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218화 (218/430)

제218화

곧이어 천지를 휘감는 위압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운청휘를 중심으로 회색의 반투명한 장벽이 반명 만 장의 천지를 뒤덮고, 장벽 안은 황무지처럼 바짝 마른 대지가 되어 버렸다.

구천주선살진.

선인마저 섬멸시킬 수 있다는 진이 모두의 눈앞에 펼쳐졌다.

진법이 펼쳐진 순간, 다 죽어가던 운청휘의 기가 변화하였다.

이 반경 만 장 내에서, 운청휘는 조물주와 같은 존재였다.

그가 바람을 말하면 바람이 불고, 비를 부르면 비가 내린다.

운청휘가 누군가를 살리려고 하면 혀를 깨물어도 죽지 않으며, 그가 죽이고자 마음먹는다면 선인이라 해도 죽을 터였다.

즉, 운청휘는 반경 만 장 내의 지배자나 다름없었다.

“우…… 운 형제, 이…… 이것이 자네가 매희를 기다린 이유인가?”

진상상은 일찍이 운청휘의 주 수단이 진법이라고 생각하긴 했으나, 순식간에 이러한 진법을 포진할 줄은 몰랐다. 그의 안색도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이것은 구천주선살진이라 한다.”

운청휘가 가볍게 대꾸하곤 많은 이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영라 반지에서 영변경 마종을 하나 꺼냈다.

그리곤 느긋하고도 탐욕스럽게, 마종의 힘을 흡수했다.

구천주선살진으로 인해, 운청휘의 연화 속도는 배로 폭증했고 부상이 눈에 띄는 속도로 아물어 가기 시작했다.

“마, 마종! 우, 운청휘가 도심종마대법을……!”

공적 9단계의 강자답게 식견이 뛰어난 매희는 운청휘의 손에 들린 마종을 알아보았고, 도심종마대법 또한 알아보았다.

다음 순간, 그녀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운청휘의 앞에서 다시 형성되었다. 섬섬옥수에 담긴 매서운 위력이 운청휘를 강타했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내게는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어울려 주마.”

운청휘가 가볍게 매희를 가리킨 것만으로도, 붉은 번개가 그의 손끝에서 발사되더니 매희의 몸을 관통했다.

매희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공격을 중단하고 물러나야 했다.

구천주선살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은, 운청휘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지금의 매희는 운청휘 앞에서 개미 한 마리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운청휘는 영변경의 마종을 철저하게 흡수한 후, 부상을 완벽하게 치유하였다.

“우선 너부터 시작하겠다.”

운청휘의 시선이 공화에게 가 닿았다.

그가 기억하기로 공화는 자신의 팔다리를 자르라고 했지만, 솔직히 공화를 괴롭히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운청휘의 손에 마종이 떠오르더니, 이윽고 공화의 몸으로 스륵 사라졌다.

이어서 운청휘는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마종을 수거했고, 공화가 가진 아공간 반지도 회수하여 영라 반지에 넣었다.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아, 운청휘는 몇몇 이들을 제외한 다른 요족들에게서 마종을 심은 후 회수하길 마쳤다.

“붕비, 네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까 싶어 알려 주마. 그날 기련산에서 공작 알을 훔친 사람은 나다. 그 알은 왕족의 알이 아니라 인왕경의 공작왕이었고, 열반에 들어 환생한 것이었더군. 네 손에서 그녀를 구했더니, 이리 배은망덕하게 나오는구나.”

진실을 알린 운청휘는 붕비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몸에 마종을 심고, 다시금 꺼냈다.

그 후, 운청휘는 진법의 힘을 동원해 공원과 대붕족의 반절 공적을 끌어들였다.

두 사람의 무위가 높은 탓에, 그들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마종을 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끌려오자, 곧이어 운청휘가 그들의 마종도 낚아챘다.

한 번 덤벼들었다 낭패를 본 후, 매희는 줄곧 나서지 않고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암암리에 진법의 틈을 찾고 있었는데, 그녀의 생각마저 운청휘에게 읽히고 있었다.

그러나 구천주선살진은 공적 9단계의 무인이 풀어낼 수 있는 진법이 아니기에, 매희는 시간을 속절없이 보내야 했다.

운청휘는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고 마종을 하나씩 심고 회수하길 반복했다.

일부러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마종을 심어 두려움에 떨게 했고, 마종을 회수하며 죽음만을 기다리게끔 만들었다.

그만큼 운청휘는 은원을 확실히 하는 사람이었다.

일각여가 지난 후.

운청휘, 진상상과 하흡을 제외하면, 자리에는 매희와 공련만이 남아 있었다.

“날 배신한 것을 후회하느냐?”

운청휘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족장의 뜻이라면 생명을 바칠지라도 나는 절대적으로 실행할 것이네.”

매희는 창백한 얼굴이지만, 말투는 조금의 후회도 없었다.

“네게 물은 게 아니다.”

운청휘는 매희를 힐끗 보더니, 시선을 공련에게 주었다.

“후회하느냐?”

“응?”

매희와 진상상이 어리둥절하여 운청휘를 바라봤다.

“운 형제, 후회하지 않냐고 물은 것은 그녀가 그대를 부상 입힌 것 때문인가?”

진상상이 불쑥 묻자, 운청휘가 고개를 저었다.

“그 뜻이 아니다.”

곧, 운청휘의 시선은 공련에게 향했다.

“내 인내심에 한계가 있으니, 대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줄곧 침묵하던 공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아차린 겐가?”

“후회하느냐고 물었다.”

운청휘의 목소리가 냉랭해지자, 구천주선살진도 운청휘의 심정을 느낀 듯 싸늘하게 울부짖었다.

“후회? 하하하……!”

