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그대가 노부를 믿고 있으니, 노부는 교룡족의 이름으로 그대를 위해 증인이 되겠네!”
교룡족의 심판이 곧바로 응했다.
대붕족의 심판은 안색이 변했지만,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가 보기에 운청휘의 승산은 거의 희박했으니.
게다가 붕비가 이기지 못하더라도 운청휘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노릴 테니,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다.
공원은 운청휘에게 적나라하게 무시당한 탓에 안색이 영 침울했다.
쾅!
대결을 알리는 충돌음과 함께, 붕비와 운청휘가 대폭발을 일으켰다.
둘은 곧바로 공중으로 휘몰아쳐 올라가며 공중에서 연달아 공방을 주고받았다.
아래에서 보면 그저 대폭발이 끊임없이 일어날 따름이었으나, 그 안에서는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었다.
운청휘와 붕비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들의 모습을 얼추 알아볼 수 있었다.
“운청휘는 여전히 영단의 힘을 쓰는군!”
10위권 무대에 있던 한 요족이 말했다.
“뽐내는 건지, 정말로 영단경의 무위인 건지 알 수가 없어!”
곧 누군가 이 말을 이어받았지만, 그 스스로 번복했다.
“정말로 영단경의 무위라면 지금까지 벌인 일을 설명할 수 없어. 운청휘는 실력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건방을 떠는 게 분명해.”
“뭐, 9번 무대와 8번 무대의 사람이 말하길 운청휘가 여전히 영단의 힘을 쓴다고 하는데!”
“대붕족의 소주 붕비는 영변경의 무위인데, 그렇다면 죽음을 자초하는 게 아닌가?”
“죽음을 자초한다고? 너무 많이 생각한 거 같아. 그들의 대결은 이미 승부만 내기로 얘기가 되었어!”
“그러나 붕비는 운청휘의 두 팔과 다리를 자르겠다고 말했잖아!”
“헤헤, 내 생각에 운청휘는 자신이 패배할 것을 알기 때문에 자포자기해서 영단의 힘으로만 대결하는 것 같아!”
“그럴 가능성도 있어. 그렇다면 영단의 힘만 사용해서 패배했다고 말하면 되니까.”
한 무리의 요족들이 제각기 의견을 주고받을 때.
하흡은 시종일관 침묵을 지켰으나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운청휘가 혼자서 동시에 영변경 무인 6명을 참살하고 홍가의 둔천사를 빼앗는 과정을 지켜보지 않았던가.
더욱이 그 과정에서 운청휘는 오행의 힘만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두려운 전투력을 선보였는데, 영단의 힘을 사용하는 운청휘라면 오죽할까.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에서 붕비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아……!”
무수한 시선이 붕비의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에 고정되었다.
“운청휘, 감히 나를 다치게 하다니!”
붕비의 분노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리더니, 그의 손에서 옅은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싸늘한 한기를 머금은 검을 휘두르니, 무수한 기류가 회오리치며 운청휘에게 향했다.
운청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안개처럼 흩어졌다.
다음 순간.
펑펑펑펑……!
또다시 격렬하게 부딪치는 충돌음이 허공에서 울려퍼졌다.
분명 두 사람의 전투이건만, 천군만마의 대결인 것처럼 하늘을 진동케 하는 격돌이었다.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사방으로 산란하는 빛의 줄기였다.
세 심판도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눈에서 놀라움을 읽어냈다.
운청휘와 붕비의 속도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붕비는 대붕족이니 속도에서는 선천적인 재능을 지닌 데다 ‘대붕신익술(大鹏伸翼术)’을 수련했지. 그러니 속도에서만큼은 영변경 7단계의 무인과도 견줄 만해!”
공원이 입을 열어 말했다.
“맞아, 우리 소주의 극한 속도는 영변경 7단계의 무인과도 비견된다네!”
