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221화 (221/430)

제221화

“신족 하나를 죽였다고? 그의 몸에서 ‘신의 법칙’을 빼앗았다고?”

“어찌 ‘신’을 죽일 수가 있나. 그들은 이 대륙 모든 생명의 은인일세!”

많은 선제들이 경악하였고, 이내 그를 성토하였다.

“나는 그저 자네들에게 선제의 멍에를 벗어나는 길을 알려 줬을 뿐.”

인조(人祖)는 말을 마치고 떠났다.

이미 그는 무상비경에 도달했으니, 누가 그의 앞길을 막겠는가? 모든 선제들이 연합해도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인간의 조상은 당연히 성인(圣人)이 아니었기에, 일부러 소식을 퍼트려 신들을 죽이고자 한 것이었다. 어차피 그는 ‘신’을 하나 죽였으니, 모든 신의 분노를 샀을 터였다. 그러니 가급적 많은 ‘신’을 죽여 자신의 안전을 도모해야 했다.

백 년이 흘렀을 무렵, 태고 천룡 선제와 태고 신봉 선제가 무상비경에 도달했다.

이제 초조함을 느낀 다른 선제들은 몰래 구단산에 들어가 신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이후 거의 백년, 몇 명의 선제가 무상비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시 백년이 흐르고, 비휴족의 선제가 연이어 두 명의 ‘신’을 죽였는데, 그중 ‘신의 법칙’ 하나를 선제가 아닌 후배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 결과 후배는 즉시 성성에서 무상비경으로 도약했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온 대륙이 들끓었다.

이제 ‘신’들은 생령들의 은인에서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선제의 멍에를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던 건, 신족의 안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군.”

“신족은 이미 대륙을 한 번 구했지. 그들이 다시 대륙을 섬기게 해 주시길!”

“다음 멸세가 언제 올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데, 신족은 그 싸움으로 이미 힘을 다 써버렸어. 그들 몸에 있는 ‘신의 법칙’을 바쳐 다른 사람들을 무상비경에 오르게 해야겠어.”

“그렇게 하면 다음 멸세가 와도 강자들이 거수를 막을 수 있고, 이 대륙 심지어 온 우주를 거수의 공격으로부터 막을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람이 그럴듯한 허울과 명분을 내세웠다. 심지어 신들이 스스로 ‘신의 법칙’을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까지 나왔다.

멸세의 전쟁을 겪어 무위가 한없이 추락한 신들은 온 대륙의 생령들이 자신들을 공격해 오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처음 온 선제들은 모두 무상비경에 도달했고, 최강의 존재로 군림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이염죽이 가진 ‘신의 법칙’을 노리기도 했다.

보통 ‘신’이 가진 것만으로도 그들을 무상비경에 도달하게 했건만, 이염죽이 지닌 것이라면 대체 어느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신들이 필사적으로 이염죽을 지키려 애쓰는 동안, 또 한 차례의 대전이 대륙을 휩쓸었다.

10만여 명의 신들이 100명으로 줄었을 때, 신들은 저주를 내렸다.

멸세 대전은 대륙을 붕괴시키지 못했지만, 신들의 저주는 우주를 가로지르는 대륙을 무수한 조각으로 분리시켰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이들이 죽었고, 대륙은 크고 작은 덩어리로 나뉘었다.

가장 큰 덩어리는 지금의 선계가 되었는데, 구단산이 있기에 여전히 우주의 중앙에 우뚝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잔존한 ‘신’은 신들의 시체와 이염죽을 데리고 아주 작은 대륙의 끝으로 도망쳤다.

운청휘는 ‘신’의 뒤를 쫓아 한없이 내달렸다.

‘신’의 종적을 뒤쫓을수록, 운청휘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잔존한 ‘신’이 도망친 곳은, 훗날의 천성대륙이었다!

그는 신들의 시체를 대륙의 깊숙한 지하에 매장했다.

