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9화
“유적에 들어온 후, 연락이 끊겼다.”
운청휘가 재차 대답했다.
그의 대답은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았다.
일단 상고 유적에 들어오면 떨어지는 장소가 무작위였고, 그들도 유적에 들어온 후 모이게 된 것이었으니.
“소인왕, 운청휘는 천성이 간사하며 꾀가 많으니 만일을 대비하여 우선 그의 무위를 폐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공작족의 반절 인왕경 하나가 걸어와 운청휘를 악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무위를 없애면 그만이지!”
대붕족에도 반절 인왕경 하나가 걸어오며 말했다.
“일단 무위를 폐하고, 유적을 나간 뒤 길일을 골라 운청휘를 죽임세!”
홍가의 반절 인왕경 하나가 말했다.
“물론 영주 전체에 이 소식을 알려야지! 그래야 운청휘가 구긴 우리의 체면을 회복할 수 있을 걸세!”
풍가의 반절 인왕도 건의했다.
그러나 소인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본왕은 그를 노예로 삼기로 정했네!”
“뭐, 소인왕이 운청휘를 수복한다고……?!”
모두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다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운청휘의 재능은 영주 8대 공자보다 위에 있으니, 그를 노예로 부릴 수만 있다면 수하에 더 쓸 만한 개가 들어오는 셈이 아닌가?
“소인왕의 제안은 비록 좋지만, 운청휘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헤헤, 운청휘에게 하늘의 맹세를 하여 평생 소인왕에게 복종하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닐까?”
“하늘의 맹세라고? 그건 괜찮은 제안이야. 다만 운청휘의 성격이라면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을걸.”
4개 세력의 반절 인왕은 모두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본왕의 노예 중 다른 마음을 품은 이는 아무도 없지. 하늘의 맹세는 필요 없다. 본왕은 다른 수단으로 그의 충성을 받아낼 테니.”
소인왕이 천천히 운청휘 앞에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본왕의 개가 되겠느냐?”
운청휘는 묵묵히 소인왕과 눈을 마주칠 뿐이었다.
“건방지구나!”
소인왕이 별안간 호통을 내질렀는데, 그 순간 법력이 솟아나며 운청휘를 날려보냈다.
훅 소리와 함께 운청휘의 입에서 큰 피가 쏟아졌다.
“고작 범인 주제에 본왕을 직시해? 처음이니 넘어가겠다만, 또다시 본왕을 똑바로 보았다간 혼을 찢어 놓겠다!”
소인왕은 비록 평범한 외모를 지녔으나, 뼛속까지 새겨진 오만함이 있었다.
그 때문에 운청휘가 그를 직시한 건 그에게 있어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하하, 운청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정말 죽고 싶은 걸까, 소인왕을 빳빳이 쳐다보고 말이야!”
4개 세력의 반절 인왕경들이 이 광경에 차디찬 웃음을 흘렸다.
소인왕이 손을 휘두르자, 곧바로 운청휘가 끌려왔다.
그는 어디선가 검은 단약을 꺼내더니, 운청휘의 입을 강제로 벌려 먹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 광경에 안색이 변했는데, 그들은 이 단약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노수단(奴兽丹)이었다!
노수단은 특수하고 악독한 단약으로, 영주에서는 천백 년간 단 두 번 등장했다.
첫 등장은 팔백 년 전, 당시 영주에는 새로운 세력이 궐기하여 9대 가문이 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영흥제국이 사람을 보내 노수단을 복용시켜, 그 세력의 우두머리를 굴복시켰다고 한다.
말 그대로, 노수단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약이다.
이를 먹으면 의식은 유지할 수 있으나, 주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또한 노수단의 독성이 신체에 퍼져, 노수단을 먹인 이에게 온몸을 제물로 바치게 되니 가축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할 터였다.
두 번째는 약 삼백 년 전, 북용 요족의 오지에서 곰 요괴가 나타났는데, 전투력만큼은 인왕경에 버금갔다.
위협을 느낀 북영의 3대 요왕은 영흥제국의 고수를 초빙했고, 고수는 노수단으로 요괴를 지배하였다. 추후 그 요괴는 인왕경에 도달한 후 무위를 바쳤다고 한다.
-소문에 따르면 소인왕 뒤에 영흥제국의 황실이 있다고 하는데…… 보아하니 소문이 아니었군.
-그러니 노수단을 꺼낼 수 있었겠지.
-제국의 요직들은 다 노수단을 복용하여, 영원히 영흥제국에 충성을 다한다지. 영흥제국의 비장의 한 수인 셈이야.
4대 세력의 반절 인왕경들이 음을 전하며 수군거렸다.
무엇보다 소인왕의 눈빛을 보니 더욱 두려워진 탓이었다.
안 그래도 두려웠는데, 영흥제국의 황실이 있다는 걸 깨달으니 그들은 더욱더 소인왕과의 친분을 바라게 되었다.
영주는 천성대륙 전체를 놓고 보면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지만, 영흥제국의 강토는 영주의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크기였다. 천성대륙에서도 최절정의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군성문조차도 영흥제국과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인왕경의 수만 해도 세 자릿수에 달했다.
“소인왕 축하드려요!”
“소인왕 경하드리오!”
“소인왕께서 좋은 개를 수복하신 걸 감축드리오!”
“시일이 좀 지나면 운청휘는 반드시 소인왕의 휘하에서 사람을 가장 쓸 만한 개가 될 것이군요!”
