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245화 (245/430)

제245화

가토왕의 분신은 한동안 침묵했다.

비록 분신이라고 하나, 대붕족 몇몇쯤 잡아 죽이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대붕족과 원한을 조금 더 쌓는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난쟁이족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와 적대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그가 대붕족을 죽여 본 게 처음도 아니었고.

다만 그렇게 참살하는 것과 기령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건 별개의 이야기였다.

만약 그가 기령의 명령대로 하면 기령은 자신을 놓아줄 테지만, 동시에 자신을 공격할 터였다.

가토왕의 분신은 그저 기령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이다.

기령은 가토왕의 분신이 절대 투항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하늘의 맹세를 운운하지 않고 그저 그를 희롱했을 뿐이다.

“하찮은 짐승이 감히 나를 우롱해! 네놈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가 될 것이다!”

가토왕의 분신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굽실거리던 태도를 벗어던지고, 울컥 성을 내었다.

“어라, 제법 성깔이 있네? 네놈이 난쟁이족의 태감인 줄 알았는데. 아첨하는 모습이 황궁의 태감 못지않았잖아?”

기령은 얄미운 얼굴로 가토왕의 분신을 비웃었다.

“뭐라고!”

가토왕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네놈이 난쟁이족의 태감이라고! 마땅히 달려야 할 것이 없더니 귀도 안 달린 것이야?”

기령이 재차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인왕경의 분신이 이토록 조롱당하는 광경을 어디서 보겠는가? 온 천성대륙을 뒤져봐도 처음 있는 일이리라. 구경하던 이들은 하나같이 통쾌한 마음으로 웃었다.

심지어 운청휘를 적대하는 세력마저도 가토왕의 분신이 분노를 기령에게 쏟아붓는 걸 보고, 자신들은 안전하리라는 생각에 한숨을 돌렸다. 그 후에 마음껏 웃기 시작했다.

“이 짐승 새끼야, 정말로 본왕이 네놈을 두려워하는 줄 알았느냐? 네놈은 본왕뿐만 아니라 고귀한 사토족까지 모욕했으니, 목을 닦고 기다리거라! 본왕의 본체가 이곳에 강림하면 네놈을 일격에 죽여주마!”

가토왕의 분신은 노발대발하며 기령을 쳐다봤다.

“아이고, 무서워라. 무섭기 짝이 없어. 감히 본체께서 강림하신다뇨! 하하, 어디 숨어서 요양하는지 모를 본체 따위가?”

“요양? 하하, 이미 동영을 떠나 이곳으로 오고 있지! 도착하기만 하면……!”

가토왕의 분신은 한을 품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채 맺지 못했다.

“그 요양, 너나 실컷 해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령이 가토왕의 분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령이 그를 상대로 오랫동안 조롱한 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가토왕의 분신을 죽였다면 일순간의 놀라움에 그칠 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일련의 소동 끝에 가토왕의 분신을 죽인다면, 자신의 이름을 온 영주에 퍼트릴 수 있으리라!

“누가 하찮은 짐승 따위를 두려워할 줄 알고!”

가토왕이 콧방귀를 뀌며 무수한 법원의 힘을 가지고 기령을 공격했다.

“어린 신동은 법칙의 힘을 썼는데, 정말로 가토왕의 적수가 될까?”

구경하는 사람들은 두 사람이 공격하는 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 사람의 전투를 집요하게 주시했다.

“법원의 힘, 법력은 인왕경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야. 그에 비해 법칙의 힘은 영변경 무인의 힘이니, 반딧불과 달을 비교하는 것과 다름없네!”

“하지만, 그리 쉽게 승패가 날까? 그럴 거였다면 왜 가토왕의 분신이 어린 신동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굴었겠나?”

“나도 그게 의문일세!”

“진상상도 이전에 말했잖아. 어린 신동이 가토왕의 분신을 죽이는 것을 친히 목격했다구!”

“게다가, 가토왕도 이것은 인정했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사이, 기령과 가토왕의 분신은 처절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운청휘는 기령이 전투에 참여했어도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현력을 방출했고, 하가의 일원들과 난쟁이족의 묶인 이들을 모두 거머쥐었다.

이윽고 운청휘가 그들을 데리고 둔천사를 향해 날아갔다.

대붕족과 공작족, 홍가와 풍가의 사람들은 운청휘를 막고 싶었지만, 기령과 가토왕의 분신이 싸우는 걸 보자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기령의 패배가 확실해지지 않는 이상, 지금은 운청휘를 상대할 수 없었다.

둔천사에 오른 운청휘는 두려움에 가득한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데려온 이들의 몸에 마종을 심었다.

이에 하가의 사람들이 울며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우…… 운 공자님, 하흡을 봐서라도 저희를 용서해 주소서!”

“저희도 어쩔 수 없이 난쟁이족과 함께한 것입니다……. 운 공자님, 저희들에게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소서!”

“운 공자님, 저희 하가는 가주가 죽은 후, 몰락하고 있었습니다, 저……저희도 가족을 되살리기 위해 난쟁이족과 협력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운청휘는 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누구와 협력하든 내가 알 바더냐? 너희의 죄는 부귀를 위해 하흡을 팔아넘긴 것이다.”

그 말 그대로였다.

운청휘의 눈에 하가가 누구와 협력을 하든 투항을 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만 하흡을 팔아넘기려 한 데다 자신을 제거하려 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운청휘는 곧바로 손을 뻗어 그들의 몸에 심은 마종을 낚아챘다.

