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천운왕조를 공격하러 온 세력의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운가에 항복하라고 강요당했지. 모두가 운청휘가 연제한 독약을 마셨는데, 정기적으로 해독제를 먹어야 목숨을 지킬 수 있다더군!”
“이제 천운왕조는 천검종에 견줄 만한 세력이 된 셈이군. 그리고 내일 운청휘가 천검종을 공격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천 년 동안 혈살군의 패자였던 천검종도 이제 막을 내리는 건가?”
“에이, 설마. 천검종은 집단일세. 운청휘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이 아냐.”
“장담할 수는 없다네. 천검종의 원로와 전수 제자들도 모두 운청휘의 손에 죽었다고 들었네.”
온 혈살군이 들끓었지만, 운청휘에게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결국 천검종 최강의 전력은 원로도 전수 제자도 아닌, 신처럼 군림하는 궁우신이기 때문이다.
이때 궁 노조가 천검종으로 돌아왔고, 곧바로 궁우신을 만나러 갔다.
“형님, 크, 큰일입니다! 원로와 전수 제자들이 모두 운청휘에게 당했습니다!”
차칵!
궁우신은 손에 든 찻잔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었다.
“어? 반절 현경인 네놈도 운청휘의 상대가 될 수 없던 게냐?”
혼례 때나 입는 경사스러운 붉은 옷을 입은 육진이 불쑥 말했다.
“송구합니다. 저, 저는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숨을 가다듬은 궁 노조가 낭야산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응? 운청휘가 원래 그대들에게 잡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실력이 갑자기 폭증했다는 것인가?”
궁우신은 묵묵부답이었다. 화려한 혼례복을 입은 육진이 말을 넘겨받았다.
“선천경 1단계의 무위가 폭증하여 겨우 반절 영단이라?”
“네…… 네, 육 장로님!”
궁 노조는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이상하군. 아무리 반절 영단이라 한들 자네는 반절 현경이야. 자네와 그리 무위의 차이가 큰데 적수가 안 된다고?”
육백여 년 가까이 살아온 육진이었지만, 이러한 상황은 처음 겪었다.
어떤 기재라도 선천경에 도달하면 단계를 뛰어넘어 무위를 상승하는 데 난관을 겪기 마련이다.
운 좋게 영단경까지 도달했더라도, 더 많은 힘을 필요로 하기에 초월하는 능력을 거의 상실한다고 봐도 좋았다.
그러니 영단경에 도달한 이가 자신을 능가하는 이를 만난다면 죽음을 각오하는 편이 좋았다.
이는 구성 기재라 하여도 예외가 아니었다.
육진은 무언가 생각난 듯 궁 노조를 빤히 보았다.
“운청휘가 전투에서 몇 가지 오행의 힘을 사용했나?”
“저도 믿지 못했습니다만…….”
궁 노조가 쓴웃음을 지었다.
“운청휘는 열여덟 가지 오행의 힘을 사용했습니다!”
“뭐라고!”
“뭣이!”
육진과 궁우신이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육진은 이렇게 많은 오행의 힘을 사용한 사람은 처음 들었다.
궁우신은 지난번 운청휘와 붙었는데 이미 그가 동시에 열다섯 가지 오행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봤고, 그것이 운청휘의 한계인 줄 알았다.
설마 운청휘가 다른 힘을 감춰두었을 줄이야!
“운청휘가 아직 낭야산에 있나? 궁우신, 당장 노부가 그를 찾으러 가게 해주게!”
의자에서 일어난 육진의 얼굴에 기대가 넘쳤다.
영변경의 노괴인 만큼, 그는 궁우신보다 식견이 높았다.
열여덟 가지 오행의 힘이 모든 오행의 힘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얼마 전, 문주님께서 선계와 소통하셨을 때 전체 오행의 힘을 터득한 기재를 만나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로잡으라는 명을 받으셨다. 운청휘를 문주님께 바친다면 큰 상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문주님과 소통하는 선인의 보답도 기대할 수 있겠어!’
이때 육진은 문주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의 문주는 ‘군성문’의 문주로, 선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 진위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군성문의 장로 중 육진은 군주가 선계와 소통하는 광경을 보았으며, 전설 속의 선인과도 마주했다.
상서로운 구름을 거느리고 온 세계를 누비는 기개가 가득하니, 선인이 마음을 먹으면 눈빛만으로 육진을 파멸시킬 듯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때를 떠올리자 육진은 소름이 돋았다.
“육 장로님, 가시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내일 운청휘가 천검종에 올 테니까요.”
궁 노조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번에 살아 돌아온 것은 운청휘의 말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전하다니?”
궁우신이 물었다.
“혀…… 형님에게 목을 깨끗이 씻으라고 하네요. 내…… 내일 천검종을 학살한다고 합니다!”
말을 하면서도 두려웠는지, 궁 노조가 고개를 떨궜다.
“하! 참으로 오만방자하구나. 좋아, 이 궁우신이 내일 그가 어찌 나오는지 보겠다!”
궁우신의 안색은 더없이 흉악한 빛으로 물들었다.
“어, 어어어! 이게 어찌 된 일이야!”
그때, 돌연 궁 노조가 비명을 꽥꽥 질러 댔다. 육진과 궁우신이 황급히 보니, 그는 전신의 핏줄이 불룩불룩 솟아오르고 몸은 터질 듯이 부풀고 있었다.
핏발 선 두 눈이 이내 벌겋게 물들더니…….
펑!
