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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278화 (278/430)

제278화

태상 장로는 할 수만 있다면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다.

어리석은 것들, 현경이 다 뭐냐. 반절 인왕경도 운청휘에게 일장에 죽는 것을!

나머지 호위들은 일제히 태상 장로의 뒤로 주춤주춤 모여들었다.

운청휘가 비록 현경 호위 넷을 죽였다지만, 공적경인 태상 장로의 적수는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운청휘가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우리 공작보루에서 살인을 하다니!”

“흥, 그것도 태상 장로 앞에서!”

“태상 장로께서 죽어간 족속들 넷을 위해 복수해 주소서!”

“태상 장로께서 나서주십시오!”

호위들이 앞다투어 한마디씩 던지더니, 급기야 태상 장로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들이야 모르겠지만, 운청휘와 마주하고 있는 태상 장로는 이미 간이 콩알만 해져 있었다.

“영흥제국에서 어린 신동을 데려갔다고? 제대로 고하도록.”

운청휘의 시린 눈빛이 태상 장로에게 꽂혔다.

“어, 어제 영흥제국의 황실에서 사람을 보냈네. 소인왕의 사인을 조사하라고 하더군.”

태상 장로는 겨우 말문이 트이자 황급히 말을 늘어놓았다.

“그대와 어린 신동이 소인왕과 충돌했으니, 어린 신동을 심문하기 위해 왔을 테지. 하지만 어린 신동을 보더니 곧장 영흥제국으로 데려갔다네!”

“데려간 이유는?”

운청휘가 물었다.

“모른다네. 일곱 인왕이라도 영흥제국 황실의 사람에게 감히 묻지 못하니.”

태상 장로의 말이 끝나자, 운청휘는 생각에 잠겼다.

‘기령을 보자마자 데리고 떠났다? 설마 혼돈 영수임을 알아차렸나?’

그러나 상황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기령이 죽지만 않는다면, 모든 일은 만회할 수 있을 테니.

‘공작성의 일을 처리한 후, 영주성으로 가야겠군.’

생각을 마친 운청휘가 태상 장로를 보았다.

“소도도, 소엽, 하흡, 진관해가 정말로 죽었나?”

공작족의 태상 장로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소, 소도도와 진관해는 대붕족의 사람이 처형했고, 하흡은 홍가의 사람이 처형했네. 소엽, 그래, 소엽은 우리 공작족에서…… 처형했다네.”

운청휘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그가 여러 번 심호흡을 한 끝에야 눈을 떴다.

그간 품어온 한 가닥 희망은 소도도 등의 생존이었건만, 지금 그 희망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진상상만 죽지 않았군?”

운청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대로일세. 진상상은 진가의 후계자인데도 동영 난쟁이족과 결탁했으니, 지, 진가의 사람이 나설 것이네.”

태상 장로의 말이 끝나는 순간, 운청휘의 전신에서 짙은 살기가 치솟았다.

운청휘가 한 손을 가볍게 휘두르니, 공원의 힘이 묵안유와 묵해를 감쌌다.

이윽고 운청휘가 두 사람을 데리고 모습을 감추자, 태상 장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예 주저앉은 이들도 있었다.

콰르릉!

공작보루를 떠난 운청휘는 상공으로 날아오르며 손뼉을 쳤다. 그 순간, 창공에서 하늘을 가릴 듯 거대한 손이 나타나 그대로 공작보루를 짓뭉개 버렸다.

운청휘는 멈추지 않고 영라 반지에서 흉수의 마종을 꺼내 공작성 전체에 흩뿌렸다.

열여덟 개의 마종이 흩어지며 십팔나생문을 이루었고, 공작성 전체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묵해와 묵안유가 겁에 질려 지켜보는 가운데, 운청휘는 멈추지 않고 수억 생령의 목숨을 거두었다!

“공유, 대붕왕, 홍인왕, 풍인왕, 진인왕, 나인왕, 초인왕!”

