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다만 운청휘와 육 장로님께서 가족이 되어도 변수가 생길까 걱정할 뿐입니다.”
“걱정하지 말게. 육 장로님의 원한도 자네 못지않으니.”
궁 노조가 은규양을 다독였다.
“육 장로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운청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들이 말하는 육 장로가 누구기에, 자신의 가족이 된단 말인가?
“흥, 그분의 존귀한 신분과 이름을 감히 묻느냐!”
은규양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운청휘에게 호통을 칠 뿐이었다.
운청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너희가 말하는 육 장로가 군성문의 노괴 육진이더냐?”
천성대륙으로 돌아온 후 마주친 육씨는 많지 않았는데, 천검종의 원로들이 깍듯하게 말할 정도라면 노괴 육진밖에 없었다.
육진을 떠올린 순간, 운청휘는 지친 와중에도 살기를 피워 올렸다.
그는 자신의 영수 기령을 사로잡아가지 않았던가!
“옳지, 알고 있구나.”
궁 노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휘에게 딱히 숨길 필요도, 부인할 필요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와 나는 서로를 토막 내지 못하는 게 했을 뿐이거늘, 어찌 가족이 된다는 소리를 지껄이느냐?”
운청휘가 금방이라도 궁 노조에게 달려들 듯 사나운 눈빛을 뿜었다.
“하하하, 네놈에게 기쁜 일을 말하는 것을 잊었다.”
옆에 있던 은규양이 갑자기 화제를 가로챘다.
“종주님께서 채아 성녀를 육 장로님과 혼인시키기로 결정하셨다. 세속의 예의를 따르자면 그래, 네놈이 장로님의 처남이 되겠군?”
“……뭐라 하였느냐?”
그 순간, 운청휘의 두 눈이 한껏 가늘어지며 짙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이때, 인간 형태로 변한 거수 운청휘는 낭야산과 3만 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와 같은 단계의 무인에게는 몇 번 호흡하면 닿는 거리에 불과했다.
카가각……!
그를 억누르고 있던 영단경의 힘이 밀려나더니 쇠사슬이 부서지듯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흩어져 버렸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어느새 온몸을 감싸오는 냉기에 몸을 떨었다.
후우우…….
돌연 운청휘의 몸 뒤에서 세찬 바람이 불더니, 그에게서 빛이 터져나왔다.
무위의 폭증이었다.
시작은 선천경 1단계였으나, 무위의 폭증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었다.
선천경 2단계!
선천경 3단계!
선천경 5단계!
선천경 6단계!
선천경 9단계!
마침내 반절 영단의 경계에 도달하자 폭증의 여파가 가시고 살기를 내뿜는 운청휘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설마 선천경 1단계의 무위로 우리와 맞섰던 게냐?”
원로 중 한 명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운청휘는 대답 대신 원로에게 손을 내밀더니, 무언가를 움켜쥐는 동작을 했다.
다음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원로의 몸은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고 있었다.
수정처럼 반짝이는 마종이 언뜻 빛났다가, 순식간에 운청휘의 영라 반지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물으마. 궁우신이 채아를 육진에게 보낸다 하였느냐?”
운청휘는 은규양을 하늘 높이 내던지며 으름장을 놓았다.
“어, 어찌 한 번에 이리 강한 전투력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겁에 질린 은규양은 동문서답을 했고, 그 대가는 가혹했다.
펑!
그의 다리는 폭죽을 심어놓은 양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아……!”
은규양이 고통을 잠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네게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거늘, 어찌!”
운청휘는 사무치는 살기를 억누르며 가는 눈을 떴다.
“마, 맞아. 종주님께서 채아 성녀와 육 장로님의 혼인을 추진하셨다. 우리는 네놈을 붙잡아 그 혼사의 증인이 되게 하려 했다.”
은규양은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운청휘, 충고하건대 은규양을 놓아주거라! 네 무위가 어찌 되었든 우릴 상대할 수 있을 성싶더냐!”
궁 노조는 아직도 화가 지척에 도달했음을 모르고 운청휘를 협박하고 있었다.
“정녕 두 손과 발이 없어져야 정신을 차릴까!”
궁 노조의 위협에 운청휘는 행동으로 답했다.
펑! 펑! 펑!
연달아 세 번의 폭발음이 들리더니 은규양의 나머지 다리와 손이 폭발하여 사방에 흩날렸다. 운청휘는 은규양을 허공에 내던지더니 그대로 그의 몸마저 폭발시켜 버렸다.
지금의 운청휘는 이미 성공 거수 형태의 자신과 융합을 이룬 상태였다.
이는 하나와 하나를 더해 둘이 되는 이치가 아니라, 무한한 곱셈의 영역이었다. 두 형태가 융합을 이룬 후, 운청휘는 선천경의 단계가 아니라 반절 영단의 무위에 이른 셈이다.
지금까지 다 드러내지 않았지만, 채아의 이야기를 들은 이상 감출 것도 없었다.
“어차피 천검종을 말살시키려 했으니, 너희부터 시작하마.”
운청휘의 신식이 천지를 뒤덮었다.
그의 살기는 신식이 뻗어나가는 범위를 더더욱 넓혀, 원로들뿐만 아니라 수십만 장 떨어져 있는 전수 제자들에게까지 닿았다.
채아를 몇백 살이나 된 노괴에게 시집 보낸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줄곧 가족을 소중히 여겼던 운청휘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전부 죽여주마!”
운청휘의 고함을 필두로 영단의 힘이 원로들을 덮쳤다. 수십만 장 바깥에 있던 전수 제자들마저 하늘을 덮은 힘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럴 틈이 없다, 어서 연계 대열을 갖춰라!”