4대 세력의 반절 인왕은 모두 앞으로 나가 두 주먹을 쥔 채 공손한 자세로 소인왕에게 말했다.
소인왕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운청휘의 재능으로는 본왕의 개가 될 자격이 있지. 하지만 본왕은 그 영수에 더 관심이 있다네!”
소인왕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휘는 그들의 눈에 절정의 기재이나, 소인왕과 같은 강자의 눈에는 굳이 수복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소인왕의 목적이 운청휘가 데리고 있는 영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붕족의 반절 인왕경 하나가 소인왕을 향해 말했다.
“소인왕, 운청휘를 이용하여 그 영수를 유인하려는 계획인 거요?”
홍가의 반절 인왕경 하나도 물었다.
“맞네!”
소인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왕의 성령안으로 보니, 운청휘와 영수는 계약을 맺었더군. 그러니 운청휘를 노예로 만들면 그 영수도 노예가 되겠지.”
그들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중에서도 영수와 계약을 맺은 이들이 있어, 영혼을 통해 연락할 수 있었다.
이는 일만 리 바깥에서도 연락이 되니, 참으로 편리한 존재가 아닌가?
그러니 소인왕이 노수단 하나를 기꺼이 쓴 것은 이해가 되었다.
“운청휘에게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한들, 결국에는 범인일 뿐이네. 반절 인왕경까지 오르게 한 후, 무위를 바치게 할 것이네.”
이때의 운청휘는 중상을 입은 데다 노수단을 복용했으니, 겉모습은 더없이 처참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
3만 년 이상 된 영약과 ‘천인오쇠’에 버금가는 독성을 지닌 단약을 복용하는 것이, 천인오쇠의 저주를 푸는 해답이니까.
본래는 기령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던 운청휘였다.
기령이 그를 도와 영약을 찾고, 저주의 힘을 영약에 접목하려 했다.
한데 생각지도 못하게 소인왕이 노수단을 복용시킨 것이다!
“운청휘, 저들에게 인사하거라!”
소인왕이 별안간 몸을 돌려 운청휘에게 명령했다.
남몰래 기뻐하던 운청휘는 그 말을 듣고 속이 절로 서늘해졌다.
반절 인왕경 따위에게 선제인 그가 고개를 숙이라?
더욱이 소인왕은 정말 자신이 주인인 양 굴고 있었다.
‘본제가 천인오쇠의 저주에서 풀려나기만 한다면, 소인왕 네놈을 죽여 주마.’
운청휘는 속으로 살기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의지와는 반대로, 4개 세력의 반절 인왕경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흥미로운 기색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것이 노수단의 힘이었다.
운청휘의 정신을 지배할 수는 없다고 해도, 그의 몸은 소인왕의 어떤 명령도 따르게 될 터였다.
이제 소인왕이 어떤 더러운 일을 시키든, 운청휘는 속으로 욕할지언정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이때, 대붕족의 반절 인왕경 한 명이 나섰다.
“소인왕, 운청휘가 우리 대붕족과 깊은 원한이 있는데, 우리에게 무릎을 꿇게 해주시겠소?”
홍가의 반절 인왕경 몇이 듣더니 격동된 어투로 말했다.
“운청휘와 우리 홍가도 원한이 있는데, 소인왕께서 운청휘를 우리에게 무릎 꿇게 해주시겠는지?”
공작족의 반절 인왕경도 소인왕을 바라봤다.
“우리 공작족도 운청휘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나, 운청휘는 도리어 우리에게 배은망덕했지. 소인왕께 간절히 바라니, 운청휘를 우리에게도 무릎 꿇게 해 주시오!”
풍가의 반절 인왕경 몇 명도 말했다.
“운청휘와 우리 풍가의 원한은 가장 작지만, 소인왕께서 우리 풍가도 무시하지 말아 주소서!”
그들의 요구를 들은 소인왕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작은 일을 본왕이 어찌 거절하겠소!”
소인왕이 운청휘를 보고 말했다.
“그들의 말을 들었을 테니, 어떻게 하는지는 본왕이 가르치지 않아도 알겠지?”
운청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마음속의 살기를 억눌렀다.
아직 노수단은 천인오쇠의 저주를 풀지 못했으니, 그때까지는 참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었으니.
차라리 소인왕이 마구 때렸다면 운청휘는 참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선제인 그가 반절 인왕경들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응? 본왕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게냐?”
운청휘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자, 소인왕이 법력으로 만든 긴 채찍을 쥐었다.
짜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채찍이 운청휘의 몸을 때렸고, 그의 살갗이 벗겨졌다.
“소인왕, 운청휘는 바보인 척하는 게 분명합니다!”
대붕족의 반절 인왕경 하나가 옆에서 냉소하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지!”
소인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운청휘가 자존심이 강하다는 사실은 눈치챈 터였다.
그러나 노수단의 힘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운청휘, 그들에게 예의를 갖추거라!”
소인왕은 자신만만하게 명령하며, 한곳을 가리켰다.
“응, 대붕왕부터 시작하자!”
채찍을 맞은 운청휘는 화끈한 통증도 잠시, 홀리듯이 두 다리를 움직여 대붕족의 반절 인왕경 앞으로 움직였다.
이때 지켜보는 이들은 정말 운청휘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할지 기대하는 시선을 보냈다.
소인왕은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운청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사실 그에게는 괴벽이 있어, 자존심이 강한 이들에게 굴욕을 주길 즐겼다.
그로 인해 성취감을 얻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