운청휘가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네놈들에게 무엇이 선제의 분노인지 알려 주마!”

“아아아……!”

공작성을 뒤흔드는 비명이 요란했다. 공작족이든, 그들에게 충성하던 요족이든 가리지 않고 전부 피 안개가 되어 연화되었다.

공작성의 생령이 반 이상 사라졌을 때, 49개의 핏줄기가 운청휘의 몸으로 스며들어 왔다.

그 순간, 묵안유와 묵해는 두피가 찌릿할 정도의 한기를 느꼈다. 그들 곁에 있는 운청휘가 시체 더미에서 기어나온 악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윙윙윙…….

참천신검이 울음소리를 냈다.

“아직 부족하다! 붕성과 공작성은 시작일 뿐!”

그러나 운청휘는 스산한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비록 선제의 의지로 억누르고 있다지만, 그는 조금씩 업장에 침식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묵안유와 묵해가 한순간 운청휘에게서 악귀를 떠올린 것이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수억의 생령들이 사는 두 성을 소멸시켰으니, 얼마나 많은 업장이 묻었겠는가?

운청휘는 여전히 선제의 의지로 업장을 억누르며, 묵안유와 묵해를 데리고 북영의 전송진으로 떠났다.

비명조차 사그라들어 적막함이 내려앉은 붕성.

그 가운데 전송진만이 금빛을 번쩍였다.

그 후, 교룡왕이 전송진을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럴 수가, 이…… 이게 붕성?”

교룡왕이 눈을 부릅떴다. 사방이 피 안개로 가득한 데다, 한 점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급히 허공으로 날아가 붕성 전체를 훑어보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피바다만이 펼쳐져 있었다.

“이것이 운청휘의 솜씨란 말인가?”

교룡왕은 절로 드는 한기에 몸을 떨었다.

운청휘가 ‘구연선결’을 전수하고 떠난 뒤, 교룡왕은 이 무공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뒤로 갈수록 구결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까지 수련할 수 있는 무공이다. 간단한 이해로는 익힐 수 없는 무공이 당연했다.

이를 깨달은 교룡왕은 뒤늦게 후회했다. 그는 운청휘와 일회성 거래를 하고 말았다.

만약 그가 소도도 일행이 떠날 때 말렸더라면, 혹은 그들과 함께 떠나기라도 했다면 운청휘와의 사이가 이처럼 멀어지진 않았을 터였다.

더불어 운청휘는 이제 서로 빚이 없다고 말했으니, 가르침을 구할 수도 없었다.

교룡왕은 한발 늦게 운청휘를 뒤쫓았다. 가능하면 그와의 사이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가 붕성에 도착해 본 광경은 참상뿐이었다.

“대붕왕이 이 사실을 알면 미치려 하겠군.”

교룡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복수하려는 거겠군, 운청휘는. 잠깐, 복수라면…….”

교룡왕의 두 눈이 번쩍였다.

“공작성으로 가야겠군!”

교룡왕은 신속하게 전송진으로 향했다.

한 줄기 빛이 반짝인 후, 그는 공작성에 도착했지만 보이는 광경은 붕성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늦어도 단단히 늦은 것이다.

교룡왕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인왕이 된 후로 이리 두려웠던 적이 있었던가?

운청휘가 그의 거처에서 떠나고 이 각도 지나지 않았건만, 수억의 생명을 죽이고 두 개의 성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다음은 일곱 인왕들인가…….”

교룡왕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 순간, 그는 죽어간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짙은 후회에 잠겨 있었다.

만약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운청휘의 동료들을 지켜낼 터였다.

그리하면 운청휘에게 빚을 지우고, 심지어 그의 동료로 인정받을지도 몰랐다.

“만약 본왕이 이 소식을 전한다면…… 이는 운청휘의 뜻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교룡왕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영주 전체에 소식을 퍼트려야겠군. 그래야 운청휘가 원하는 대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교룡왕은 황급히 아공간 반지에서 회상정(回想晶)을 꺼내들었다.

