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기령이 저도 모르게 운청휘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운청휘와 자신은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한 전투를 벌였기에, 쉬지 않고 공간을 찢고 갈랐으며 천지를 전율케 했었다.
누가 알았을까. 그때의 전투 이후로 다시 만나 이렇듯 깊은 정을 쌓게 될 줄은.
“나를 데려가!”
기령이 옆에 있던 위경륜과 풍음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넋을 놓고 있던 그들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들은 운청휘의 무위의 폭증이 손에 들린 검집 때문임을 알아차렸지만, 동시에 새로운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빈 검집만으로도 저렇게 놀라운 무위를 보이는데, 검까지 있다면 얼마나 두려운 존재가 되려는 것인가?
그들이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기령이 운청휘에게 말을 건넸다.
“운청휘, 지금의 전투력으로 참천신검을 되찾는다면 인왕경도 단번에 격파하겠어?”
운청휘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참천신검이 있다면, 아무리 인왕경이라 해도 죽일 수 있다.”
“뭐라고……!”
위경륜과 풍음이 저도 모르게 소름이 오소소 돋아 몸서리쳤다.
반절 인왕경의 경지도 아니면서, 신검이 있으면 인왕경을 죽일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할 정도라니. 그 참천신검이라는 병기는 대체 어떤 등급이란 말인가?
“참천신검의 행방은 알아냈어?”
기령이 또 물었다.
“그래, 위치를 감지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를 구하는 것 외에도, 신검을 되찾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럼 더 이상 지체하지 마. 어서 찾으러 가자!”
기령이 얼굴 가득 기대의 빛을 띠었다.
“서두를 것 없다. 그들을 연화하고 출발하면 그만이다.”
운청휘는 느긋하게 말하며 마종을 홍가의 일원 2명에게 밀어 넣었다. 곧, 마종을 회수하자 기령도 영수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본체로 돌아간 기령이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포효한 순간, 홍가의 나머지 2명이 거대한 흡입력에 이끌리더니 그대로 입안으로 빨려들어 사라졌다.
기령의 본체는 만물을 삼킬 수 있는 혼돈 영수이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후, 기령의 기는 육안으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시시각각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천경 2단계였던 기령의 기는 이 각 후 선천경 8단계까지 폭증했다!
“이대로라면 나를 현경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
그들을 연화시킨 기령이 입맛을 다시더니 위경륜과 풍음을 돌아보았다. 두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위경륜과 풍음은 무의식적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들이 황급히 운청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도 삼켜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들은 쓸모가 있으니 건드리지 말도록.”
운청휘의 말에 기령은 입맛을 다시더니 돌아앉아 연화를 이어갔다.
목숨은 부지하게 되었지만, 위경륜과 풍음은 그만 울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절대 영주에 오지 않았을 텐데, 운청휘를 건드리는 바람에 자유도 빼앗기고 말았다.
운청휘와 기령은 그들이 보기에는 사람을 집어삼키며 성장하고 있으니, 어찌 두렵지 않을까!
거의 같은 시각, 혈살군의 천검종.
성공 거수 운청휘는 인간의 형태로 변하여 소도도와 소엽을 데리고 전송진에 올랐다. 그들의 목적지는 영주였다.
가는 중에도 내내 긴장해 있던 소도도가 한참을 망설이다 성공 거수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운 형제, 자…… 자네가 말한 진상상이 형제인 나를 알아볼까?”
* * *
홍련산을 떠난 운청휘 일행은, 진가의 영토로 향했다.
“둔천사가 있었더라면, 열흘 내로 도착했을 텐데. 아쉽군.”
운청휘의 아쉬운 중얼거림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쉬지 않고 사흘을 날아온 데다, 또다시 사흘을 더 날아가는 동안 운청휘는 반절 인왕경의 마종 하나를 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그는 반절 현경의 무위에 이를 수 있었다.
이때 기령의 무위는 영단경 7단계까지 폭증했고, 멈출 줄 모르고 상승하는 중이었다.
‘현경에 도달할 때, 또다시 심마선겁을 마주할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운청휘가 기령을 바라보았다.
“기령. 선천경에 도달하며 선겁을 마주한 적이 있더냐?”
인간 아이의 모습을 한 기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선겁은 선이 될 때 나타나는 거잖아!”
무심코 대답했던 기령은 퍼뜩 깨달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령이 얼른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운청휘, 설마 선겁을 만난 거야?”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났을 뿐이더냐, 심마선겁이었다. 선천경 때도, 영단경 때도 마주했지. 지금의 아는 반절 현경이니, 현경으로 돌파할 엄두가 나지 않는군.”
선겁에 대비하기 전까지는 현경에 이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상하네. 우리는 백중지세였고, 무위는 함께 하락했어. 이치대로라면 우리가 무위를 회복하는 과정은 똑같아야 하잖아? 하지만 난 선겁을 마주친 적이 없어.”
중얼거리던 기령은 혼돈 영수로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기령만의 기억이 아니라, 혼돈 영수간에 전승된 모든 기억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각 후, 기령이 경악하며 외쳤다.
“운청휘, 마도에 든 거 아냐?!”
마도는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만큼, 수련의 난이도가 보통 무공과는 견줄 수 없이 높았다.
그러니 운청휘가 마도에 들었다면 연달아 선겁을 만나며 수련에 굴곡을 겪었는지 설명이 가능했다.
‘내가 도심종마대법과 어혼성숙비전을 수련했기 /@때문일까요?(때문인가?’
