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2화
하늘을 놀라게 하고 바다를 뒤엎을 수 있는 인왕이, 힘없는 갓난아기처럼 운청휘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운 공자, 자네……!”
이 광경에 운인왕의 동공이 수축되었다.
며칠 전, 운청휘가 염성에서 벌인 일들을 들었고, 인왕을 죽일 능력이 있음을 알았지만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은 다른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쉽게 인왕을 제압하는 일이, 흔한 일이던가?
“영가는 몇 명이나 데려왔느냐? 말하도록.”
운청휘의 싸늘한 시선이 영가 인왕에게 향했다.
“네…… 네놈이 이렇게까지 강해지다니!”
그러나 영가 인왕은 동문서답할 뿐이었다.
“아……!”
다음 순간, 영가 인왕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귀가 안 들리나? 내 인내심은 길지 않으니, 또 헛소리를 하면 영혼을 뽑아내 주마.”
운청휘가 다시 물었다.
“영가가 보낸 인원을 말하도록.”
“마, 말하겠네! 나를 포함한 18명의 당주, 바, 반절 인황의 장로도 한 명 있네! 반절 인왕경은 대략 2천여 명, 공적경은 만 명이 넘네!”
겁에 질린 영가 인왕이 황급히 아는 것을 토해내었다.
“과연, 보통의 가문과 비교할 수도 없는 규모로군.”
운청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당주와 장로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지만, 반절 인왕경과 공적경의 수는 뜻밖이었다.
북영 3대 요족과 남영 8대 가문에서 끌어모아도 반절 인왕경과 공적경은 천 명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운청휘, 우리 영가는 네놈을 사지로 몰아붙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나를 풀어준다면, 소가주께 네놈을 살려 달라고 청하지!”
운청휘의 눈이 번득이는 걸 보고, 영가 인왕이 황급히 임기응변을 펼쳤다.
“물론, 소가주께서 원하는 물건을 내놓고 영가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말이다!”
운청휘는 아무 말 없이 영가 인왕을 응시했다.
속으로는 이런 얼간이가 어찌 인왕경의 경지까지 올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인왕들은 어디에 있나? 부소는? ……반절 인황의 장로는 어디에 있지?”
운청휘는 침착하게 물으려 했지만, 장로를 말할 때는 잠시나마 숨이 가빠졌다.
“네, 네놈이 왜 묻는 거냐?”
영가 인왕의 동공이 움츠러들며 물었다.
“질문을 허락한 적 없다.”
운청휘가 그를 주시하며 덧붙였다.
“내 인내심이 길지 않으니, 세 번 숨 쉴 동안 답하지 않으면 영혼을 빼내겠다.”
운청휘의 차분한 말투에 영가 인왕은 되려 소름이 돋았다.
그가 황급히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8대 가문의 수도에는 모두 인왕이 주둔했고, 운가에는 내가 왔네. 북영에도 3명의 인왕을 파견했고, 나머지 인왕도 주요 성들을 수색하고 있을 테지. 우리 소가주께서는 장로와 함께 영주성에서 소식을 기다리고 계실 거네!”
운청휘가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영가의 뜻인가?”
“그렇다, 우리 영가는 세상에 나오기로 결정했어. 운가가 비록 작으나 8대 가문이니, 우리 영가는 운가를 삼키려고 한다.”
영가 인왕이 대답했다.
“그렇다는 것은 구인왕 쪽도 누군가 갔겠군?”
운청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구인왕에게도 ‘구전실심단’을 복용하라 강요했나?”
“우리 영가의 규칙일세. 누구든 우리에게 투항하고자 하는 세력은 그 우두머리가 구전실심단을 복용해, 영가를 배신하지 않는 게 조건이네.”
영가 인왕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휘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구인왕은 비록 짧게 만났지만, 온화하고 우아한 인상이 깊게 남아 있었다.
또한 고고한 인상을 풍기던 그를 떠올려 보면, 죽을지언정 굴복하지 않을 터였다.
“운청휘, 모두 대답했으니, 나를 살려 주겠나?”
영가 인왕이 비굴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물론 속으로는 운청휘가 풀어주는 즉시 소가주에게 운청휘의 위치를 알릴 작정이었다.
인왕, 그것도 영가의 인왕이 어찌 이런 굴욕을 참고 넘어가겠는가?
애초에 풀어줄 생각도 없던 운청휘는 대꾸도 없이 그의 몸에 마종을 넣었다가 빼냈다.
다음 순간, 법원의 힘을 방출해 영가 인왕의 심장을 관통했다.
영가 인왕을 던져 버린 후, 운청휘의 시선은 운인왕에게 향했다.
“본래 계획은 이곳에서 회포를 푸는 것이었지만, 구인왕의 일이 급하게 되었군. 이것을 받도록. ‘순환진경(旬皇真经)’이라는 무공이니, 잘 익혀 선으로 가는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
다음 순간, 운청휘의 신식이 운인왕의 머릿속에 ‘순환진경’을 흘려넣었다.
품급만 놓고 보자면 교룡왕에게 준 ‘구연선결’보다는 낮았으나, 운인왕의 기질과 잘 어울리는 무공이었다. 제대로 수련한다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터였다.
반면 교룡왕에게 준 ‘구연선결’은 품급은 높았지만 그의 기질과는 맞지 않았다.
