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안유를 팔아넘기고, 안유를 대신해 황대선의 선녀가 되고 싶었느냐?”
운청휘는 비아냥거리며 황금연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족제비 마을에서 보았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족제비족의 노리개가 되어 처참하게 목숨을 이어가던 그 광경. 황금연이 그 진상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표정일까?
“나, 나를 죽이지 말아요. 잘못했어요! 바, 바로 사과할게요!”
황금연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아무리 몸부림을 치려 해도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 냈다.
“나, 나를 풀어주면…… 당신의 아내가 되겠어요!”
“부인이 되겠다라? 가당치도 않는 말을 하는군.”
운청휘의 얼굴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는 오행의 힘을 황금연의 몸에 밀어넣어 단숨에 그녀의 목숨을 거두었다.
“맙소사, 외부인이 이렇게 잔인할 줄이야! 촌장 부자와 황금연까지 단번에 죽였어!”
“역시 황대선의 말씀이 옳았어. 외부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야. 그들과 접촉할수록 해악이 닥치는 게 분명해!”
“누, 누가 황대선의 사자를 모셔와! 사자 대인께 진압해 달라고 요청하자!”
잠시 적막이 흐르고, 정신을 차린 마을 사람들은 세 사람의 죽음을 인지했다.
그들은 두려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분노하며 고함을 질러 댔다.
다만 운청휘가 보인 무위는 범인인 자신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기에,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황급히 마을 중심에 있는 제단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황대선의 사자가 머무르고 있어, 사자의 도움을 받는다면 운청휘를 해치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청휘, 어서 도망가게! 사자가 오면 자네도 무사하지 못할 걸세.”
묵해가 초조한 기색으로 말하며 손짓했다.
기련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는 사자의 실력을 목격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깥 세상에서 한 무리의 무인들이 우연히 흘러들어왔는데, 그 수가 수백 명에 달했다.
그러나 사자가 손을 한 번 휘두른 것만으로도, 무인들은 전부 목숨을 잃었다.
그 일 이후로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황대선과 그의 사자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묵해는 아직도 그 일을 떠오르면 소름이 끼쳤기에, 어서 운청휘를 도주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묵 어르신. 사자 한 명쯤은 손가락만으로 진압할 수 있고, 어차피 기련 마을에 있지도 않습니다.”
운청휘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말할 때와 달리 부드러운 음색을 띠었다.
묵해는 그 말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해졌다.
이윽고 운청휘는 묵안유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어깨를 두드렸다.
“안유. 기련 마을을 떠나기 전에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마. 누구도 너를 함부로 시집보내지 못한다.”
묵안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운청휘를 바라봤다.
“청휘 오라버니의 말을 믿을게요!”
황대선의 사자가 자리를 비운 동안, 운청휘는 기련 마을 전체를 둘러싸는 살진을 설치했다.
이름은 팔문금쇄진(八门金锁阵)으로, 누구든 이 진 안에 발을 들이면 이 할의 무위를 진에 빼앗기게 되어 있었다.
운청휘는 이 진을 설치함으로써 상대의 무위를 약하게 만들고, 흡수한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
진법의 설치가 끝난 후, 운청휘는 마을 중심의 제단도 허물어 버렸다.
제단이 있던 자리에는 깊이 삼천 장, 폭 삼백 장의 구멍만이 남았다.
사람들은 진법이 설치되는 건 몰랐지만, 제단이 있던 자리에 생겨난 구멍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이윽고 운청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감히 운청휘에게 덤비는 이는 없었다.
운청휘는 그들을 상대하기도 성가셔서 못 들은 척하며 사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루 뒤, 검은 옷을 입은 앙상한 노인이 기련산 깊은 곳에서 마을로 향했다.
그가 마을 어귀에 도달할 무렵,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묵안유는 시험을 통과했다. 황대선께서 내일 그녀를 맞이하실 것이다!”
“사자 대인의 목소리다!”
“사자 대인께서 오셨어!”
“어서, 사자 대인께 운청휘의 일을 말씀드려야 해. 살아나가게 둘 수 없어!”
“그래도 의외네. 이 사달이 났는데 묵안유가 시험에 통과하다니.”
“지금 묵안유를 신경 쓸 땐가! 운청휘의 처단이 먼저네!”
기련 마을의 사람들은 제각기 기대와 흥분에 들떠 마을 밖으로 달려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앞에 검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사자 대인을 뵈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게냐?”
뼈만 앙상한 사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평소 기련 마을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긴 했지만, 오늘처럼 대부분이 뛰쳐나와 맞이하는 일은 없었다.
“큰일입니다, 대인! 열흘 전, 묵안유가 외부인을 데려왔습니다!”
“아주 잔인한 자입니다. 단번에 촌장 부자와 황금연을 죽였고, 마을의 제단까지 파괴했습니다!”
“더욱이 황대선께, 지극히 불경한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그 외부인의 말로는 황대선께서…… 족제비가 둔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뭐라고?”
사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바로 노발대발하였다.
그가 쿵 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 제단의 중심부로 향했다.