그들이 사후에나마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도록…….

이후 ‘신’은 자신이 가진 신의 법칙을 불태웠고, 신들의 시체를 매장한 곳 주변에 공간의 폭풍을 배치해 두었다.

이 장소가 바로, 훗날 천운왕조 낭야산의 장신연이 된다.

다시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세월이라, 바다가 산이 되고, 산이 바다가 되는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염죽이 마침내 눈을 떴다.

그러나 그녀를 반겨줄 일족 누구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휘몰아치는 공간 폭풍이 지배하는 컴컴한 어둠과 스러져 가는 무덤들만이 그녀를 맞이했다.

“아……!”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믿을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신녀이자 신들의 주인인 그녀는 신은 죽지 않는다 믿었다.

심한 상처를 입어도 세월이 치유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의 신념은 무너졌고, 그 증거로 그녀의 일족이 모두 눈앞에 묻혀 있었다.

정처 없이 무덤가를 떠돌던 이염죽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골 하나를 발견했는데, 무덤도 없이 바스러져 가고 있었다. 두꺼운 먼지가 해골 위에 내려앉았다.

“진북현(陈北玄)!”

이염죽은 단번에 해골의 주인을 알아보고 오열했다. 진북현은 신들의 주인 다음가는 이였다.

<신녀, 깨어나거든 모든 우주를 우리를 위해 매장하소서!>

이윽고, 이염죽은 진북현의 해골에 새겨진 유언을 발견했다.

줄곧 지켜보던 운청휘는 씁쓸한 마음으로, 진북현이 유언을 새기던 순간을 떠올렸다.

진북현은 살아 있을 당시에 그 유언을 스스로의 몸에 새겼다. 자신의 육체에 칼을 찔러넣어 뼈에 직접 선혈과 고통으로 유언을 남긴 것이다.

운청휘는 마음 한구석이 아려옴을 느꼈다.

신들의 처참한 말로 때문이 아니라, 이염죽의 고통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이러한 고통은 누구라도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

이염죽은 끝없이 오열하고, 또 오열했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완전히 잦아들었을 때, 무너졌던 이염죽은 다시 한번 일어섰다.

그녀는 모든 일족을 향해 거듭 맹세를 하며 스스로를 일으켜세웠다.

“이제부터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겠어. 내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대들이 죽은 진상을 찾고, 반드시 그대들을 부활시키겠어.”

맹세를 마친 이염죽은 몸의 모든 생기를 연소시켰다. 동시에 그녀의 신념을 조건으로 내세워, 이 신념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영생을 누릴 수 있었다.

다만 이 순간부터 그녀의 목숨은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죽은 신들의 소유였다.

둔천사 위, 죽어 있던 운청휘의 몸에 숨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눈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순간, 마침내 이염죽이 짊어지고 있는 모든 부담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염죽이 왜 감정을 죽이는 수련을 했는지까지도.

동시에, 운청휘는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이염죽은 그로 인해 삶의 신념이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운청휘는 이염죽을 저버려, 그 신념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일찍이 운청휘는 이염죽의 신념이 무너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염죽이라면 다른 방도를 찾을 거라 여겼다. 그래, 안일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염죽의 과거를 알게 되니,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운청휘는 다시금 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그는 장신연으로 향했는데, 이염죽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절세의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에게서 변한 점이 있다면, 그녀의 머리칼에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침내!”

이염죽이 그를 보고 냉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대…… 마도에 빠졌나?”

운청휘는 오히려 동문서답하며 이염죽을 바라보았다.

“너로 인해 신념이 바뀌었고, 너로 인해 신념이 무너졌지. 마도에 들지 않았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었어.”

이염죽이 냉랭하게 말했다.

이전의 그녀는 태도와 말투에서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으나, 지금은 ‘냉혹함’이라는 감정으로 가득했다.

“나는…… 신들이 소멸한 진실을 보고 왔다.”