대붕족의 심판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운청휘가 붕비의 속도를 따라잡고 있다네, 설마 그가 영변경 7단계의 무위를 지닌 것인가?”
상황을 주시하던 공원이 놀라워했다.
“절대 아닐 걸세! 그가 그런 무위를 지녔다면 우리 소주의 패배가 확실하다네. 나는 운청휘가 속도를 높이는 무공을 익힌 거라 생각하고 있다네.”
대붕족의 심판이 눈을 빛내며 열변을 토했다.
교룡족의 심판은 침묵을 지켰지만, 대붕족 심판의 말을 수긍하고 있었다.
다만 그는 운청휘의 무공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었다.
한편, 허공에서는 운청휘가 줄곧 시간을 재고 있었다.
붕비를 격파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려야 합리적일 것인가?
운청휘의 현재 전투력은 영변경 7단계와도 무승부를 거둘 수 있으니, 적당한 시간을 골라야 자신의 무위를 숨길 수 있었다.
곧, 운청휘와 붕비가 싸운 지 일각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군…….’
운청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죽어라!”
붕비가 다시 연검을 찔러들어왔으나, 운청휘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쨍쨍쨍……!
운청휘의 주먹이 연검의 검면을 끊임없이 난타했고, 타격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검면을 난타하는 동시에 운청휘의 신형은 점차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붕비의 코앞에 운청휘가 도달했을 때!
그의 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붕비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쥐었다!
스걱! 스걱! 스걱! 스걱!
연거푸 네 번의 휘두름 끝에.
붕비의 팔다리 근육이 끊어지고 말았다.
운청휘가 붕비에게서 연검을 빼앗았을 때, 대붕족 심판의 안색이 대번에 변하며 신형을 날렸다.
다만 그가 몸을 날렸을 때, 교룡족의 심판도 몸을 날려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때 운청휘는 이미 연검을 빼앗아 연이어 붕비의 팔다리 근육을 끊어 놓았다.
“아……!”
온 하늘에 붕비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곧 그의 몸은 균형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는데, 대붕족의 심판이 황급히 날아와 붕비의 몸을 안아들었다.
“소주, 괜찮으십니까?”
미친 듯이 붕비의 몸에 영력을 불어넣으며, 대붕족 심판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괜찮아 보이는가! 늙은이, 당장 운청휘를 베어 버려, 당장!”
붕비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노발대발했다. 어느새 심판에 대한 호칭도 ‘붕노’에서 ‘늙은이’로 바뀌어 있었다.
운청휘는 유유히 지상으로 내려온 후, 교룡족 심판에게 음을 보내 감사를 전했다. 그 후 용오천을 향해 싱거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용오천도 미소로 답했다.
운청휘는 천천히 하흡을 향해 다가갔다.
“이제 만족스럽더냐?”
운청휘의 빠른 처치 덕분에, 하흡의 부상은 많이 나아 있었다.
전투를 내내 지켜봤던 하흡은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웃었다.
“만족해, 아주 만족해요! 운청휘, 당신은 8대 공자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예요!”
하흡은 운청휘가 둔천사에서 저지른 대학살을 봤기에, 운청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운청휘의 하인이 되어 지내다 보니, 하흡은 생각보다 그가 두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성격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제법 지내기 수월한 편이었다.
이제 운청휘에 대한 인식은 다시금 바뀌었다. 멋지다, 멋짐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녀의 부상에 책임을 지기 위해 홀로 대붕족에게 맞섰고, 여러 대붕족을 죽였다.
심지어 이 일의 화근인 붕비의 팔다리 근육마저도 끊어 놓았다!
“늙은이, 뭘 그렇게 멍하니 있는 거야? 본 소주가 운청휘를 베라고 명령했는데, 귀가 먹은 거야?”
허공에서 다시 붕비의 호통 소리가 들렸다.
“소주, 공원이 제게 음을 보냈는데, 이제 공작족에게 넘기라고 하는군요.”
