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화
나인왕이 두 요왕을 격려하며 다른 네 왕 쪽으로 이끌었다.
인간 왕들도 서둘러 웃음기 어린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나인왕의 말이 옳네. 우선은 운청휘를 어떻게 잡을지부터 논의해 보세.”
나인왕의 두 보물은 대붕왕과 공작왕의 분노를 다소 가라앉힐 수 있었다.
나인왕은 그들이 오기 전에 호화로운 연회 준비를 해 두었고, 그의 인도로 곧 연회장에 도착했다.
“대붕왕, 본왕은 그대가 좋은 술을 좋아한다고 알기에 영흥제국에서 ‘천년후아주(千年猴儿酒)’를 구입했다네.”
각자 자리를 잡은 후, 나인왕이 대붕왕에게 술을 권했다.
천년후아주는 값도 값이지만, 오직 영흥제국에서만 살 수 있는 귀한 술이었다.
이 작은 한 잔의 가치가 백만 명이 1년을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공작왕, 그대는 채식을 한다고 들었네. 이것은 천해 저편에서 건너온 식물이니 한번 맛을 보게나.”
나인왕이 젓가락으로 채소를 집어 공작왕에게 건넸다.
이 채소는 영주에서는 흔했지만, 천해 저편에서 자라는 것은 한 포기가 만년 영약과 견주는 가치를 지녔다.
‘이번 일이 끝나면 출산을 제한하는 가칙을 정해야겠네. 모든 직계 자제는 최대 두 명의 자손만 낳을 수 있고, 방계 자제는 한 명으로 제한하세! 나인왕이 인원수만 믿고 저리하니 참으로 꼴사납군!’
네 인왕이 속으로 불만을 품은 채, 눈빛을 교환했다.
두 요왕에게 아첨을 떠는 비굴한 나인왕의 모습이 인왕으로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연회가 막 시작되려 하는데, 하늘에서 중년인 한 명이 급히 떨어져내렸다.
일곱 왕의 시선은 자연히 중년인에게 향했다.
그는 나가에 소속된 반절 인왕경이었다.
한창 대붕왕과 공작왕의 심기를 맞추고 있는 나인왕으로서는 불청객이 따로 없었다.
그가 곧 얼굴을 붉히고 준엄하게 호통을 쳤다.
“나렵(罗猎)! 본왕이 다른 왕들을 대접하는 자리이거늘, 이 무슨 체통 없는 짓이냐!”
“가, 가주님! 큰일입니다! 나가 저택에 있던 수백만 명이 운청휘에게 몰살당했습니다!”
나렵은 허둥지둥하며 가까스로 말을 내뱉었다.
“뭐라고?!”
모든 왕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나인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 다시 말하거라! 뭐라 했느냐!”
나인왕은 하마터면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삼천 장 바깥에 있던 나렵을 작은 새처럼 잡아챘다.
“나, 나가의 사람들이 전부 운청휘에게 죽었고, 나가 저택도 폐허가 되었습니다!”
나렵이 울분을 참지 못하며 고했다. 그렇게 죽은 수백만 명 중에는 그의 자손도 있기 때문이다.
“운청휘!”
마침내 분노를 이기지 못한 나인왕이 포효했다.
그 소리는 영주성 전체로 퍼졌고, 연회장의 가구들은 무수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고운 바위가 깔린 호화로운 바닥도 갈라지며 수십만 장의 대지에 거미줄 같은 금이 새겨졌다.
나렵과 인왕들을 제외하면, 연회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방금의 포효로 목숨을 잃었다.
“나인왕, 화를 가라앉히게나. 우리가 최단 시간 내에 운청휘를 사로잡겠다고 보장하겠네!”
한 손에 천심옥을 든 대붕왕이 느긋하게 말했다. 나인왕이 방금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대붕왕의 말이 맞다네. 자네 우선 화를 가라앉히고 우리가 어떻게 운청휘를 생포할지 논의를 해보세.”
공작왕도 거들었는데, 음침하게 가라앉았던 얼굴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대붕왕, 공작왕, 그대들은 본왕과 싸우고 싶은가?”
나인왕의 눈이 독기를 띠었다.
“본왕 앞에서 말을 가리지 않다니, 정말로 본왕이 그대들을 두려워하는 줄 아는가?”
“싸운다면 싸우겠는데, 본왕이 두려울 게 무언가?”
“본왕도 일찍부터 인간 인왕의 무게를 느껴보고 싶었다네!”
대붕왕과 공작왕이 물러서지 않고 받아치며, 하늘을 찌를 듯한 전의를 보였다.
“나인왕, 대붕왕, 공작왕, 모두 화를 풀게!”
사태가 이리되니, 네 왕이 황급히 수습에 나섰다.
두 요왕에게 아부하는 나인왕을 비웃었건만, 어느새 그들은 동시에 세 왕을 달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들은 속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원망하면서도, 서둘러 말을 늘어놓았다.
“자네들이 이곳에서 싸우면, 영주성 전체가 파괴된다네!”
“아니, 영주성 뿐 아니라, 전장이 조만간 다른 성으로 옮겨갈 것이고……오래도록 싸운다면 영주 절반이 함락될까 걱정이네!”
“부디 진정하고 대국을 살피시게! 이대로 내분이 일어난다면 운청휘의 뜻대로 되는 게 아니겠는가!”
“그 말이 맞네. 나인왕, 나가가 파괴되었다고 해도 영주성에 근거지를 두었으니, 충분히 재기할 수 있지 않은가? 대붕왕도 마찬가지네. 마배령 전체에 잔존한 대붕족이 있지 않은가! 공작왕도 화를 거두게. 마음을 가다듬으면 근심할 게 없네!”
