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그들은 멈추지 않았지만, 운청휘는 줄곧 방어에 급급했고 이염죽은 살초만을 써서 그를 노렸다.
운청휘는 이 상황에 비애를 느꼈다.
처음 정에 들어왔을 때 목적은 꿈에서 이염죽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었건만, 두 번째로 들어왔을 때는 꿈에서 이염죽을 죽여야 했다. 더욱이 심신이 모두 꿈에 들어왔으니, 어느 한쪽이 죽더라도 현실에서도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
“그대가 죽으면, 모든 유지를 이어받으마. 그대의 일족을 부활시키고, 복수까지도 이어받겠다!”
운청휘의 목소리가 비장하게 울렸다.
그는 손에 자비를 두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염죽의 각오에 대한 모독이었다.
“나야말로 네 두 육신을 죽이고 네 일족을 영원히 보호하지.”
이염죽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혹했다.
별안간 이염죽이 파신전을 쏘아냈는데, 하늘을 가르는 별똥별처럼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며 운청휘를 향해 쇄도했다.
운청휘는 솜털이 쭈뼛 서는 감각을 느꼈다. 피할 수 없었다!
곧바로 참천검집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콰아앙!
하늘이 짙은 먼지구름으로 뒤덮였다.
참천검집을 손에 들고 막아내던 운청휘의 그림자는 순식간에 수천 장이나 뒤로 물러났다.
검집을 쥔 팔에서 찌릿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선제진해 제1식, 횡추팔황!”
뒤로 끝없이 밀려가던 운청휘는 검집을 휘둘러 직경 수천 장의 붉은 검기를 뿜어냈다.
이염죽의 눈으로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붉은 빛이 허공에서 너울대는 듯했다.
검기의 폭이 워낙 넓어, 그녀는 몸을 피할 곳이 없었다.
이염죽은 홀린 듯이 파신전을 하나 쏘아내었다.
콰르릉!
붉은 검기와 파신전이 부딪치며, 대폭발로 인한 빛의 해일이 장신연을 뒤덮었다.
운청휘와 이염죽은 나란히 뒤로 후퇴하며 입에서 피를 후두둑 떨어트렸다.
그들의 공격 수단, 무위, 전투력은 모두 같은 수준이었다.
두 사람의 최강의 공격으로 만들어 낸 결과는 무승부나 다름없었다.
“선제진해 제2식, 검쇄공간(剑碎空间)!”
갑자기 운청휘는 두 번째 기술을 사용했는데, 이 기술은 그의 무위를 무리하게 끌어올린 것이었다.
“신들의 제물!”
이염죽이 묵색 장궁을 들어 올리며 외치자, 장신연 안의 무덤에서 각기 금색 빛이 솟구치더니 그녀의 장궁으로 흘러들어왔다.
십만여 개의 빛의 줄기가 장궁으로 흘러 들어가자, 이염죽과 장궁의 기는 완전히 변화하여 신성하고 장엄한 빛을 띠었다.
눈처럼 흰옷이 펄럭이고, 곱게 흰 머리칼이 춤을 추었다.
이때의 이염죽은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듯했는데, 멸세를 격퇴한 신녀의 위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신은 위대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지. 신이 사랑하는 것은, 오직 파멸뿐!”
이염죽의 목소리는 신성하게 울렸지만 어딘가 냉혹했고, 운청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끊지 못한 정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곧 사라지며, 싸늘한 빛만이 어렸다.
운청휘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선제진해 제2식을 사용한 후, 몸의 무위는 사 할도 남지 않았다.
이염죽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서로가 감당할 수 없는 최선의 공격으로 부딪칠 뿐이었다.
곧, 두 개의 공격이 맞부딪쳤다.
빛의 해일이 장신연 전체를 메웠고, 운청휘와 이염죽은 일순간 실명 상태에 빠졌다.
장신연 수만 장 위.
