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6화
운청휘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대붕왕을 쥐고 있던 거대한 손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대붕왕의 거대한 몸집도 빠르게 줄어들더니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맑고 투명한 마종이 운청휘에게서 대붕왕을 향해 쇄도했다.
“그만!”
그 순간, 창공을 가르며 20여 세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더욱이 두 개의 신형이 함께 나타나며 신속하게 운청휘에게 다가왔다.
“도심종마대법은 천도에 위배되며 마성이 과중하기에 풍무극광이 3천 년 전에 봉인했다.”
청년이 운청휘를 보며 준엄하게 말했다.
“그대가 그 무공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나, 지금부터 그 무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하게!”
“나에게 말하는 것인가?”
눈앞의 청년은 풍채가 좋고 준수하며, 상쾌한 느낌을 주었지만 운청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운청휘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하대하며 명령했기 때문이다.
저절로 운청휘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곳에 도심종마대법을 수련한 사람이 그대 빼고 또 있겠는가?”
청년이 웃으며 운청휘를 바라봤다.
“향(向)인왕!”
“양(杨)인왕!”
초인왕, 나인왕, 공작왕이 단번에 청년 쪽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세 명을 향해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않았는데, 개중 향인왕과 양인왕은 영흥제국 황실에서 보낸 자들이었다.
“그대는?”
세 왕이 가운데에 있는 청년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분명 청년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인왕경의 것이었지만, 낯선 얼굴이었다.
“부소 공자!”
멀리서 경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능천진선과 대전을 벌이던 진인왕, 홍인왕, 풍인왕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청년에게 날아와 예를 갖췄다.
“부소 공자, 인왕에 도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오늘 뵈오니 진짜 그렇군요!”
“스무 살에 인왕경이라니, 천성대륙의 역사에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부소 공자의 재능이 출중하여 당대에 으뜸이니, 약관에 인왕경이 되는 것도 당연하지요!”
청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오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가볍게 예를 갖춰 보였다.
“선배님들, 과찬이십니다!”
“부소 공자? 젊은 세대, 8대 공자의 우두머리인 부소 공자?”
초인왕, 나인왕, 공작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바로 소인입니다!”
청년이 싱긋 웃으며 자신을 낮추었다.
초인왕과 나인왕이 얼른 진인왕에게 음을 보냈다.
-진인왕, 그대들은 왜 이렇게 부소 공자를 공경하는가?
공작왕도 홍인왕에게 음을 보냈다.
-부소 공자에게 다른 배경이 있는가?
겨우 스무 살에 인왕경이라면, 천부적인 재능은 천하무쌍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능이 출중하다는 이유로, 다른 인왕이 그를 깍듯이 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부소 공자의 가문이 숨은 가문이고…… 우리 영주에 자리잡고 있다네!
진인왕이 음을 보냈다.
-부소 공자 배후의 세력은 영주에 수천 년 동안 뿌리를 내린 숨은 가문일세!
홍인왕도 공작왕에게 음을 보냈다.
‘숨은 가문이라…….’
세 왕이 문득 숨을 들이켰다.
숨은 가문. 다른 인왕들이 이리도 공손히 나올 정도라면, 숨은 가문이라는 글자만으로도 설명이 충분할 터였다.
‘영흥 황실에서 보낸 두 인왕이 부소 공자 뒤에 있구나!’
세 왕이 각각 결론을 내렸다.
“운청휘, 대붕왕을 풀어주고 도심종마대법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본 공자는 그대가 도살한 죄를 용서해 주마!”
부소 공자가 운청휘를 향해 다시금 명령했다.
평온한 기색이었지만, 저절로 무릎을 꿇게 할 만큼 위엄이 서려 있었다.
“대붕왕은 저들과 함께 내 형제와 제자를 참살했다. 한데 고작 말 한마디에 그를 풀어주란 말이더냐?”
실눈을 뜬 운청휘가 입술을 핥았다.
“게다가, 도심종마대법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하라?”
부소 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휘는 가늘게 눈을 뜨고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대의 형제, 제자 등이 죽지 않았으며, 일곱 왕에게 죽은 것은 모두 희생양들이었다네.”
부소 공자가 말했다.
“사람을 시켜 그대의 친구를 염성으로 데려오고 있으니, 지금쯤 오고 있겠군.”
운청휘가 대붕왕에게 시선을 주었다.
“사실인가?”
“부…… 부소 공자의 말이 맞네, 소도도 등은 죽지 않았어!”
대붕왕이 마치 생명줄이라도 잡는 듯 황급히 말했다.
“우리는 소도도 등이 처형된 이후 그대가 나타나지 않을까 봐 우선 희생양으로 숫자를 맞췄다네. 만약 그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때 또 위협하려고 했다네.”
