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1화
운청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마종의 연화에 전념했고, 4번째 마종의 연화를 마쳤을 때는 공적경 극경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일격에 인왕을 죽일 수 있었고, 수십, 수백의 수라도 문제없었다.
다만 인황을 만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터였다.
반절 인황이라도 그저 겨우 도망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운청휘는 낙담하지 않았다. 아직 영라 반지에는 다섯 개의 인왕경 마종이 남아 있으니까.
운청휘는 여섯 시진에 걸쳐 2개의 마종을 더 연화시켰다.
“마종 하나만 더 연화시키면 반절 인왕에 도달…….”
옅은 기대를 품은 채, 운청휘는 일곱 번째 마종을 꺼냈다.
이러한 수련 방식을 알게 된다면, 누구든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을 터였다.
마종으로 수련의 단계를 돌파하는 것은 보통의 상식을 위배하는 일이니, 부소 공자도 혈안이 되어 얻으려는 것이다.
다만 부소 공자는 도심종마대법을 얻더라도 운청휘와 같은 수련 속도를 보일 순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운청휘는 무위를 쌓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것이니, 힘만 충분하면 끊임없이 돌파할 수 있었다.
부소와 같은 이들은 힘을 삼키는 동시에 매 경계의 장벽을 돌파해야 했는데, 힘은 물론이고 특별한 계기가 필요했다.
이 계기 때문에 많은 무인들이 평생 고전하기도 했다.
다시 세 시진이 지나고, 일곱 번째 마종의 연화가 끝났을 때 운청휘는 반절 인왕으로 거듭났다.
반절 인왕에 도달한 순간 운청휘의 영력에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변화가 있었고, 일거수일투족에 천지를 뒤흔들 힘이 있었다.
동시에 운청휘가 원하면 천지와 융합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투력은 충분히 인황을 날려 버릴 수 있군!”
운청휘가 중얼거렸다.
“인왕은…… 손가락 하나로도 충분하다.”
이제 마종은 단 두 개만 남아 있다.
단변에 인왕경으로 나아갈 작정이었다.
운청휘가 공적경 극경일 때, 인왕경 마종을 연화시키는 데에는 세 시진이 걸렸다.
하지만 반절 인왕경에 도달한 후에는, 그 시간이 한 시진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그렇게 인왕경 마종 두 개를 동시에 연화시켰지만, 운청휘의 무위는 아직 반절 인왕경이었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인왕경으로 돌파하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겠군.”
운청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반절 인왕경에서 인왕경까지 돌파하는 데 고작 며칠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면, 누구든 믿지 않을 터였다.
보통 때라면 운청휘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영주 전체가 운청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운청휘는 영주를 움직이고 있는 가문에 대해서 가토왕에게 들은 바 있었다.
가주는 인황, 장로 여섯은 모두 반절 인왕경, 당주 열여덟 명은 인왕경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운청휘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인왕경 마종 18개면 충분할 테니…….”
부소 공자가 들었다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피를 토할 말이었다.
그는 가문의 힘까지 동원해 운청휘를 찾고 있건만, 얌전히 숨어 있어도 모자랄 운청휘는 당주들의 힘을 탐내고 있었으므로.
“여섯 장로 중 한 명만 마주쳐도 행운이군. 반절 인황의 마종이라면 더욱 빠를 테니.”
마음을 정한 운청휘는 객실의 창문을 통해 훌쩍 몸을 날렸다.
‘이곳은 운무군 경내의 성임을 들었다. 그렇다면…….’
운청휘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상고 유적에서 세 왕과 거래를 했었지. 인황으로 돌파할 계기를 주겠다고 했으니, 지금은 운인왕을 찾아 약속을 지켜야겠군.’
운청휘는 하늘로 떠올랐다.
이미 화어성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운인왕의 본거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전송진을 타는 대신, 운청휘의 신형이 하늘에서 흩어지며 날아갔다.
공적경일 때도 운청휘의 속도는 인왕경에 못지않았지만, 지금은 둔천사의 열 배나 되는 속도로 날아갈 수 있었다.
전송진을 의지하지 않고도 영주 전체를 횡단할 수 있기에, 운청휘는 삼천 장 허공에서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며 날아갔다.
수많은 산맥과 호수, 하천을 지나치며 세 시진 후.
운청휘의 신식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성이 감지되었다.
“드디어 운인왕의 본거지로군!”
운청휘는 고도를 유지한 채 성 위로 향했다.
어찌나 빠른지, 인왕경 무인이라도 운청휘를 발견할 수 없을 터였다.
‘역시나 운인왕의 본거지구나. 반절 인왕이 30여 명이나 있다니!’
운청휘는 그들을 관찰한 끝에, 모여 있는 반절 인왕경들이 운무군의 운가에서 왔음을 알아냈다.
“운인왕도 영가의 겁박을 받은 것이군.”
운청휘의 말대로, 운인왕은 운청휘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려둔 참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살펴보니, 운인왕은 수하들에게 조사를 대강하라는 명도 내렸다.
‘교룡왕에 비해 운인왕은 교류할 가치가 있군!’
운인왕의 인품에 감탄한 운청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호감을 품었다.
곧, 그가 운가 저택 상공으로 날아갔다.
위에서 보니 으리으리한 궁궐이 따로 없었다.
면적은 다른 가문에 뒤지지 않고, 일원의 수도 나가 못지않았으니까.
‘응? 운인왕 외에도 다른 인왕경의 기가 있다.’
