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2화
-소인왕, 본선이 그대에게 역수의 법(役兽之法)을 전수했으니, 혼돈영수를 수복하게. 본선은 적합한 몸을 찾지 못했는데, 이 작은 천성대륙에 혼돈영수가 나타났으니 부활이 머지않았군!
그 말에 소인왕이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능천진선(凌天真仙), 내가 신선이 되기 전까지 내 몸에서 남아 나를 도와주기로 약속했잖습니까!”
소인왕은 드물게 ‘능천진선’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나’라는 호칭을 썼다.
-걱정 말게. 본선이 약조한 일은 반드시 해낼 것이니. 다만 방법이 달라질 뿐일세. 혼돈영수의 몸을 통해 자네에게 도움을 줄 테니.
이때 소인왕의 마음에는 작은 망설임이 일었다. 그의 오늘은 전부 능선진선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령안도 능천진선이 전해 준 것이며, 그가 수련한 무공도 능천진선이 전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가 약관의 나이에 반절 인왕경에 오른 것도, 초월의 기재가 된 것도 능천진선의 보살핌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소인왕은 순수한 소유욕을 가지고 능천진선이 줄곧 자신의 몸에 남길 원했다.
-왜, 싫은가?
능천진선의 불쾌한 소리가 울렸다.
-본선을 만나기 전까지, 그대는 비천한 존재였음을 잊지 말게. 그대가 누리는 모든 것은 본선이 준 것이니, 본선을 거역한다면 언제든지 성령안을 회수하고 숙주를 바꿀 수 있다네.
소인왕은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진선이시여, 노여움을 가라앉히소서. 아직 대답하지 않았나이다!”
이어서 소인왕이 화제를 돌렸다.
“이 짐승은 이미 다른 사람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저 녀석을 부릴 수 있을까요?”
-왜 안 되겠는가? 그대가 혼돈영수를 잡기만 하면 본선이 영혼의 계약을 지우면 그만이네. 그 후 ‘역수의 법’으로 주인이 되면 될 걸세.
능천진선이 태연하게 답했다.
이에 기령의 안색이 변했는데, 신식으로 그들의 대화를 모두 훔쳐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꼬였어. 운청휘가 선제라는 걸 안다면, 저 진선 놈의 목표가 바뀔 거야.’
기령은 끊임없이 방법을 궁리했다.
동시에 기령도 의구심을 느꼈는데, 어찌 천성대륙에 진선이 나타난단 말인가?
그로 인해 소인왕이 중동을 조종하는 원리는 알아낼 수 있던 터였다.
중동을 조종하는 이는 소인왕이 아니라 능천진선의 영혼이기에 가능했다.
‘운청휘가 저주를 풀어낼 때까지 시간을 끌고, 운청휘와 연합하여 소인왕을 제압하자!’
아직 혼돈지화의 위력을 다 발휘할 수 없는 기령은 운청휘가 회복하는 데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능천진선, 네놈이 진선이라면 왜 천성대륙에 나타난 거냐? 그리고 어째서 영혼의 형태로 존재하는 거냐.”
기령이 혼돈지화를 거두고 소인왕의 금빛 동공을 바라보았다.
능천진선의 영혼은 금빛 동공에 숨어 묵묵부답이었다.
이때, 금원초와 천인오쇠의 저주를 접목시키던 운청휘도 신식을 펼쳐 기령 쪽에 주의를 집중했다.
능천진선의 영혼을 발견한 후, 운청휘도 놀라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와 기령이 천성대륙에 나타난 것은 사고나 다름없었다.
우선, 운청휘는 사고에 휘말려 선계로 떨어졌고, 선제가 된 후 공간 통로를 개척하여 돌아오던 중 기령과 대전을 벌이다 함께 천성대륙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단, 전제는 무위를 극한까지 써야 한다는 점이었기에, 둘은 극도로 허약해진 상태로 천성대륙에 나타났다.
만약 본래의 무위를 지니고 천성대륙에 강림한다면, 천성대륙의 이치가 파괴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진선의 영혼이 버젓이 이곳에 나타났으니,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결국에는 별 전체를 와해하는 일이 될 터였다.
‘아니, 진선은 이 대륙에 강림할 수 없으니 저 진선은 죽고나서 영혼이 천성대륙에 떨어졌을 터. 그게 아니라면 그 또한 공간 폭풍을 만나 천성대륙으로 오는 과중에서 무위를 잃고 육신이 파괴되어 영혼만 남았을 수도 있다. ……잠깐, 능천진선? 성이 능씨로군.’
별안간 누군가를 떠올린 운청휘의 동공이 살짝 수축되었다.
천운왕조의 성공학관, 그 생도인 능설을 떠올린 것이다.
능설은 진선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고, 성이 능씨이니, 능천진선의 직계 후손일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그가 정말로 능설의 아버지라면, 목숨은 살려둬야 한다…….’
운청휘의 마음속에 결심이 섰다.
운청휘는 능설을 꽤 마음에 들어 했고, 심지어 그녀에게 절세의 무공, ‘천녀옥황심경’을 전수해 주기까지 했다.
‘능천이 능설의 아버지든 아니든, 일단은 저주의 힘을 푸는 게 급선무다!’
생각을 정리한 운청휘는 계속해서 천인오쇠의 저주와 금원초의 접목에 집중했다.
“능천진선, 네놈이 진선이라면 왜 천성대륙에 나타난 거냐? 그리고 어째서 영혼의 형태로 존재하는 거지?”
시간을 끌기로 마음먹은 기령은 질문을 퍼부었다.
시간을 끄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있었다. 물론 완전한 헛소리는 아니었다.
