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7화
교룡왕이 다부지게 말했다.
참으로 운청휘의 예상대로였기에, 운청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이 있다면 지금부터 움직이죠. 첫 번째 상대는 공작왕입니다.”
운청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영주에서 반드시 죽여야 할 명단 첫 번째에 공작왕이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니, 어찌 피해가겠는가!
그다음은 대붕왕, 홍인왕, 풍인왕이다.
운청휘는 공작왕과 공작족이 자신을 저버린 일을 결코 잊지 않았다.
“공작왕의 실력은 나와 비슷한 데다 일기화삼청을 수련했으니, 죽이는 것은…… 어렵네!”
같은 요족인 만큼, 교룡왕은 공작왕의 실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준비는 되어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저 함께 내 비장의 한 수를 지켜보면 됩니다.”
운청휘는 세 인왕을 데리고 삼천 장 밖으로 날아갔다.
곧 인적이 없는 황량한 공터를 찾아낸 후, 운청휘는 영라 반지에서 네 개의 굵고 튼튼한 기둥을 꺼내 동서남북 네 방향에 꽂아 두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참천검집을 꽂았다.
세 인왕은 운청휘가 진법을 포진하려는 걸 알아차렸으나, 감탄은커녕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운청휘가 소질이 있다 한들, 인왕을 위협하는 진법을 포진할 수 있을까?
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검집을 꽂은 후 운청휘는 네 방울의 피를 짜냈다. 이때의 피는 정혈이 아니라 일반 피였다.
다만 선제의 피니, 일반 피라도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운청휘가 복잡한 주문을 외우니, 네 방울의 피는 각각 네 기둥 위로 흩어졌고 기둥을 타고 핏빛이 진하게 흘러내렸다.
기둥 밑으로 번져 나온 핏빛은 정중앙의 검집으로 향해, 검집과 하나로 연결되었다.
곧 혈기 왕성한 대진이 형체를 이루었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에 있는 이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대진이었다.
-운청휘, 괜찮아?
기령이 별안간 전음을 보냈다.
운청휘가 포진한 진법이 사살황천진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진법은 오직 선인만이 배치할 수 있으나, 운청휘는 피와 참천검집의 힘을 빌려 강제로 포진한 터였다.
-정신을 삼 할 정도 썼으니, 아직은 버틸 수 있다.
운청휘도 음으로 답했다.
기력이 쇠진해지는 걸 느꼈으나, 이를 악문 운청휘가 진법에서 날아올랐다.
“들어오십시오!”
세 인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평범한 진법이 정말로 인왕을 위협할 수 있는 겐가?”
세 사람은 의혹을 가지고 나란히 진법으로 뛰어들었다.
“걸걸걸……!”
“홍……!”
“으허……!”
사살황천진에 들어간 순간, 세 인왕의 귓가에서 처절한 고함이 맴돌았다.
동시에 한기가 극에 달해,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는 명계에서 올라오는 듯, 처절하고 끔찍한 울음소리였다.
“운인왕, 구인왕, 어디에 있는가?”
“구인왕, 교룡왕, 어디야?”
“운인왕, 교룡왕, 이보게들?”
분명 동시에 셋이 진 안으로 들어왔건만, 정신을 차려보니 각자 혼자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교룡왕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청룡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청룡의 거대한 두 개의 동공은 핏물이 스며들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이…… 이것은 현무인가?”
운인왕이 눈을 떴을 때, 거대한 거북과 마주했다.
거북은 날카로운 이를 지녔고, 입에서는 끊임없이 사람의 피를 떨구고 있었다.
구인왕의 경우에는 두 거수를 만났으니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다만 그는 넓은 식견으로 거수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주작과 백호였다.
“아니, 아니다. 주작과 백호일 리가 없지. 주작과 백호는 사상의 하나이니 이 거수들은 모습을 본떴을 뿐, 진정한 성수가 아니다!”
수많은 책을 통달한 구인왕답게, 눈앞의 거수들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다만, 알고 있는 것과 그것에 저항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곧, 세 인왕은 거수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진법 밖에서 보면, 세 인왕은 나란히 서서 미동도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운청휘, 사살황청진은 사성수를 내보내 환상 속에서 결투하는 거라던데?”
기령의 말에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의 이름이 사살황천진인 이유는, 사상의 존재가 환영이기 때문이다.
환영으로 나온 사상은 암흑을 대표하는 사상이기에, 사실이라 불렸다.
황천 역시 진에 들어간 이들이 보는 모든 것이 황천처럼 어두웠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었다.
“운청휘, 내가 그들과 대련해도 괜찮을까?”
기령이 화제를 바꾸며 입술을 핥았다.
“잘됐군. 그러지 않아도 부탁할 생각이었다.”
운청휘가 기령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진법 밖에서 운청휘가 손을 뻗으니 허공에 현력으로 만든 장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니, 쐐애액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교룡왕의 몸에 맞았다.
놀랍게도, 그의 육신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운청휘는 십여 발을 연달아 쏘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잇따라 나며 전부 교룡왕의 몸에 명중했다.
“이 정도만 해야겠군.”
운청휘가 중얼거리더니 교룡왕에 대한 공격을 멈췄다.