손쓸 틈도 없이, 궁 노조의 전신은 그대로 허공에 휘날리는 작은 덩어리들로 흩어졌다.
궁우신은 이 광경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아아, 운청휘, 감히 내 동생을 죽이다니. 나 궁우신은 네놈을 죽여 원한을 갚겠다고 맹세하마!”
궁우신의 고함이 의사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 *
저 멀리 안양행성의 안양성 성문이 보였다.
운청휘는 안양성에서 흘러나오는 두려운 기운을 느꼈는데, 신식을 사용하지 않아도 진관해의 본체가 뿜는 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도 멈추지 않고, 운청휘는 성문으로 향했다.
마침 소도도와 두 명의 진관해가 성문 앞에서 운청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 형제!”
소도도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더니 다가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도도!”
운청휘도 소도도에게 똑같이 인사하며 친분을 표했다. 그들은 언제 마주해도 정다운 형제였다.
이윽고 운청휘의 시선이 두 진관해에게 향했다.
둘의 용모는 찍어낸 듯이 똑같았지만, 흘러나오는 기는 판이했다.
한쪽은 운청휘가 손가락만 튕겨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지만, 다른 한쪽은 운청휘라도 대결을 꺼릴 정도였다.
사나운 기를 뿜어내는 쪽의 진관해가 운청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안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운청휘는 침묵으로 그들을 마주했다.
숨을 두어 번 쉴 시간이 지나자, 별안간 두 진관해가 무릎을 꿇더니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제자 진관해, 사부님을 뵈옵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얼굴은 웃고 있었다.
“내가 사람을 잘 보았구나. 일어나거라.”
과거, 진관해는 운청휘가 자신과 같은 영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오해를 풀고자 했을 뿐이다.
“제자는 방금 사부님께서 영신의 존재인지 확인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진관해의 본체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답은 얻었느냐?”
운청휘가 물었다.
“네!”
진관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자는 사부님이 영신이라고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영신이 아니었지. 그래, 후회하느냐?”
“후회하지 않습니다!”
진관해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깊이 탄복시켰습니다. 당신을 사부로 모실 수 있는 것은 제자의 일생에 가장 큰 행운입니다!”
운청휘는 구태여 겸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네 행운이 사라지지 않도록 힘쓰마. 자, 이제 전송진을 복구하여 천검종으로 가자.”
“네. 이미 사람을 시켜 복구시켰습니다!”
진관해가 말했는데, 눈에 차가운 살기가 스쳤다.
“그럼 궁우신을 보러 가자꾸나.”
일행은 곧바로 안양성의 혈문전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운청휘가 불쑥 입을 열었다.
“관해. 네게 살진을 하나 알려 주마. 육진은 네가 맡기겠다.”
“육진? 군성문의 육진입니까?”
진관해의 본체가 물었다.
“제대로 맞혔구나.”
진관해가 육진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진법이 필요했다.
몇 달 전, 육진이 기령을 빼앗아 갔을 때의 무위는 영변경 3단계였다. 영변경에 도달하면 무위가 쉽게 오르지 않는 건 당연한 이치니, 지금도 무위는 동일할 터였다.
진관해의 본체도 육진과 같은 무위였으나, 같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운청휘가 전수한 ‘마혈곤원진(魔血困元阵)’을 터득하면, 진관해는 구 할 이상의 확률로 육진을 가둘 수 있을 터였다.
그날 저녁, 운청휘는 진관해에게 마혈곤원진의 이치를 알려 주는 한편, 신식을 이용해 진관해를 수련시켰다.
진관해는 환상 속에서 마혈곤원진의 설치를 연습했는데, 과연 그 천부적인 재능으로 운청휘를 놀라게 했다.
선계의 선인들도 이 진법을 배우려면 10번 이상을 거듭 연습해야 하건만, 진관해는 9번만에 해낸 것이다. 참으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진관해의 수련이 끝난 후, 운청휘는 폐관에 들어갔다.
영라 반지에 총 10개의 혈정이 있으니, 이를 연화한다면 최소한 몇 단계는 무위가 급증할 터였다.
밀실을 마련한 뒤, 두 명의 운청휘가 밤새도록 혈정을 연화시켰다.
동쪽 하늘에 희끄무레한 빛이 번질 무렵, 인간 운청휘는 혈정의 힘을 2할 연화하여 선천경 2단계의 무위에 도달했다.
거수가 변신한 운청휘는 혈정의 힘을 4할 연화했는데, 무위는 여전히 선천경 2단계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위를 올릴 수록 들이는 공이 커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므로.
아침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혈문전의 사람들이 운청휘에게 전송진이 복구되었다는 보고를 올렸다.
운청휘는 다시 거수와 융합했고, 무위를 점검했다. 무위의 경계는 여전히 반절 영단이었지만, 전투력은 어제보다 3할 이상 증가한 상태였다.
“사부님, 이제 출발할까요?”
진관해가 앞장서서 소도도와 운청휘를 전송진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그들의 눈앞은 안양성에서 천검종으로 바뀌었다.
전송진 바깥에서 어른거리는 인파는 100만 명에 달하는 내‧외문 제자들과 장로들이었다.
“운청휘가 이미 도착했다고 종주께 아뢰거라.”
운청휘 일행이 전송진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한 장로가 내문 제자들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죽고 싶지 않다면 한쪽으로 물러서라.”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친 운청휘 일행. 개중 운청휘가 준엄한 시선으로 100만 명을 내려다보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