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화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걸 알면, 도도의 표정이 볼만하겠군.’
운청휘는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어느새 그는 진상상과 삼십여 장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음? 이렇게까지 가까이 오다니, 내가 공격할지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은가?”
진상상의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영주의 태양이 어찌 나 같은 이를 상대하겠느냐?”
운청휘는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콜록……!”
진상상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하더니 코끝을 문질렀다.
“형제야말로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내가 오지 않았다면 붕비는 이미 그대에게 호되게 당했겠지. 하지만 기다리길 잘했네, 형제여. 저자를 죽이면 대붕족의 노친네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말을 하는 진상상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감탄이 어려 있었다.
“그보다 팔문금쇄진이라니, 오래전에 사라진 대진을 쓸 줄은 몰랐군. 기연이라도 얻은 건가?”
운청휘는 솔직히 말할 생각이 없었기에 슬쩍 화제를 돌렸다.
“붕비를 죽일 생각이 없었더냐?”
“허튼소리! 이자는 대붕족의 소주야. 이자를 죽인다면 대붕족의 노친네가 세상 끝까지 쫓아올 텐데.”
‘노친네’라고 부르면서도, 진상상의 얼굴에는 언뜻 두려운 기색이 스몄다.
“호오? 대붕족의 족장을 꺼리면서 어찌 붕비에게 1만 근이나 되는 선천영액 차용증을 쓰게 하였느냐?”
운청휘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그건 별개의 문제지! 아무튼 차용증을 썼으니 붕비는 반드시 선천영액을 지불해야 해. 만약 그 노친네였다고 해도 이건 변함없어. 우리 진가도 무위로는 밀리지 않을 테니.”
진상상이 말했다.
“하지만 붕비를 죽이게 된다면, 일은 가문 대 부족의 싸움으로 번질 테지.”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상상의 제안(?)은 도박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도박꾼이 도박장에서 돈을 따면 따낼수록 도박장은 도박꾼을 저지하려 하겠지만, 그 돈이 소액이면 별 도리가 없다.
하지만 도박꾼이 천 냥, 만 냥 은자를 따내면 어찌하겠는가?
그러면 도박장 측에서도 강경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붕족과 진가의 입장도 이와 같았다.
진상상과 운청휘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붕비는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방금 진상상이 그를 죽일 수 없다는 말에, 하마터면 안도하여 울기 직전이었다.
다만 진상상이 한동안은 자신에게 손대지 못하니, 그렇다면…….
“붕비, 허튼생각은 하지 말도록.”
그때, 진상상이 붕비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네놈을 죽일 수 없다 해도, 네놈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몸부림치도록 만들 수는 있으니.”
“알겠네, 진도왕! 얌전히 있겠네!”
붕비는 황급히 생각을 접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보다는 공작 알을 어떻게 도둑맞았는지, 말해야겠네.”
진상상이 붕비를 재촉하자, 붕비는 족제비 소굴에서 알을 도둑맞은 정황을 털어놓았다.
“음? 10겹이나 되는 진법을 설치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도둑맞았다?”
진상상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가, 문득 운청휘와 그 뒤에 있는 팔문금쇄진에 시선을 주었다.
-형제여, 방금 알았겠지만 나는 진상상이라고 하네.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별안간 진상상이 운청휘에게 음을 보내왔다.
-운청휘.
운청휘는 숨기지 않고 본명을 밝혔다.
-그래, 운 형제로군!
진상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또 물었다.
“운 형제는 공작 알의 행방을 아시는지 모르겠구려.”
진상상은 마치 운청휘의 얼굴에서 실마리를 찾으려는 듯, 운청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가 왜 알려 줘야 하느냐?”
운청휘는 진상상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덤덤하게 받아쳤다.
“어……?”
설마 운청휘가 이리 나올 줄은 몰랐기에, 진상상은 순간 멍해졌다.
“만약 내가 형제의 대답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면?”
나지막이 말하는 진상상의 손에는 어느새 음혈광도가 쥐여져 있었다.
운청휘는 그저 맑은 눈으로 진상상과 음혈광도를 바라볼 뿐이었다.
만약 진상상이 공격을 시작한다면, 운청휘는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팔문금쇄진을 비롯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진상상의 적수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다만 도망간다면 구 할의 확률로 살아남을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운청휘가 요지부동인 것은, 진상상이 그를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 이걸로 형제를 겁줄 순 없겠지!”
과연, 진상상은 싱긋 웃더니 음혈광도를 거두어들였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네. 신기하게도, 형제와 척을 지고 싶지가 않거든.”
진상상은 스스로도 의아한 듯 운청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운청휘는 그저 웃어 보였다. 사실 운청휘도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운청휘는 서로에게 끌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는 점일까.
진상상은 소도도의 쌍둥이 형제니, 쌍둥이 특유의 교감으로 운청휘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무의식적으로 운청휘와 교제하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공작 알은 내가 가지고 있다. 다만 이 알은 왕이 탄생하는 알이 아니라, 왕이 환생한 알이다. 더불어 이 알은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 왕이 스스로에게 금제를 걸어, 누군가의 노예가 되면 영혼이 소멸되게 해 두었더군.”