“서둘러라, 꾸물대다간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공포에 질린 음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원로들은 곧바로 대열을 갖추고 운청휘와 대적하려 했다.
콰르릉!
우우우!
열 명의 힘이 충돌하니 천지는 몸을 떨며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사방에 불꽃이 튀었고, 거센 바람은 대지에 긴 발톱 자국을 남겼다. 물과 불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가운데 운청휘의 살기는 점점 선명해져 갔다.
슈욱!
한 원로의 목을 베자, 참천검집은 곧바로 원로의 마종을 가져왔다.
쾅!
운청휘는 물 흐르듯 멈추지 않고 움직여 다른 원로에게 일권을 날렸다.
원야라는 이름의 원로는 영단경의 힘으로 방어하려 했지만, 간발의 차로 늦고 말았다.
폭발 직전, 마종은 무엇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운청휘의 영라 반지로 들어갔다.
원야를 폭발시킨 운청휘의 싸늘한 시선이 가설에게 향했다.
“우, 운청휘, 나는 사소연의 사부 가설이다. 자네는 사소연과 인연이 있지 않나! 내 제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살려 주게!”
가설은 겁에 질려 급히 운청휘에게 용서를 빌었다.
“사소연? 그 여인의 스승이라면 더더욱 죽여줄 수밖에!”
사소연을 언급하자 운청휘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그가 검집을 가볍게 휘두르자 가설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고, 돌아온 검집의 끝에는 투명한 마종이 맺혀 있었다.
“선제진해 제1식. 횡소팔황!”
직경 삼백여 장의 붉은 검기가 온 세상을 덮쳤다.
100명의 전수 제자는 붉은 검기에 휩싸였는데, 언뜻 보기엔 불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듯했다.
“아아아……!”
비명 소리만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그들의 육신은 빠르게 흩어졌고, 눈을 깜박일 때마다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전수 제자들을 일검에 죽인 운청휘는 원로 한 명을 틀어쥐었다.
잔뜩 겁에 질린 원로는 저항할 의지마저 꺾인 상태였기에, 우득 소리와 함께 죽었다.
이제 반경 수십만 장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은 단 둘뿐이었다.
한 명은 운청휘였고, 한 명은 궁 노조였다.
이때의 궁 노조는 상공에서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의 연로한 몸이 절로 떨릴 만큼, 운청휘가 보인 기세는 참으로 가공할 만했다.
천검종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전수 제자들과 영단경의 원로들을 일 다경도 걸리지 않아 몰살시키지 않았던가!
궁우신이라도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궁 노조는 자연스레 운청휘에게 저항할 의지가 꺾였다.
“궁우신에게 전하거라. 내일 천검종을 폐문하게 될 테니, 목을 잘 닦아 두도록!”
영단의 힘을 궁 노조의 가슴에 밀어 넣으며, 운청휘가 낮게 말했다.
목숨을 부지했다는 생각에 궁 노조가 입을 열려는 순간, 운청휘가 한발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
“알아들었으면 썩 꺼져라!”
운청휘는 망설임 없이 궁 노조를 발로 걷어차 힘껏 날려 버렸다.
“내 마음아 바뀌기 전에 가는 게 좋을 것이다.”
하필 머리를 걷어차여 피가 흘러내렸지만, 눈앞이 벌겋게 물들어가는 것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궁 노조는 황급히 본체를 드러내고 체내의 정혈을 태워가며 빠른 속도로 자리를 벗어났다.
윙윙윙…….
홀로 남게 되자, 별안간 운청휘의 손에 들린 검집이 몸을 떨었다.
마치 운청휘에게 전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래. 나도 신검을 감지할 수 있었다.”
운청휘가 낮은 소리로 참천검집에게 말했다.
윙윙윙…….
또 진동이 전해졌다.
“채아를 구하고 천검종을 몰살한 뒤에, 신감을 되찾으러 가야겠군.”
그간 검집은 참천신검의 기운을 감지했지만, 구체적인 위치를 잡아내지 못했다.
이는 참천신검이 봉인되었음을 뜻한다.
운청휘는 무위가 반절 영단까지 폭증한 후, 드디어 신식으로 봉인된 장소를 감지할 수 있었다.
위이잉…….
마치 그를 믿는다는 듯이 진동하던 검집은 어느새 그의 손에서 사라지더니 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 운청휘가 모든 가족을 되찾을 수 있다면 신검, 너의 덕인데, 어찌 포기하겠는가!’
참천신검이 없었다면 그가 어찌 공간의 틈을 만들어서 천성대륙으로 올 수 있었을까? 가지고 있는 모든 법보 중 참천신검에 대한 애착이 가장 큰 운청휘였다.
‘저쪽 방향은 진관해가 말했던 영주가 아닌가?’
운청휘의 시선은 태양이 떠오르는 위치로 향했다. 천백만 리 밖에서 참천신검이 희미한 기를 뿜는 듯했다.
반나절 후.
온 혈살군이 들끓었다.
혈살종의 10여 구역의 모든 큰 세력의 핵심과 우두머리들이 전부 사망했다.
천검종마저도 피해가 컸다.
10명의 노인, 100여 명의 전수 제자가 모두 죽었다.
“들었나? 다른 지역에서 온 세력들이 전부 운청휘에게 격살당했다더군!”
“어쩐지, 운가의 일원들이 돌아왔다 싶더니 황성의 재건을 위해서였군!”
“선천경 무인들도 공사에 참여했다는군. 10여 명의 선천경 무인들이 하늘을 날며 고생했다지? 그 장면을 자네도 봤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