그는 공작성의 참상을 모두 회상정에 기록했고, 붕성으로 돌아가 그곳의 참상도 새겨 두었다.

이후 백룡성으로 돌아오자마자, 교룡왕은 공적경와 반절 인왕경의 족속들을 불러모았다.

“그대들에게 본왕이 임무를 내리지. 가능한 한 빨리, 운청휘가 붕성과 공작성을 궤멸시켰음을 영주 전체에 알리게. 여기, 회상정에 그 참상이 기록되어 있으니 이대로 퍼트리도록. 반드시, 우리 교룡족의 이름으로 이 소식을 널리 알려야 한다!”

교룡왕의 말은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수런거린 것도 잠시, 그들은 신속히 교룡왕의 명을 받들었다.

일각 후, 백룡성은 영주 각지로 향하는 전송진을 모두 가동했고 회상정을 지닌 교룡족들이 앞다투어 영주 각지로 전송되었다.

“자네, 들었나? 운청휘가 드디어 나타났다는군. 그뿐만이 아닐세. 붕성을 완전히 소멸시켰다지? 게다가 공작성도 같은 꼴을 당했다더군!”

“정말? 운청휘가 그렇게 간이 크다고?”

“진짜일세! 이 소식을 교룡족들이 나서서 전하고 있다네!”

“어이구, 놀래라. 교룡왕이 퍼트린 회상정의 내용을 봤는가? 그런 참상은 처음 봤다네! 운청휘가 아무리 분노했다 한들,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

“그뿐만이 아닐세. 교룡족의 말에 따르면, 다음 표적은 다섯 인왕이라더군!”

“운청휘가 잔뜩 겁을 먹고 몸을 숨긴 줄 알았는데, 이런 참상을 벌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

온 영주가 운청휘의 이야기로 들끓었다.

크고 작은 성을 막론하고, 대화의 주제는 모두 운청휘였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이들도 교룡족이 회상정을 보여 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성을 궤멸시키는 일은 영주 역사상 종종 일어났지만, 몇만 명이나 몇십만 명이 사는 성의 일이었다.

붕성이나 공작성처럼 거대한 성이 궤멸되고 왕의 거처까지 사라진 것은 천백 년간 유례가 없었다.

“영주에 피바람이 몰아치겠군.”

“대붕왕과 공작왕이 알면, 제대로 진노하겠는걸!”

“인왕의 분노라니, 영주 전체가 파괴될지도 모르겠어.”

“운청휘가 판을 벌려도 너무 크게 벌렸군. 그가 이후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까?”

영주를 들끓게 한 운청휘는, 이미 남영에 도달했다.

그의 지금 목표는 나인왕의 영지인 나원령(罗元岭)이었다. 그중에서도 운청휘는 똑바로 나성을 향해 날아갔는데, 나원령의 수도이자 나가의 모든 일원들이 살고 있으니 그의 표적으로 적합했다.

“음? 소문이 생각보다 빠르군.”

신식을 펼쳐 나성에서 오가는 대화를 감지하던 운청휘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교룡족이었군. 이제야 내 비위를 맞추려 들다니, 늦어도 한참 늦었다!’

운청휘의 마음속에, 교룡왕은 더 이상 사귈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미 한번 마음먹은 이상, 운청휘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터였다.

“청휘 오라버니, 이 성도 멸망시킬 것인가요?”

묵안유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끝이 보이지 않게 드넓은 나성에 향해 있었다.

이 성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이 살고 있을까.

천만? 억? 수억? 수십억?

“이곳은 인간의 성이니, 자제하겠다.”

운청휘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가는 존재할 필요가 없군.”

진인왕과 친분이 두터운 나인왕은 놓칠 수 없는 목표였다.

“누구길래 감히 나성 위를 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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