기령 또한 속으로 능천진선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묵묵부답이었던 능천진선은 그가 선계에서 지냈던 날들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는 본래 선계 출신으로, 소가족의 계승자였다. 천부적인 재능은 걸출하지 않았으나, 삼 할의 확률로 진선이 될 수 있기에 그것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적대 가문의 음모에 걸려 하룻밤 새에 무위를 잃고 목숨만 겨우 건져 살아남았다.
그러나 목숨을 부지했을 뿐, 모든 것을 잃은 능천이었다. 그를 따르던 이들도 등을 돌렸고, 어느새 그의 처지를 비웃고 조롱하기에 이르렀다.
낙담한 능천은 가문을 떠나 선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의 전환점이 되리라는 것을, 당시의 그는 몰랐다.
여행길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적 떼를 만났을 때만 해도, 그저 눈앞이 캄캄했다.
무수한 상처를 입어 목숨은 경각에 달했고, 이대로 죽는가 싶은 때에…….
하늘에서 두 마리의 신수가 어가를 끌고 나타났다.
어가에 드리운 장막 너머로, 어렴풋하게 청춘 남녀의 모습이 비쳤다.
비록 모습은 뚜렷하게 알아볼 수 없었지만, 장막으로도 가릴 수 없는 존귀함과 위엄이 흘러나왔다.
능천은 마지막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허공에 있는 어가에 대고 도움을 요청했다.
“두 선인께서 소선의 생명을 구해 주소서!”
어가는 반응이 없었으나, 능천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간청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소선을 구해 주소서! 소선에게는 800세의 부모와 3세의 아이가 있습니다. 소선이 죽으면 그들을 돌볼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푸훗!”
어가 위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명백하게 능천을 비웃는 소리였다.
“재미있는 소선이로구나. 본 여제가 그대를 보니 약관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 아이가 세 살이나 되었단 말이냐? 부모가 800살까지 살았다면 어림잡아도 진선일 텐데, 진선도 되지 못한 그대가 보살필 이유가 있을까?”
어가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능천과 도적 떼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본 여제’라는 말이 되풀이되었다.
선계를 통틀어 감히 자신을 그리 칭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능천은 곧바로 그녀의 정체를 깨닫고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살려 주소서, 부디 살려 주소서! 소선이 당황하여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확실히 슬하에 자식은 없지만, 양친은 건재하십니다. 여제께 거듭 간청하오니, 소선에게 효도할 기회를 주십시오!”
능천은 말을 하는 동시에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십대 선제 가운데 지요여제가 운제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하니, 지금 어가에 함께 타고 있는 이는 운제가 분명해.’
여기까지 생각한 능천은 입을 쉴 틈이 없었다.
“소선은 여제와 운제를 공경하니, 두 분께서 변함없이 함께하시길 바랄 뿐이옵니다.”
“음? 그대가 어찌 본제를 알아보는 거지?”
어가 위에서 위엄 있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하늘에서 울리는 듯 준엄하고, 신성하기까지 했다.
능천의 말이 맞았는지, 여제는 침묵했지만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가 어가 위에서 생각을 한 번 하는 것만으로도, 천지에서 무수한 힘이 밀려왔다.
단번에 능천을 위협하던 도적 떼가 물을 부은 개미 떼처럼 우르르 쓸려가며 참살당했다.
목숨을 부지한 능천이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제 말이 지요여제의 마음을 흡족케 하였다면, 다행이옵니다.”
그는 연달아 아부를 늘어놓았다.
“여제께서 소선을 구해 주셨으니, 이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부디 두 분께서 해로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소선, 본 여제 앞에서 세 치 혀를 잘도 놀리는구나. 정말 그대의 속셈을 모를 줄 아느냐?”
비록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지요여제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대와 인연을 맺었으니, 그대에게 기회를 주어야지.”
지요여제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리더니, 능천은 한 번도 못 본 거대한 힘이 그를 휩쌌다.
단번에 폐해진 경맥이 모두 치유되었고, 무위는 이전으로 되돌아가 곧바로 선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어서, 운제의 준엄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요가 그대를 마음에 들어 하니, 본제도 그대에게 기회를 주겠다!”
말을 마친 운제가 영력을 쏘아내니, 허공에서 사뿐히 내려온 영력이 능천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태을규금결(太乙葵金诀)!”
영력이 능천의 몸에 들어간 후, 능천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파고들었다.
무공이었다.
빠르게 무공을 훑어본 능천은 크게 흥분하여 어가에 대고 엎드려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운제께서 베푸신 은혜를, 소선 절대 잊지 않겠나이다!”
능천이 이토록 격동할 법했다.
태을규금결은 보통의 무공이 아니라, 대라금선(大罗金仙)까지 될 수 있는 절세의 무공이었으므로.
더욱이 능천의 선근(仙根)이 ‘금’에 속하는데, 운제가 이를 눈치채고 속성이 ‘금’인 무공을 전수한 터였다.
“이만 가지, 지요.”
운제가 말을 꺼내자, 지요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두 신수가 어가를 끌고 허공을 내달렸다.
눈 깜짝할 새에 어가는 능천의 시선에서 멀어졌고, 능천은 뒤늦게 탄식했다.
“이럴 수가, 그들에게 이름을 말하는 걸 잊었구나.”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준다면, 능천에게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애석함을 뒤로하고 능천은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요여제, 운제시여, 이 능천에게 베푸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태을규금결’을 전수받은 후, 백 년도 흐르지 않아 능천은 진선에 도달했다.
동급의 진선을 모두 평정한 능천은 가문으로 돌아가, 그의 무위를 폐했던 적대 가문을 멸문시켰다.
동시에 그를 배신했던 족속들을 모욕함으로써 원한을 갚아 주었다.
이후, 능천은 다시 가문을 떠났다.
태을규금결을 수련한 이후, 가문은 이미 능천을 품을 수 없는 초라한 존재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