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211화 (211/430)

제211화

“일단 나가보거라. 한번 어울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50위 아래의 상대를 고르도록.”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50위 위로는 모두 영변경의 요족들이니, 반절 영변의 하흡이 그들에게 도전하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100번 무대에 도전할게요!”

하흡은 성큼성큼 나아간 후 최하위 순위를 골랐다.

100번 무대는 현경 8단계의 무위를 지닌 요족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단번에 패배하고 하흡에게 무대를 내주어야 했다.

하흡은 무대를 차지한 채 무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흡, 계속 도전할 건가요?”

공원이 물었는데, 경기 규칙에 따라 승리한 사람은 패배할 때까지 무제한으로 도전할 수 있었다.

물론, 싫다면 기존 순위를 지킬 수 있었다.

“싫어요!”

하흡이 거절한 후, 운청휘는 공원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줄 알았다.

그러나 공원은 99번 무대를 호명할 뿐이었다.

99번은 89번에게 도전했고, 짧은 접전 끝에 패배했다.

그런 식으로 대전은 53번 무대까지 갔는데, 대붕족의 반절 영변 청년이 하흡을 바라보았다.

“나는 100번 하흡에게 도전합니다!”

그의 도전에 모두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순위 싸움은 보다 위로 도전해야 하지 않아? 대붕족의 도전자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그 말대로야. 아래로 도전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잖아. 이겨도 원래 순위를 유지할 뿐이고, 패배하면 순위가 한참 떨어지는데!”

“하하, 모르겠나? 하흡을 노리는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 것 같아. 하흡은 줄곧 운청휘와 함께 있었고, 운청휘는 붕비와 원한이 있으니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지.”

주위에서 수런거리는데, 53번 대붕족이 하흡을 보며 외쳤다.

“인간, 아직도 내려오지 않는 게냐?”

“기권할게!”

하흡이 얼굴을 찌푸리며 단칼에 거절했다.

애초에 그녀는 요족의 대전에 관심도 없었고, 남들과 경쟁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같은 무위라도 해도 53번 대붕족 청년은 그녀보다 전투력이 높지 않은가.

“기권? 우리 요족의 결투는 인간처럼 목숨을 아끼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기권이라는 것은 없어!”

대붕족 청년이 조롱하며 웃더니, 공원을 바라보았다.

“공 선배, 제 말이 맞죠?”

“맞아, 요족의 결투는 기권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싸우든지 죽든지!”

공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히 말하며 오히려 하흡의 화를 돋우었다.

하흡은 억지로 무대에서 내려왔고, 곧 상대와 맞붙기 시작했다.

무위가 같으니 단번에 승부를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전투력에서 밀리는 하흡이기에 일 다경만에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압도당하던 그녀는 곧 어깨를 크게 맞으며 뼈를 다쳤다.

일각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또다시 일권을 맞고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었다.

“내가 졌어!”

하흡은 입가를 닦으며 비틀거렸다.

상대는 뭐라고 구시렁거렸지만, 더 이상 하흡을 못살게 굴지 않고 제 무대로 돌아갔다.

다음은 52번 무대의 차례였다.

그자는 표범족으로, 대붕족에 충성을 맹세한 부족이었다.

52번 표범족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하흡을 바라보았다.

“그대에게 도전하지!”

머지않은 곳에서 보고 있던 운청휘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전력을 상실했으니, 당신 상대가 아니야!”

하흡이 화를 참으며 말했다.

“하하, 싸우지도 않고 또 내 상대가 아닌 것을 어찌 아는 거지? 출전하라!”

표범족은 도발하듯 말했고, 하흡은 공원을 바라보았다.

공원은 이 상황과 무관하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싸워야겠어!”

하흡은 이를 악물고 무대에서 날아갔다.

“이게 맞는 건가. 안심해. 이미 부탁을 받았는데, 네 생명은 뺏지 않을 것이니까.”

표범족은 피에 굶주린 웃음을 지으며 하흡을 공격해 들어갔다.

펑펑펑……!

두 사람의 치열한 공방이 오가길 수 차례, 그러나 일각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하흡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날아가며 허공에 붉은 선혈을 그려내었다.

“푸, 푸푸……!”

하흡이 연거푸 피를 토했다. 그녀의 안색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공작족을 대표하여 나를 출전시키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원하는 대로 해 주마. 나를 출전시키거라!”

그때, 운청휘가 날아들어 소리쳤다.

운청휘는 하흡을 부축하여 단약을 먹이고 그녀의 몸에 따뜻한 영력을 불어넣었다.

“안심하거라. 다치게 하려는 게 아니니. 저들이 정 어울리고 싶어하니, 내가 나서마.”

하흡에게 말하는 운청휘의 목소리는 상냥했으나, 그에게서는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 조심해요. 운청휘!”

하흡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운청휘는 그녀에게 전에 없는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하흡을 안전한 곳에 옮긴 후, 운청휘는 하흡의 자리에 올랐다.

무대에 오른 뒤, 운청휘의 시선은 공원과 그의 옆에 있는 두 명의 심판에게 향했다.

그들이 동의한다면, 운청휘는 규칙을 따르는 한에서 상대와 겨룰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면, 운청휘는 그만의 규칙대로 겨뤄줄 작정이었다!