운청휘 또한 기령의 말에 타당성을 느끼고 있었다. 성공 거수 형태의 운청휘나 기령이 선겁에 들지 않은 게 그 방증이었다.
“운청휘, 마도에 들었는지 검증해 보지 않을래?”
별안간 기령이 불쑥 제안해 왔다.
“잊었어? 내겐 혼돈지화가 있다는 걸!”
“혼돈지화?”
운청휘가 눈을 빛냈다.
혼돈지화, 가장 높은 단계의 천화이자 악한 것을 거스르는 힘이 있는 불꽃이다.
마도는 엄밀히 말하면 사악한 것의 일종이니, 기령의 제안대로라면 운청휘는 혼돈지화에 상처를 입을 터였다.
둘은 한번 시험해 볼 겸, 산맥을 찾아 내려갔다.
겹겹이 진법을 포진해 두었고, 위경륜과 풍음을 시켜 주변을 감시하도록 했다.
진법 안.
기령이 몸을 휘둘러 화염을 내뿜었는데 열여덟 가지 빛깔로 일렁였다.
각각 금, 목, 수, 화, 토.
풍, 빙, 뇌, 암흑, 광.
죽음, 부패, 쇠락, 멸망, 파괴.
도덕, 질서, 인애를 대표한다.
“기령도 열여덟 가지 영단의 힘을 깨우쳤군!”
운청휘가 중얼거렸는데, 예상했다는 투였다.
“운청휘, 조심해!”
경고와 함께, 기령이 혼돈지화를 용의 형상으로 바꾸어 운청휘에게 날렸다.
운청휘는 한 점의 저항도 없이 화룡에게 몸을 내주었다.
화르륵!
곧이어, 운청휘의 몸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피부가 중독되기라도 한 듯 검게 변색되었다.
기령이 황급히 혼돈지화를 회수했다.
“역시, 마도에 들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운청휘의 표정은 그저 덤덤할 따름이었다.
정도를 따르든 마도의 길을 걷든, 절정을 되찾을 자신은 있었으니.
다만 그가 마도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 게 다소 답답할 따름이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운청휘는 남은 반절 인왕경의 마종을 기령에게 건네주었다.
한동안은 현경에 도달할 생각이 없으니, 기령의 성장을 돕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빠르게 이동해, 보름 동안 진가의 영지를 향해 쉬지 않고 내달렸다.
그동안 운청휘는 기령에게 또다른 마종을 주어 기령의 경지를 현경 3단계까지 끌어올렸다.
적어도 운청휘가 참천검집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제 기령은 전투력에서마저 운청휘를 초월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기령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이제 진가의 영지까지는 6일도 남지 않았다.
“운청휘, 어서 참천신검을 되찾아야지!”
기령이 기대에 가득 차 말했다.
신검을 되찾는다면, 운청휘는 인왕경을 죽일 전투력을 가지게 된다.
그 인왕경을 어떻게든 손에 넣어 삼키고 싶은 게 기령의 속마음이었다.
‘남영 인간의 영역만 해도 8명의 인왕경 무인이 있고, 북영 요족의 영역에는 3명의 인왕경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 동영 난쟁이족의 영역도 마찬가지일 거야. 만약 그들을 전부 삼킨다면……!’
기령이 꿈을 꾸듯 몽롱하게 반짝이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그 광경에 운청휘는 그만 웃고 말았다. 물론 그도 기령과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운청휘는 상대를 가릴 생각이었다.
가령 진가의 인왕경은 진상상의 조부이니 제외하는 것처럼.
다만 홍가, 대붕족, 공작족은 인왕경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살려 두지 않을 작정이었다.
‘나의 다른 몸이 6일 후면 진가의 영지에 도착한다.’
잠시 계산을 한 운청휘가 결정을 내렸다.
‘진상상과 소도도 형제를 만나게 한 후 참천신검을 되찾으러 가자!’
6일 후, 운청휘 일행은 커다란 성내의 상공에 떠 있었다.
“주인님, 염성(炎城)에 도착했습니다. 이대로 진가까지 곧장 날아갈까요. 아니면 내려서 걸어가시겠습니까?”
위경륜과 풍음이 지시를 기다리는 눈빛으로 운청휘를 바라봤다.
“걸어가야지.”
기령이 운청휘의 말을 가로채어 대답했다.
“그리고 객잔에서 밥도 먹고.”
“바로 그 뜻이다.”
운청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성은 남영의 가장 부유한 8대 성 중 하나로, 진상상이 속한 진가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오죽하면 염성의 이름을 진상상의 조부인 진염(陈炎)의 이름에서 따왔겠는가?
“오만방자한 이름이군. 운청휘, 저기서 밥 먹자!”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99층에 달하는 한 객잔 앞에 멈춰 섰다. 간판에는 ‘남영 주루’이라는 이름이 크게 쓰여 있었다. 기령이 주루를 훑어보더니 운청휘를 채근했다.
감히 ‘남영’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보통 배후 세력이 있는 곳이 아닐 테니 잠시 식사를 하다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운청휘가 곧바로 신식을 펼쳐 보니, 주루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들은 대개 선천경과 그 이상이었다.
심지어 맨 꼭대기층에는 100여 명의 공적 9단계와 2명의 반절 인왕경도 있었다.
운청휘는 위경륜의 무위를 내세워 99층으로 직행했다.
자리를 잡은 일행은 각자가 좋아하는 대로 음식을 주문했고, 운청휘도 평소 좋아하는 간소한 음식들을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들이 나왔는데, 그 수가 백여 가지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