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지금이라면 영변경 무인을 몇몇 만나도 3합 안에 그들을 제압할 수 있겠군.”
온몸에서 힘이 넘쳐나고, 아무리 써도 메마르지 않는 샘 같았다.
이대로 주먹을 날린다면 길게 이어진 산맥마저도 평지로 만들 수 있을 듯했다.
“단숨에 반절 영단까지 가자꾸나!”
운청휘가 또 하나의 마종을 꺼내들었다.
지금 그에겐 6개의 마종이 있는데, 모두 영변경의 마종이라 그 질이 매우 탁월했다.
“이 하나면 충분하겠군.”
운청휘의 눈에 기대가 어렸다. 반절 영단경에 이르기만 한다면, 그의 전투력으로 보통의 영변경 무인은 일권에 해치울 수 있다.
한 푼의 힘도 낭비할 수 없었기에, 운청휘는 연화의 속도를 늦추며 영변경 마종의 힘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운청휘가 연화에 몰두하는 내내.
공유도 줄곧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녀의 수련도 운청휘와 마찬가지로, 이전의 힘을 회복하기 위한 수련이었다.
며칠간 수련에 열중한 끝에 그녀는 영단경의 무위를 회복했고, 그간 꾸준히 하흡을 불러 대련 상대로 삼았다.
오늘도 대련을 시작하기 전 하흡의 무위를 동급으로 낮춘 상태였다.
막상 대련을 시작하니 공유는 하흡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흡이 아무리 무위를 내렸어도, 전투력 자체는 반절 영변경이니 공유로서는 벅찰 수밖에 없을 따름이다.
그러나 공유는 하흡과의 대련에서 서서히 전투력을 되찾고 있었기에, 백여 합을 겨루고 나자 전투의 판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분명 우위를 점하고 있던 하흡이 조금씩 밀리더니, 점점 역전되어 버거워하는 게 아닌가?
마침내 이백여 합을 싸웠을 때.
공유가 세 번의 공격으로 하흡을 격파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연계 공격에 하흡은 방어할 틈도 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공유, 저, 정말 5살이 맞긴 한 거야? 영단경의 무위에 이 재능까지, 도저히 이 나이에 가질 수 없는 건데!”
하흡은 소름이 돋는다는 듯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5살? 그건 아니야.”
공유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알이 되기 전에는 몇 해를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적어도 알에서는 100년 이상을 보냈다.
적어도 하흡의 5배는 산 셈이다.
“깨달은 게 많아. 며칠 더 폐관하고 당신과 다시 대련하겠어.”
말을 마친 공유가 정상의 다른 선실로 향했다.
방에 돌아온 그녀는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는데, 이 상태가 반나절 간 지속되었다.
문득 공유가 눈을 뜨자,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깊게 빛나는 눈동자가 어른거렸다.
동시에, 그녀의 무위가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영단경 1단계에서 5단계까지 폭증하는 게 아닌가.
“공유? 이름 괜찮은걸.”
무위의 성장이 멈춘 후, 공유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만약 운청휘가 이곳에 있었다면, 공유가 조금 더 인간다워졌다는 점을 알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다시 사흘이 흘렀을 때, 운청휘는 반절 영단경에 이르러 있었다.
전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영변경 5~6단계의 무인이라도 너끈히 상대할 수 있었다.
수련을 멈춘 운청휘는 지도를 보며 바깥의 풍경을 훑어보았다.
‘공작령까지 앞으로 6일 남았군.’
운청휘는 다음 계획을 떠올렸다.
‘공유를 공작령에 데려간 후, 그대로 홍가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기령을 되찾고 영단경이 될 준비를 해야겠군.’
기령을 떠올리자, 운청휘의 마음속에는 짙은 그리움이 휘몰아쳤다.
운청휘는 마음을 추스르며, 또다시 심마선겁에 빠지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기울였다.
* * *
마침내 공작령 경내에 도착했을 때, 6일이 훌쩍 지나 있었다.
운청휘는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몇 시진 비행한 후, ‘공작성’ 부근에서 둔천사를 멈추고 내렸다.
공작성은 이곳의 황성과 같은 존재로, 둔천사를 타고 들어갈 순 없으니 내리는 게 마땅했다.
둔천사에서 내린 후 운청휘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거대한 둔천사를 영라 반지에 넣어 버렸고, 그 광경에 모두가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맙소사. 당신의 아공간 반지에는 둔천사도 들어간단 말이에요?”
하흡이 당황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공유는 말이 없었지만, 충분히 당혹감이 어린 눈으로 운청휘의 손가락을 주시하고 있었다.
영라 반지에는 모습을 감추는 능력이 있지만, 운청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일반 반지를 끼고 있었다.
어쨌든, 보통의 아공간 반지가 수용할 수 있는 면적이 몇백 평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둔천사를 넣어 버리는 행동은 기행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마침 여유가 되었을 뿐이다.”
운청휘는 선선히 대꾸했다.
물론 영라 반지에는 둔천사가 100척도 들어갈 수 있지만, 그것까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공유, 기억이 얼마나 돌아왔느냐?”
운청휘가 공유에게 질문을 던지며 화제를 돌렸다.
공유가 아무리 위장하고 있다고 하나, 운청휘의 신식을 피해갈 순 없었다.
지금의 공유는 처음 만났을 때와 비하면 천지차이의 수련을 이루어낸 상태였다.
“일부분!”
공유는 운청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짧게 대꾸했다.
운청휘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조건을 잊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거래를 잊지 말거라. 묵안유와 묵해의 안전을 보장하고, 내게 세 개의 보은을 해야 한다.”
“물론!”
