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화
“헤어지기 전에, 내 요청을 들어줄 수 있나?”
운청휘가 불쑥 용기를 내었다.
“응?”
이염죽은 운청휘를 바라봤다.
“우리가 현실에서 다시 만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이염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거야. 나는 영주에 없어. 마도에 들기 전 장신연에서 일족들에게 제사를 올리려 했지. 그러다 공간 폭풍 속에 빠져 버렸고.”
“뭐라고?”
운청휘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공간 폭풍에 휘말리면 다른 공간으로 전송되는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운이 좋으면 1~2만 리 안팎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운이 나쁘면 그녀는 영영 다른 별로 가 버릴지도 모른다.
운청휘만 해도 애초에 저 폭풍에 휘말로 선계로 가지 않았던가.
“지금 어디에 있지?”
운청휘가 황급히 말하고 덧붙였다.
“위치를 알고있나?”
“아직 천성대륙인데 구체적인 위치는…… 말해 줄 수 없어!”
이염죽이 낮게 중얼거렸다.
운청휘의 시도가 확실히 이염죽의 한을 풀어 주긴 했지만, 그녀가 그를 완전히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운청휘를 완전히 용서하려면, 아직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 네 요청을 말해 봐.”
이염죽이 말했다.
“응…….”
운청휘가 이염죽을 향해 걸어왔고, 그녀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떠나기 전에 입맞춤을 해 다오.”
운청휘는 그저 이염죽의 대답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이염죽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입술이 가까워지고, 오랫동안 따스한 숨결을 느꼈다.
얼마 후, 두 그림자는 꿈을 떠나 각자의 길로 향했다.
사실 운청휘가 이염죽 몰래 한 일이 있다.
그는 이염죽의 ‘의식’ 속에 신식을 조금 넣어두었는데, 아주 미약한 양이라 이염죽이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터였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이염죽의 위치를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이염죽이 자신을 찾아오기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눈을 뜬 운청휘는 곧바로 둔천사의 조종실로 향했다.
“상상, 어떻게 되었나?”
“운 형제, 깨어났군. 자네가 깨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자네를 대붕왕에게 넘기려고 했다네!”
진상상은 반가움에 운청휘를 덥석 껴안았다. 그리고는 20여 일간 있었던 일을 상세히 풀어놓았다.
진가 노조와 대붕왕 등의 합의도 듣고 나자, 운청휘는 뜻밖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안심하기에 이르렀다.
자신들을 쫓는 인왕경 무인이 줄어든다면, 포위를 뚫을 수 있는 확률은 오 할 이상 증가하지 않겠는가?
“운 형제, 홍무군 전체가 그들의 경계망에 포함되어 있네. 나는 그들의 계산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목적지를 설정하지 않고 발 닿는 대로 비행했지. 다만 이건 우연에 기댄 비행이니, 그들의 함정에 걸려들 수도 있네.”
진상상이 그동안의 노선을 설명하자,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상, 너 혼자서 헤쳐나가기엔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제는 노선을 바꿔도 좋아. 가장 빠른 속도로 홍가에 가지.”
운청휘는 기령을 구하려는 목적을 잊지 않았다.
“운 형제, 정말로 그래야 하는가?”
진상상이 영 못미덥다는 투로 말했다.
“추격에 인왕경 무인이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다른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
운청휘는 곧 둔천사에 구천주선살진을 하나 더 설치하여, 총 세 개의 구천주선살진을 포진해 두었다.
그러자 둔천사의 극한 속도가 더욱더 빨라져, 다수의 인왕경 무인들이 낼 수 있는 속도를 초월하기에 이르렀다.
진상상은 공작족의 태상장로 매희를 죽인 구천주선살진의 위력을 체감한 적이 있으니,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인왕경 무인이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지금의 둔천사는 공적 9단계의 무인을 포함한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운 형제. 내가 조부님께 연락을 드리겠네. 대붕왕과 공작왕, 홍가 노조를 다른 곳으로 유인할 방법을 찾도록 해 보지!”
말을 하며 진상상의 눈은 흥분으로 일렁였다.
“인왕경만 없다면 둔천사는 무적의 존재다. 그러니 우리의 목표는 공작족의 창고처럼 홍가를 비우는 게 마땅하지.”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네!”
진상상은 곧 그의 조부와 연락하여 둔천사를 비롯한 세 개의 구천주선살진을 설명하였다.
진상상의 조부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대붕왕과 공작왕, 홍가의 노조를 유인할 것을 장담해 주었다.
동시에 그는 진상상에게만, 홍가의 창고에서 무언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비밀스레 남겼다.
둔천사의 현 속도라면 홍무군의 수도까지는 대략 5일까지 걸린다.
운청휘는 진상상에게 다시 운전을 맡겨 두고, 다시 폐관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마종을 연화하여 무위를 증가시키는 수련이므로, 언제든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단번에 100개가 넘는 마종이 이 각도 걸리지 않아 전부 연화되었다.
마종은 운청휘의 무위를 영단경 3단계의 절정까지 끌어올렸고, 영단경 4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운청휘는 50여 개의 영변경 마종을 꺼낸 후, 한 개만 연화시켜 보았다.
단번에 영단경 4단계로 올라섰다.
