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만약 황대선이 그리 대단한 신선이라면, 왜 직접 나타나 이 이방인을 벌하지 않는단 말인가?
어찌하여 자신들의 피로만 이방인을 물리칠 수 있다고 외치는가?
의혹은 사람들의 마음에 빠르게 뿌리를 내렸고, 주저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운청휘는 이미 죽어 있는 사람들을 힐끗 보더니, 곧바로 족제비의 몸에 마종을 심었다.
이윽고 무위를 흡수한 마종을 꺼낸 뒤, 운청휘가 냉소를 지었다.
“그리 원하는 황대선의 품으로 돌아가던가!”
오행의 힘이 몸 속으로 들어오자, 족제비는 저항할 틈도 없이 폭발하고 말았다.
운청휘는 사방으로 날리는 고깃덩이를 피해 가볍게 날아, 사람들에게 향했다.
“이제 내 말을 믿겠느냐? 앞으로 며칠간은 마을에 있거라.”
“소…… 소협. 황대선이 정말로 족제비가 변신한 것입니까?”
누군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태도는 전에 없이 공손해져 있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대륙에 신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선은 무위가 보통 인간의 범주를 넘어가기 때문에 신처럼 보일 따름이지. 너희는 지금껏 바깥에 나간 적이 있느냐? 왜 황대선이라는 자가 너희를 이곳에서만 살게 하겠느냐? 생각을 해 보거라. 그가 정녕 신선이라면, 공물로 소녀를 받을 필요가 없다.”
말을 마친 운청휘는 잠시 생각한 끝에, 신식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공 하나를 전수해 주었다.
이대로 익힌다면, 선천경에 이를 수 있는 무공이었다.
이를 마친 후, 운청휘는 구멍 위로 돌아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자리잡았다.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말거라.”
족제비를 여러 번에 걸쳐 이곳으로 유인하여 격파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운청휘가 지금 자리 잡은 곳은 ‘팔문금쇄진’의 핵심 지점으로, 그는 앉아서 진 안으로 오는 족제비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사방에서 북과 징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련산 깊은 곳에서부터 200여 명의 사람들이 대열을 이루어 출발했는데, 그들은 모두 둔갑한 족제비였다. 이들은 모두 무공을 익혔고, 개중 무위가 가장 낮은 자도 선천경에 속했다.
대열의 중앙에는 100여 개의 가마가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족제비들이 풍 속성 오행의 힘으로 조종하는 듯했다.
대열의 가장 앞에는 영단경의 족제비가 그들을 인솔했고, 기련산 외곽 지역에서 다시금 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1인 1조로 가마와 함께 다른 마을로 향했지만, 기련 마을에는 특별히 20여 마리의 족제비가 향했다. 이중에는 영단경의 족제비도 속해 있었다.
“선녀 묵안유를 맞이하니 가마에 오르시오!”
그들은 기련 마을의 입구에서부터 쩌렁쩌렁한 소리를 내었다.
“족제비가 왔어!”
“젠장, 만약 운 소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껏 황대선이 족제비가 변한 것임을 몰랐을 거야!”
“원통하다, 원통해!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부근의 백여 개 마을 모두 족제비에게 길러지고 있었다니!”
“누가 운 소협의 말을 들었는데, 족제비의 소굴에 수천 명이 갇혀 있고 모두 족제비의 노리개라는구만!”
“저, 정말 운 소협이 그들을 막아 주실까?”
“당연하지. 운 소협은 단번에 사자가 족제비임을 간파하지 않았나? 거기다 죽이기까지 했으니, 이번 족제비들도 제압할 거라고!”
마을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족제비들이 온 것을 깨닫고 하나둘 격분하기 시작했다.
“감히 우리를 맞이하지 않는 건가? 간이 부은 게로군!”
“인간 몇몇을 죽여 본보기를 세워야겠어. 안 그래도 인간을 맛본 지 오래 되었으니까.”
“빌어먹을 인간들, 모진 교훈을 받아라!”
