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6화
교룡왕과 운인왕이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들은 구인왕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을뿐더러, 구인왕이 봤다는 고서적도 의심할 바가 없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신상이 눈앞에 있으니, 다른 증거는 필요없었다.
“그래, 서영서는 확실히 신수다.”
멀리서, 운청휘가 외쳤다.
“누구냐?”
인왕 셋이 거의 같은 시간에 사당 밖의 하늘을 봤다.
수십만 장 떨어진 곳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날아오는 그림자를 봤다.
“운청휘와 어린 신동이구나.”
그들은 일찍이 운청휘와 기령을 관찰했었기에 바로 알아보았지만, 곧 의혹이 서렸다.
“우리가 방금 나눈 얘기를 운청휘가 어떻게 들었을까?”
세 사람이 궁금할 만도 했다.
그들과 함께 사당에 있던 소도도, 용오천 등은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세 선배에게 인사드립니다.”
사당 앞에 도달하자, 운청휘는 인왕 셋에게 나름 예의를 갖춰 인사를 나눴다.
그들이 몇백 년을 산 노괴인 데다 이곳에서 운청휘의 나이는 18살이니 예를 갖춰서 나쁠 것은 없었다.
“과찬이오, 운 공자!”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민다고 하지. 운 공자의 천부적 재능은 50년도 되지 않아 우리 같은 늙은이들을 초월할 것이야!”
“50년? 내 느낌에 최대 10년이면 우리를 초월할걸세!”
운청휘의 겸손한 태도는 세 인왕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물론 예의는 둘째치고, 운청휘의 재능과 무위를 인정했기 때문도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남을 칭찬할 일이 있겠는가?
‘50년? 10년?’
운청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지금의 성장 속도라면 앞으로 몇 개월 후면 그들을 초월할 터였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인왕에 불과하니 말이다!
옆에 있던 기령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 저들이 말하는 10년 후, 운청휘는 인왕이 차마 바라볼 수도 없는 경지에 이르렀을 테니!
“세 선배가 일을 끌면 문제가 생길 테니 일단 억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비록 운청휘의 정체를 모르고 그저 잠재력이 있는 후배로 여겼지만, 나름대로 운청휘를 존중하고 있었다.
운청휘 앞에서 따로 ‘본왕’이라는 지칭을 쓰지도 않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운청휘로서도 이들과 무탈하게 왕래하고 싶었기에, 그들의 억제를 풀어 줄 생각이었다.
“따로 준비할 것은 없는 건가?”
인왕 셋이 속으로 기뻐하면서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전심으로 믿으시면 됩니다.”
운청휘가 그윽하게 읊조렸다.
그가 사용하고자 하는 방법은 신식을 얇은 장벽으로 환화시켜 그들의 육신을 덮는 것뿐이었다.
다만 그들에게 신식이 있다는 걸 구태여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가급적이면 그들 셋이 모든 감지를 차단하고 산송장처럼 운청휘의 수단을 받아들이길 바랄 뿐.
* * *
성핵철 비석이 있는 해역.
운청휘와 기령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역 상공에 흰옷을 입은 청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피부가 매끈하고 외모가 수려하여, 절세 미녀라도 그 앞에서는 부끄러워할 경지였다.
해역에 모여 있는 수많은 흉수들은 모두 인왕경의 경지였는데, 막상 청년이 모습을 드러내자 고양이를 본 쥐처럼 해저를 기어다녔다.
“그들이 극광 세계의 입구를 발견했구나.”
백의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운청휘와 기령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도심종마대법을 수련했고, 하나의 본체는 혼돈 영수이니 입구를 막지 않는다면 극광 세계는 저들의 뒷마당이 되겠구나.”
백의 청년이 홀로 중얼거리더니, 곧 운청휘와 기령이 있던 구역에 작은 소용돌이를 생성해 내었다.
직경 1장도 되지 않을 작은 소용돌이는 이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지극히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용돌이는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육지를 따라 끊임없이 번져 나갔다.
“사흘 후, 극광 세계로 가는 입구는 소멸될 것이다.”
소용돌이가 직경 삼백 장에 이르자, 백의 청년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남기고 모습을 감추었다.
* * *
운청휘는 세 인왕에게 외부를 감지하는 영기를 차단할 것을 주문했다.
그들 셋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곧 영기를 갈무리했다.
이때 운청휘가 그들을 죽이려 했다면, 그들은 개미가 발에 짓눌리듯 죽었을 터였다.
심지어 운청휘가 그들을 죽인 수단도 눈치채지 못하고 죽었으리라.
그러나 운청휘가 이들을 죽이겠는가? 운청휘는 신식을 동원하여 곧바로 그들의 억제를 차단했다.
운청휘는 무아지경에 빠져든 세 명을 바로 깨우지 않고, 일 다경 정도 기다렸다.
또한 고의로 안색을 창백하게 만들어, 힘에 겨운 척 가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 명을 깨우자, 곧 법원의 힘이 그들의 몸 주변에서 강풍처럼 일었다.
“이제 무위를 전부 동원할 수 있군.”
세 사람의 눈은 모두 기쁨으로 반짝였다.
“고맙구려, 운 공자!”
세 인왕이 운청휘에게 감사를 표했다.
“과찬입니다.”
운청휘가 웃으며 말했다.
