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진려라고 했나? 네 목숨을 동영 난쟁이족에게 구했으니, 지금 돌려받겠다!”
말을 하며 운청휘는 마종 하나를 쏘아보냈다.
피할 틈도 없이, 진려의 몸으로 마종이 흡수되었다.
진려가 움찔 몸을 떠는 순간, 운청휘는 이미 손을 흔들어 마종을 회수했다.
무위를 상실한 진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의 몸은 그대로 지면으로 추락했다.
진연 또한 마종이 심어진 후 심장에서부터 마종이 튀어나왔고, 그대로 추락하였다.
“너, 너, 그리고 너…… 너희의 목숨 모두 내가 구했으니, 모두 돌려받겠다!”
운청휘가 손을 휘두르자 12개의 마종이 솟아났다.
12발의 화살을 쏘아내듯 연달아 마종이 진가 일원들의 심장에 꽂혀들었다.
“상상, 너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오늘 내가 죽인 이들은 모두 그날 구해 준 이들이다.”
십여 명의 일원들이 남았을 때, 운청휘가 손을 거두었다.
“그러나 다음에는, 진가의 모든 이들을 죽이고 말겠다!”
말을 마친 운청휘가 그대로 몸을 돌려 날아갔다.
진상상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그는 그 자리에 굳은 듯이 서서, 운청휘 일행이 멀어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상상은 운청휘를 탓하지 않았다.
그가 운청휘였더라도, 진가 전체를 멸문시켰을 거라고 수긍하고 있었다.
진범, 진려, 진연 세 사람은 무례함이 지나쳤고, 심지어 그의 조부도 지나쳤다 여기고 있었다.
기령이 비록 영수이지만 운청휘는 기령을 형제로 여겼는데, 하필 그의 조부는 기령을 짐승이라 불렀으니…….
“운 형제, 이리 부르는 건 마지막이 되겠구려. 비록 자네를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진가의 자식이니 지켜야 할 도리가 달라, 우리는 곧 적으로 만날 걸세.”
운청휘 일행이 떠나는 방향을 향해, 진상상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5천여 리를 비행한 후, 기령이 불쑥 입을 열었다.
“운청휘, 둔천사가 이곳에서 비행할 수 있어?”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럼 얼른 꺼내자! 둔천사는 우리보다 더 빨리 이동할 수 있잖아!”
기령이 말했다.
“지금은 안 돼. 아직 우리를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둔천사는 결정적인 순간에 반격의 무기가 될 터.”
운청휘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허공 위에 공존하는 해와 달에 머물러 있었다.
해와 달 안에는 또 하나의 높은 산봉우리가 있었는데, 그 산봉우리 위에서 차가운 기를 발산하는 그림자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운청휘, 저 해와 달은 어떤 대진의 진안이 아닐까?”
기령은 운청휘의 시선을 따라가며 천천히 말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고 유적 밖에 있던 구궁흑옥진이 기억나느냐? 이 해와 달이 바로 진안이다.”
“그렇다면 이곳이 구궁흑옥진과 하나라는 거야?”
기령이 물었다.
“하지만 확실친 않다.”
운청휘가 중얼거리며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구궁흑옥진 안에 세워진 세계이니.”
운청휘와 기령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이동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10만 리를 날아가자, 그들의 시야에는 암석과 황사, 녹음과 고건축으로 이루어진 풍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경 수백 리에 걸친 풍경 중심에는, 오래되고 황폐한 사당이 있었다.
구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운청휘와 기령이어도 미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소도도의 경우에는 미간과 등에 땀이 흥건했고, 통제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운청휘는 소엽의 몸에 있는 힘이 별안간 활성화되며 거칠어진 데 주목했다.
거세게 활성화되는 힘에 주목한 운청휘는 소엽의 영혼 주위에 방어막을 더했다.
“운청휘, 이 힘이 소엽의 영혼을 삼키려고 하는 것 같아!”
기령은 신식으로 재빨리 소엽의 상태를 살폈다.
“그래. 그러나 소엽의 영혼에 방어막을 쳐 두었으니, 그리 단시간 내에 깨지지 않을 터.”
운청휘는 기령을 안심시키며 신식을 펼쳐 기괴하고 황폐한 사당에 시선을 두었다.
별안간, 그의 동공이 확 수축되었다.
“역시나, 서영서였군.”
서영서는 운청휘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선계에서 10대 선제 중 한 명인 서영대제(噬灵大帝)의 본체가 서영서였고, 그와 술자리를 가지는 등 몇 차례 어울린 적이 있었다.
더욱이 운청휘가 천운왕조의 흉수 산맥에서 어린 서영서를 수복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지금, 사당으로 신식을 펼쳐 보니 이곳에서 모시는 신이 서영서임이 확실해졌다.
“이해가 되지 않아. 이 사당을 지은 목적은 생령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일 텐데, 여기서는 생령이 보기 드물잖아. 어째서 향불이 있는 걸까?”
기령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운청휘를 따라 신식을 펼쳤다.
“이 사당은 누군가에 의해 여기로 옮겨진 것 같군.”
운청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했다.
세계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인위적인 창조로 인해 탄생하고 하나는 천지간의 조화로 이루어진 탄생이었다.
인위적인 창조로 만든 세계는 생령이 탄생할 수 없었다.
