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서영서의 아이가 서영서인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집념이 곧바로 대답했다.
-맞아요!
이어 그녀가 사연을 털어놓았다.
-본제는 당시 중상을 입고 시간이 없었어요. 비법을 써서 미리 아이를 낳은 후, 아이를 봉인해 두었죠. 아이가 잠든 사이 영아까지 발육하도록 손을 써 두었어요. 본제의 계획대로라면 100년 동안 성장하여 깨어났을 텐데, 100년 후에 내 아이가 사라졌어요. 본제가 기거하는 사당도 누군가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죠. 그렇게 내 아이가 실종된 지 어느새 3천 년이 흘렀어요!
3천 년이 지났다고?
이 시간이 운청휘를 놀라게 했다.
‘풍무극광이 3천 년 전 인물이었지…….’
운청휘는 사당을 이곳으로 옮긴 이가 풍무극광이라고 팔 할 정도 단정지었으나, 그의 목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또한, 서영서의 실종된 아이는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 운청휘가 수복한 어린 서영서가 이 선제의 아이일까?
“이 아이를 보도록.”
운청휘가 말하는 순간, 허공에는 한 형상이 떠올랐다.
한 마리의 어린 쥐가 성결한 기운을 내뿜으며 잠들어 있었다.
기령의 동공이 조금 수축되었는데, 그는 허공에 떠오른 이 작은 짐승을 알아본 터였다.
운청휘가 천운왕조의 흉수 산맥에서 수복했던 어린 서영서가 아닌가?
-보…… 본제의 아이예요, 다…… 당신이 그를 데리고 올 수 있겠나요?
집념으로 형성된 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본제의 정혈 한 방울과 융합했으니, 적어도 반년은 지나야 깨어날 거다.”
운청휘가 이 서영서를 만날 당시, 너무 약해서 월경의 무인도 당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운청휘는 선제의 정혈 한 방울을 먹이고 무위를 증진시키려 재워 둔 터였다.
-그대가 내 아이를 노예로 삼은 건가요?
집념으로 형성된 힘의 소리가 갑자기 음산해졌다.
“안심하도록. 그가 선제의 후손임을 알았으니, 본제는 그와의 계약을 해지하겠다.”
운청휘가 선선히 말했다.
선제와 선제는 모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있으니, 이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비록 상대 선제가 죽어 집념만 존재한다고 할지언정.
‘그가 정혈을 연화하고 제노가 되는 것은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다만 운청휘는 하지 않은 말이 있었다.
운청휘의 정혈은 단순한 보약으로, 서영서가 완전히 연화시키면 영혼 깊이 운청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그때는 계약의 여부를 떠나, 운청휘를 무조건 따르게 될 터였다.
-같은 선제이니 그대를 믿겠어요!
집념으로 형성된 힘이 말했다.
사실 그녀가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지금 상태로는 운청휘를 어찌할 수 없으니.
“그대는 결국 집념에 불과하다. 이렇게 나타난 지 오래되어, 그대도 손실이 클 터. 본제를 믿는다면, 본제의 몸에서 잠들도록. 그대의 아이가 깨어났을 때, 그대 또한 깨워 만나게 해 주겠다.”
운청휘가 말했다.
-고마워요…….
그 말을 끝으로, 집념은 빛이 되어 운청휘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운청휘, 왜 다른 건 안 물어봤어? 왜 죽었는지, 어느 시대의 선제였는지, 어째서 천성대륙에 나타났는지 등등 물어볼 게 많잖아.”
기령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운청휘를 봤다.
“그녀가 말하고 싶었다면 진즉 말했을 것이다.”
운청휘가 선선히 대꾸했다. 선제의 입에서 비밀을 캐내기 어렵다는 건, 선제인 그가 제일 잘 알았다.
그렇다고 운청휘가 방법이 없겠는가? 그가 시원스레 말을 이었다.
“그녀가 지금 내 몸에 잠들어 있으니, 조만간 알게 될 테지.”
기령은 운청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단해, 운청휘!”
선제가 죽은 뒤 만들어진 집념과 마주했다.
그 배후에는 천지를 뒤흔들 비밀이 숨겨진 게 아닐까.
특히 운청휘는 그 비밀들이 묘하게 자신과 얽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집념은 그의 몸에 잠들어 있으니, 차근차근 알아가보면 될 일이다.
일각 후.
운청휘와 기령은 소엽을 데리고 사당을 나왔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소도도는 걸어나오는 소엽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소엽, 마침내 깨어났구나!”
“도도 오라버니……!”
소엽 또한 눈시울을 붉히며 소도도를 끌어안았다.
운청휘와 기령은 그들이 해후할 시간을 충분히 준 후, 그곳을 떠났다.
“운청휘,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기령이 물었다.
“우선 이곳을 떠난다. 이변이 없다면 그들도 추격하겠군.”
운청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들?”
기령이 잠시 의아해했지만, 곧 운청휘가 말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진가 인왕경이 말하길, 소인왕이 비법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말인즉슨, 족쇄가 풀린 인왕경들은 연합하여 운청휘를 죽이러 올 터였다.
“운청휘, 진가 가주도 소인왕 편에 붙겠지?”
기령이 말했다.
“진가 가주는 본디 그런 사람이다.”