다섯 마리의 선천경 족제비들이 살기를 흩뿌리며 기련 마을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마을 안으로 진입한 순간, 멀리서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다섯 개의 구슬이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그들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뭐, 뭐야!”
“내 무위가…… 저 구슬로 옮겨가는 것 같았는데?”
“젠장, 나도 마찬가지야!”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어느새 운청휘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운청휘는 일언반구도 없이 손을 내밀어 그들의 몸에 들어간 마종을 빼내었다.
펑! 펑! 펑! 펑! 펑!
이어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오행의 힘을 방출하였는데, 선천경 족제비 다섯 마리는 제대로 된 반항 한번 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들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고깃조각이 되었을 뿐이다.
“누구냐?”
“인간이로군! 감히 우리를 공격하다니!”
“어서 가자!”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들도 이상을 감지하고, 한달음에 운청휘에게 날아들었다.
“인간, 감히 우리를 공격하다니. 제대로 이유를 대야 할 거다!”
맨 앞에 날아온 영단경 족제비가 운청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설명은 내게 해야 하는 게 아니더냐? 어찌하여 족제비족이 인간을 짐승처럼 키우느냐?”
운청휘가 직접 영단경 족제비를 보며 되물었다.
“인간, 네놈은 마배령 밖에서 온 것이더냐?”
영단경 족제비는 다른 족제비들보다 참을성이 있는 듯했다. 운청휘의 반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운청휘를 살피고 있었다.
“마배령?”
운청휘의 눈에 의혹이 스쳤다.
“이곳은 영주에 속하지 않는단 말이냐?”
“아니, 영주에 속한다. 하지만 대붕왕의 세력이고, 우리 노조께서 대붕왕(大鹏王)의 10대 호법 중 하나다. 마배령의 인간들은 모두 대붕왕께서 소중히 여기는 가축이나 다름없지.”
영단경 족제비가 운청휘를 보며 말했다.
“인간, 한 번은 용서해 주마. 지금 떠난다면, 목숨은 살려 주지!”
“웃기는군. 어찌하여 네 용서를 구한단 말이냐?”
운청휘의 두 눈은 어느새 가늘어졌다.
영단경 족제비의 그 한마디가 그의 심기를 철저히 건드렸다.
마배령의 인간은 모두 가축이라니, 영주의 다른 인간들은 어떤지 몰라도 운청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로서는 인간이 이족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분노를 담아, 운청휘가 선공에 나섰다.
그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열다섯 개의 마종이 허공을 갈랐다.
영단경의 족제비만이 마종을 피해내었고, 선천경 족제비 14마리의 몸에 마종이 심어졌다.
운청휘는 재빠르게 마종을 회수하여 14개의 마종을 손에 넣었다.
“천인오쇠의 우리!”
천인오쇠의 힘은 영단경 족제비를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묶어 버렸다.
슈욱!
이윽고 운청휘는 모아 두었던 마종들을 한 번에 영단경 족제비의 몸으로 밀어넣었다.
“돌아오너라!”
총 15개의 마종이 운청휘의 손에 쥐어졌다.
이윽고 운청휘는 영단경 족제비의 영혼에 침투하여, 그의 기억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운청휘는 저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이런, 마배령의 면적이 100억 리가 넘는다는 건가!”
운청휘가 놀랄 만도 했다.
모든 혈살군과 수십 개의 지역을 합쳐도 100억 리를 넘지 못한다.
운청휘는 계속해서 영단경 족제비의 기억을 살폈다.
영주는 동영, 남영, 서영, 북영 4개로 분할되어 있으며, 운청휘가 있는 곳은 북영의 마배령이라는 곳이었다. 또한 북영은 마배령 외에도 공작령(孔雀岭)과 횡룡령(横龙岭)이 존재하고 있었다.
남영은 인간의 영지로 8대 세가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천검종이 있는 혈살군은 이 남영의 변경 지역에 속했다.
동영은 난쟁이족의 근거지로, 대개 키가 삼 척에서 사 척에 달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작은 키에 가득한 야심으로 북영과 남영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영은 상고 시대의 유물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응?”