“운제!”
이때, 능천진선이 운청휘를 향해 다가왔다.
그가 나타나자 영흥제국의 두 인왕이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운청휘, 그대의 친구가 죽지 않은 것을 알았으니, 대붕왕을 풀어주게!”
부소 공자가 재차 명령했다.
“서두르지 말도록. 그들을 본 후에 말해도 늦지 않다.”
운청휘가 어깨를 으쓱였다.
눈에 선연했던 한기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알겠네!”
부소 공자가 선선히 승낙했지만,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 뒤에 있는 소인왕은 영흥제국의 사람이라네. 영흥제국의 두 친구에게 넘겨주게나.”
“서두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들을 본 후에 모든 것을 논하겠다.”
운청휘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부소 공자, 당신의 신분으로 땅강아지 따위와 조건을 논하십니까?”
두 영흥제국의 인왕이 말했다.
그들은 부소 공자에게 말했으나, 주위의 왕들과 운청휘는 그들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었다.
“본 공자는 화목을 으뜸으로 생각하니, 손을 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죠.”
부소 공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상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운청휘의 신식은 부소 공자의 눈동자에 한순간 머물렀던 분노를 감지해내었다.
“부소 공자의 마음씨에 소인, 탄복했습니다!”
“역시 그 가문 출신이군요. 양 아무개는 많은 사람에게 탄복하지 않는데, 부소 공자는 그중 하나입니다!”
영흥제국의 향인왕과 양인왕이 모두 탄복한 얼굴로 봤다.
부소 공자는 그저 가볍게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늘 아래.
염성의 군중들은 전투가 중지된 것을 보고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이상해, 방금 전에는 죽을 듯이 싸웠는데, 어째서 멈춘 것이지?”
“눈치채지 못했는가. 저기 흰옷을 입고 비범해 보이는 청년이 보이나? 대전이 멈춘 것은 바로 저 사람 때문이네.”
“저자가 누구인데? 설마 또다른 거물인가?”
“내가 비록 처음 봤지만 이름은 일찍이 들었는데, 8대 공자의 우두머리인 부소 공자라네!”
“뭐라고? 절세의 무위와 수양, 기질로 일곱 공자들을 굴복시킨 부소 공자?”
“부소 공자를 제외하면 누가 진정한 공자겠는가!”
“소문에 의하면 부소 공자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푼다고 하는데 오늘 보니 명불허전이구나!”
“부소 공자는 인왕의 전투가 무고한 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왕들을 말리는 것이야!”
어느새 사람들의 관심은 부소 공자에게 쏠렸다.
어느 한 사람도 부소 공자를 칭찬하는 데 아낌이 없었으며, 모두의 얼굴에 감탄이 가득했다.
비록 부소 공자의 신분이 감춰져 있고 그의 배경을 아는 사람이 없다지만, 이는 부소 공자를 추앙하는 데 어떠한 걸림돌도 되지 못했다.
“15살에 출세한 부소 공자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일을 했다지?”
“오늘만 봐도 우리들을 위해 인왕의 전투를 화해시켰으니, 부소 공자의 인품을 알 수 있겠네!”
점점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가운데, 남영 주루 부근의 전송진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곧 십여 명의 사람들이 여자 둘과 남자 셋을 압송한 채 전송진에서 나왔다.
내내 신식을 내보내 전송진을 신경쓰고 있던 운청휘는 곧바로 일행과 함께 전송진으로 날아갔다.
이들이 압송해 온 이들은 바로 소도도, 진관해, 진상상, 하흡, 그리고 소엽이었다.
“도도, 관해, 괜찮은가?”
운청휘의 몸에서 공원의 힘이 솟아나 다섯 사람을 공중에서 받았다.
“작은 고생을 했을 뿐, 큰 부상은 없다네!”
소도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으나, 그대로 운청휘에게 달려들어 그를 껴안았다.
“운 형제여, 요 며칠간 걱정하게 만든 것을 아는 겐가!”
소도도의 말투는 변함이 없었지만,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운청휘를 본 순간, 모든 고초가 잊혀지고 실로 든든했던 까닭이다.
“운 형제, 한 가지 일이 있는데…… 어,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구려!”
소도도가 갑자기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나 때문에 기령도 일곱 왕에게 잡혔는데, 며칠 전…… 영흥제국의 사람에게 끌려갔다네.”
“도도,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야…….”
진상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가 진인왕을 과소평가했어. 내 목숨으로 도도를 핍박하여 어린 신동이 함께 잡혔다네.”
“지금은 이것을 말할 때가 아니다.”
운청휘가 고개를 저으며 두 사람의 죄책감을 잘라내었다.
이윽고 운청휘가 진관해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