운청휘가 여유롭게 대답하다 말을 이었다.
“인왕경이 4명이든, 5명이든 우리에게는 차이가 없다.”
“뭐? 그건 다르지! 인왕경 한 명은 어찌어찌 도망쳐 볼 수 있겠지만, 인왕경 다섯이라면 꼼짝없이 죽는 거야!”
기령은 울상이 되었다.
“도망? 우리가 도망을 친다고?”
운청휘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소인왕이 다른 인왕경과 연합할 수 있는데, 우리라고 안 되겠느냐?”
운청휘가 영주에 온 시간도 짧지 않으니, 영주의 세력 분포를 대략적으로 이해해 둔 터였다.
남영의 8대 가문을 말하자면, 그들은 3개의 전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홍가, 풍가 및 하흡의 하가.
진가, 나가(罗家), 초가(肖家).
나머지 운가와 구가(邱家).
하가는 가주의 죽음으로 이미 8대 가문에서 제명된 터였다.
진가가 만약 소인왕과 연합한다면, 나가와 초가도 자연스레 소인왕에게 합류하리라.
그렇다면, 운청휘가 손을 뻗을 수 있는 세력은 운가와 구가가 남는다.
운청휘의 말이 맞길 바랐지만, 기령에게는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운인왕과 구인왕을 어떻게 찾는데?”
둘이 아는 바와 같이, 상고 유적에 들어온 인왕경들은 해와 달의 중간 산봉우리에 숨어 있었다. 분명 유적 어딘가에 그곳으로 가는 전송진이 있을 터였다.
문제는 그 전송진의 위치였다. 운청휘도 기령도 그 위치를 몰랐다.
“만약 소인왕이 억압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면, 두 인왕은 스스로 우릴 찾아올 것이다.”
운청휘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답했다.
8대 가문은 3개 전선으로 나뉘었고, 홍가와 풍가는 소인왕과 연합을 이루었다.
이제 운청휘가 진가의 원한을 샀으니, 진가와 친분이 있는 나가, 초가도 그들과 연합할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운인왕과 구인왕이 손을 놓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비교적 불리한 형세에 놓여 있으니까.
심지어 다섯 인왕이 연합하여 운가와 구가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법도 없었다.
운청휘가 기령이 자리를 벗어나고 두 시진 후.
소인왕을 포함한 8개의 신형이 별안간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인왕은 나름대로 훌륭한 풍채와 존귀함을 지니고 있었으나, 나머지 7명에 비하면 단번에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옆에 있는 7명이 너무나도 존귀한 탓이었다.
만일 소인왕을 부유한 고관으로 본다면, 7명은 최고 권력자, 제왕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젠장, 우리가 늦어서 운청휘를 도망가게 했군!”
소인왕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7명 옆에서는 자신이 평범하게 보이는 걸 알았으니, 호오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괜찮네. 운청휘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
7명 중 약관의 청년이 말했다.
“나인왕의 말씀의 옳소. 운청휘는 이미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으니!”
다른 한 명이 말을 받았다.
그는 70대로 보였으나, 백발홍안의 자태를 지녔다.
“방심은 금물일세. 운청휘와 어린 신동의 수단은 상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네. 만약 그들이 숨고자 하면 우리라도 그들을 찾아낼 수 없다네.”
또 누군가 말했다.
“그 말대로야. 본왕의 분신이 운청휘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운청휘는 절대 인왕의 아래가 아냐.”
이번에 나선 사람은 유일한 여성으로, 공작족의 공유였다.
“공유, 그대가 녀석을 잘 알고 있으니, 우리가 연합하여 녀석을 쫓아갈까?”
몸 뒤로 거대한 날개가 자라난 40대의 중년인이 답했다. 3대 요왕 중 한 명인 대붕왕이었다.
“그래, 본왕은 그대와 연합하지!”
공유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8명이니,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4개 조를 만들지. 조마다 한 방향을 책임지기로 해. 가자, 대붕왕.”
말을 마친 공유는 대붕왕과 함께 몸을 날렸다.
“대붕왕, 공작왕, 그대들은 본…… 아니 나를 도와 운청휘를 잡겠다고 했잖아요?”
소인왕이 지상에서 소리쳤다. 그는 본왕이라 말하려다 다급히 ‘나’라는 호칭을 썼다.
“운청휘를 잡은 뒤, 본왕이 그를 끌고 오지!”
멀리서 대붕왕의 답만 들려왔다. 공유는 대답조차 주지 않았다.
“이런 젠장!”
소인왕의 눈에 분노가 번뜩였다.
“소천사, 우리도 가보겠네. 우리가 먼저 운청휘를 잡아 끌고 오지!”
진가 인왕도 호기롭게 외치더니, 세 인왕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진인왕, 나인왕, 초인왕!”
멀어지는 세 인왕을 올려다보는 소인왕의 안색은 더없이 어두웠다.
그들은 분명 그들의 무위를 억제하는 비법을 풀어 주면, 소인왕을 도와 운청휘를 잡겠다고 했다.
한데 그들의 약조는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
“홍인왕, 그대가 나를 영흥제국에서 불러왔는데, 그대는 약속을 어기고 떠나지 않겠지요?”
홍인왕과 풍인왕도 떠나려는 기색을 느낀 소인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