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228화 (228/430)

제228화

“군성문의 진법 대사는 역시 대단해. 제대로 본 것이라면 ‘태원멸원진(胎源灭元阵)’이군.”

무표정하게 있던 중년 관상학자는 하늘을 찌를 기세의 대진을 느끼자마자 감정이 북받쳤다.

“하하하. 위 형, 역시 대단하군. 나의 잔재주로는 신반귀산의 위경륜(魏经纶) 형의 찬명 기술을 이길 순 없지요.”

진법을 포진한 사람이 크게 웃더니 곧 대전 안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시 한 번 소개하지요. 위경륜, 용흥제국(永恒帝国)의 찬명사이자, 흙보살의 제자입니다.”

중년 관상학자 위경륜이 막 포진을 마친 중년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진법의 조예를 보기 전까지 위경륜은 냉담했으나, 진법을 본 이후로는 태도가 달라졌다.

“풍음(风吟), 군성문의 태상 장로이고 반절 인왕의 진법 대사입니다!”

진법 대사 풍음도 인사를 건네더니 말을 이었다.

“위 형, ‘태원멸원진’에서 ‘태원’이 부족한데 그 영수묘를 빌려줄 수 있는지요?”

“그걸로 ‘태원’을 만들려는 것이군요?”

위경륜의 눈매가 사납게 굳어졌다.

태원멸원진은 일단 형태를 갖추었다. 더군다나 태원이 죽지 않는 한 진법은 계속 작동된다.

이 진을 파괴하려면 태원을 소멸시키는 방법뿐이다.

만약 영수묘를 태원으로 만든다면, 영수묘가 죽기 전까지 태원멸원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영수묘는 우리 군성문의 육진 장로가 운청휘에게서 뺏은 것으로, 이것을 ‘태원’으로 삼으면 운청휘가 꼼짝없이 대진에 걸려든다고 했습니다.”

풍음의 목소리는 자신이 가득했다.

그 말대로, 운청휘가 태원멸원진을 파훼하려면 진의 근본이 되는 ‘태원’을 파괴해야 하는데 태원이 기령이라면 진퇴양난에 빠지지 않겠는가.

파괴하면 기령은 죽는다.

파괴하지 않으면 운청휘는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고 만다.

그 때문에 풍음이 태원멸원진을 포진한 것이다.

사흘 뒤. 운청휘는 밤하늘의 별빛 아래에서 빠르게 날고 있었다.

별안간 그가 비행 속도를 늦추었다.

운청휘와 기령은 영혼의 계약으로 묶여 있어, 기령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느낄 수 없었기에, 지금껏 기령의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드디어 기령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왔는지, 조금 전 기령의 음이 울려 퍼졌다.

-운, 운청휘. 나는 ‘태원멸원진’의 태원이 되어 널 유인하는 미끼로 쓰일 거야. 누군가가 그리 만들고 있어.

순간 운청휘의 몸에서 진한 살기가 솟구쳤다.

선제인 그가 어찌 ‘태원멸원진’을 모르겠는가?

그는 애써 살기를 억누르며 기령에게 음을 전했다.

-포진하는 사람의 무위는? 진법에 둘러싸인 범위는 얼마나 넓은지?

-반절 인왕, 반경 10만 리를 진법으로 덮고 있어.

기령이 즉시 음을 전했다.

-알겠다!

기령과의 연락을 끊은 후, 운청휘는 일주일을 더 비행했다. 꼬박 열흘 밤낮을 쉬지 않고 내달린 끝에, 거대한 산맥에 도착한 것이다.

이 산맥의 줄기를 이루는 산은 홍련산(洪连山)으로, 홍무군의 수도 건축물은 모두 이 산을 끼고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넓은 산이기에 운청휘의 신식으로도 전체 지형을 다 파악할 수 없었다.

이곳 산맥에 퍼져 사는 수백만 명의 인구는 모두 홍가의 일원들이며, 홍련산 자체에 대진이 깔려 있다. 대진을 가동하면 인왕경 무인도 궁지에 몰린다는 정보를 진상상에게 들은 터라, 운청휘는 신중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천괴진(天魁阵)!”

