“운청휘의 손과 발을 거두어도 되겠습니까?”
“어?”
그자는 이미 두 번이나 운청휘의 손발을 자르겠다며 살기를 내뿜은 원로였다.
“은규양(隐葵阳)이다. 네놈이 죽인 은도염의 조부지.”
한 원로가 불쑥 입을 열었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육 장로님께서 운청휘에게 얻을 것이 있으니, 그 후에 자네에게 맡겨주실 거다.”
그러나 궁 노조는 가벼운 손짓으로 은규양의 불만을 잠재웠다.
“네…….”
불만이 있다 한들 자신이 어쩌겠는가.
은규양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