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무인의 수련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보통의 공간은 그를 감당하지 못한다.
운청휘도 천성대륙에 돌아오기 위해 무위를 압축하지 않았던가.
만약 선제의 몸 그대로 돌아올 수 있었더라면 호흡 한 번으로 온 대륙을 파괴하고 말았으리라.
그러니 무인이 일정 경지에 오르면 자연히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선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운청휘가 사색에 잠겨 있는 동안, 진관해와 육진의 대결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열흘을 싸워도 승패가 갈리지 않겠지만, 진관해에게는 비장의 수가 있었다.
운청휘가 그에게 전수한 ‘마혈곤원진’이라면, 같은 무위의 육진은 꼼짝없이 잡을 수 있었다.
운청휘는 검은 깃발을 흔들어 진관해의 옆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사지를 망가뜨리도록.”
진관해는 곧바로 명령에 따랐다.
우득! 우득! 우득! 우득!
네 번의 끔찍한 소리와 함께, 육진의 두 손발이 완전히 부서졌다.
진관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육진의 가랑이를 거세게 걷어차 버렸다.
우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육진이 참다 못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진관해,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감히 노부의 생명줄까지 끊어 버리다니!”
육진은 가슴을 찢는 비명을 질렀다.
“어디서 성질을 부리느냐?”
미간을 찌푸린 진관해가 육진에게 다가가 연거푸 따귀를 날렸다. 그때마다 육진의 누런 이빨이 공중에 흩날렸다.
“고통을 주되, 무위는 폐하지 말거라.”
운청휘의 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의 무위를 폐하지 말라고요?”
진관해가 명령을 듣는 동시에 운청휘를 쳐다봤다.
“사부님, 그 무공을 얻으신 건가요?”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심종마대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관해의 눈이 설렘으로 번뜩였지만, 말을 억눌렀다.
운청휘는 이를 포착했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궁우신이 왜 현경 5단계의 무위인지 아느냐?”
“제자가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상식적으로 궁우신은 온 세상에 마종을 심었고, 마종을 심은 사람의 무위를 뺏으면 그만이죠. 그런데 수천 년을 수련했는데, 아직도 현경 5단계의 무위라뇨.”
진관해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자,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마도는 수련할 때마다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궁우신은 이에 필요한 웅대한 포부가 없으니, 수련에 진전이 없었느니라. 그의 의지가 약하고, 웅대한 포부가 없다고 생각하거라.”
운청휘가 진관해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사부님, 이 제자에게는…… 그러한 포부가 보입니까?”
진관해가 다급히 물었다.
“아직은 아니로구나.”
운청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히 의지나 포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재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마도 무인은 그 의지가 하늘을 삼킬 듯이 굳셀 뿐만 아니라, 최절정의 기재였다. 이는 진관해가 이해하는 기재의 범주를 넘어선 것이었다.
선계로 눈을 돌린다 해도 몇 명 되지 않으리라.
그러니 천성대륙에서 운청휘가 염두에 두는 이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었다.
운청휘 자신.
구음한맥의 채아.
모든게 비밀에 쌓여있는 이염죽.
마지막으로 검신 풍무극광이 있었다.
육진은 겨우 숨만 붙은 채 헐떡이고 있었다.
그제야 운청휘가 몸을 날려 그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구슬이 들려 있었다.
“마종!”
진관해가 어찌 그 구슬을 알아보지 못할까. 다급히 말을 내뱉은 그가 놀란 얼굴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사부님께서 방금 무공을 얻으셨음에도 곧바로 사용하시다니!”
마종을 육진에게 심은 후, 마종이 그의 무위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운청휘는 잠시 기다렸다가 단번에 마종을 낚아채었다.
이때 마종에는 육진의 모든 무위가 담겨 있었다.
운청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걸며 마종을 영라 반지에 넣었다.
“이제 하나씩 알아봐야겠군.”
낮고 음산하게 말한 운청휘는 육진의 영혼을 산채로 뽑아내어,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곧, 그의 신식에 갇혀 있는 기령이 보였다.
“군성문의 문주가 기령을 마음에 들어할까 싶어 기령을 영주 홍가(洪家)에 가두었군. 그는 홍가의 객경 장로였구나!”
나직하게 중얼거린 운청휘가 진관해에게 시선을 두었다.
“관해, 홍가는 영주에서 어떤 위치이더냐?”
“홍가는 영주 8대 가문 중 하나로 풍가에 뒤지지 않습니다.”
진관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운청휘는 계속해서 육진의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채아가 죽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의 영혼마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을까!
마침 기억이 어젯밤에 도달했다.
육진은 궁우신의 주도로 채아와 혼인을 올렸지만, 신방에 든 채아는 영신과로 만든 육체였다.
육진이 합방을 시도할 때, 영신과로 만든 채아가 별안간 폭발하고 말았다.
“아……!”
육진이 놀라며 노발대발했다.
“이 천한 것의 무위를 봉인했거늘, 어찌 자폭한단 말인가? ……아니, 이것은 가짜로군. 이 천한 것이 노부를 속여! 어디 숨어 있든지 당장 찾아내 주마!”
육진은 발광을 하며 채아를 찾아다녔다.
결국 채아의 몸종들을 다그쳐 그녀의 은신처를 알아내었고, 마침내 그녀를 찾았을 때 작은 혼잣말을 듣게 되었다.