대붕족 심판이 다소 곤란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공작왕족 직계자제, 공화가 싸움을 청하오!”
별안간 공화가 고성을 내지르더니, 2번 무대에서 훌쩍 몸을 날렸다.
“응?”
하흡과 대화하던 운청휘가 몸을 돌려 공화를 봤다.
“마침내 공작족이 나서는가.”
운청휘는 낮게 중얼거리며 공화에게 다가갔다.
이미 공유가 노리는 것이 둔천사와 영라 반지임을 짐작했고, 그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운청휘가 궁금한 것은, 공작족이 무슨 수로 그에게 그 두 가지 물건을 내놓게 할 것인가였다.
함께 지내며 공유가 자신의 성격을 파악했을 텐데, 위협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건 충분히 알 터였다.
규칙에 따르면 지금 도전권은 운청휘에게 있으니 공화는 규칙을 어기는 셈이었지만, 운청휘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공화를 바라보았다.
“너는 붕비와 같은 무위로구나. 붕비가 이미 근육이 끊어진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 그럼에도 내게 도전하겠단 말이더냐?”
“당연하지!”
공화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나와 붕비가 비록 같은 경계이나 내가 그를 격파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지!”
운청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확실히 공화의 말대로 그가 전투력에서는 붕비를 앞섰으나, 운청휘 앞에서는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했다.
운청휘가 공격하려는 순간, 공화가 또다시 말을 이었다.
“단순한 승부를 따진다면 지루할 뿐, 차라리…… 상품을 더할까?”
“상품?”
운청휘가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자 하니 그대에게 둔천사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이기면 둔천사를 나에게 주는 것이 어떠한가?”
공화가 입술을 핥으며 조용히 말했다.
“둔천사와 같은 값의 물건을 내놓는다면 문제는 없겠지.”
운청휘도 조용히 말했다.
“당연하지!”
공화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아공간 반지에서 둔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금빛으로 번쩍이는 둔기는 4척 반의 길이로, 위쪽은 공작의 부리 형상을 하고 있었으며 아래쪽은 공작의 꼬리깃 형상을 해 마치 한 마리의 작은 공작을 쥐고 있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공작 형상의 둔기를 꺼낸 순간, 공화에게서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공작족 성물, 공작 깃털!”
대붕족 심판과 교룡족 심판은 공화가 들고 있는 공작 깃털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공작 깃털은 공작족의 성물이고 현천급 법보지. 가치로 따지면…… 둔천사보다 위에 있지!”
“공작 깃털이라면, 둔천사와 급이 맞겠군.”
운청휘는 공작 깃털이 공작족의 성물이라는 사실은 몰랐지만, 신식으로는 현천급 법보임을 알아본 터였다.
혈살군에서 볼 수 있는 법보는 천급 법보가 한계였지만, 사실 천급 위로는 소천, 대천, 현천급의 법보가 존재한다.
“지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넘기겠다고 하늘에 맹세하자!”
공화가 자신만만하게 외치기에,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화가 먼저 하늘에 맹세를 하고, 운청휘도 하늘에 대고 맹세를 하였다.
“하하하, 운청휘, 마침내 걸려들었어!”
운청휘가 맹세를 마친 순간, 공화가 통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가 손에 쥔 공작 깃털을 가볍게 휘둘렀다.
허공에 법칙의 힘이 나타났는데, 일반적인 법칙의 힘과 달리 위압적인 기세가 담겨 있었다. 보통의 영변경 5단계라 해도 이 힘을 막아내기는커녕 휩쓸려 재가 될 게 뻔했다.
사방의 요족들은 이미 공포에 질려 있었다.
공작 깃털은 이미 내기의 상품이 되었으니 결투에 사용할 수 없었을뿐더러, 설령 상품이 아니더라도 현천급 법보를 결투에 사용하는 건 정당하지 못한 행위였다.
“공작족과 공화는 염치도 없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