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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224화 (224/430)

제224화

그녀는 아직까지도 서 있었는데, 바로 앉기는커녕 뭔가를 바라는 눈빛으로 소도도를 바라보았다.

이때 소도도는 쌍둥이 형제에 대해 생각하느라 소엽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다.

그에 소엽이 조금 부끄러워하더니 여전히 자리에 서 있었다.

운청휘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가 소엽과 인연이 깊진 않지만, 적어도 소도도에게 전해 듣기로는 암호랑이와 다름없는 거침없는 여인이라 들었거늘?

“소 부인, 앉으시죠!”

운청휘가 소도도마저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시게!”

소도도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엽을 돌아보며 말했다.

소엽은 그제야 자리에 앉더니 젓가락을 집어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절반 정도 먹더니 갑작스레 소도도에게 여린 눈길을 보냈다.

그녀가 보여 준 먹성을 소도도가 싫어할까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운청휘는 이 장면에 줄곧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소도도는 한때 소엽이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인이라고 한 적이 있을 만큼 소엽을 두려워했다.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무서움이었다. 이 말을 들은 소엽은 묵묵히 소도도를 때려 코를 퉁퉁 붓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뭐란 말인가?

‘설마 도도는 줄곧 나를 속인 것인가?’

운청휘는 속으로 의혹을 품었지만, 이런 것으로 거짓말할 소도도가 아니기에 의혹을 억눌렀다.

술이 세 차례 돌았을 무렵, 운청휘는 소엽이 모르게 소도도에게 눈짓을 보냈다.

소도도는 술기운이 살짝 오른 얼굴로 소엽을 즉시 돌아보았다.

“엽엽. 천급 보검을 얻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운 형제가 사람을 대기시켜 두었다네. 그자를 따라가면 천검종의 보물 창고에서 검을 고를 수 있을 거야.”

소엽이 나간 후, 소도도가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형제, 무슨 일로 내 아내를 나가게 한 건가?”

운청휘가 우물쭈물하지 않고 입을 열어 물었다.

“지금까지 내가 들은 소엽의 성격은 다소 난폭하였는데, 어찌하여 저리 온순한 새처럼 되었지?”

그러자 소도도는 눈을 반짝이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게 아닌가.

“운 형제, 자네는 이해할 수 없을 걸세. 한 달 전, 한 여자와 몇 마디를 주고받는 걸 본 소엽이 나를 추격하며 거세하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지. 그래서 난 내 결심을 보여주기로 했네. 그리고 그 하룻밤에 정을 나누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지!”

운청휘로서도 뜻밖의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후에 그녀의 성격이 변했단 말인가?”

소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적응이 되지 않아서 소엽에게 물었지. 한데 그녀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이미 마음이 통하고 서방님의 사림이 되었으니 당연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다네.”

운청휘가 선천경에 도달할 때 만났던 정과는 달리, 영단경에 도달하는 경위는 성공거수 형태의 운청휘도 알 수 있었다. 공유된 기억을 통해 그가 겪은 것들을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정은 엄밀히 말하면 꿈이 아니었다.

이염죽이 무상비법을 동원하여 강제로 꿈에 침입했고, 현실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즉, 현실의 기억이 되어 있었다.

그러자, 운청휘는 어떻게 할지 방법을 깨달았다.

“도도, 고맙군…….”

* * *

장신연의 인간 운청휘는 영단의 힘으로 불러낸 장검을 들고 이염죽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염죽에게 다가간 운청휘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이염죽은 이미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장검을 휘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운청휘의 출중한 검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씁쓸한 웃음이 절로 머금어졌다. 검을 뺄 때의 독기마저 가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던 것인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라고 있건만.

검이 휘둘러지는 것은 단호했지만, 독하진 않았다.

“응?”

죽음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이염죽은 의아함에 눈을 떴다.

눈앞의 운청휘는 담담한 눈빛만을 보내고 있었다.

별안간 이염죽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운청휘가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탁!

이염죽이 입고 있던 옷이 터졌다.

“우, 운청휘, 너……!”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이염죽은 제대로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녀로서도 의외인 상황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운청휘가 이런 일을 벌일 줄은, 정말로 예상치 못했다.

운청휘는 이염죽의 반응에 다소 당황하고 긴장된 눈길을 보냈다.

혹여 이염죽이 후에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가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해서…….

운청휘는 숨을 가다듬으며 재빨리 긴장과 당황스러움을 감추었다.

그는 선제로서 보통 사람들보다 빠르게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은 이염죽에게 고정되었다.

“이염죽. 그대가 신이든 마신이든 괘념치 않는다. 그저 나의 여자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지금도, 이후에도, 영원히. 나는 이전에 그대를 저버렸지만, 그것은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이 운청휘가 보상하겠다. 천 배, 만 배로.”

운청휘가 말을 마치자, 영단의 힘이 나와 그와 이염죽을 에워싸는 장벽이 되었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영단의 장벽으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들만이 알게 될 터였다.

곧, 운청휘의 등은 이염죽이 남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아팠지만, 운청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향한 감정에 어렴풋한 희열을 느꼈다.

그녀는 열 손가락으로 운청휘의 등을 붙들고 있었는데, 손톱이 강하게 살갗을 파고들어 긴 자국을 남겼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라면 무위가 일 할도 남지 않은 이염죽이라도 온갖 방법으로 운청휘를 죽일 수 있었으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운청휘에게 감정을 토해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이염죽은 기분이 좀 나아진 듯,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운청휘가 채아를 선택했을 때, 그녀는 마음과 영혼이 동시에 찢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신들의 주인이자 신녀인 그녀도, 한 명의 여인이었다.