운가 저택, 최심부에 열린 연회석상.
화려하고 진귀한 음식들이 가득 차려진 탁자 앞에, 운인왕과 낯선 인왕이 나란히 앉았다.
그러나 그들은 음식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운청휘는 확실히 도화선이겠지만, 설령 운청휘가 없어도 우리 영가는 세상에 나올 것이었다네.”
낯선 인왕이 평온하게 말했다.
“운인왕, 우리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나?”
운인왕이 약간 주저했다.
“본래 영주의 왕인 영가가 세상에 드러난다고 하는데, 어찌 이견이 있겠는가. 다만 우리가 귀순하는 것은 명분상의 문제일 뿐이네. 영주에서 영가를 도외시할 순 없을 테니.”
낯선 인왕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우리 영가에 귀순할 것인가? 운인왕, 자네가 세상 물정을 잘 안다고 말하고 싶었네!”
“귀순은 문제가 되지 않지. 본왕은 이것이 명분상의 문제라고 말했어. 다만…… 영가가 본왕에게 ‘구전실심단(九转失心丹)’을 먹게 하는 것은 너무 포악하지 않나?”
운인왕은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하려 했으나, 눈에는 한 줄기 노여움이 번득였다.
“구전실심단은 해독제를 주기적으로 복용하면 육신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네. 진정으로 우리 영가에 투항하겠다면 구전실심단을 왜 못 먹겠는가?”
차분하게 말하던 낯선 인왕의 얼굴이 천천히 흉흉해졌다.
“운인왕, 이는 요청이 아닌 명령일세. 따르지 않아도 좋지만, 그 결과로 멸족을 피할 수 없음을 유념해 두게. 본왕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으니, 어서 대답하시게!”
운인왕은 곧바로 말했다.
“영가에 투항은 가능하나 본왕이 구전실심단을 복용하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더 얘기할 수 없겠군!”
낯선 인왕의 안색이 완전히 어두워지더니 몸을 일으켰다. 곧,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가 솟구쳤다.
“그대들 영가가 너무 몰아붙이고 있지 않나!”
운인왕은 코웃음을 치며 자신도 인왕의 기세를 끌어올려 맞부딪쳤다.
카카카가……!
대청에 있던 탁자며 가구들이 죄다 충돌의 여파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영가 인왕은 흉흉한 얼굴로 소리쳤다.
“운인왕! 감히 본왕에게 반항하다니? 그렇다면, 그대와 운가 전체를 영주에서 지워버려도 원망하지 말게나!”
“그렇게 두지 않는다.”
별안간 청명한 목소리가 대청에 울렸다.
“어디에서 온 쥐새끼길래 감히 본왕 앞에 꼬리를 감추고 숨어 있느냐. 모습을 드러내라!”
영가 인왕의 호통과 함께, 법원의 힘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법원의 힘 따위가 상대가 되겠느냐?”
상공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가소롭다는 듯 외쳤다.
이윽고 영가 인왕이 내뿜은 법원의 힘은 운청휘의 손끝에서 부서져 내렸다.
“운 공자, 자네가 오다니?”
뜻밖의 등장에 운인왕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잘 알아보는군.”
운청휘는 어쩐지 흡족한 음성을 내었다.
“약속을 지키러 왔다.”
목소리와 함께, 운청휘는 허공에서 그려낸 듯 그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붉은 장포, 장발, 등에는 부적이 붙은 장검……!”
영가 인왕은 운청휘를 본 순간 무의식적으로 운청휘의 특징을 짚었다.
익숙한 느낌에 그는 아공간 반지에서 초상화를 꺼냈고, 운청휘를 알아보았다.
“네놈이 운청휘구나!”
영가 인왕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영가가 영주 전체를 뒤지고 있는 지금, 운청휘를 마주한 건 더없는 행운이었다!
‘소가주께서 말씀하시길 운청휘를 찾기만 해도 큰 공을 세우는 거라고 하셨지.’
영가 인왕의 눈에 한 줄기 빛이 났다.
‘운청휘의 종적을 발견해도 큰 공이라면, 운청휘를 생포해 갈 경우에는 아마도……!’
영가 인왕은 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당주인 그가 언제 큰 공로를 세우겠는가?
‘가주께서는 다섯 번의 공로를 쌓으면 큰 보상을 내린다고 하셨다!’
영가 인왕의 호흡이 절로 가빠졌다. 인왕경에 머무른 지 벌써 100년. 만약 가주가 그의 공을 인정해 보상을 내린다면, 필시 반절 인황으로 가는 길일 터였다.
그때가 되면 자신은 장로의 자리를 노릴 수도 있었다!
영가 인왕은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 급하게 찾을 때는 찾을 수 없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오히려 찾는 법이라고 하던가! 운청휘, 네놈이 스스로 나타났으니 이 기회를 사양하지 않으마!”
영가 인왕은 법원의 힘을 내뿜었고, 다음 순간 운청휘를 잡으려고 했다.
“잠꼬대인가? 누가 물고기고, 누가 칼자루인지 아직도 구분하지 못하는군.”
운청휘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영가 인왕과의 거리가 지척에 도달했을 때.
카득!
운청휘의 손이 영가 인왕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인왕 따위가 날 잡으려는 허황된 꿈을 꾸다니.”
싸늘한 미소와 함께 운청휘가 손에 힘을 주니, 영가 인왕의 손에서는 너무나 간단하게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