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3화
“운청휘…… 그 신검의 주인이었어!”
“그래, 운청휘가 가지고 있던 빈 검집은 그 신검을 꽂는 용도였군!”
저마다 말을 주고받느라 바쁜 사이, 홍인왕이 별안간 대청 중앙으로 걸어가 섰다.
“본왕은 모두가 신검을 노리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러나 운청휘를 찾는 것이 급선무라네!”
“흥, 본왕도 운청휘를 찾아야 하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찾는데?”
나인왕이 콧방귀를 뀌었다.
“찾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운청휘를 스스로 오게 할 수는 있지!”
홍인왕이 조용히 말했다.
“자네가 멍청한 건가, 아니면 운청휘가 멍청한 건가. 녀석을 스스로 오게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진인왕도 일어나서 말했다.
“하하…….”
홍인왕은 화를 내기는커녕 도리어 웃어 보였다.
“본왕이 이미 운청휘의 신분을 조사했지. 그는 혈살군에서 왔더군. 그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랑캐의 땅일세. 운청휘는 그곳에서도 천우성이라는 작은 곳에서 태어났지. 한데 그가 최근 몇 달 사이에 작은 왕조를 통일하여 천운 왕조로 개명하고, 국가 전체를 그의 가족에게 귀속시켰다네.”
“고작 작은 나라일 뿐, 본왕이 한 손바닥에 멸망시키마.”
대붕왕이 극도로 깔보며 말했다.
“하하, 그뿐만이 아니야. 운청휘는 또 짧은 시간 동안 혈살군을 전부 통일하였고 천검종도 그에게 항복했다네.”
홍인왕이 재차 말을 늘어놓았다.
“물론, 본왕이 말하는 건 운청휘의 대단함이 아닐세. 그가 이런 일을 했다는 거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운청휘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본왕이 파악했다네. 그는 감정을 극도로 중시하더군!”
다른 인왕의 눈이 번쩍 뜨였다.
“홍인왕, 자네의 말은 운청휘의 가족들로 운청휘를 위협하라는 것이군?”
“맞아!”
홍인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풍인왕을 바라보았다.
“풍인왕, 그를 데려오게.”
풍인왕이 손뼉을 치니, 곧바로 한 사람이 중년인을 압송해 왔다.
중년인은 산발인 데다 상처투성이었는데, 두 견갑골이 쇠갈고리에 묶인 참혹한 형상이었다.
풍인왕이 그 중년인을 인왕들에 게 소개했다.
“이자는 혈살군에서 온 진관해로, 본래 우리 풍가의 신하였지. 진법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데, 영주 전체를 둘러봐도 그를 능가할 진법 대사는 없다네. 물론, 본왕이 압송해 온 이유는 다른 데 있네. 이자는 운청휘의 제자일세.”
“풍인왕, 홍인왕, 그대들의 말은 운청휘의 제자로 운청휘를 유인한다?”
다른 인왕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내었다.
“맞네!”
홍인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휘라는 인간은 지극히 정을 중시하니 그의 제자가 우리에게 있으니 그를 불러낼 수 있을 거요.”
“본왕이 알기로도, 그는 확실히 의리가 깊은 사람이다.”
운청휘와 지낸 적이 있었던 공작왕이 거들었다.
“한데 운청휘를 조사했으면서 어찌 운청휘의 가족은 잡아 오지 않 은 거지?”
공작왕이 물었다.
“본왕도 그리 생각했지. 하지만 운청휘의 일가는 천검종에 칩거하고 있는 데다, 천검종은 진법으로 둘러싸여 있어 본왕이라도 침입할 수 없네.”
홍인왕이 설명했다.
“진관해가 있긴 하나, 이자만으로는 부족할까 우려가 되는군.”
또 다른 인왕이 말했다.
“홍인왕, 운청휘의 자료를 조사했다면 소도도라는 녀석을 들어봤겠지?”
의자에 앉아 있는 진인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소도도는 운청휘의 의형제일세. 운청휘에게 있어 진관해보다 중요한 인물이겠지!”
홍인왕이 말했다.
“다만 소도도와 그의 약혼녀 소엽은 지금 교룡왕 쪽에 있는데 무력을 동원하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네.”
홍인왕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쉬움을 전했다.
“하하. 본왕이 소도도를 끌어들일 방법을 알고 있네.”
진인왕이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설마 진상상으로 소도도를 유인할 생각인가? 아쉽지 않은가?”
홍인왕의 눈이 번쩍 트였지만, 일 말의 우려를 담아 말했다.
“아쉽냐고? 진상상은 그저 본왕이 주워온 아기라서 본왕의 직계
혈통 손자도 아닐세.”
그리 말하는 진인왕의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진상상은 본래 운청휘와 친분이 있었어. 그렇다는 것은 진상상의 이용 가치는 소도도를 유인하는 것 외에 운청휘를 위협하는 데에도 있지.”
“악독하지 않고는 큰일을 할 수 없다 하거늘, 진인왕은 역시 효웅일세, 하하하!”
인왕들이 모두 크게 웃으며 흡족해했다.
진관해에 이어 진상상, 소도도까지 있다면 운청휘가 걸려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후 집으로 돌아간 진인왕은 진상상을 불러들였다.