이곳은 공간 폭풍이 기승을 부리는 구역이었으나, 아래에서 밀려오는 충격파의 영향을 받아 순간적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육안으로 보면 누군가 그려놓은 수묵화를 단번에 지워 버린 듯했다.
폭발이 끝나고, 운청휘와 이염죽은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장신연은 천천히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무수한 묘지들은 한 점의 훼손도 없이 그대로였다. 운청휘든 이염죽이든 공격을 날리면서도 묘지를 훼손하지 않도록 신경을 쓴 것이다.
이염죽은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운청휘도 딱히 감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신들이 멸세를 막은 것만으로도 운청휘는 그들에 대한 경외감이 충만해져 있었으니.
“네가 발전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지금 죽이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거야.”
이염죽이 입을 열었다.
“그대는 신녀이거늘, 무위를 회복하는 속도가 선제인 나보다 못하단 말인가?”
운청휘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성기의 이염죽은 신들의 주인이자 신녀이니, 선제보다 경계가 무려 두 단계나 높지 않던가.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야. ‘선의 대륙’이 파괴된 후, 선제경이 출현하기 어렵게 되었지. 선의 대륙이 완성된 상황에서 천만 배 이상은 어렵게 되었을 거야.”
이염죽은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원래 그 대륙을 선의 대륙이라고 불렀군…….’
운청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대륙이 산산이 조각난 후 천지의 법칙이 불완전해졌고, 이로 인해 선제로 도달하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이염죽이 살던 시대보다 천만 배는 어려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염죽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널 죽이고 싶을 뿐만 아니라, 너도 나를 죽이길 바랐어!”
이염죽이 말을 마치자 그녀의 몸에서 금색 거룡 모양의 문양이 떠올랐다.
운청휘는 그것이 ‘신의 법칙’임을 알아보았다.
“선의 대륙이 파괴된 후 천지의 법칙이 온전하지 못해. 그리하여 선제경에 도달하기가 극히 어려워졌다면, 무상비경은 절대로 도달할 수 없어! 도달하는 방법은 ‘신의 법칙’을 수련해 얻든지 빼앗는 것뿐이야. 수련은 이 시대에서 통하지 않으니, 네게는 ‘빼앗는’ 수밖에 없겠지. 이 우주에서 신의 법칙은 오직 내 몸에 있는 것 하나뿐이지.”
그녀의 말에 운청휘는 침묵으로 대꾸했다.
속으로는 제법 혼란스러워진 참이었다.
이염죽이 정말 자신을 죽이러 온 게 맞긴 한 건가?
아니면…… 그에게 ‘신의 법칙’을 건네주려는 것인가?
만약 선택을 해야 한다면, 운청휘는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가 수련을 하는 목적은 아끼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수련을 위한 수련이든, 아끼는 이들을 희생시키는 수련이라면, 의미가 없었다.
“반드시 그대가 죽고 내가 살아야 하는가?”
이염죽의 생각이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운청휘는 물었다.
“네가 채아와 나 사이에서 채아를 선택했을 때부터, 이 대결은 정해진 거야!”
이염죽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살려 줄 생각도 하지 말고, 봐줄 생각도 하지 마. 어중간하게 하면 내가 이기고, 네가 아끼는 모든 이들을 죽일 테니.”
“……알겠다.”
운청휘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공격에 들어갔다.
그의 뒤에 열여덟 개의 오행의 힘이 나타났다.
금, 목, 수, 화, 토!
풍, 빙, 뇌, 암, 광!
사망, 부패, 쇠락, 멸망, 파괴!
도덕, 질서, 인애!
열다섯 가지의 힘을 봤을 때 이염죽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나, 도덕과 질서, 인애를 본 후 두 눈을 부릅떴다.
“왕의 영단의 힘! 설마 이것까지 깨우쳤을 줄이야!”
이염죽은 신녀인 만큼 누구보다도 도덕과 질서, 인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우주가 존재하는 근원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주뿐만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존재의 근원에서 이 세 가지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었다.