네 왕은 속으로 그들을 욕하면서도 만면에 웃음을 띠며 설득했다.
그들의 태도가 얼마나 공손했는지, 세 왕이 그들의 조상이라도 된 듯했다.
“본왕은 참을 수 있으나, 천심옥과 공작심경을 본왕에게 돌려줘야겠네!”
나인왕이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흥, 본왕은 입에 넣은 것을 토해낸 적이 없건만, 싸우려면 싸우지 뭔 헛소리가 그리도 많은 게냐!”
대붕왕이 제일 먼저 콧방귀를 뀌었다.
“공작심경은 본디 공작족의 것이거늘 이제와 내놓으라? 꿈도 꾸지 말거라!”
공작왕도 코웃음을 치더니 바로 말을 이었다.
“싸우고 싶다면, 본왕이 응해 주마!”
“돌려줄 필요 없다네, 돌려줄 필요 없다네!”
네 왕이 황급히 말하며 우선은 요왕들을 달래고, 나인왕을 바라보았다.
“나인왕, 이 두 가지 보물은 우리가 동등한 가치의 보물로 그대에게 보상해 주겠네!”
네 왕이 말을 마치고 각자의 아공간 반지에서 보물을 꺼냈다.
“나인왕, 비록 이 네 보물의 가치가 천심옥이나 공작심경보다는 낮으나 지고한 보물일세. 우선은 이걸 받고 자중하시게.”
나인왕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주는 보물을 마다하진 않고 아공간 반지에 넣었다.
“사흘. 최대 사흘간 참겠네. 그 후에도 운청휘를 잡지 못한다면, 본왕은 영주 전체를 짓밟을 걸세!”
나인왕이 흉흉한 말을 내뱉었다.
평소라면 이 네 가지 보물이 그를 흡족하게 할 테지만, 지금은 그를 며칠 자중하게 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본왕도 사흘 후 운청휘를 잡지 못한다면 무력을 동원하여 영주를 짓밟겠네!”
“본왕도!”
대붕왕과 공작왕도 덧붙였다.
“알겠네, 사흘 동안 우리가 전력으로 운청휘를 찾아보겠네!”
네 왕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네, 우리가 지금 대책을 논의해 보세!”
홍인왕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운청휘의 목적은 우리의 본거지부터 시작하여 보복하는 걸세. 이미 세 왕의 본거지가 당했으니, 다음은 우리 넷 중 하나겠지. 그중 가장 먼저 공격할 곳을 찾아야 하네!”
홍인왕의 말은 모든 왕의 찬성을 받았다.
초인왕이 이어서 말했다.
“본왕의 영지가 나원령 옆에 있으니, 운청휘의 다음 행선지는…… 본왕의 영지일 테지!”
“가능성이 크군!”
곧 누군가 말했다.
“다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전력을 초인왕의 영지에 둘 수는 없네.”
곧바로 진인왕이 나섰다.
“초인왕은 우선 영지로 돌아가시고, 본왕도 돌아가겠네. 홍인왕과 풍인왕도 마찬가지네. 네 군데 모두 인왕이 지키고 있으면 운청휘도 날뛰지 못하겠지!”
나인왕, 대붕왕, 공작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셋은 영주성에 남겠네. 운청휘가 자네들 중 하나의 영지에 나타나면 제일 먼저 우리들에게 알려 주게!”
나인왕이 살기를 지우지 않으며 흉흉하게 말했다.
“사흘을 기다리겠네. 사흘 뒤에 운청휘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운청휘를 찾겠네!”
“또한, 소도도와 진관해를 정말로 죽이고 말겠어! 그 후엔 소식을 퍼트리지도 않을 걸세. 그들을 죽인 후에 바로 운청휘를 찾을 테니!”
대붕왕과 공작왕이 연이어 말했다.
나인왕은 찬성한 듯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는 지금 두 요왕과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 * *
부드러운 달빛이 내려앉으며, 하늘에 희고 고운 비단을 드리웠다.
길게 이어진 산맥에서는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퍼져, 적막을 깨트렸다.
온 영주를 들끓게 한 운청휘가, 이 산맥의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운제, 이곳이 가토왕이 폐관하던 산맥입니다.”
능천진선의 공손한 안내가 따르자, 운청휘는 단번에 신식을 내뿜어 산맥 전체를 덮었다.
곧 그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산맥 바깥에 모여 있는 짐승들 외에,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능천진선도 신식을 방출했으나, 그의 신식은 산맥의 3분의 1을 덮는 데 그쳤다.
“운제, 가토왕이 이미 떠났습니까?”
능천진선이 물었다.
“그건 아닌 것 같군.”
운청휘가 별안간 신식을 아래로 이끌었다.
우선 지하 삼백 장을 샅샅이 훑었고, 수확을 거두지 못하자 점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게 좋을 거다.”
어느덧 신식이 지하 2천 장에 이르렀을 때, 가토왕의 모습을 감지했다.
가토왕은 지하에 숨었을뿐만 아니라, 주변에 기를 숨기는 진법까지 겹겹이 설치해 두었다.
운청휘가 신식을 가졌으니 망정이지, 신식이 없었다면 인황이 와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으리라.
“내려가지!”
운청휘는 곧장 묵안유와 묵해를 데리고 지하로 파고들었따.
능천진선이 황급히 뒤를 따랐고, 곧 그도 신식으로 지하 2천 장 아래에 숨어 있는 가토왕을 찾아냈다.
‘역시 운제시로군. 신식의 범위가 이렇게나 넓다니!’
능천진선이 속으로 감탄했다.
“운제, 소선이 그를 나오게 할까요?”
능천진선이 조심스럽게 청했다.
묵안유와 묵해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이자는 누구길래 스스로를 소선이라 부르며, 운청휘를 운제라 칭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