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2화
“본왕은 줄곧 약속을 지켜왔네. 당장 본왕에게 중한 것은 운청휘가 아니라, 봉마비일세. 풍인왕, 가세!”
홍인왕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풍인왕과 함께 사라졌다.
소인왕은 잠시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7명의 인왕이 이리 단번에 그를 떠나다니?
곧, 소인왕은 깨달았다.
그들의 지금 목적은 운청휘가 아니라, 봉마비였다.
이는 7명의 인왕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능천진선, 그들에게 걸었던 비법을 회수할 수 있나요?”
소인왕이 침울하게 말했다.
7명의 인왕에게 우롱당한 셈이니, 안색이 한없이 음침해져 있었다.
-회수할 수는 없지만 이 비법은 고작 사흘만 유지된다네.
그의 말투에도 어딘가 고까운 기색이 있어, 소인왕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군요, 사흘만 더 기다리죠!”
소인왕은 거의 이를 악물었다.
한 시진 후, 신식을 펼치고 있던 운청휘와 기령이 한 대열을 발견했다.
“운청휘, 우리 예상이 빗나간 것 같아.”
기령의 말에,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운가와 구가가 아니라, 저들이 먼저 우리를 찾을 줄은 몰랐다.”
“운 형제, 어린 신동, 마침내 따라잡았군!”
대열 맨 앞, 범상치 않은 기품을 지닌 약관의 청년이 큰소리로 외쳤다.
청년은 20여 명의 대열을 이끌고 운청휘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청년은 다름아닌 교룡족의 소주 용오천이었다.
그를 본 운청휘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예의를 갖췄다.
“용 형!”
“운 형제여, 내가 이번에 그대를 찾은 것은 아버지께서 그대에게 전할 말씀이 있어서라네.”
용오천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다른 인왕들이 소인왕의 도움으로 그들의 무위를 억제하던 비법을 풀어냈네. 그들은 이미 소인왕과 함께 자네들을 찾고 있다는군!”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오천이 비록 아버지인 교룡왕의 분부를 받아 찾아오긴 했지만, 그를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알려 주어서 고맙군.”
운청휘는 예의를 갖췄다. 이미 진인왕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구태여 말하진 않았다.
“용형, 전송 옥석으로 교룡왕과 연락이 가능한가?”
“물론이지!”
용오천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운 형제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께서 전송 옥석으로 끊임없이 운 형제의 노정을 알려 줬기 때문이라네.”
“교룡왕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전송 옥석을 다오.”
운청휘가 담담하게 읊조렸다.
“받게!”
용오천이 곧장 전송 옥석을 꺼내 운청휘에게 건넸다.
-운청휘, 무슨 일로 본왕과 연락하려는 것인가?
운청휘가 막 전송 옥석을 받자 교룡왕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교룡왕, 거래하지.”
운청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내게도 억제를 푸는 비법이 있으니.”
교룡왕과의 대화를 마친 뒤, 운청휘와 용오천 등은 그 자리에서 휴식을 취했다.
-교룡왕과는 이야기가 잘된 거야?
기령이 음을 보내 운청휘에게 물었다.
-물론. 더욱이 그는 운인왕, 구인왕과 함께다. 두 시진만 기다리면 그들이 도착할 테지.
운청휘가 음으로 기령에게 대답했다.
-헤헤, 교룡왕, 운인왕, 구인왕이 있다면 우리는 방어에 급급할 필요가 없는 데다…….
기령이 헤헤 웃더니 눈을 반짝였다.
-게다가…… 각개 격파가 가능해!
운청휘의 눈에도 이채가 스쳤다. 기령의 말로 인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인왕 중 몇몇은 봉마비를 노리고 상고 유적에 들어왔을 터.
그들은 운청휘가 봉마비를 얻은 사실을 모르니, 무위를 전부 사용해서라도 봉마비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터였다.
다시 말해, 그들은 지금 흩어져서 행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도도, 용 형!”
운청휘가 곧바로 소도도와 용오천을 불렀다.
“나와 기령은 중요한 일이 있어 먼저 떠나야 하니 교룡왕, 운인왕, 구인왕이 도착하면 자네 그들을 데리고 사당으로 가도록.”
소도도는 운청휘가 서두르는 이유를 몰랐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들이 도착하면 내가 그들을 데리고 자네들을 찾으러 가겠네.”
운청휘는 즉시 기령을 이끌고 가장 빠른 속도로 서영서의 사당으로 질주했다.
“운청휘, 무슨 생각이야?”
기령은 운청휘의 계획을 몰랐다.
“각개 격파하고 싶지 않더냐? 기회가 왔다.”
운청휘는 느긋하게 말했지만, 그들이 이동할 때마다 공기가 찢기는 소리가 났다.
* * *
한편, 소인왕은 능천진선의 말을 따라 중심 구역의 사당에 도착했다.
-이…… 이건 서영서잖아?
능천진선이 사당에 모셔진 신상을 보고 흠칫 놀랐다.