“운 공자의 소모가 적지 않을 텐데, 우리 셋은 운 공자에게 큰 은혜를 입었군!”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그들을 잘못 본 게 아니었어…….’
사실 운청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만일 이들이 변심하여 자신을 공격하려 든다면, 운청휘는 그 즉시 신식을 거둘 생각이었다.
그리되면 즉시 세계의 억제가 인왕들을 통제할 터였다.
“운 공자. 덕분에 우리가 무위를 회복했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운청휘를 바라봤다.
“봉마비에 목적을 가지고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운청휘가 그윽이 말했다.
세 사람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우리가 작은 세계에 온 것은 봉마비 때문이라네.”
“어찌 이곳에 봉마비가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운청휘는 궁금증을 숨기지 않았다.
“이 소식은 진인왕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알려 줬다네.”
세 인왕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진인왕의 말을 믿으신 겁니까?”
운청휘는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상고 유적에 봉마비가 숨어 있다고 그가 하늘에 맹세를 했다네!”
“그렇군요.”
하늘에 맹세를 할 정도면, 진인왕의 확신은 더없이 확고했다.
물론, 진인왕의 믿음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곳에 봉마비가 있었으니.
다만 운청휘가 먼저 거두었을 뿐이다.
운청휘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이곳에 봉마비가 있다는 사실을 진인왕이 어찌 알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선배들께서 봉마비를 얻으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운청휘가 깊은 뜻이 담긴 눈으로 세 인왕을 바라보았다.
“운 공자. 인왕은 무도의 정점이 아니네. 그 위에는 인황(人皇)이 있고, 인황의 다음에는 더 높은 경지가 있다는 걸 자네도 알겠지.”
“다만, 인황에 도달하는 것은 힘들다네. 영주 전체를 1,000년 동안 봐도 인황이나…… 인황 위의 경계에 도달한 사람은 없다고 들었네!”
“우리 세 사람뿐 아니라 영주의 모든 인왕도 이대로라면 일생을 바쳐도 인황에 도달할 수 없겠지.”
“다만 봉마비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전설에 따르면 봉마비는 선이 되는 비밀과 관련이 있으니, 봉마비를 가지는 건 선도에 발을 들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네.”
“생각해 보게, 운 공자. 우리를 도와 인왕에서 인황까지 도달하지 않겠는가?”
세 사람은 열변을 토했다.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그들의 처지였더라면 그들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봉마비를 얻으려 들 것이다.
다만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잘못되었다. 구체적인 용도는 운청휘도 모르지만, 봉마비는 선이 되는 길과 무관했다.
“만약, 인황으로 도달하게 해드린다면 봉마비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운청휘가 세 사람을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뭐, 뭐…… 뭐라고?”
세 인왕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숨을 집어삼켰다.
그들은 운청휘가 실언하지 않는 사람임을 알았다. 그러니 저토록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면, 확실한 방도를 가지고 있으리라!
“인황의 경지로 이끌어 줄 테니, 봉마비를 포기하십시오. 저를 도와 다른 인왕들을 죽이시면 됩니다.”
말을 하는 운청휘의 두 눈은 한껏 가늘어져 있었다.
눈앞의 세 인왕을 제외한 다른 인왕들은 전부 그의 적이다!
특히 대붕왕과 공작왕은 생각하기만 해도 살기가 피어오를 지경이었는데, 지금의 무위로는 인왕과 맞서지 못해 참을 뿐이었다.
“운 공자. 그대가 우리를 인황으로 만들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
“우리가 그대를 위해 보답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인왕을 죽이는 것은…… 다소 과하지 않은가?”
교룡왕, 운인왕, 구인왕이 머뭇거리다 답했다.
인왕으로서 그들은 누구보다 인왕의 강함을 잘 안다.
서로간의 전투는 문명을 파괴하는 전투나 다름없을 터였다.
비록 별과 달을 따지 못한다고 해도, 손을 휘둘러 산을 부수고 바다를 태우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왕간의 전투는 자연스레 드물어졌는데, 파급력을 둘째치고서라도 인왕을 죽이기 어려운 것도 한몫했다.
어찌 보면 이는 선제와의 전투와 닮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인왕과 인왕의 전투는 인간의 문명을 파괴시지만 선제끼리의 전투는 선계를 파괴한다는 점이리라.
‘미쳤다고? 과연 그럴까. 그저 인왕일 뿐이 아니더냐. 본제는 몇 번이고 죽여 봤거늘.’
운청휘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가 선제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체의 산을 이루고 피의 강을 흘렸던가.
그때 죽였던 인왕의 수는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소 저급하게 말하자면, 인왕은 돼지요 운청휘는 노련한 백정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인왕이 반격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격한다면, 죽일 수 있는 확률은 몇 할입니까?”
운청휘가 생각을 정리하고 물었다.
지금 자신과 기령의 전투력으로는 인왕을 상대할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도움을 청해야 했다.
“반격을 안 하는 상태에서 공격하라고? 말이 되지 않네!”
세 인왕이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런 가정은 존재할 수 없었다. 애초에 공격을 받고 얌전히 있을 존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그저 확률만 알려 주면 됩니다.”
운청휘가 말했다.
“정말로 반격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서 오 할의 확률이 인왕 한 명을 죽일 수 있다네. 운인왕과 구인왕이 가세한다면, 십 중 십의 확률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