도덕은 어떤 일을 하든 그 사람의 행동을 구속하고, 모든 생령에게는 도덕적 한계가 존재한다. 누군가 무고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무뢰한이라고 해도, 마음에는 신경 쓰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질서는 모든 세력 안에 존재했다. 자녀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질서의 일종이고, 윗사람에 대한 존경도 질서였다. 심지어 밤과 낮의 전환도 질서의 일종이었다.
인애는 가장 큰 힘으로, 질서와 도덕도 한 수 아래로 여긴다.
인애는 우주에서 모든 것을 총괄하는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염죽이 당초 신들을 거느리고 멸세의 재차 강림을 막으려고 했는데, 그때 동원했던 힘이 인애의 힘이었다.
세속에 전해지는 말로는 미움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미움보다 사랑이 사람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너 이외에 도덕, 질서, 인애를 깨달은 선제가 있어?”
이염죽이 갑자기 물었다.
그녀는 이 문제에 매우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앞의 열다섯 가지는 모든 선제가 깨달았지만, 뒤에 세 가지는…….”
운청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로서도 알 수 없구나.”
선제간의 싸움은 극히 드문데, 그 전투의 여파가 다른 생령들에게는 재난이나 다름없기 때무이다.
그리하여 선제들은 서로 자제하고, 교전을 벌이지 않았다.
간혹 교전을 벌인다고 해도, 전력을 다하는 일은 없었기에 다른 선제들은 운청휘가 도덕, 질서, 인애를 터득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운청휘도 다른 선제들이 그 세 가지 힘을 터득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신의 법칙은 도덕, 질서, 인애를 간결시켜 나온 것이지.”
한참을 침묵하던 이염죽이 말했다.
“네 반응을 보니 짐작이 가는구나.”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전히 머뭇거리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녕 이 싸움을 계속해야겠느냐?”
“난 반드시 널 죽일 거야!”
이염죽의 뒤로 열여덟 가지 힘이 홍수처럼 몰아쳤다.
콰르릉!
운청휘가 불러낸 열여덟 가지의 힘과 맞부딪쳤다.
이와 동시에 이염죽은 활시위를 힘껏 당겨 파신전을 쏘아냈다.
운청휘도 멈추지 않고 거의 동시에 직경 삼천여 장의 붉은 검기를 뿜어냈다.
콰르릉! 콰르릉! 콰르릉!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만이 울려 퍼졌다.
장신연 전체뿐만 아니라, 낭야산까지 흔들려 종말이 오는 듯했다.
두 사람의 경계로 보자면, 이것은 최고이자 최후의 싸움이었다.
운청휘의 꿈 밖.
진상상이 운전하는 둔천사는 공작령의 범위를 벗어났고, 구천주선살진의 효과로 인왕경의 최고 속도를 넘어서서 달리고 있었다.
그런 둔천사를 두 개의 그림자가 나란히 추격했다.
대붕족와 왕과 공작족의 왕이었다.
“운청휘, 진상상, 감히 본왕의 아들을 죽이다니. 온 영주에 네놈들이 머물 곳은 없을 것이다!”
“공작족의 보물을 약탈하다니, 하늘로 올라가고 땅속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누구도 네놈들을 구할 수 없다!”
두 왕들의 눈에 적나라한 살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억지로라도 둔천사의 속도를 따라잡아야 하는데, 힘에 부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거리 공격을 멈추지 않았지만, 구천주선살진이 나타난 이후로는 공격을 포기하고 바짝 뒤쫓기만 했다.
-공작왕, 홍가 노조에게는 연락했는가?
추격하는 동안 대붕왕이 공작왕에게 음을 전했다.
-홍가 노조는 이미 홍무군 경계에서 기다리고 있네.
공작왕이 마찬가지로 음을 전했다.
홍무군은 남영의 인간 요지로, 북영에서 가장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