공작 공주는 운청휘가 알아챈 것을 확인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운청휘, 종족 몇 명을 죽였다고 나를 후회하게 할 수 있을까? 내 분신만 망가뜨리면 나를 후회하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공적 9단계의 매희를 죽이면 나를 후회하게 할 수 있을까?”

공련의 말에 매희의 안색이 변했는데,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공련을 바라보았다.

“다, 당신은…… 족장?”

공련은 매희를 철저히 무시하며 한껏 비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은 운청휘에게 향해 있었다.

“그런 것으로 나를 후회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 것으로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공작족 전체라면 어떻겠느냐?”

운청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하하하, 공작족 전체라고? 운청휘 네놈 혼자서? 운청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같은데? 한 달이면 나의 본체가 전성기의 무위를 회복하는데 그때 네놈이 무엇으로 인왕경을 막는다는 거지? 네놈은 순진하게도 한 달 안에 내 본체에 대항할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냐?”

공련이 우습다는 듯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인왕경이 그리 대단하다 여기느냐?”

실눈을 뜬 채 묻던 운청휘가 손을 내밀어 공련을 끌어당겼다.

운청휘의 다른 손에 마종이 나타났고, 곧 공련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네가 보기엔 대단하겠지만, 내 눈에는 한 푼의 가치도 없구나! 지금 네 분신을 파괴할 테니!”

운청휘는 말을 마치자마자 공련의 몸에 심은 마종을 낚아챘다.

무위를 잃은 공련은 순식간에 허약해졌으나, 아직 죽지 않았다.

“공유, 분신이었군. 공작족의 왕이 없는데도 어찌 북영이 무탈할 수 있었겠느냐? 열반하여 환생한 것은 그저 분신일 뿐이었구나.”

공유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수백 년 전 누군가의 계략에 당해 치명상을 입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열반하여 환생을 선택했다고 했다.

운청휘는 그 말을 믿었으나, 북영이 3대 요족에 의해 분할되어 있음을 안 뒤로 작은 의심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정말로 족장이 자리를 비웠다면, 공작족은 교룡족과 대붕족에게 흡수되는 것이 마땅한 이치가 아니던가?

이때 운청휘는 공작족의 배후에 족장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 족장이 공유 본인이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다만 공련을 만났을 때 느낀 것이 있었다.

공련과 공유는 영혼의 기가 똑같았다.

영혼의 기는 사람의 지문처럼 온 세상을 놓고 봐도 똑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데, 이렇듯 똑같은 것이 나타났다면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그들이 동일한 영혼을 지녔다고 할 수밖에!

즉, 공유의 본체가 ‘일기화삼청’을 수련하였고, 본체를 3개의 몸으로 나눈 것이다.

“내 분신 중 가장 약한 분신이니, 파괴해도 내게 해를 끼치지 못해. 내 다른 두 분신이 나타나면 영주 전체에 네놈이 숨을 곳은 없어. 그러니 나를 후회하게 만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억지나 다름없지.”

비록 허약해졌다곤 하나 공련의 말투는 완고했다. 말마다 경멸과 조롱이 가득했으며, 오만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러한가? 하면, 왜 겁내고 있느냐?”

운청휘는 차분하게 묻고는 공련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이미 네 안의 공포를 읽었다. 누구도 내게 은혜든, 원한이든, 관계를 맺고 저버릴 순 없다. 너는 내게 보은하기는커녕 배은망덕하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말을 마친 운청휘는 곧바로 공련의 목을 꺾어 버렸다.

옆에 있던 매희가 그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 그녀의 무위는 이미 구천주선살진에 속박되어 꼼짝도 할 수 없는 터였다.

다음 순간, 운청휘의 손에서 마종이 나타나 매희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공적 9단계의 마종이니, 앞서 모은 그 어떤 마종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매희의 마종을 빼낸 후, 운청휘는 그녀의 목숨을 거두었다.

“상상, 네가 원하던 아공간 반지를 주마.”

운청휘가 매희의 아공간 반지를 꺼내어 진상상에게 던졌다.

“……응!”

멍하니 있던 진상상은 뒤늦게 매희의 아공간 반지를 받아 들었다.

“운 형제, 이제 우리는 도망가는게 어떠한가?”

진상상이 넌지시 ‘우리’라 부르며 권해 왔다.

“서두르지 말도록. 아직 우리가 해야 할 큰일이 남아 있으니.”

그 지칭에 마음이 평온해진 운청휘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죽이는 일을 네가 떠맡을 필요는 없다.”

운청휘가 말을 마치고 급히 영라 반지에서 둔천사를 꺼냈다.

“호…… 홍가의 둔천사, 정말로 자네가 빼앗았다니!”

둔천사를 본 진상상의 동공이 움츠러들었지만, 곧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하하하, 운 형제. 자네는 정말로 대단해. 이제 와 말하지만, 나 진상상은 자네가 형제라 참으로 좋다네!”

“이전에는 좋지 않았던 것이더냐?”

운청휘가 물었다.

“크흠, 그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 하하하……!”

참으로 이런 면에서 진상상은 소도도와 성격이 똑같았다.

“내 언젠가 홍가의 둔천사를 뺏어보고 싶었는데, 내 뒤의 진가가 있어 영 불편했다네. 한데 자네가 이렇게 둔천사에 태워주는군!”

진상상은 진심으로 탄복하여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그가 본 운청휘는 진법을 이용해 요족을 죽이길 망설이지 않았으며, 홍가의 둔천사 또한 강탈하였다.

그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였다!

“운 형제, 자네 우리가 해야 할 큰일이 있다고 했는데, 무엇인가?”

진상상이 입술을 핥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공작보루를 없앨 생각이다.”

운청휘가 담담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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