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화
“듣자 하니 공작족은 가장 아름다운 종족 중 하나인데, 네 새털을 모두 태워버리면 어찌 될까?”
청연지심화가 태우지 못할 물질이 얼마나 될까. 오색찬란한 깃털에 청색 화염이 옮겨붙는 순간, 공기 중에 타는 냄새가 훅 끼쳤다.
“아악! 운청휘, 네놈이 감히! 본왕이 네놈의 구족을 멸하고 말겠다! 멈춰, 멈추지 못하겠……!”
공작왕이 비명을 지르며 끔찍한 포효를 내질렀다.
운청휘는 꿈쩍도 하지 않으며, 비릿한 미소만을 내보였다.
“날 배신하고 죽이려 들었는데, 어찌 네놈을 용서할까? 내 구족을 멸한다? 하하, 죽음을 재촉하는군!”
운청휘의 역린을 건드렸으니, 공작왕의 최후는 결정되어 있었다.
청연지심화의 불길이 더욱더 거세지더니, 공작왕의 전신을 뒤덮었다.
오색찬란한 깃털은 온데간데없고, 새카만 몸뚱이만 남아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목숨을 끊으려고? 내 허락 없이는 불가하다.”
운청휘가 차디찬 웃음을 흘렸다.
이제 시간 낭비는 끝났다. 운청휘에게는 적을 끝까지 괴롭히는 흥미도 없었고, 공작왕에게 충분한 치욕을 주었으니 이걸로 족했다.
별안간 운청휘의 손에서 마종이 나타나더니 공작왕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다음 순간, 잽싸게 마종을 낚아챈 운청휘는 그대로 공작왕을 발로 차 떨어뜨렸다.
공작왕의 숨은 붙어 있었지만, 무위를 상실했으니 한 마리 닭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부소, 이런 촌극을 보고도 나타나지 않는 건가?”
운청휘가 허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부소 공자는 불바다에 빠진 후 모습을 감췄는데, 운청휘가 보기에 그가 이리 쉽게 목숨을 잃을 리 없었다.
한동안 기다려도 반응이 없으니, 운청휘가 실소를 흘렸다.
“정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가 끌어내는 수밖에.”
일곱 왕 중 두 요왕이 죽었고, 진인왕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는 지금 전성기 때 무위의 삼 할도 발휘할 수 없을 터였다.
다른 네 왕은 진인왕처럼 심각하진 않았지만, 모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운청휘는 첫 목표를 그로 정한 후, 손을 내밀었다. 단번에, 진인왕이 끌려들어와 운청휘의 손아귀에 붙들렸다.
“죽이기 전에, 한 가지 묻겠다.”
운청휘의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린 진상상을 상고 전쟁터에서 발견했다고 들었다. 막상 상고 전쟁터에 가 보니 인왕도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었는데, 진상상은 어찌 살아 있었는가?”
“살려 준다면 나…… 나는 상상의 신분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말하겠네!”
진인왕이 다급히 말을 내뱉었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도록.”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고 전쟁터에서 발견한 건 사실이라네! 다만 내가 주워온 게 아니라, 중상을 입은 노파에게서 빼앗았지. 그때 함께 가져온 것이 이 옥패일세.”
진인왕이 말을 마치더니 목에 걸려 있던 옥패를 벗었다.
“응?”
운청휘의 얼굴이 굳었다. 신식으로 살폈을 때도 발견하지 못했던 옥패니,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수…… 순양선옥(纯阳仙玉)!”
다음 순간, 운청휘가 눈을 부릅떴다.
순양선옥. 선계에서도 천하제일의 옥으로 불리는 광물. 선인들이 이 순양선옥을 가지고 수련하면 ‘선전(仙田)’의 품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수련 속도가 두 배 이상 증가한다.
물론 이는 순양선인 이하의 선인에게만 유효했고, 전성기의 운청휘에게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더불어, 순양선옥은 보통 사람에게도 장식품에 불과했다.
이는 범인의 ‘선전’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보아하니 도도와 상상의 부모는 적어도 한쪽은 순양선인이겠군…….”
운청휘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상상과 소도도. 두 사람에게는 각각 혈맥 문신이 있었다.
이는 그들의 3대 조상 중 진선이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특히 부모 세대가 진선 이상이어야 했다.
진상상과 함께 발견했다는 순양선옥을 보며, 운청휘는 두 사람의 부모 중 한쪽이 순양선인이라 확정했다.
선계에서라면 순양선인은 일방의 지배자라 불릴 수 있었다.
‘그들이 인간 세계에 건재할지는 미지수로군.’
운청휘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게다가 순양선인의 후손이 어떻게 천성대륙에 나타났단 말인가?’
운청휘에게도 천성대륙은 점점 신비한 장소가 되어 갔다. 이곳이 정말 평범한 인간들이 사는 행성이긴 한 걸까?
“운청휘, 나는 이미 상상의 신세를 말했으니, 약속을 지키고 나를 살려 주길 바라네!”
진인왕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물론!”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마종이 진인왕의 몸에 스며들었다가 운청휘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무위를 잃은 진인왕을 발로 차 떨어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운청휘, 네…… 네놈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냐!”
추락하는 진인왕의 고함이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살려 달라고 했으니 살려 두었을 뿐이다.”
운청휘가 코웃음을 치곤 나머지 왕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너희만 남았군.”
털썩!