그때 운청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봤던 영변경의 붕새는 대붕족의 소주 붕비(鹏飞)라 하는 자였군. 족제비 소굴을 찾은 건 공작의 알 때문이로군!’
인간이든 이족이든, 인왕경에 들어서면 그의 후대가 왕의 핏줄을 계승한다.
지금 이족의 기억 속에 있는 공작의 알이 부화하면, 인왕경의 최고 고수가 탄생한다는 뜻이었다.
운청휘는 문득 그 알에 흥미가 생겨, 남은 족제비의 신행 대열을 일망타진했다.
이 각 만에 선천경의 마종 200여 개, 영단경의 마종 1개를 얻을 수 있었다.
운청휘는 일부러 선천경 2단계의 족제비 한 마리를 살려 주어, 그가 기련산으로 도망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윽고 운청휘의 발걸음은 기련산 깊은 곳, 족제비 소굴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마종을 흡수했는데, 지금의 경지로는 숨 몇 번 쉬는 사이에 마종의 연화가 가능했다.
그렇게 다시 이 각여가 흘렀을 무렵, 200여 개에 달하는 선천경 마종은 전부 운청휘의 몸에 흡수되었다.
“영단경의 마종 1개가 남았군. 이거라면 선천경 6단계가 될 수 있겠구나.”
운청휘는 잠시 풀숲으로 몸을 날려, 그곳에서 영단경의 마종을 연화하였다.
일 다경 후, 풀숲이 세차게 흔들리며 운청휘가 솟구쳤다.
지금의 운청휘는 선천경 6단계를 돌파하였으며, 현경 3단계의 무인을 만나도 상대가 가능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운청휘는 족제비 소굴에 근접할 수 있었다.
신식으로 살펴보니, 족제비 소굴의 중심에는 거대한 대전이 있었고, 대전의 지하 삼백여 장 아래에 왕의 핏줄이 흐르는 공작 알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작 알의 크기는 거의 목욕물을 받는 통만큼이나 컸다.
운청휘의 신식이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공작 알 안에서 잠들어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외형으로는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였으나, 알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이 알이 백 년 이상 존재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알 앞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한 명은 몸매가 날렵하고 기세가 위풍당당한 청년이었다.
다른 한 명은 옹졸한 생김새에 타고난 악취를 발산하는 노인이었다.
운청휘는 단번에 청년의 본체가 영변경의 붕새임을 알아차렸고, 노인은 황대선임을 알아보았다.
청년은 대붕족의 소주 붕비로, 때마침 공작 알에 정혈 한 방울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이에 황대선이 정혈을 강제로 공작 알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 된 거였군.”
이를 지켜보던 운청휘는 붕비와 황대선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붕비가 정혈을 넣음으로써 공작 알 속의 소녀를 수하로 부리려 하고 있었다.
다만 공작 알의 껍질은 매우 단단하여, 영변경의 무인이 전력을 다해도 부서지지 않는 강도를 자랑했다.
정혈을 흘려 넣는다면 복속은커녕 알 속의 소녀에게 흡수당하므로, 이 때 ‘황대선’의 능력을 빌리는 것이었다.
족제비는 인간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었고, 마침 황대선은 인간의 정신을 주무르는 데 능수능란한 자였다.
황대선은 신중하게 정혈을 공작 알 속으로 밀어 넣어, 붕새의 정혈이 소녀의 머릿속에 자리잡게끔 유도했다.
어린 소녀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한 손을 뻗어 다가오는 정혈에 닿으려 했다.
윙윙윙…….
소녀의 손이 정혈에 닿기 직전, 운청휘는 신식으로 소녀의 머릿속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어린 소녀의 눈이 부릅뜨듯 확 떠졌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푸……!”
정신력으로 그녀를 조종하던 족제비, 황대선의 입에서 별안간 큰 피가 뿜어져 나왔다.
“황동래, 어떻게 된 거야?”
붕새가 둔갑한 청년, 붕비가 그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
“소, 소주. 그것이……! 강력한 힘이 공작 알 안에서 분출되어, 소인의 정신력이 단번에 밀려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