분노와 놀라움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기련산을 중심으로 반경 일만 리는 황대선이 다스리는 영지나 다름없었고, 그 안에서 황대선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신에게 의심을 품으면 안 된다. 신도들을 술렁이게 하는 저 이방인은 반드시 없애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황대선이 기른 이 마을의 사람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지 않겠는가?
다만 사자의 마음에는 저 이방인이 어떻게 황대선의 정체를 알아냈느냐가 의혹으로 자리잡았다.
가능성은 2가지. 이방인이 황대선과 비슷한 세력을 지니고 있거나, 단서를 얻어 족제비임을 알아차렸다는 것뿐이었다.
“이제야 왔느냐?”
뼈만 앙상한 사자가 마을 중심으로 날아들자 운청휘의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렸다.
“본 모습을 보여라!”
구멍 위에 떠 있던 운청휘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오행의 힘을 방출했다.
“아……!”
날아오던 사자는 의혹을 풀 길도 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다음 순간, 허공에 떠 있던 노인은 호랑이만 한 크기의 족제비로 변하였는데, 꼬리 길이만 해도 삼 장에 달했다.
이 광경은 모여 있는 마을 사람 모두가 목격했다.
“맙소사, 저렇게 큰 족제비가 있단 말야?”
“저, 정말 외부인의 말대로였나?”
“그게 아니라면 황대선의 사자가 어떻게 족제비로 변했겠어!”
그러나 지금 그들이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진실이었다.
충격에 빠진 사람들은 저마다 쑥덕거렸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동일한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몇 년간 제사를 지내며 공물을 바쳐온 황대선이, 신선이긴커녕 족제비였다!
“바람이여!”
족제비로 변한 사자가 소리를 지르자 태풍이 운청휘 쪽으로 몰아쳤다.
“사자 대인께서 쓰시는 선법이 아닌가! 여, 역시 사자 대인께서는 족제비였어!”
이로써, 사람들은 허공에서 몸부림치는 족제비가 황대선의 사자임을 확신했다.
“선법?”
누군가의 외침에, 운청휘가 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쳤다.
“고작 풍 속성 오행의 힘을, 선법이라 속이는 하찮은 잔꾀가 아니더냐?”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오행의 힘이 방출되었다.
콰르릉!
태풍이 충돌음과 함께 흩어지고 말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운청휘가 날린 오행의 힘은 족제비의 긴 꼬리를 잘라내어 구덩이로 떨어트렸다.
“황대선의 신도들이여, 너희의 피로 황대선의 보호를 구하거라!”
저항할 방도가 없음을 깨닫자, 족제비는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이윽고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자는 사술에 능해, 본 사자는 지금 그의 사술에 당해 족제비가 된 것이다! 그대들의 피로 정화하여 이 사술을 깨트려야 한다. 신도들이여, 그대들의 신앙을 바치거라! 그 영혼은 황대선의 품으로 돌아가 그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족제비가 세 치 혀를 놀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 사이에도 적잖은 동요가 일었다.
비록 눈앞에서 족제비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는 오랫동안 섬겨온 신선의 사자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독 신앙이 굳건했던 백여 명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희는 황대선을 위해 생명을 바치겠습니다!”
“황대선 만세!”
고함을 지른 이들은 망설임없이 자진했다.
그 장면을 본 운청휘의 얼굴에는 떨떠름한 감정이 차올랐다.
“참으로 어리석군. 이리 쉽게 생명을 바친단 말인가?”
오랜 기간을 살아오면서 이상한 일을 잔뜩 마주했지만, 눈앞의 집단적 광기는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순순히 잡히거라, 인간. 이대로라면 기련 마을의 모두를 자살하게 만들어 주마!
이때, 족제비가 은밀하게 음을 보냈다.
“어리석은 자들의 생명으로 감히 나를 협박하겠다고?”
운청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족제비를 빤히 응시하였다.
선제로서 이런 위협은 하찮은 수준이었기에, 분노가 일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애써야 했다.
“한번 보자꾸나. 어리석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과 동시에 솟구쳐 오른 운청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족제비를 딛고 서 있었다.
다만 그의 입은 막지 않았다. 사태가 어찌 돌아가나 관조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신도들이여, 이자의 사술이 강력하여 백여 명의 피로도 부족하다! 황대선을 향한 믿음을 증명할 시간이 왔으니, 그대들의 영혼을 황대선께 바치거라!”
족제비가 보기에, 인간은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생물이었다.
희생자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운청휘의 마음도 약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계속해서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들을 현혹했고, 그것만이 그의 살길이라 여겼다.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아, ‘황대선 만세’를 외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이들이 황대선을 위해 목숨을 끊었다.
운청휘는 하찮은 것을 보는 눈빛으로, 남은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 잘난 황대선을 위해 희생할 자는 더 없더냐?”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살아 있는 이들 중, 몇몇은 죽음이 두려웠다. 비록 황대선을 믿는다고 하나 그 믿음이 목숨보다 중하진 않았다.
어떤 이들은 족제비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