“선으로 가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운청휘가 이리 진귀한 무공을 주는 이유를 모르겠으니, 운인왕은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운청휘는 이미 대청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본왕이 역시나 사람을 잘 본 거야…….”
격동한 운인왕이 중얼거렸다.
상고 유적에서 운청휘를 도우려 했던 건 같은 운씨였기도 했지만, 인연을 맺은 후에는 운청휘가 진정 사귈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여 훗날 운청휘가 일곱 왕의 간계에 빠졌을 때, 교룡왕에게 돕자는 제안을 했으나 거절당하고 지켜만 봐야 했다.
참으로 아쉬운 일…….
콰르릉! 쾅! 콰앙!
별안간 그의 생각을 중단시키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의 저택에 있는 수십 개의 마당이 순식간에 황량한 구덩이로 바뀌었다.
-내가 영가 인왕을 참살한 일을 숨기지 말고, 널리 퍼트리도록.
그때, 운청휘가 전음을 보내왔다.
저택의 마당에 격전을 벌인 듯한 흔적을 남겨 놓고, 운인왕에게 소식을 퍼트리라 한 것은 그를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운가의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운 공자……!”
운청휘의 배려를 느낀 운인왕의 마음에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이로 인해 운인왕은 협조를 아끼지 않을 터였다.
운가 저택을 떠난 후, 운청휘는 전송진을 통해 구인왕의 본거지인 구왕성으로 향했다.
막 전송진을 나왔을 때, 그의 신식이 수십만 장 떨어진 곳에서의 전투를 포착했다.
조금 더 살펴보니 하늘에서 두 인왕이 격렬하게 충돌했고, 하늘에선 폭죽놀이라도 벌이는 듯 불빛이 화려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전투를 피해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로, 성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직 늦지 않았군.”
운청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인왕 중 한 명은 구인왕이었고,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으니까.
‘음? 영가 인왕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군. 일반인이 휘말릴 터인데.’
운청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줄곧 주의를 기울이며 전투의 여파가 일반인에게 미치지 않도록 하는 구인왕과 달리, 영가의 인왕은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조금도 거리낌 없는 기색이었다.
‘영가를 이대로 두어선 안 된다!’
운청휘의 두 눈에 분노가 서렸다.
단번에 그의 신형이 허공에서 흩어지더니, 격전이 일어나는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비록 북영 요족의 영지에서는 두 개의 성을 연달아 없애 버린 운청휘지만, 그는 한없이 인간의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무공을 배우지 않은 일반인에게 칼을 겨누는 것은 그의 원칙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구인왕, 본왕이 마지막으로 묻겠다. ‘구전실심단’을 복용하지 않을 것이냐?”
운청휘의 신식에 영가 인왕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감히 본왕에게? 얼토당토않은 소리!”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거의 화를 내지 않은 구인왕이었지만, 이 순간에는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기개가 넘치는군. 하지만 그 선택으로 그대의 일가와 구왕성의 땅강아지들은 모두 죽을 걸세!”
영가 인왕이 차디찬 웃음을 흘리며 손을 휘둘렀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법원의 힘은 고스란히 지상의 사람들을 덮쳐 갔다.
“멈춰……!”
구인왕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공격을 저지하고 싶어도, 영가 인왕이 철저히 그를 견제하는 만큼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하하, 무엇이 그리 급한가? 본왕이 선물한 불꽃놀이를 감상하시게! 수백만 땅강아지의 목숨으로 피워낼 테니!”
영가 인왕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 또한 인간이지만, 일반인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심지어 인간을 학살할 때, 그는 기괴한 쾌감을 느꼈다.
“응?”
영가 인왕이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그가 자신만만하게 휘두른 공격은 인간들에게 떨어지지 않았고, 별안간 모습을 드러낸 붉은 옷의 젊은이에게 막혀 버렸다.
그 광경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영가 인왕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소가주께서 말씀하신 운청휘?”
잠시 멍하니 있던 영가 인왕이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큰 선물을 주시다니! 본왕이 구왕성에 온 목적은 그저 구인왕을 수복하는 것인데 운청휘를 만나게 되다니!”
이때, 구인왕도 운청휘의 모습을 발견했다.
“운 공자!”
구인왕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도 운청휘가 염성에서 벌인 일을 전해 들은 터였다. 운청휘가 왔으니, 영가 인왕은 손을 쓸 수 없을 터였다!
“소가주, 소인이 운청휘의 종적을 발견했는데, 구왕성에 있습니다!”
영가 인왕은 곧바로 전송 옥석을 꺼내, 영주성의 부소 공자에게 자신이 본 것을 고했다.
-하하하, 영란(瀛兰), 아주 잘했어. 시간을 끌고 있게나. 본 소주가 영렬(瀛烈) 장로와 함께 구왕성으로 가겠네!
전송 옥석 안에서 부소 공자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네, 소가주!”
영란이라 불린 인왕이 명을 받들더니, 아래쪽의 사람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운청휘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대신, 무고한 이들을 공격함으로써 운청휘의 시간을 소비하고자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운청휘는 영란을 상대하지 않고 재차 그의 공격을 막아내며 사람들을 지켰다.
“하하하, 운청휘, 속도가 정말 빠르구나. 늦었다면, 많은 땅강아지들이 죽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