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널 죽일 생각은 없다.”
그 말에 소심의 눈이 커졌지만, 잠시뿐이었다.
“물론 풀어 줄 생각도 없다.”
말을 마친 운청휘의 손에서, 마종이 흘러나왔다.
소심에게서 마종을 취한 후, 운청휘는 소심의 몸에 영력을 조금 주입해 양경의 무위로 끌어올렸다.
“공유에게 돌아가 전하도록. 공작족을 멸망시키지 않으면, 나와의 원한은 결코 매듭 짓지 못할 거다.”
그 말을 할 때, 운청휘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공유가 알에 있을 때 그녀의 목숨을 구했고, 억만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공작족까지 데려다주었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적어도 배은망덕하진 말아야 했다.
그 결과가 둔천사와 영라 반지를 노린 행위라니, 운청휘로서는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선제로서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갚는다는 원칙을 세워 두었으니까.
적어도 이번 일은 백배, 천배로 받을 생각이었다.
쿵!
운청휘가 영력화장을 휘두르자 소심은 수십만 장 밖으로 밀려났다.
“가자!”
운청휘는 붕사를 이끌고 홍무군의 수도를 향해 질주했다.
한나절을 나아간 후, 두 사람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고 푸른 강의 상공에 떠 있었다.
운청휘는 수 속성 영단의 힘으로 강물을 갈랐고, 붕사를 데리고 강 아래로 착지했다.
이윽고 강 아래에는 100여 개의 진법이 설치되었다.
“당분간 폐관을 하겠다. 그동안 나를 지키도록.”
당부를 남긴 후, 운청휘는 몇 개의 진법을 더 설치하여 붕사와 자신을 격리해 두었다.
이때 영라 반지 안에는 100여 개의 영변경 마종, 12개의 공적경 마종이 들어 있었다.
운청휘는 영변경 마종은 전부 부적을 새기는 데 쓰고, 즉시 ‘구천주선살진’의 포진 준비에 들어갔다.
인왕경의 무인을 만날 때를 대비하려면, 이걸로는 부족하다.
운청휘는 아쉬움을 억누르며 공적 9단계의 마종 4개를 꺼내 부적을 조각했다.
“비록 구천주선살진으로 인왕경 무인을 죽일 순 없다고 하나, 도주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겠군.”
운청휘가 계산을 마치고 부적을 새기고 나니,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나 있었다.
운청휘는 이제 매희의 마종 연화에 들어갔다.
꼬박 이틀이 흐르는 동안 매희의 마종에는 삼 할의 힘만이 남았고, 운청휘의 무위는 순조롭게 영단경 8단계에 돌입할 수 있었다. 단순히 무위만 상승된 게 아니라, 마종을 연화시키는 속도도 몇 배나 증가하여 반나절 만에 남은 힘도 전부 연화하였다.
“아직 7개의 공적 9단계 마종이 남았다. 이것들이라면 영단경 극경이나, 반절 현경에 도달하기 충분하겠어.”
남은 마종을 헤아려 본 운청휘가 다시금 마종 하나를 집어 들고 연화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종을 연화하는 데 하루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았다.
“마종 두 개를 더 흡수하면 영단경 9단계가 확실하겠군.”
사흘 뒤.
마종 두 개를 연화시킨 운청휘는 그의 계산대로 영단경 9단계에 오를 수 있었다.
“영단경 9단계라, 지금이라면 반절 인왕경을 만나더라도 단번에……!”
운청휘는 수련을 마치는 대신, 마종의 연화를 택했다.
다시 사흘 동안, 남은 공적경의 마종 4개를 전부 연화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호법을 서던 붕사가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고 눈빛이 변했다.
주위의 영기가 폭풍이 몰아치듯 들끓는 데다, 온 강물이 끓어오르듯이 포효하는 기운을 느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며 휘몰아치는 강물과 떠내려가는 물고기들, 그 안에 사는 흉수들마저 겁에 질려 허우적대는 모습이었다.
물살에 밀린 흉수들이 강변에 부딪히면 허겁지겁 육지로 올라가려 애를 쓰고 있었다.
“설마 우, 운 선배께서 인왕경을 돌파하셨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천지가 격동할 일은……!”
운청휘가 수련에 들어간 자리와 붕사가 호법을 선 자리는 삼십 장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주위로 하늘의 위엄보다 숨 막히는 위압감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아니야, 이것은 인왕경을 돌파했다는 움직임이 아니야…….”
그가 확신하며 고개를 내저은 이유는, 삼백 년 전 인왕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절세 강자의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광경은 지금과는 달랐다.
붕사가 이렇듯 추측하고 있는데, 아쉬움이 가득한 운청휘의 목소리가 울렸다.
“겨우 영단경 극경에 들어간 것인가…….”
“운 선배는 여전히 영단경이신가?”
운청휘의 중얼거림을 들은 붕사는 스스럼없이 중얼거리다 곧 멈칫했다.
“잠깐, 우…… 운 선배가 방금 영단경 극경에 드셨다고?”
공적 9단계인 그가 극경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공적경까지 수련한 이들이야말로 하늘을 놀라게 할 기재였지만, 붕사는 어떤 경계의 극경에도 도달한 적이 없었다.
붕사가 보기에 극경은 전설 속에나 존재했고, 영주의 많은 왕들도 극경에 도달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운청휘가 극경에 도달했다니.