“서영서?”
소인왕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간 능천진선에게서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선계 10대 선제 중 한 분의 본체가 바로 서영서라네. 설마 이곳에 그분을 모시는 신상이 있을 줄이야.
능천진선이 말했다.
그는 어찌 되었든 선계에서 왔기 때문에 선계의 많은 소식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군. 서영서의 형상이 서영 대제와는 상당히 달라.
신상을 살펴본 능천진선이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소인왕은 금세 흥미를 잃었다.
서영서가 무엇이든,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운청휘를 찾아서 처리할 방법이었다.
‘본왕이 능천진선을 만난 이후, 이렇게 낭패를 당한 일이 없었다. 운청휘를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야! 이 분노를 철저히 풀고 말리라! 그러고 보니 태을규금결에 사람의 영혼을 빼내는 술법이 있던데, 운청휘에게 실험해 보아야겠군.’
* * *
사당이 가까워지면서 운청휘는 마침내 이곳에 온 목적을 기령에게 말했다.
“뭐? 그, 그럼 소인왕과 능천진선이 서영서의 사당에 왔다는 거야?!”
운청휘가 전해준 말에, 기령이 눈을 부릅떴다. 두 눈에서는 금세 살기가 넘쳤다.
소인왕과 능천진선이 자신의 영혼을 찢어 죽일 뻔했으니, 기령은 꿈에서라도 그들에 대한 원한을 잊을 수 없었다.
운청휘와 기령은 전속력으로 내달려 불과 이 각 만에 사당 근처에 도착했고, 동시에 신식을 내뿜어 근교를 뒤덮었다.
“하하하, 역시나!”
기령이 크게 웃었는데, 그의 신식은 사당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수련하는 소인왕을 발견했다.
“운청휘, 네 말대로 소인왕 혼자야! 이번엔 어떻게 도망치는지 봐야겠어!”
기령은 입술을 축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쿵 소리와 함께 허공을 박차고 나간 기령의 신형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흥분한 기령과는 달리 운청휘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단번에 소인왕이 수련하는 무공이 그가 선계에서 만들어 낸 ‘태을규금결’임을 알아차렸다.
* * *
해와 달이 공존하는 작은 세계에는, 지는 해의 노을과 밝아오는 달의 은은한 빛이 함께했다.
두 가지 빛이 쏟아지니, 대지는 아름다운 비단옷을 걸친 듯했다.
이때 소인왕은 사당 입구에 앉아서, 해와 달빛을 받으며 수련에 빠져들었다.
“능천진선, 당신이 태을규금결의 다음 단계를 전수해 준다면, 제가 인왕경에 오를 것 같습니다.”
소인왕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태을규금결의 3성까지 익힌 상태였다.
-태을규금결은 대라금선에 도달할 수 있는 무공이거늘, 그대가 곧 인왕경이 된다면 이치에 맞지 않지.
능천진선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시는군요. 그렇다면 더욱더 다음 단계를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이들의 신세를 지지 않고 운청휘와 그 짐승을 잡을 수 있습니다!”
소인왕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본선은 이미 말했을 텐데! 운제의 동의가 없으면 그대에게 이 다음을 전수할 수 없네.
능천진선은 곧바로 거절한 뒤, 흐릿하게 중얼거렸다.
-더욱이 인왕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이 태을규금결뿐만이 아닌데…….
문득 능천진선이 말을 멈췄다.
-누군가 오고 있군. 이리도 강렬한 폭음을 일으키니, 아주 빠르게 오고 있어.
무인은 선의 경지에 오르면 자연스레 신식의 힘을 동원할 수 있다. 능천진선도 마찬가지였고, 전성기 때에는 못 미치지만 수십만 장 바깥의 일을 포착할 수 있었다.
“소인왕, 능천진선, 썩 나오지 못할까!”
갑자기 기령의 소리가 온 천지에 울려 퍼졌다.
“어린 신동의 목소리다!”
-운청휘와 어린 신동이 왔군!
소인왕의 안색이 급변했다.
지금 그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자연히 수적으로도 불리한 상태였다.
소인왕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일으켜, 운청위의 반대 방향으로 급히 질주했다.
-소인왕, 어서 태을규금결의 ‘혈방패’를 사용하게!
능천진선이 급히 소인왕을 재촉했다.
“네!”
대답은 하였으나, 소인왕의 안색은 어두웠다.
이 혈방패는 정혈을 태워야 하니, 정말 급박한 순간이 아니라면 쓰고 싶지 않았던 터였다.
다음 순간, 소인왕의 신형은 핏빛 안개가 되어 하늘의 끝으로 멀어져 갔다.
“또 그 기술이냐!”
기령이 이를 악물었다. 지난번에도 저 기술 때문에 소인왕을 놓친 바 있었다.
“또 정혈을 태워 도망가는 것이냐!”
운청휘의 반응은 기령보다 잔잔했다.
그가 만든 무공이니, 누구도 그보다 잘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