일단 홍련산에 숨겨진 진법을 파악한 운청휘는 토 속성 현력을 동원하여 땅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천괴진은 모두 9,999개의 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진은 지하 천오백 장 아래에 묻혀 있었다. 운청휘는 우선 이 천괴진을 파괴하기로 했다.

한 시진 반이 흐른 후, 운청휘는 천괴진의 주요 99개의 진을 파괴했다.

“이 99개의 진이 없으면, ‘천괴진’은 적어도 오 할 이상의 위력을 잃게 되겠군.”

운청휘가 중얼거리며 천괴진의 중심으로 날아들었다.

진안도 파괴할 작정이었다.

일각 후, 그는 천괴진의 중심에 도달해 있었다.

“진안은 진법으로 보호되어 있으니, 인왕경의 무인이여도 당분간 이 진을 파괴할 수 없을 터.”

신식을 동원해 수호 진법과 자신의 기를 동일하게 만든 운청휘는 단번에 진을 통과했다.

“오색 정석으로 진안을 만들다니……!”

천괴진의 진안을 마주한 운청휘는 놀라움에 눈이 커졌다.

“정말 함부로 쓰는구나. 오색 정석은 선계에서도 보기 드문 광석인데 홍가가 이것을 천괴진의 진안으로 쓰다니.”

그가 혼잣말을 하는 순간, 참천검집에서 별안간 진동이 전해졌다. 오색 정석을 흡수하고 싶어 하는 울림이었다.

“뭐? 오색 정석을 삼키면 오색 정석의 힘을 참천신검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얼마나 놀랐는지, 운청휘의 숨이 잠시 멈췄을 정도다.

운청휘도 참천신검이 상고 전쟁터에 숨겨져 있으며,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감금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힘은 신검을 끊임없이 연화하고 있었기에, 하루빨리 찾아야만 했다.

만약 검집이 오색 정석을 연화하고 그 힘을 신검에 전달할 수 있다면, 보다 확실히 참천신검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곧 오색 정색을 연화시켜 주마!”

말을 마침과 동시에, 운청휘가 검집을 뽑아 오색 정석에 꽂아넣었다.

우우웅……!

잔뜩 흥분한 검집이 거세게 진동했다. 마치 인왕경의 마종을 마주한 듯, 운청휘의 눈에도 격동이 일었다.

“응? 하루면 완전히 오색 정석을 연화시킬 수 있다고?”

운청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알겠다. 기령에게 하루만 더 참으라고 하마.”

본래는 기령을 구하고 홍가의 창고를 약탈할 계획이었지만, 순서를 변경해야 했다.

운청휘로서도 참천검집이 손에 없으면 기령을 구할 수 있다고 십분 장담할 수는 없으므로.

다만 홍가의 보물 창고를 터는 일만큼은, 누구도 모르게 해낼 자신이 있었다.

진을 벗어난 뒤, 두 시진 후.

운청휘는 기령이 갇혀 있는 곳에서 일각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홍가의 보물 창고에 다다랐다.

어떤 세력이든 일정한 부흥을 이루면 필연적으로 진법에 손을 대게 되는데, 홍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도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홍련산 전체에 대진을 포진해 두었고, 보물 창고도 진법을 겹겹이 둘러쳐 놓았다.

이런 종류의 진법은 하나를 건드리면 연쇄 작용을 일으켜 모든 대진이 반응하게 되므로, 인왕경의 무인이라도 진법에 대한 조예가 없다면 출입을 삼가는 게 맞았다.

다만 운청휘가 누구인가?

봉천진지진도 그를 막지 못했는데, 다른 진법이 그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운청휘는 신식으로 자신의 기를 보물 창고의 진법과 융화시켜 손쉽게 진법을 통과했다.

그렇게 들어선 홍가의 보물 창고는 공작족의 규모와 맞먹었으며, 사방이 백유석으로 둘려 있었다.

“상상이 ‘건(乾)’ 자가 새겨진 비석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었지. 설마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

곧, 운청휘의 신식은 대지 아래에 있는 비석에 집중되었다.

