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9화
아래쪽 지면에서 호통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십여 명의 사람들이 운청휘 앞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나성의 순찰병으로, 나가 출신이자 나성의 질서를 담당하는 이들이었다.
“너희 가주가 나를 찾으려고 혈안이건만, 나를 몰라보는가?”
운청휘는 그들을 힐끗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웃기지 마라, 네놈이 뭔데, 우리 가주님을……!”
어이없다는 듯 호통을 치던 호위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네, 네놈이 운청휘냐?”
“그래!”
운청휘의 시원스러운 대답 이후, 그가 손뼉을 치니 순찰병들은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아, 운청휘는 나성에서 가장 넓은 저택의 상공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최소 수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
“과연 8대 가문에 속할 만하군. 인원이 이토록 많으니, 거의 한 성에 버금가는구나.”
운청휘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천 년 이상 이어져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규모로 가문이 번성할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뿐, 나가는 오늘 8대 가문에서 사라질 것이다.”
곧, 거대한 손이 하늘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거대한 산과 비슷한 크기였는데, 이 손이 지면을 때리니 천지가 다시 태어나는 듯 진동이 일고 거대한 구름이 나가 저택에 일었다.
나성 전체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잠시 적막이 흘렀다.
다음 순간, 만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듯한 대지의 비명이 나성을 뒤흔들었다.
콰르릉!
곧이어 나성을 둘러싼 산이 휘청거리고, 대지가 산산이 갈라지며 셀 수도 없는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나성에서 사는 이들은 대부분 선천경 이상의 무위였기에 하나둘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마치 벌집을 잃은 벌떼처럼 허공으로 날아올라 허둥거렸다.
“나, 나가가 사라졌어!”
“저기 봐, 나가 저택의 상공에 누가 떠 있어!”
“저자는… 운청휘가 아닌가!”
“헛소리, 저자는 장검을 메고 있지 않나. 운청휘의 특징과 다르다고!”
“잘 보게, 그것만 빼면 다른 특징은 모두 운청휘와 같지 않나!”
“교룡족들이 말하길, 저자가 운청휘라고 하네! 게다가 회상정으로 방금의 참상을 기록했다는군!”
“맙소사, 일장으로 나가의 저택을 소멸시켰단 말인가?”
“나가 저택은 황궁 못지 않은 규모인데, 한 번으로 소멸시켰다면…… 설마 저자가 인왕경이란 건가?”
인왕경.
그 세 글자는 사람들을 경악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만약 운청휘가 정말로 인왕경의 경지라면, 이 다음의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불가능해! 인왕경이라면 직접 영주성을 치지, 왜 번거롭게 이곳에 왔겠나!”
누군가 강하게 부인했지만, 다른 이들이 코웃음을 쳤다.
“인왕이 아니라면 최소한 그에 근접했겠지! 일장으로 나가의 저택을 평지로 만드는 걸 인왕이 아닌 누가 할 수 있겠나? 게다가 영주성부터 치지 않은 건 운청휘가 사람의 도리를 다하려는 거겠지. 그의 형제와 제자가 죽었다며? 그렇다면 나라도 일곱 왕의 본거지를 치겠네!”
“하긴, 소도도 등은 이미 처형되었으니, 당장 영주성을 찾아가 무엇하겠나. 차라리 일곱 왕의 본거지를 치겠지.”
“붕성, 공작성, 나가가 사라졌으니 다음은 어디가 될지 궁금하군!”
제각각 떠드는 소리를 무시하고, 운청휘는 묵안유와 묵해를 데리고 전송진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빼곡한 하늘은 그가 지나가자 물살처럼 갈라지며 길을 터 주었다.
개중에는 교룡족도 섞여 있었으나, 운청휘는 그들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비록 교룡족이 그를 도와 소문을 퍼트렸다지만, 이는 교룡왕의 일방적인 도움일 뿐이 아닌가.
운청휘가 전송진에 도달했을 때, 근처의 전송진이 별안간 금빛을 내뿜었다.