운청휘는 지금 머물러 있는 세계가 풍무극광의 작품이라 확신했다.
그리하여 이 사당은 바깥에서 옮겨져 온 것이 확실했다.
내부의 물건이라면 누가 향불을 피우겠는가?
“가자.”
운청휘 일행은 중심의 사당으로 향했다.
사당에 가까워질수록, 소엽의 몸에 있는 신비한 힘은 점점 기세가 맹렬해졌다.
맹렬해짐과 동시에, 그 크기를 더하고 있었다.
운청휘는 다시금 신식을 내보내 소엽의 몸에 넣었고, 그녀의 영혼을 보호하는 막을 보강했다.
마침내 사당에 도착한 후, 운청휘는 서영서 신상 아래로 내려왔다.
신식을 방출해 신상 안을 살펴보니, 내부는 매우 고요하였고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존재한 듯했다.
‘보통은 신상 내부에 ‘신’이 남긴 사념이 있어야 한다. 생령의 향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지. 이 서영서의 신상은 너무 오랫동안 존재해, 사념이 사라졌어. 신상 배후에 있는 ‘신’이 몰락한 것도 배제할 수 없겠군.’
운청휘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신상을 이리저리 관찰해나갔다.
곧, 운청휘의 마음에 작지 않은 놀라움이 있었다.
신상의 배후에 있는 서영서가 높아 봐야 도조 정도라고 생각했고, 신통력으로 생령의 향불을 흡수하는 정도라고 여겼다.
한데, 이 서영서가 선제일 줄이야!
‘그가 죽었는지는 소엽의 배를 갈라보면 알 수 있겠지.’
운청휘는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몸을 돌려 소도도가 안고 있는 소엽을 봤다.
“소엽을 이곳에 남겨두고 먼저 나가도록.”
이제부터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소도도가 있으면 다소 번거로워질 터였다.
“알겠네!”
소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운청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 어떠한 의심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스스로 나오겠느냐, 아니면 본제가 친히 그대를 모셔와야겠느냐?”
운청휘가 혼수상태에 빠진 소엽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사당 밖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 들려올 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기이한 침묵이 한참 이어지자, 기령이 미심쩍은 눈으로 음을 보내왔다.
-운청휘, 저 힘이 영혼이야?
-확실하진 않다.
운청휘도 음으로 대답했다.
“분명한 건 이 힘에 의식이 있다는 것이군. 보아하니, 본제가 친히 그대를 모셔와야겠구나.”
운청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엽의 몸에 있던 기가 무상의 존재로 변했다.
운청휘의 신식은 전부 소엽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아……!
소엽의 몸 안에서, 거친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힘이, 강하게 울렸다.
운청휘의 신식은 그 힘을 강제로 소엽의 몸에서 빼내었고, 마침내 드러난 힘을 마주하자 운청휘와 기령의 눈이 커졌다.
“영혼이 아니라…… 집념이야!”
기령은 더 놀랐다.
“젠장, 선제의 집념이었어! 운청휘, 저 여제를 알아?”
운청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를 포함한 10명의 선제 중 요족 선제는 3명이다. 본체는 서영서로, 그중 하나는 남성이다.”
기령이 생각에 잠겼다.
“그럼 이 시대의 선제가 아니겠네?”
-당신도 선제이거늘 어찌하여 범인을 위해 본제를 난처하게 하는지요?
바로 이때, 집념으로 형성된 힘은 스산하게 울리는 목소리를 내보냈다.
“네가 빼앗으려는 대상은 운청휘의 형제의 아내야! 당연히 막아야지!”
기령이 운청휘를 대신해 답하고, 운청휘도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대가 선제라면, 그러한 집념으로 몸을 빼앗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지 않느냐.”
집념은 일종의 생각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생각과는 다르게 분류된다.
생령이 죽은 뒤에도 남아 끝까지 존재하니, 이후에 태어날 원망과도 같았다.
운청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같은 선제인 만큼, 그대가 어떤 한이 있다면 본제가 그대를 위해 해결해 주겠다.”
-하! 기대도 하지 않아.
집념으로 형성된 힘이 콧방귀를 뀌었다.
-본제가 수많은 한이 있는데, 그걸 다 들어주겠다고?
“그대가 다른 이를 선택한다면 본제는 상관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대가 고른 이가 본제의 제수이니 어찌 상관하지 않겠는가? 본제의 인내심에 한계가 있으니, 두 가지 선택지를 주마. 하나는 본제가 그대의 집념을 이 자리에서 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본제에게 그대의 한을 털어놓는 것이지. 본제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그대를 위해 들어주겠다.”
운청휘의 말투는 어느덧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운청휘가 원한다면 손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이 집념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겠으나, 이토록 자비를 베푸는 건 같은 선제이기 때문이다.
선제는 극히 드문 존재라 그토록 넓은 선계에서도 고작해야 열 명뿐이니, 지고하고도 외로운 존재들이었다.
그리하여 같은 존재를 소홀히 대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집념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 또한 전성기였다면 전투도 불사하겠으나, 집념에 불과한 지금 어찌 상대가 되겠는가.
잠시 후, 집념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아이가 살아 있는지 알고 싶어요. 만약 살아 있다면……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운청휘는 속으로 적잖이 놀랐으나, 담담하게 답했다.
“아이라면, 그대와 마찬가지로 서영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