“공적경에 도달하기 전까진, 인왕은 무리인가 보네.”
기령 쪽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공격도 운인왕에게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령은 혼돈지화로 운인왕을 공격해 보았지만, 기령의 경계가 낮은 탓에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운청휘, 우리가 인왕들과 싸우지 않은 건 참 다행이야.”
기령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전에 기령이 해역에서 인왕경 흉수들을 삼키고 싶어 했지만, 운청휘의 거절 덕분에 무사히 돌아왔다. 만약 그때 기령의 청을 들었더라면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터였다.
이 각 후.
운청휘가 사살황천진을 거두자, 세 인왕이 진법에서 빠져나왔다.
“운 공자. 우리가 싸운 ‘사상’은 환상인가?”
구인왕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교룡왕과 운인왕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운청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은 운청휘와 기령이 공격을 한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다치지 않았기에 넘어갔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사살황천진. 선배들은 환상으로 들어가 허구의 사…… 상과 전투를 한 것입니다.”
운청휘는 사살을 말하려다 급히 말을 틀었다.
운청휘가 순순히 인정하니, 세 인왕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만약 진법 밖에서 그들을 공격한 사람이 진짜 인왕이었다면?
그들 셋은 어찌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었으리라.
“우, 운 공자! 바로 움직이세!”
“하늘을 거스르는 진법이 있다면 우리 다섯은 영주의 모든 인왕을 다 쓸어버릴 수 있겠어!”
교룡왕은 행복한 상상에 잠겼으나, 동시에 이 진이 천하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다만 운 공자, 이곳에서 짧은 시간 내에 공작왕을 찾는 것은 그리 간단하진 않을 거라네!”
교룡왕이 재차 말했다.
단시간 내에 이 넓은 세계에서 어찌 인왕을 찾는단 말인가?
“걱정 마십시오, 제가 공작왕을 찾을 수 있으니.”
운청휘가 느긋하게 말했다.
애초 공유의 몸에 신식을 불어넣었으니, 거리가 아주 멀지만 않다면 그녀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작은 세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운청휘는 진법을 거두고, 검집을 다시 등에 꽂았다.
또한 소도도 등에게 전음을 전해 사당에 머무르게 한 다음, 운청휘와 기령, 세 인왕은 자리를 떴다.
두 시진 뒤, 운청휘와 기령은 신식으로 공작왕을 발견했으나, 불청객이 함께 있었다.
곁에 대붕왕이 있었던 것이다.
“같이 있으니 하나하나 찾을 필요가 없겠군. 잘 됐다.”
운청휘가 살기 어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곧 그가 포진을 했는데,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아 반경 수십만 장의 공간을 에워쌌다.
“너희는 우선 숨어 있도록. 기령, 공작왕과 대붕왕을 이곳으로 유인해 오너라.”
지시를 내린 운청휘가 기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유인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헤헤, 당연하지!”
기령이 웃으며 길을 되돌아갔다.
기령은 백만 장을 날고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속력을 내어 진공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꽃을 터트렸다.
이러한 움직임은 곧 공작왕과 대붕왕의 주의를 끌 수 있었다.
그들은 기령을 발견하자마자 만면에 희색이 가득했다.
“운청휘의 짐승이구나!”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오는구나!”
공작왕과 대붕왕이 냉소했는데, 공포스러운 법원의 힘이 솟아올랐다.
다음 순간, 그들은 손을 내밀어 기령을 잡으려고 했다.
“젠장, 날개 달린 짐승을 만나다니!”
기령이 낭패라는 표정을 지으며 질주했다.
“날개 달린 짐승?”
공작왕과 대붕왕은 그 단어를 듣자마자 영력을 폭발시켰다. 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날개 달린 짐승’이었다.
“운청휘, 내가 날개 달린 짐승을 둘이나 만났어!”
기령은 도망치면서 누군가에게 알리듯이 소리를 질렀다.
“저 짐승들이 공작왕과 대붕왕이야!”
어찌 되었든 기령의 출현이 우연은 아닐 터였다. 대붕왕과 공작왕은 속임수가 있다고 여겼으나, 기령이 날개 달린 짐승이라는 표현을 쓴 순간 이성을 잃었다.
“설령 함정이 있다고 해도 본왕은 네놈을 산 채로 벗겨내겠다!”
대붕왕이 포효했다.
공작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신 행동으로 말했다. 그녀가 손을 휘두르니 무시무시한 법원의 힘이 방출되었다.
쿵!
기령의 등에 직격한 법원의 힘이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를 내었다.
기령이 허공에서 피를 토하며 추락했다.
“기령, 괜찮나?”
공작왕은 공격 단 한 번으로 기령에게 중상을 입혔다.
운청휘는 허공에서 떨어지는 기령을 받으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감히 기령에게 중상을 입혔으니, 후회하게 해주마!”
운청휘는 가까스로 살기를 억누르며, 기령을 안고 사살황천진 안으로 들어갔다.
밖으로 보기엔 진법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으니, 그저 운청휘가 몸을 피하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운청휘는 진법 안이든 밖이든 영향을 받지 않음을, 그들이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