곧 존귀한 기품을 내뿜는 청년이 운청휘를 향해 급히 날아왔다.
소인왕, 아니, 그의 몸을 차지한 능천진선이 서둘러 예를 갖췄다.
“운제를 뵈옵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공손히 말하자, 운청휘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묻고 싶은 게 있으니, 일어나도록.”
“네!”
능천진선이 즉각 몸을 일으켰다.
“영흥제국의 황실에서 기령을 데려갔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운청휘는 말을 내뱉으며 전송진 중 하나로 향했다.
“예, 일단 소인왕에 대해 말씀드려야 설명이 가능하겠습니다. 소인왕은 영흥제국 황실의 일원인데, 소인을 만난 뒤에야 핵심 반열에 들었습니다.”
능천진선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르며 말을 늘어놓았다.
“영흥제국 황실에는 소인왕의 혼패가 있는데, 그가 사망하는 순간 혼패가 산산조각이 나지요. 이들은 소인왕의 사망을 알고 조사 겸 복수를 위해 사람을 파견했습니다. 다만 그들을 인솔하는 자가 반절 인황이라, 기령의 본체를 바로 알아차리고 영흥제국으로 끌고 갔습니다. 인원 절반은 영주성에 남겨두었는데, 두 명의 인왕이 속해 있습니다.”
능천진선의 말을 들은 운청휘는 즉시 전송진을 발동해 다른 성으로 이동했다.
“기령, 도도 등이 처음 잡혔을 때 그들을 구하러 갔나?”
전송진을 나온 운청휘가 서늘하게 물었다.
“운제는 화를 가라앉히소서!”
능천진선이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소선이 인왕경에 다다르려 할 때, 이변이 생긴 탓에 예상보다 열흘이 늦어졌습니다. 제가 기령과 소도도의 소식을 들었을 땐, 이미 소도도와 하흡이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머지라도 구하려 했지만, 영주성에 와보니 영흥제국의 사람들이 퍼져 있었고…… 저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어 숨은 것입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라면 영흥제국의 사람이 없어도 기령 등을 구할 수 없었겠군. 다만 이변이 생겼다니, 무슨 뜻이더냐?”
신식으로 확인했을 때, 능천진선은 어떠한 관문도 마주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능천진선이 말하는 ‘이변’이 신경 쓰였다.
“운제께 아뢰옵니다. 이 이변이란 소선에게 직접 일어난 것이 아니라…….”
능천진선이 황급히 운청휘와 헤어진 이후의 일을 풀어놓았다.
소인왕의 육체를 차지한 능천진선은 별다른 의심을 사진 않았지만, 운청휘에게 투항한 모습으로 비쳤다.
그때의 운청휘는 일곱 왕에게 쫓겼고, 능천진선은 도울 능력이 없어 산맥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반나절 후, 능천진선이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강림했다.
난쟁이족의 가토왕이었다!
그는 중상을 입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신식으로 기를 차단한 능천진선을 발견하지 못했다.
능천진선은 꼬박 열흘에 걸쳐 가토왕이 감지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고, 다른 장소에서 수련하여 인왕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가 부상을 입었다? 얼마나 심각했지? 지금도 그 산맥에 있나?”
운청휘의 눈이 트이며 질문을 퍼부었다.
“상처는 심했지만, 실력 발휘에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소선이 보기엔 치료에 약 20일 정도가 걸릴 테니, 지금도 그 산맥에 있겠지요.”
능천진선이 자신의 추측을 내놓았다.
“당시 운제께서 일곱 왕의 추적을 벗어나셨을 때, 일곱 왕이 가토왕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 연합하여 공격했습니다.”
운청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잠깐 동맹을 맺긴 했으나, 인간이든 요족이든 난쟁이족을 원수로 여기는 건 마찬가지다.
목표인 자신이 사라졌으니 저절로 화살이 난쟁이족에게 돌아가는 것도 마땅했다.
“계획을 잠시 늦춰야겠군.”
운청휘의 마음속에 가토왕을 사냥할 생각이 자리 잡았다.