운청휘는 머뭇거리다가 그가 이전에 본 장면을 이염죽에게 알리기로 했다.

그러나 운청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염죽이 말을 가로질렀다.

“나도 다 본 거야.”

잠시 후, 이염죽이 말을 이었다.

“우리의 의식이 모두 여기에 들어왔으니, 꿈이 아니라고 할 수 없겠네.”

운청휘는 침묵하며 이염죽의 반응을 살폈다.

눈앞에 있는 이염죽은, 꿈으로 만들어진 이염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진짜 이염죽이었다.

“네게 고마워하고 있어. 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그들의 죽음을 파헤치지 못했을 테니.”

이염죽의 눈에는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자조가 어렸다.

그들 신족은 피투성이가 되어가며 모든 생령을 지켰는데, 결국에는 인간이 신들을 죽게 한 장본인이 되었다.

그녀도 마침내, 진북현이 남긴 유언을 이해했으리라.

“지금의 나는 신념이 없어도 죽지 않아.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그들의 죽음이 중요해. 나는 그들을 부활시키고, 의리를 저버린 추악하고 배은망덕한 생령들에게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어.”

이염죽이 냉혹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투에서는 다른 생령들에 대한 짙은 혐오가 깃들어 있었다.

“신은 본래 모든 생령을 초월해 온 우주를 통치하는 존재. 미천한 선량함과 알량한 평등함, 저속한 평화가 신족을 파멸시켰어. 신과 마도는 양면의 거울 같은 존재이니, 나와 나의 일족은 신인 동시에 마신이기도 하지. 그러니 이 순간부터 나는 신녀라는 신분을 인정하지 않아. 나 이염죽은 이제부터 여마신(女魔神)일 뿐이야.”

이염죽의 말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마도를 수련하는 것은 줄곧 신비한 일인 데다, 희소한 길이기도 했다.

다만 그 종점이 신이 되는 것이리라곤 운청휘도 생각지 못했다.

생각으로 신이 되고, 생각으로 마신이 된다.

신과 마신은 거울의 양면이다.

이염죽은 이 정보를 흘렸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입장도 확고히 했다.

이제부터 그녀는 모든 생령을 내려다보는 존재이며, 그 생령에는 운청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마도에 빠졌을 때 만난 첫 번째 시련이 뭔지 알아? 너와 마찬가지로 정이었어. 하지만 나는 꿈에서 널 죽였고, 네 피로 내 뜻을 확고히 했어.”

운청휘는 그녀의 말에 잠시 침묵했다.

현실에서도 그를 죽이기 위해 찾아왔다?

한참 후, 운청휘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나를 죽이기 위해 내 정의 꿈에 들어왔단 말이더냐?”

이염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정의 시련에서 널 죽였지만, 널 진정으로 죽인 게 아니지. 하지만 네 시련에서 널 죽이는 건 어떨까?”

“나를 죽이고자 하느냐?”

운청휘가 물었는데, 말투가 차분했지만 마음은 동요하고 있었다.

“그래!”

이염죽은 고개를 끄덕였고, 냉혹한 시선을 보냈다.

“비록 그대가 채아의 ‘사랑’을 가져갔다고 하나, 난 이미 그대를 은애한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를 죽여 그 뜻을 밝히겠다. 더욱이 나는 두 개의 몸을 가지고 있으니, 여기에 있는 나를 죽이더라도 다른 쪽에 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운청휘가 호소했다.

“걱정할 것 없어. 다른 쪽의 너도 기회를 노려 죽일 테니까.”

이염죽은 인내심을 잃은 듯 재촉하며 말했다.

“이제 공격하겠어. 나는 꿈에 들어갈 시간이 제한되니, 반드시 시간 내에 너를 죽여야 해!”

운청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지.”

운청휘의 한마디가 끝난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장신연 안에서는 치열한 전투음만이 들려왔다.

펑펑펑펑……!

이염죽의 무위는 측정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운청휘보다 아래는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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