영라 반지에는 아직 구천주선살진이 있으니, 운청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인간 하흡은 전투력을 잃었으니, 운청휘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는다!”

세 명의 심판이 뭔가를 논의하는 듯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공원이 말을 이었다.

“또한, 경기 규칙에 따라 이번에는 51번이 도전할 차례입니다. 51번이 기회를 양보하겠다면, 운청휘를 우선 도전하게 합니다.”

“칠장로, 나는 도전 기회를 운청휘에게 양보하겠습니다!”

51번은 공작족이기 때문에 공원을 칠장로라 부르며 존경심을 표했다. 그는 선뜻 도전 기회를 양보했다.

“53번!”

운청휘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대에서 내려왔다.

“운청휘,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53번 대붕족은 코웃음을 치며 자리에서 내려왔다.

문답무용, 운청휘는 곧바로 일권을 내질렀다.

“보잘것없군!”

코웃음을 친 53번 대붕족은 법칙의 힘을 불러내 운청휘를 공격해 들어갔다.

펑펑펑……!

그러나 운청휘의 신형은 법칙의 힘을 가로질러, 다음 순간 대붕족의 어깨에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쿵! 쿠웅!

연이은 굉음과 함께 53번 대붕족의 어깨가 찢어지더니 곧 온 팔이 뜯겨 나갔다.

53번이 하흡을 다치게 했을 때, 그녀의 어깨를 상하게 했으니 운청휘는 그에게서 팔 전체를 돌려받은 셈이다.

53번 대붕족이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질렀다.

“아……!”

그러나 그의 비명이 길게 이어지기도 전에, 운청휘는 거대한 손으로 53번 대붕족의 다른 쪽 팔을 잡았다.

찌지직!

섬뜩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팔이 날아다녔다.

운청휘는 이에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은원만큼은 확실히 하는 사람이었다. 운청휘가 한 손을 휘두르니, 영단의 힘으로 생성된 예리한 검이 허공에서 너울거렸다.

검을 쥔 운청휘가 그대로 53번의 영해를 향해 검을 찔러들어갔다!

“멈춰……!”

대붕족의 심판이 울부짖다시피 외쳤지만, 운청휘가 멈출 리 없었다.

푸슉!

예리한 칼은 53번의 영해를 관통하고 말았다.

이 순간부터 53번 대붕족은 무위를 잃고 폐인, 아니…… 폐요(废妖)가 되는 셈이다.

“운청휘, 노부가 멈추라고 한 말을 듣지 못한 게요?”

대붕족의 심판이 해쓱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게 됐군. 무위가 좋지 않아 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

운청휘는 무미건조하게 답하고는 검을 거두었다.

이윽고 운청휘가 다시 물었다.

“왜 그러는가? 설마 후배를 위해 나서고자 하느냐?”

이때 많은 사람들은 대붕족의 반절 공적이 정말로 나설지 보고 있었다.

그 자신이 망신당하는 것뿐 아니라 대붕족 전체의 체면도 망신이기 때문이다.

-우쭐대지 말게. 다음에도 견딜 수 있나 보겠네!

대붕족의 반절 공적이 음을 전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군.

운청휘는 전음으로 대답했고, 시선은 52번 표범족에게 향했다.

“나오너라!”

나오너라?

오만한 운청휘의 말투는 많은 요족들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특히 지목당한 52번 표범족은 순간 울컥했으나, 애써 화를 눌러 참았다.

그의 무위는 방금 패배한 대붕족과 큰 차이가 없었다.

표범족은 간신히 화를 참으며 말했다.

“나는 그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내가 졌으니, 52번 무대를 그대에게 주겠어!”

“하하. 싸우지도 않고 상대가 되지 않는지 어떻게 아느냐? 더욱이 싸우지 않는 것은 기권이 아니더냐? 너희 요족은 인간처럼 목숨을 아끼지 않으니, 기권이 없는 것으로 안다만?”

운청휘는 코웃음을 치며 하흡이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자, 어서 나오너라!”

운청휘는 그들을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인간, 도가 지나치구나!”

결국 화를 참지 못한 52번 표범족이 포효하더니 무대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그가 무대에서 뛰어내릴 때, 운청휘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펑펑펑!

표범족은 내려오기 무섭게 운청휘에게 열 번의 타격을 당했고, 모든 위력이 큰 산을 무너뜨릴 듯했다.

순식간에 천지가 요동치는 듯 요란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다음 순간, 운청휘가 주먹을 거두니 표범족은 휘청이다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땅에 쓰러진 52번 표범족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우, 운청휘가 표범족을 죽였어!”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표범족을 단번에 죽이는데, 그는 영변경의 무위다!”

“인간이 역시 모두 의뭉스럽다던데 운청휘가 영변경 무위라니!”

“맞아, 만약 운청휘가 영변경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방금 나선 것은 52번과 53번은 아니었겠지!”

“운청휘도 끝났어. 그는 철저하게 대붕족에게 미움을 샀으니, 공작족이 다시 그를 보호할 수 없겠지!”

“맞아, 대붕족이 천교대전에서 운청휘를 겨냥하면, 공작족은 하소연도 못 할 거야.”

“이변이 없다면, 운청휘에게 도전할 사람은 영변경으로 변하거나…… 붕비가 직접 나설 가능성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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