진상상이 가타부타 말이 없기에, 운청휘가 먼저 화두를 돌렸다.
“노예로 삼을 수 없다고?”
진상상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뭐, 어쩔 수 없군. 자네가 그를 잘 보살펴준다면 보은을 할지도 모르겠네.”
운청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상, 영주의 지도가 있느냐?”
운청휘는 알에서 부화한 소녀를 공작령으로 데려가야 했으나, 아직 영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마침 진상상을 만났으니, 그에게 지리를 알아 둘 참이었다.
“있네!”
진상상은 선뜻 아공간 반지에서 양가죽 지도를 한 장 꺼내주었다.
“이 지도는 우리 진가에서 만든 것인데 영주 지역 대부분을 표시해 두었지.”
“잠시 빌리지.”
지도를 받아든 운청휘는 신식으로 지도의 내용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영주는 실로 거대한 대륙으로, 북영의 마배령만 해도 면적이 100억 리를 넘고, 공작령과 횡룡룡도 마찬가지였다. 남영은 북영의 2배나 되는 면적을 자랑했으며, 상대적으로 동영이 가장 작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지도에는 서영에 대한 기록이 없었는데, 서영은 상고 시대의 유물이 보존된 폐허였다.
진상상이 보충하기로는, 상고 전쟁터의 면적은 누구도 측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무수한 흉수와 사령이 득실거리는 통에 누구도 함부로 접근하길 꺼렸다.
다만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상고 시기에서부터 전해져 온 법보와 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터였다.
이를 노리는 이들이 접근하려 했지만, 신비한 진법이 설치되어 있어 진입할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았다.
‘역시, 참천신검의 봉인지는 상고 전쟁터로군.’
지도를 보기 전까지는 추측에 불과했으나, 이제 운청휘의 추측은 현실이 되었다.
참천신검은 상고 전쟁터에 있었다!
“시간이 되었군. 운 형제, 먼저 가보겠네. 이곳은 요족의 영토이니 용무가 없다면 자네도 서둘러 떠나는 게 좋아!”
진상상이 작별 인사를 하려고 했다.
“……나중에 또 보지.”
잠시 망설이던 운청휘도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진상상에게 소도도의 존재를 알려 줄까 망설였지만, 순서가 바뀌어야 했다. 일단은 소도도에게 알리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진상상이 붕비와 함께 떠난 후, 운청휘는 다시 팔문금쇄진 안으로 들어왔다.
반 시진을 꼬박 기다린 끝에, 운청휘는 수백의 마종을 거둘 수 있었다.
마종을 전부 영라 반지에 넣은 후, 운청휘는 팔문금쇄진을 파쇄하는 동시에 황동래와 다른 족제비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그들이 인간을 가축처럼 대하며 길렀으니, 마땅히 그 최후가 비참할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 처리했어?”
운청휘가 지하 삼백여 장을 내려오자, 귓가에 한 소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 모두 처리했다.”
운청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휘라고 한다. 네 이름은 무엇이지?”
“열반 전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아.”
소녀는 낭랑하게 대답했다.
“그럼 이름을 지어 주마. 너는 공작왕이니, 공유(孔柔)라는 이름이 어떻겠느냐?”
운청휘는 곧바로 이름을 떠올렸다.
“유? 무슨 뜻이야?”
소녀는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이름인 만큼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뜻이라…….”
운청휘는 내키는 대로 이유를 붙여 주었다.
“이곳에서는 부드러움을 아름답다 여기기에, 네게 ‘유’자를 주었다. 그보다 너와 상의해야 할 것이 있구나. 너를 공작족에게 데려갈 때, 내 생명의 은인인 노인과 손녀를 데려가고자 한다. 모쪼록 공작족이 그들을 지켜줄 수 있겠느냐?”
운청휘의 조건에, 공유는 천천히 눈을 깜박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보다 간단한 일도 없었기에, 공유는 선선히 승낙했다.
“그럼, 바로 출발하지.”
말을 마친 운청휘는 공유를 데리고 하늘로 솟구쳤다.
이미 마배령 전체가 요족의 영지임을 확인했으니, 묵안유와 묵해를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다.
공유가 비록 기억은 잃었다고 하나, 어느 정도 발언권은 있을 테니 공작족의 보호를 받을 수는 있으리라.
운청휘는 빠른 속도로 이동했는데, 그는 이미 반 시진에 육만 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밤낮없이 비행한다면 하루에 백오십만 리를 이동하는 것도 가능했다.
때문에 운청휘는 사흘 밤낮을 쉼 없이 이동하다, 어느 산림에서 이동을 멈췄다.
“같은 북영 경내에 있다고 해도, 마배령과 공작령의 거리는 실로 까마득하군. 지금의 속도라면 십 년이 걸려도 도착할 수 없다. 진상상에게 전송진의 존재를 물어야 했는데, 내 실책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