“상상, 소도도가 네 쌍둥이 형제라고 하던데?”
진인왕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네, 할아버지. 도도는 성격이든 생김새든 모두 손자와 닮았어요.”
진상상이 공손히 대답했다.
“너는 본왕의 손자이고 도도가 너의 형제라는 것은 자연스레 우리 진가의 일부분이지. 지금 소도도와 연락하여 진가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하거라.”
진인왕의 말투는 더없이 너그러웠다.
“할아버지. 아시다시피 운 형, 운청휘가 진가의 적이 된 이후, 도도와 손자의 인연도 끝났습니다.”
진상상은 진인왕의 속내를 파악할 순 없었지만, 좋은 일이 아니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비록 운청휘가 안하무인이라 본왕마저 건드렸다만, 본왕은 사리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본왕과 그의 원한을 너희 형제들에게까지 강요하겠느냐.”
진인왕이 너그럽게 말했지만, 그의 진심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 말씀은……?”
진상상이 진인왕을 봤다.
“응당 소도도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야지!”
진인왕이 말했다.
“손자, 최선을 다해 볼게요!”
진상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송 옥석을 꺼내 소도도에게 연락을 취했다.
잠시 후.
진상상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도도가…… 거절했네요!”
“거절했다고?”
진인왕이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 나온다면 본왕이 강경하게 나가야겠구나!”
말을 마침과 동시에, 진인왕이 공포스러운 법력을 뿜어내었다. 진상 상은 바로 그 힘에 짓눌려 감금되었다.
이어서 손을 내민 진인왕이 전송 옥석을 뺏어 들었다.
그가 냉랭한 목소리로 전송 옥석에 대고 말했다.
“네놈, 진상상이 살아 있길 바란다면 영주성으로 와 본왕을 찾거라!”
이윽고 진인왕은 진상상을 붙잡은 채 영주성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고층 건물 위에는 다섯 인왕과 두 요왕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그 들의 앞에는 진상상과 진관해가 구속당한 채 무릎 꿇렸다.
인왕들과 나란히 앉은 진인왕은 진상상을 힐끗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변이 없다면 소도도는 지금 영주로 오는 길에 있겠지.”
“진인왕의 기백이 대단하오. 20년을 넘게 키운 손자를 이렇게나 쉽게 내치다니!”
대붕왕이 조롱하는 말투로 말했 다.
“흥,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으니까!”
진인왕이 콧방귀를 뀌었다.
“미리 말하겠지만 이번에 본왕은 주력을 내놓았으니 운청휘 몸에 있는 아공간 반지는 반드시 본왕 에게 넘기게나!”
“하하하, 그건 당연하지. 그러나 진인왕이 운청휘의 아공간 반지를 지정했다면 그 빈 검집과 신검은…… 양보해야 할 걸세!”
“물론, 검집과 신검은 자네들 스스로 상의하게!”
진인왕은 다른 인왕들이 탐내기 전에 운청휘의 아공간 반지를 먼저 선점해 두었다.
그가 알기로 운청휘의 아공간 반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둔천사를 넣을 수 있는 아공간 반지가 흔한 물건이겠는가? 더욱이 진인왕은 아공간 반지에 봉마비가 들어 있을 거라 추측했다.
물론 그는 운청휘가 상고 유적에서 봉마비를 얻은 사실을 몰랐지만, 홍가의 창고에서 봉마비를 얻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본왕에게도 놀라운 선물이 있다네!”
바로 이때 대붕왕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대붕왕의 족속들이 분홍 옷을 입은 소녀를 압송했다.
“하가의 하흡이잖아?”
홍인왕과 풍인왕이 단번에 소녀를 알아보았다.
“그렇다네, 하흡일세!”
대붕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하흡이 있으니 운청휘를 끌어들이는 계획은 성공하겠어!”
홍인왕과 풍인왕이 모두 크게 웃었다.
그들은 하흡과 운청휘의 관계도 간단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대붕왕, 내가 기억하기로 하흡도 교룡왕을 따라갔는데 어떻게 잡아 왔나?”
홍인왕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하가의 얼간이들이 가문을 일으키겠다고 용을 쓰지 않나. 본왕이 그들을 조금 꼬드겼더니, 냉큼 하 흡을 잡아 바치더군.”
하가를 언급하는 대붕왕의 얼굴에는 업신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하하. 본왕이 알기로 하가의 얼간이들은 동영 난쟁이족에게도 투항했다던데? 하지만 모두 운청휘에게 죽었다더군.”
나인왕도 크게 웃으며 하가를 조 롱했다.
“하흡은 하가의 직계 일원들과 친분이 두텁지. 쉽게도 속더군.”
“헤헤, 가장 친한 사람에게 팔리다니 참 씁쓸하구나! 자네들, 하흡이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겐가?”
절망한 사람은 하흡뿐만이 아니었다.
진상상은 넋이 나가 있었는데, 오늘날까지 그를 키운 조부가 그를 이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터였다.
그래, 진인왕에게 있어 소도도든 진상상이든, 모두 남이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절망보다 더 큰 슬픔이 어디 있을까. 진상상은 짙은 절망과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 넷이면 운청휘를 유인하기에 충분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이 넷이 우리 손에 있다 한들, 운청휘가 어찌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