“아무리 가짜 육신이라 해도, 더럽히면 안 되었는데…….”
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육진은 그녀의 말을 듣고 거의 발광했고, 채아의 몸종들을 인질로 삼아 채아를 협박했다.
그러나 채아의 여종은 혀를 깨물어 자진하였고, 이 일로 채아의 정신은 단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가 천검종에 올 때부터 시중을 들었던 여종은 주종 관계를 떠나 친자매와 같은 정을 쌓은 사이였다.
채아는 필사적으로 육진과 싸웠으나, 무위로서 상대가 되지 않자 굴욕을 피하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그때 그녀의 영혼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지나친 비통에 영혼이 이리 흩어진단 말인가…….”
기억을 모두 살펴본 운청휘는 살기를 내뿜으며 검은 깃발을 흔들었다.
육진의 영혼은 봉천진지진에 갇혔고, 끝을 알 수 없는 멸혼의 술법이 걸렸다.
-아악!
육진의 영혼은 가슴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죽여라! 제발 나를 죽여 다오!
육진의 영혼이 애원했지만, 운청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굳은 얼굴로 봉천진지진을 바라보았다.
“네놈은 죽이지 않겠다. 봉천진지진 안에서, 영원히 멸혼의 술법에 고통스러워하거라.”
영혼이 흩어지는 것보다 더 비참하고 잔혹한 고통이 무엇이겠는가.
영원히 고통을 겪는 일 외에, 무엇이 있을까.
* * *
반나절 후, 삼계동 안쪽에서 한 쌍의 남녀가 걸어 나왔다.
성공거수가 환화한 운청휘가 앞에서 걷고, 뒤에는 묵색 장궁을 든 절세미인 이염죽이 뒤따르고 있었다.
지금의 이염죽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는데, 그녀의 눈빛에는 적나라한 욕망이 있었다.
예전처럼 죽어 버린 고목같은 눈빛이 아니라, 두 눈에 빛이 깃들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지금의 이염죽은 그 어느 때보다 매력적이었다.
“운청휘, 천화는 돌려줄게.”
이염죽이 별안간 운청휘를 부르더니 손에 푸른 화염을 떠올렸다.
청연지심화는 곧장 이염죽의 손을 떠나 운청휘의 몸안으로 파고들었다.
운청휘는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앞을 향해 걸어갔는데,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 걸음 삼백 장을 나아가고 있었다.
이염죽은 뒤처지기는커녕, 태연히 운청휘의 뒤를 따랐다.
낙성산맥의 어귀. 채아를 안은 인간 운청휘는 침울한 표정이었다.
이따금 그는 실소를 흘렸는데, 더없는 고통으로 가득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수련을 하던 이가 하필 ‘사랑’을 얻게 될 줄이야.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이염죽이라니…….”
운청휘가 쓰게 중얼거렸다.
이 각 후, 거수 운청휘는 이염죽과 함께 낙성 산맥을 빠져나왔다.
인간 운청휘와 거수 운청휘는 다시 융합을 이루었고, 이를 묵묵히 지켜보던 이염죽이 입술을 움직였다.
“생각은 마쳤어?”
“생각할 수 없다고 하면, 나를 미워하겠느냐?”
운청휘가 쓴웃음을 지으며 이염죽을 봤다.
“응!”
이염죽은 곧바로 답했다.
“본래 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수련으로 평생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몸. 그러나 네 여동생의 ‘사랑’으로 네게 흔들리고 말았지. 이제 내 부족의 부활을 위해 살아가던 나는 더 이상 없고, 너를 위해 살아가게 되었어.”
이염죽이 자유롭게 저승을 드나든 순간부터, 운청휘는 이염죽이 산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살아 있는 것은 오직 의지에 불과했다.
그녀의 의지를 받쳐주는 목표는 일족의 참상을 파헤치는 것과 그들의 부활이었으나, 지금 그녀의 의지가 변하고 말았다.
정확히는 채아의 ‘사랑’과 융합되었기 때문에 그녀를 지탱하는 의지가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이염죽은 오직 운청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채아의 ‘사랑’과 융합한 순간부터, 이염죽은 운청휘를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는 채아의 감정이 깊기 때문이었기에, 이염죽으로서는 변고나 다름없었다.
본래의 이염죽은 일가의 참상의 진실을 밝히고 그들을 부활시키기 위해 살았으나, 지금은 목표가 달라졌다.
그 때문에 운청휘에게 생각해 보았냐고 물은 것이었다.
만약 운청휘가 채아의 ‘사랑’을 가져간다면, 그녀는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녀가 살아가는 목표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대가 저항할 수 있는…….”
오랜 침묵 끝에 운청휘가 입을 열었다.
“저항? 그리 말하면 미안함이 덜해져?”
이염죽이 날카롭게 비아냥거렸다.
“반대의 경우라도, 나는 혼을 꺼내어 망설임 없이 돌려주었을 거야.”
운청휘가 이염죽을 향해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그대의 몸에서 떼어내려는 건 원 주인이 있는 것이다.”
“원래 주인이라고? 하하하, 재미있네!”
이염죽이 눈을 부릅뜨더니 날카롭게 웃었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듯한 웃음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봐!”
이염죽이 장궁을 휘두르자, 마치 회상정을 가져온 듯이 허공에서 그녀의 기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