그 후로 이틀 동안, 운청휘는 마종의 연화에만 집중하여 영단경 6단계라는 무위의 폭증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운청휘는 멈추지 않고 반절 공적의 마종 2개를 꺼냈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이 마종들로 영단경 7단계를 바라볼 수 있을 터였다.
다시 이틀이 지났다.
홍무군의 수도까지 앞으로 하루.
마종의 연화는 순조롭게 이어져, 운청휘는 영단경 7단계에 올라섰다.
남은 건 공적 9단계인 매희의 마종으로, 이 마종은 여지껏 삼켰던 마종을 합한 것보다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운청휘는 두 손을 마종 위에 올려놓은 채 전신의 감각을 끌어올려 연화에 집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반나절이 흘렀다.
마종 안에 있던 힘을 20분의 1 정도 연화시켰을까.
문득 운청휘가 눈을 떴다.
그의 신식이 거대한 붕새를 감지하고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다만 인왕경의 대붕왕은 아니었고, 반절 인왕경의 붕새였다.
-상상, 방향을 바꾸지!
운청휘가 곧바로 진상상에게 음을 전했다.
지금 운청휘의 무위라면 공적 9단계를 상대할 수 있으나, 반절 인왕경에게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둔천사의 방향을 바꾸고 50만 리도 채 가지 못하고, 운청휘의 신식은 재차 반절 인왕경의 무인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대붕족이 아닌 사람이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자는 홍가의 사람이었다.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운청휘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저 우려이길 바라야겠군.”
운청휘는 다시금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둔천사는 겨우 30여만 리를 날기도 전에 인왕경의 반쪽짜리 무인을 맞이해야 했다.
이번에는 공작족의 인왕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운청휘는 진상상에게 둔천사를 멈추게 하였다.
진상상이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물었다.
“운 형제, 우리의 행적이 발각된 것인가?”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적의 매복에 걸렸군.”
“맙소사, 어떻게 우리의 행적이 발각된 거지?”
진상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신반귀산 찬명사를 들어보았나?”
“찬명사가 진짜 존재했나?”
운청휘의 말에 진상상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가 아는 찬명사는 허무맹랑한 직업으로,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천기를 읽어내 미래를 예측하는 이들이라는데, 누가 믿겠는가?
진상상은 줄곧 찬명사가 다른 신화나 전설과 같은 이야기 속의 존재라고 믿어 왔다.
“천명사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들의 존재는 과장되었을 뿐. 그들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선견지명도 없지. 그래도 단서를 통해 미래의 존재 궤적을 계산할 수 있지.”
운청휘는 담담하게 설명했다.
미래의 일을 활시위를 떠난 화살에 빗대자면, 찬명사는 그 화살이 날아가는 범위를 계산하는 존재다. 즉, 계산에 능통한 것이다.
둔천사의 행적은 이미 알려져 단서가 되었으니, 그들은 노출된 둔천사의 행적을 단서 삼아 이동 방향을 계산해온 것이다.
다만 진상상이 발 닿는 대로 둔천사를 이끌었기 때문에 그들의 계산에는 잠시 혼란이 있었다. 그것도 잠시, 이제 홍가를 향해 나아간다는 목적이 있기에 그들이 미리 갈 곳을 예측하고 길을 막아설 수 있었던 터였다.
“운 형제, 이제 어떻게 하는가?”
진상상이 조금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다.
운청휘의 몸에는 타고난 제왕의 기질이 있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이끌리곤 했다.
“둔천사를 운행하면서 세 명을 상대하게. 나머지는 내가 맡지.”
운청휘가 말했다.
“셋이나 있다고?”
진상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대붕족, 공작족, 인간의 반절 인왕경이다. 아마도 인간은 홍가의 자제겠군.”
운청휘의 말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미 인왕경 강자 셋이 둔천사를 향해 질주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그들 뒤에 각각 50여 명의 무인이 따르고 있음도 감지했다.
개중 무위가 약한 자들도 영변경이었고, 공적 9단계도 12명이나 되었다.
“지금의 둔천사라면 인왕경 무인이 강림해도 한 시진은 지나야 진법을 풀어낼 수 있다. 저들로서는 사흘 이상이 걸릴 테지. 둔천사가 비행 중이었다면 파괴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을 것이다. 그 정도라면 홍무군의 경계를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그러니 이렇게 하자꾸나. 상상, 둔천사를 몰고 홍무군을 떠나 진가로 향하게. 나는 여기서 상황을 정리하고 홍가에서 보물을 가져가지. 일을 마치면 내가 사람을 한 명 데리고 진가로 가지.”
운청휘가 그의 계획을 말했다.
“자네 혼자서 저 많은 사람과 맞서겠다고?”
진상상이 걱정하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또다른 인왕경이나 반절 인왕경이 나타나지 않는 한, 나의 안위에는 어떤 문제도 없을 테니.”
운청휘의 말투에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그렇다면야 자네의 말을 따르겠네.”
그의 계획에 따르기로 한 진상상은 곧 솟구치는 의문을 쏟아내었다.
“운 형제, 사람을 한 명 데리고 오겠다고 했는데, 누구인가?”
진상상은 이제 운청휘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운청휘가 데려오는 이라면, 반드시 자신과 연관이 있을 터였다.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운청휘가 의뭉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