“본제를 가토왕이 치료하고 있는 곳으로 데려가도록.”
“네, 운제!”
능천진선이 운청휘의 계획을 짐작한 듯, 황급히 명을 받들었다.
이어서 그들은 능천진선의 안내에 따라 십여 개의 전송진을 돌고 돌았다.
마침내 상고 전쟁터에 근접한 성에 도달했을 때, 능천진선이 앞장 서서 그들을 안내했다.
그의 뒤를 따라가며, 운청휘는 생각에 잠겼다.
‘가토왕의 무위를 삼킨 뒤의 일곱 왕과 영흥제국의 인왕을 상대한다면, 승산이 있겠군.’
이때, 영주성.
본거지가 소멸한 것을 깨달은 대붕왕과 공작왕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들은 얼굴에 핏발이 선 채 황급히 북영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본거지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마주한 건 운청휘가 쓸고 지나간 참상이었다.
수백 년간 번성했던 성이 피바다가 되어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한동안 멍하니 상공에 떠 있었다.
“으아아악!”
한참 뒤, 붕성과 공작성의 상공에서 하늘을 찢을 듯한 고함이 터져나왔다.
“운청휘, 본왕이 네놈을 갈기갈기 찢고 영혼마저 열화에서 타오르게 해 주마! 으아아아!”
“본왕은 네놈을 고통스럽게 죽일 뿐만 아니라, 네놈과 관련된 모든 이를 죽일 것이다! 으아아!”
두 요왕의 고함이 울릴 때마다, 강대한 법원의 힘이 뻗어 나와 억만 장의 대지를 파괴했다.
이들의 분노는 영주 곳곳에 전달되었고, 누구나 곧 큰일이 일어날 것을 직감했다.
특히나 인간들은 두 요왕이 인간에게 분풀이를 할까 근심에 잠겼다.
본거지가 파괴되었으니, 공작왕과 대붕왕이 이제 무엇을 더 잃겠는가? 더 잃을 것이 없는 이처럼 무서운 자가 없었다.
다섯 왕도 슬슬 조급해졌기에, 그들은 친히 두 요왕을 설득하러 나섰다.
영주성의 전송진 밖.
다섯 인왕이 두 요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전송진에서 금빛 줄기 두 개가 퍼져나오더니, 대붕왕과 공작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붕왕, 공작왕, 우선 분노를 가라앉히시오. 우리가 반드시 최단 시간에 운청휘를 잡겠다고 약속하리다!”
가장 앞에 선 나인왕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설득하려 했다.
8대 가문 중 나가는 인원이 많은 편에 속했기에, 다른 인왕들보다 이 일에 관심이 많았다.
“대붕왕. 이것을 받게. 천심옥(天心玉)으로 인왕이 이것을 가지고 수련하면 사도에 빠지는 위험을 줄일 수 있지.”
미소를 머금은 나인왕이 신성한 기운을 풍기는 옥 하나를 대붕왕에게 내밀었다.
이를 본 네 왕의 눈이 이글거렸다. 천심옥은 그들에게 있어 가치가 엄청난 보물이었건만, 나인왕이 기꺼이 대붕왕에게 내놓은 것이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재산이 많은 나인왕이니, 이러한 방법으로 두 요왕의 화를 풀어줄 수 있었다.
“공작왕, 이것은 본왕이 상고 전쟁터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네. 마침 이 무공의 이름이 ‘공작심경(孔雀心经)’이니, 자네를 위한 무공이 아니겠는가!”
이번에는 나인왕이 공작왕에게 고서 한 권을 건넸다.
일찍이 공작왕이 5백만 근의 선천영액으로 사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던 무공이었기에, 공작왕에게는 의미가 클 터였다.
‘집안이 크고 재산이 많은 게 꼭 좋은 일은 아니군.’
네 왕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붕왕, 공작왕, 가세. 우리 왕들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오늘 기분을 푸세. 겸사겸사 최단 시간 내에 운청휘를 어떻게 잡을지도 논의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