거의 동시에, 네 인왕이 무릎을 꿇으며 운청휘를 우러러보았다.
“우, 운청휘! 우리는 투항하겠네. 마종을 심어도 되니, 부디 목숨만은 살려 주게!”
“그래도 눈치는 빠르군.”
고개를 끄덕인 운청휘가 연달아 마종 네 개를 쏘아냈다가, 거두었다.
“너희 세 사람은 살려 주겠다. 단, 홍인왕의 죄는 넘어갈 수 없군.”
운청휘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니, 무위를 상실한 홍인왕은 그 자리에서 천화에 휩싸여 불타올랐다.
순식간에 잿더미만이 남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운청휘의 동료를 이용하자는 생각을 홍인왕이 먼저 했으니, 반드시 죽여야 했다.
남은 세 왕은, 그대로 발로 차 지면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이번 전투로 아홉 개의 인왕경 마종을 얻으셨습니다!
불바다 사이에서 청연지심화의 소리가 울렸다.
일곱 왕의 마종뿐만 아니라, 영흥제국의 두 인왕도 운청휘의 마종이 되었다.
운청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로 인해, 그는 영주 전체의 두려움을 샀고, 큰 수확을 거두었다.
한편, 염성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이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 같던 인왕이 하나둘 패하고 있지 않은가.
깃털이 죄다 불타고 무위를 상실해 익힌 닭처럼 보이는 공작왕을 보고, 누가 요족의 왕이라 생각할까?
무위를 잃고 팔을 하나 잃은 진인왕은 처량한 노인이 되어 공작왕 근처에 널브러져 있었다.
인구 수억의 성을 지배하던 인왕의 말로는 참으로 쓸쓸했다.
풍인왕, 초인왕, 나인왕의 사지는 멀쩡했으나, 무위를 잃었으니 혼이 완전히 나가 버린 듯했다.
영흥제국에서 온 두 인왕은 시체도 없이 죽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영주에 큰 소란이 일겠어!”
“상고 유적에서 죽은 하인왕을 시작으로, 인왕들이 이렇게 죽은 적은 없었어!”
“오늘, 운청휘가 이렇게나 많은 인왕을 도살하다니!”
“영주의 구성이 완전히 달라질 테니, 운청휘가 영주의 지배자가 될 수도 있겠군!”
“홀로 한 주를 제압한다고? 헉!”
누군가 이 말을 듣고 숨을 들이켰다.
“운청휘 같은 절세의 인물은 영주에서도 처음이야!”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전송 옥석을 꺼내 이곳의 소식을 사방으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교룡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북영, 백룡성.
염성의 전황을 들은 교룡왕은 순간 넋이 나가고 말았다.
모든 힘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간 듯했다.
이윽고 짙은 후회가 그를 서서히 감쌌다.
“본왕이 그 당시에 어린 신동과 소도도를 보호했다면, 운청휘는 본왕의 진정한 맹우가 되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지금 교룡왕의 눈에 운청휘는 반절 인황의 존재로 거듭났고, 무위 외에도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절세 무공을 전수하는 그의 신비로움 말이다.
그런 이의 맹우가 되었다면, 절세의 복이 따로 없었을 텐데!
남영, 발길이 닿을 수 없는 비경.
백 살은 족히 되었을 노인이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별안간 그가 눈을 번쩍 뜨더니, 소매 안에서 전송 옥석을 꺼내들었다.
그는 운청휘가 상고 유적에서 만났던 구인왕이었다.
“운 공자가 홀로 일곱 왕을 제압하고, 영흥제국의 사자들을 죽였다고?”
전송 옥석에서 전해오는 소식에 구인왕은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상고 유적에서 만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한데 벌써 인왕을 죽일 실력을 갖추다니!”
한편, 폐관 수련에 집중하고 있던 운인왕도 전송 옥석을 꺼내는 참이었다.
“운 공자에 대한 소식이겠군. 부디 좋은 소식이길…….”
운인왕은 머뭇거리며 옥석을 꺼냈다.
운청휘를 돕고 싶었던 그였지만, 힘이 부족해 차마 나서지 못했다.
더욱이 이전에 교룡왕에게 함께 운청휘를 돕자고 연락했건만, 교룡왕은 거절하지 않았던가.
불만과 초조함을 안고, 운인왕이 전송 옥석을 들여다보았다.
“뭐라고……!”
곧 전송 옥석이 전해온 소식에 잠시 넋을 놓은 운인왕은 한참이 지나서야 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역시 본왕이 존경하는 후배군!”
웃음을 멈춘 운인왕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보였다.
“교룡왕이여, 운 공자의 전적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물론 교룡왕은 한발 앞서 소식을 전해 듣고 땅을 치고 있었다.
영주 전체로 퍼져나간 소식으로 인해 각종 세력들도 운청휘의 전적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반응도 인왕들과 비슷했다.
“영주의 구도는 운청휘에 의해 바뀌게 된다!”
“8대 가문, 3대 요족의 시대는 드디어 끝나는구나.”
한 주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는 운청휘.
그는 아직 염성의 높은 하늘에 떠 있었다.
청연지심화의 푸른 불꽃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운청휘는 유유히 아래쪽을 훑어보았다.
“부소,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건가?”
운청휘의 부름에도 사방은 고요했다.
-주인님, 그가 분명히 안에 있는데 왜 나오지 않을까요?
청연지심화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