“하흡을 보아 네놈들의 목숨은 살려 주마!”

그 말대로, 운청휘는 그들의 무위만 취하고 목숨은 남겨두었다.

그 후, 난쟁이족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심은 마종을 하나하나 거두었다.

기령과 가토왕의 분신은 한데 엉켜 싸웠다.

그들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누구도 그들의 뚜렷한 모습을 찾아내지 못했다.

눈으로 보기엔 그저 빛의 궤적만이 하늘에 어지럽게 새겨질 뿐, 천군만마가 싸우는 듯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셀 수 없는 발파음이 이어지고,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적지 않은 반절 인왕경이 눈을 가늘게 뜨고 전투를 지켜보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이치로 따지면 인왕경의 아래가 반절 인왕경이라지만, 그 격차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터였다.

“가토왕의 분신이 만약 우리를 공격하면,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도망칠 수 없어!”

인간의 한 반절 인왕경이 갑자기 감탄했다.

“어린 신동도 밀리지 않아, 그가 만약 우리를 집요하게 공격한다면 마찬가지로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

“운청휘가 둔천사를 빼앗고 추격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있었군! 저 어린 신동에게 의지하는 거였어!”

여기저기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누구도 허공의 전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온 하늘은 불의 바다가 되어 넘실거렸고, 이는 전부 그들의 충돌에서 나온 불꽃이었다.

자리에 있던 이들 중, 기령의 패배를 원하는 4개의 세력만이 초조하게 목울대를 꿀렁이고 있었다.

가토왕의 분신이 이긴다면, 적어도 그들의 안전은 보장될 터였다. 이유 없이 공격하진 않을 테니.

다만 기령이 이긴다면, 운청휘와 같은 편인 기령이 자신들을 가만히 두겠는가? 어차피 운청휘와 적대하고 있는 지금, 충돌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기령의 패배를 원했다.

“태상 장로, 가주께서 언제 나온다고 안 하셨나요?”

홍가의 고위층 하나가 태상 장로를 봤다.

“가주께서는 혼자 나오실 수 없다네. 모든 이들이 상고 유적에서 함께 나오지 않는 한…….”

홍가의 태상 장로가 말끝을 흐렸다. 그는 전송 옥석으로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홍가의 가주에게 전했고, 이는 다른 3개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대붕족의 반절 인왕경이 한 가지 기밀을 폭로했다.

“이들은 특수한 구역에 있어서 상고 유적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고 하시는군. 누가 봉마비를 찾을지 기다리시는 거야!”

“그렇다면, 족장께서는 나올 수 없다는 거겠네요?”

대붕족의 일원들은 먹구름이 드리운 듯 낯빛을 흐렸다.

봉마비를 찾는 이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는 걸 아는 이상, 누군가 봉마비를 얻으면 일어날 약탈전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다.

“족장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실 수 없으나, 다른 수단을 통해 우리를 보호할 수 있지!”

한편, 공작족 쪽은 연락을 담당하는 반절 인왕경이 목소리를 낮춰 소근거렸다.

“우리 족장께서는 대붕왕, 홍가 가주, 풍가 가주와 연합하여 상고 유적이 열리도록 손을 쓰셨지! 일 다경 뒤면 유적이 열린다. 가토왕의 분신이 그동안만 버텨준다면 우리는 안전해질 수 있어.”

4개 세력의 고위층이 일원들을 위로한 후, 반절 인왕경들이 모였다.

그들은 비밀스럽게 눈짓을 교환하며 음을 나누었다.

-만약을 대비하여 비장의 수를 써야겠는데.

-득보다 실이 많은 결정이 아닌가?

-우리가 거금을 들여 포섭한 존재다. 그를 세 번밖에 움직이지 못하는데, 한 번을 어린 신동에게 쓴다면 낭비가 아닌가?

-낭비라니, 목숨을 지키는 데 낭비가 있나? 게다가 지금 사용해야 가토왕의 분신을 지킬 수 있네!

곧, 그들의 상의가 끝났다.

“우리 홍가와 그 존재는 좋은 인연을 맺었는데, 내가 그 존재를 데려오겠소.”

홍가의 반절 인왕경 하나가 말했는데, 품에서 전송 옥석을 꺼냈다.

곧 전송 옥석이 발동되고 빛을 발했다.

“소(萧) 인왕, 때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잠잠하던 전송 옥석에서, 고독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그 한마디에는 신명의 울림처럼 위엄이 넘쳤다.

한편, 기령과 가토왕의 분신은 백중지세로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가토왕의 분신은 기령과 전투를 시작할 당시 살얼음판을 걷는 듯 섬뜩함을 느꼈으나, 전투가 길어지니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에 그는 살기를 짙게 피워올렸다.

“네놈이 본왕에게 준 모욕을 열 배로 갚아 주마!”

가토왕의 분신은 기령을 씹어 삼킬듯이 노려보았다.

“애걔걔, 놀라 죽겠구만. 이 난쟁아, 어리석기 짝이 없어. 이게 내 무위의 전부라고 보는 거야? 감추고 있는 녀석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거라고. 그게 아니었다면 네놈을 한입에 삼키고도 남았어!”

기령은 전투에서 극히 일부분의 무위만 썼을 뿐,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

순진하게도, 가토왕의 분신은 이것을 기령의 전력이라 보고 있으니 어찌 우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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