은애하는 상대의 마음속에 더 중요한 여인이 있다는 사실을 어찌 받아들일까?

그 말을 들은 운청휘는 잠시 침묵했으나, 이윽고 이염죽을 꽉 껴안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대에게 준 상처를 낫게 할 수는 없겠군. 그러나 모두 지난 일이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운청휘는 아직도 이염죽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속삭였다.

이윽고 그의 입술을 점차 아래로 내려갔고, 폭풍같은 시간이 장벽 안에서 휘몰아쳤다.

한참 후, 이염죽은 운청휘의 품에서 잠들었고, 그녀의 얼굴은 전에 없는 평온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운청휘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껴안았지만, 순간 일렁이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 그녀의 입술을 살짝 훔쳐보았다.

* * *

운청휘의 꿈 밖, 둔천사.

진상상은 이미 진가의 노조이자 그의 조부인 인왕경 최강자와 연락이 닿은 참이었다.

그의 조부는 곧바로 인왕경의 두 친우들을 홍무군으로 불러들였다.

한 차례의 대전 끝에, 진가 노조를 비롯한 그의 친우들, 대붕왕, 공작왕과 홍가의 인왕경은 한 가지 합의를 했다.

그들 여섯은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만약 그들이 진심으로 전투를 벌이면 영주 전체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터였다.

다만 진가는 추후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상황을 관조하기로 했다.

공작족, 대붕족, 홍가는 공적 9단계 및 이하의 사람들을 파견하여 둔천사를 가로막을 예정이었다.

만약 둔천사를 막으면 위의 세 세력이 진상상과 운청휘를 처리하되, 막지 못한다면 추격을 포기하기로 합의하였다.

근 20일간 쉬지 않고 내달린 둔천사.

아무리 진상상이여도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진상상의 무위라면 1년 내내 버틸 수 있겠으나, 문제는 쉬지 않을뿐더러 온 정신을 집중하여 둔천사가 포위망에 빠지지 않도록 달아나야 했다.

“조부님의 전언에 따르면, 홍무군 바깥으로 나가기만 한다면 위기는 넘길 수 있다는 거군.”

낮게 중얼거린 진상상은 둔천사를 육천 장 상공으로 끌어 올렸다.

이 정도 고도에서는 그가 아래쪽 지면을 볼 수 있으나, 아래에서는 둔천사를 볼 수 없었다.

진상상은 일부러 지도를 보지 않고, 만약의 공격을 대비하여 둔천사의 전진을 통제하고 있었다.

“삼대 세력은 둔천사를 막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을 테지. 그들도 내 노선을 파악하고 있을 걸세.”

진상상은 서남쪽을 향해 3백여 리 이상 전진한 후, 별안간 진로를 꺾어 동남쪽으로 둔천사를 몰았다.

그렇게 50여만 리를 갔을까, 다시 진로를 틀었다.

“최대한 네놈들이 계산할 수 없게끔 도주 경로를 만들어 줘야지.”

진상상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 * *

이염죽이 눈을 떴다.

두 사람의 무위는 서로 벽을 넘었는데, 운청휘는 영단경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단경 3단계까지 오른 상태였다.

전투력으로는 보통의 공적 9단계를 잡을 수 있었다.

“일어났나?”

운청휘는 품에 안긴 이염죽을 향해 다정히 물었다.

짝!

이염죽은 눈을 뜨자마자 운청휘에게 손을 날렸다.

그녀의 힘은 운청휘를 날려버릴 법한 기세가 있었으나, 정작 운청휘는 찰과상도 입지 않았다.

이염죽은 빠른 속도로 영단의 힘을 일으켜 몸을 가렸다.

무의식적으로 신식을 발휘해 그 너머를 보려던 운청휘는 이염죽의 싸늘한 시선에 얼른 신식을 거두며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염죽, 그대의 무위는 얼마나 돌파했느냐? 한 번 더 전투하겠나?”

그 말에 곧바로 이염죽의 몸에서 전의가 넘쳐흘렀다.

“아직도 싸우고 싶어? 그래, 좋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빛 장궁이 그녀의 손에서 나타났고, 파신전을 메기고 있을 때 운청휘가 빠르게 몸을 날렸다.

“내가 말하는 전투는 그대가 아는 전투가 아니다.”

운청휘는 곧바로 이염죽을 품에 안았다.

선제인 만큼, 그는 뭐든 빨리 배우고 터득할 수 있었다.

이 일도 이제 능숙해진 터였다.

이염죽은 잠시 저항했지만, 곧 운청휘를 받아들이며 다시금 운우지정을 나누었다.

몇 시진 후, 두 사람은 달콤한 잠에 취했다가 다시 깨어났다.

눈이 마주치고, 운청휘는 이염죽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이제부터 나는 그대의 남자다.”

본래는 그녀가 자신의 여인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도 듣는 이의 입장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법이다.

무엇보다 신녀인 그녀가 누군가에게 귀속되는 듯한 느낌을 좋아할 리가 없었기에, 운청휘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바꾼 것이다.

말을 하면서도 운청휘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녀가 어떠한 위화감도 느끼지 않는 듯하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순간부터, 그와 이염죽 사이에 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만 같았다.

“시간이 되었으니, 난 본체로 돌아가야겠어.”

이염죽이 작별을 고했다.

운청휘가 영단경에 들어가며 정을 돌파했으니, 이 세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터였다.

“그렇군. 나도 밖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고를 수 있다면 이염죽과 평생 이곳에 남고 싶었지만, 현실 세계의 일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진상상에게 모든 걸 맡겨놓고 추격당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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