운청휘가 진법을 거두고 나오자, 붕사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운 선배님, 설마 극경에 도달하셨단 말입니까?”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붕사는 하마터면 턱이 빠질 뻔했지만, 빠르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는 이미 운청휘에게 투항한 몸이니, 운청휘의 능력이 강할수록 그에게는 이득이었다.
“극경에 도달했다면, 운, 운 선배이시라면, 인왕경의 굴레를 벗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적지 않은 무인들은 인왕경이 수련의 종점이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오해였다.
엄밀히 말하면 영변경, 공적 9단계의 무인들도 그리 여기고 있었다.
붕사는 대붕왕과 공작왕의 대화를 엿들으며, 인왕경 위에 더 높은 단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 단계가 너무나도 지고하여, 대붕왕과 공작왕 같은 자들도 도달하지 못했다.
“만약 우리가 그때 조금만 시간을 써서 극경을 노렸다면, 인왕경 위의 경계가 지나친 욕망은 아니었을 터…….”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인왕경 위의 단계에 오르려면 경계마다 극경에 들었어야 했다고 봐야 할까?
“붕사, 가장 빠른 속도로 혈살군의 천검종으로 가도록.”
운청휘가 불쑥 말했다.
“운 선배께서는 혈살군에서 오신 것이옵니까?”
붕사는 그리 물으면서도, 속으로는 의외라 생각했다.
영주에 사는 이들에게 혈살군은 낙후된 땅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야만인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붕사로서는 그리 강한 운청휘가 야만족의 땅이라 불리는 혈살군에서 왔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운 선배께서 저를 혈살군에 보내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만?”
붕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누군가의 경호원이 되도록.”
운청휘는 붕사와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 바로 말했다.
“천검종에 가면 다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없지.”
붕사를 떠나보낸 후, 운청휘의 신형이 강바닥에서 곧바로 날아올랐다.
그의 뒤로 열여덟 가지의 현력이 강한 힘이 되어 운청휘를 홍무군의 수도까지 밀어냈다.
비록 둔천사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반절 인왕경의 전속력과 맞먹는 속도였다.
“이대로라면 열흘 뒤면 홍무군의 수도에 도착하겠군.”
운청휘의 얼굴에는 기대와 함께, 묘한 능글맞음도 떠올랐다.
“내가 성공 거수를 분신으로 연화시켰다는 것을 알면, 기령이 어떤 반응일까.”
성공 거수와 혼돈 영수는 서로 숙적이었다.
우주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적으로 태어나, 마주치기만 하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들이었다.
이때, 운청휘와 2억여 장 떨어져 있는 곳.
현철로 주조한 감옥 안에서 온몸이 다 희끗희끗하고 깨끗한 어린 고양이가 날렵한 눈을 부릅떴다.
“우, 운청휘…… 가 나를 찾으러 왔어!”
놀랍게도 사람의 말을 내뱉은 고양이는, 억누를 수 없는 격동을 느끼고 있었다.
“운청휘가 영단경 극경에 도달해? 이런, 내가 갇혀 있던 몇 달 동안 앞질러 가다니!”
고양이는 다름 아닌 혼돈 영수 기령이었다.
기령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는데, 운청휘와 사이는 좋았지만 은밀히 경쟁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성기 시절 무위와 전투력이 막상막하였으나, 나란히 무위가 떨어진 후로는 비슷한 출발점에 서 있었다.
기령은 운청휘의 속도를 따라잡았을 뿐더러 때때로 그를 초월하기도 했다.
그러나 육진에 의해 갇혀 있는 몇 달 동안 운청휘에게 역전당하고 말았다.
“나는 선천경에 도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운청휘는 영단경 극경이라니……!”
기령은 약이 올랐다.
운청휘가 영단경 극경에 도달했기 때문이 아니라, 갇혀 있어 수련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분했다.
‘그러나 이상해. 어째서 두 개의 운청휘의 기가 느껴지는 거지?’
기령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두 개의 기를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기령은 자신이 너무 오래 갇혀 환각이 나타난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운청휘의 기가 아주 가까이에서 느껴짐과 동시에, 아주 먼 곳에서도 느껴졌다.
“설마 운청휘가 미리 영신을 수련한 것일까?”
기령이 작게 중얼거렸다.
무인은 영변경 이후에 영신을 하나 더 마나들 수 있었다.
다만 영신은 본체가 아니라 수련 속도가 매우 느리고, 본체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진관해를 예로 들자면 그의 본체는 영변경 3단계이나 영신은 선천경이 아닌가.
“응? 그 얄미운 인간이!”
별안간 기령이 고개를 들어 감옥 위쪽을 바라보았다.
위쪽의 현철 벽이 ‘콰당’하는 소음을 내며 열리더니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새하얀 옷을 입고 오른손엔 흰색 깃발을 들고 있었는데, 깃발에는 묵빛으로 ‘신반귀산’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가 기령을 보고 금빛 힘을 내뿜자, 순식간에 긴 밧줄처럼 구불텅거리더니 기령을 묶었다.
“위(魏) 형, 이 영수묘가 운청휘를 유인할 수 있다고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소?”
관상학자 차림을 한 중년인이 기령을 데리고 대전으로 향하더니,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다른 중년인에게 물었다.
“구 할 이상이지요!”
“위 형의 그 말씀에 제가 운청휘를 위해 큰 선물을 준비할 수 있겠군요!”
질문을 던진 중년인이 곧 대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반나절 후, 대전을 중심으로 살기가 가득한 대진이 반경 삼만 장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