회백색 비석은 부적으로 빽빽하게 덮여 있었고, 부적의 중앙에는 커다랗게 ‘건’ 자가 쓰여 있었다.

황량하고 쓸쓸한 기를 풍기는 비석은 굉장히 오래되어 보였다. 어림잡아도 상고 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음? 마치 비석이 부르는 것 같군.”

운청휘가 멈칫한 순간, 비석에서 강렬한 ‘의지’가 발현되었다.

“비석 안에 의지가 봉인되어 있다니!”

운청휘가 자신을 이끄는 기운의 근원을 알아차렸는데, 엄밀히 말하면 비석이 아니라 비석에 머물러 있는 의지였다!

운청휘는 신식으로 몸을 보호한 뒤, 천천히 비석을 향해 다가갔다.

자신을 이끄는 느낌이 점점 더 강해졌고, 시체가 썩는 듯한 냄새가 훅 풍겼다.

눈을 감으면 마치 당장 전쟁이 일어난 듯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위잉……!

그 순간, 무수한 금빛이 비석 위로 찬란히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운청휘를 덮쳐들었다.

운청휘는 신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저항했으나, 금빛은 단번에 신식을 깨트리고 그의 머릿속으로 침투했다.

곧, 위풍당당한 형상이 운청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형상의 주변에는 끊임없는 탄생과 멸망의 순간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듯한 광경이었다.

별안간 그 형상이 운청휘를 바라보자, 시선이 마주치며 운청휘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신식마저 말을 듣지 않았다. 저 형상을 제대로 살펴보려 했지만, 신식은 내보낸 순간부터 연기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거대한 바다에 먹물 한 방울을 부은 듯 부질없기 짝이 없었다.

-건(乾)은 하늘, 곤(坤)은 땅, 진(震)은 우레이며, 손(巽)은 바람, 감(坎)은 물, 리(离)는 불이다. 간(艮)은 산, 태(兑)는 못이로다! 이 세계는 온전한 봉마비를 찾아야 하느니.

위풍당당한 형상의 외침은 구천을 울리듯 쩌렁쩌렁하게 운청휘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봉마비?”

선제의 식견으로도 ‘봉마비’라는 단어는 처음이었다.

“누구냐?”

운청휘가 물었다.

-나는 오랜 시간 떠돌았네. 평생의 아쉬움이 나를 과거와 미래에 연결해 두었지. 그대, 운제여. 그대의 신념을 지키고 완전한 봉마비를 찾아……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 주게.

위풍당당한 형상의 목소리가 덧없이 울리더니 운청휘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별안간, 운청휘는 울적한 기분에 잠겨들었다.

마치 생명이 있는 모든 이들이 곧 그를 떠날 것만 같았다.

다음 순간, 그의 머릿속엔 무수한 이들이 떠올랐다.

부모님, 채아, 이염죽, 운현, 운한, 운상, 심지어 소도도와 진상상, 기령까지 연달아 떠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 운청휘가 목숨을 걸고 지킬 이들이었다.

그의 가족, 사랑하는 이들, 생사를 함께한 형제가 아니던가!

‘오랜 시간 떠돌아다니며 과거와 미래에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어떤 신통력이 이를 가능케 한단 말인가? 더욱이 그는 단번에 내 경계를 파악했다. 대체 누구이기에 내가 운제임을 아는 거지? 더욱이 그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무슨 뜻이고?’

운청휘는 침묵에 빠졌지만, 머릿속은 바삐 돌아갔다.

어느 순간,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서, 설마. 그는……!”

운청휘가 중얼거렸는데, 차마 그의 추측을 꺼내놓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무형의 힘이 그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카카각……!

별안간 그의 육신은 거대한 힘에 짓눌렸고, 선제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공포가 운청휘를 사로잡았다.

지금 그를 짓누르는 힘에 비하면, 선제라는 존재는 하찮은 땅강아지에 불과했다.

허덕이던 운청휘는 곧바로 추측을 단념했다. 그러자 곧바로 육신을 압박하는 힘이 사그라들었다.

마치 더 생각을 이어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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