공유는 곧바로 대답했다.
“공작성에 다 왔군. 들어가자꾸나!”
묵해와 묵안유를 영단의 힘으로 띄우며, 운청휘가 앞장섰다.
하흡과 공유는 스스로의 힘으로 몸을 날렸다.
곧 일행히 공작성의 성문 앞 상공을 지나는데, 아래쪽에 다양한 이족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 성문을 지키는 공작족 호위병들이 비행하는 이들을 알아차리고 막아섰다.
“공작성은 영변경 아래의 사람은 날 수 없으니, 빨리 내려……!”
위풍당당하게 말하던 호위병은 우뚝 말을 멈추더니 황급히 안색을 바꾸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희가 실례했습니다!”
두 호위병이 서둘러 물러났다.
이는 운청휘가 ‘영변경’의 기를 내뿜었기 때문인데, 사실 신식으로 모방해낸 기였다.
다시금 길을 재촉하는 운청휘 일행 아래로, 겉모습은 인간과 똑같지만 전부 이족인 이들이 바글바글하고 있었다.
전부 선천경 이상으로 수련한 요족들로, 팔 할 이상이 공작족이었다.
공작성이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한 탓인지, 공작성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밀집한 인파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알고 보니 보통 무위의 공작족은 성지 외곽에서만 활동하고, 그 이상의 무위를 지녀야만 내부에서 활동할 권한이 주어지는 듯했다.
운청휘 일행이 공작성의 안쪽으로 들어서니, 하늘에 간간히 비행하는 이들이 보였다. 적어도 백여 명은 되어 보였다.
모두가 영변경의 무위를 갖추고 있었다.
곧, 운청휘 일행의 시야에는 거대한 궁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운청휘가 지금껏 봐왔던 인간 세계의 황궁보다 몇 배는 더 큰 듯했다.
전체 면적은 삼천만 평은 족히 넘어 보였다.
“이곳은 내가 이전에 살던 곳이야!”
공유가 불쑥 입을 열었다.
“이곳이 기억나느냐?”
운청휘의 시선이 공유에게 향했다.
“이곳은 공작보루인데 인간 국가의 황궁에 해당하지.”
공유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심(素心), 매희(魅姬)!”
공작보루의 상공으로 향한 공유가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영단의 힘을 빌려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무엄하다!”
“누가 감히 태상장로의 이름을 부르는 게냐!”
눈 깜짝할 새에, 공작보루 안에서 백여 명의 공작족들이 뛰쳐나왔다.
영변경 10여 명과, 현경의 공작족들이었다.
“응?”
기세등등하게 날아왔던 이들은 곧 안색이 변했는데,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서늘한 위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두 개의 거대한 손이 깊은 지하에서부터 솟구쳐 그들을 찍어 눌렀다.
콰앙! 쾅!
단번에 그들은 거대한 손에 눌려 크고 작은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모두 부상은 입었으나, 생명에 지장이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때, 운청휘는 공유의 앞뒤로 빠르게 다가오는 두 개의 신형을 알아차렸다.
정체는 아리따운 두 소녀였는데, 비록 겉으로는 운청휘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지만 적어도 500년은 산 듯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신식으로 파악한 무위만 해도 공적 9단계에 이르렀다.
소녀들은 어느새 허공에서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는데, 전신에서 설렘을 뿜어내고 있었다.
“소심, 매희, 200년간 수고했어.”
공유가 두 공작족을 보며 말했다.
“뭐, 뭣? 족장님이 돌아오셨단 말인가!”
중상을 입고 신음하던 백여 명의 안색이 삽시간에 파랗게 질렸다.
“저, 저 여자아이가 사라진 족장님이란 말이냐!”
그러나 곧 흥분의 물결이 파도치기 시작했다.
“하하하! 마침내 돌아오시다니!”
“우리 공작족이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하겠구나!”
“맞아, 우리는 굴욕적인 삶을 다시는 살지 않아도 되잖아!”
“우리 공작족이 그토록 번영했건만, 지금은 보전을 위해 공련(孔莲) 공주를 인간에게 보낼 판이었어. 하지만 족장님께서 돌아오셨으니, 이 혼사를 무를 수 있게 되었다!”
소심과 매희는 운청휘 일행을 공작보루의 최심부로 안내했고, 어느새 그들은 호화로운 대전 상공으로 날아들었다.
이 대전은 공작전이라 불리는 곳으로, 황궁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소심, 연회 준비를 하도록. 매희, 이쪽은 묵해와 묵안유라고 해. 오늘부터 그들은 공작족에서 왕족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게 될 테니, 가장 좋은 저택을 내어 줘.”
명령을 마친 공유가 운청휘를 돌아보았다.
“운청휘, 우린 우선 들어가자.”
공유는 운청휘 일행을 이끌고 공작전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배치는 금란전과 흡사하였는데, 정중앙에는 위풍당당한 기세를 뽐내는 금색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인간 세계에서는 옥좌라 불리는 의자였다.
공유는 운청휘를 옥좌의 바로 옆자리로 안내한 후, 자신은 옥좌를 차지하고 앉았다.
“기억은 전부 떠올랐느냐?”
이전에는 신식으로만 공유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육안으로도 그 변화가 선명했다.
“대략적인 것들은 기억나지만, 제일 중요한 기억은 전승의 땅으로 들어가야 떠오를 것 같아.”
공유가 깊은 영력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가 보마. 공작족의 영지까지 왔으니.”
운청휘가 일어나 고별의 손짓을 했다.
“며칠만 더 머무르지? 제대로 대접도 못 했잖아.”
공유가 선뜻 권하며 그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