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6화
“운청휘, 우리 영가의 체면을 구기다니!”
부소 공자가 이를 악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섯 장로들은 운청휘가 허공에 남긴 글을 읽고 이를 갈았다.
“운청휘의 허세가 하늘을 찌르는군! 우리 영가가 정녕 안중에 없단 말인가?”
“흥, 감히 우리 영가를 멸문지화 시키겠다고 하다니!”
“영흥제국도 우리를 존중하거늘, 운가 조무래기가 이토록 악랄할 줄이야! 산산조각을 내지 못하면 이 한을 풀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은거가 길어지니, 세상이 영가의 악명을 잊었구나!”
그들은 앞다투어 말을 내뱉으며 전의를 불태웠다.
“응? 가주님의 말씀이 도착했다!”
장로 한 명이 품에서 전송 옥석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잠시 후, 그가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가주님께서 이곳의 일을 알고 계십니다. 매우 진노하시어, 영가의 출도를 허락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
부소 공자가 듣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좋다. 이제부터 영주 전체를 휩쓸고 모든 세력을 우리 영가에 귀순시킬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소가주. 가주님께선 운청휘의 머리를 베어 영주 전체에 명백히 처분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손에 전송 옥석을 들고 있던 장로가 말했다.
“가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운청휘는 지금 온 영주에 명성이 자자하고, 앞으로 얼마나 위세를 떨칠지 모르니 그를 이용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우리 영가의 귀환을 알리는 좋은 발판이 될 겁니다!”
다른 장로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러나 운청휘의 행적이 묘연하니 우리가 어찌 찾아내겠나?”
부소 공자가 물었다.
“중은 도망칠 수 있어도 절은 도망칠 수 없는 법입니다. 운청휘가 혈살군에서 왔다고 하니, 저희도 혈살군으로 갑시다!”
손에 전송 옥석을 들고 있는 장로가 거들었다.
“가주님의 뜻이 저희의 뜻입니다!”
* * *
영주성을 떠난 운청휘는 일곱 성을 연달아 돌았다.
마침내 혈살군과 가까운 성에 도달했을 때, 운청휘는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채아의 감정을 되찾고 채아를 되돌리면, 다른 몸과 융합하여 영주로 돌아가야겠군. 그곳에서 한바탕 소란을 벌여 주겠다.’
머릿속에 나타났던 비범한 존재의 말에 따르면, 운청휘는 모종의 잘못을 저질렀고 세 번째 봉마비만이 그 죄를 씻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세 번째 봉마비를 찾기 전까지 운청휘는 반절 인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동영 난쟁이족과 영가는 반드시 멸망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한을 없앨 수 없으니. 이를 위해서 다른 몸까지 쓰는 것이니,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두 개의 몸을 지니게 된 후.
운청휘는 가급적 두 개의 몸을 융합시키지 않았다.
이는 운청휘가 비장의 수로 다른 몸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다른 몸만 있다면 죽더라도 부활할 수 있으니, 불사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몸을 융합해 활동하다 위기를 마주쳐 죽기라도 한다면, 진정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동안 운청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기 위해 다른 몸을 보존해왔지만, 지금은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이틀을 연달아 비행한 후, 운청휘는 마침내 혈살군 변두리의 성에 도착했다.
지금의 혈살군은 천운왕조에 속해 있고, 운청휘의 사촌 형 운현이 다스리고 있었다.
‘형님께서 다른 나와 이야기하시길, 계기만 있다면 혈살군을 천운황조로 선포할 수 있다고 하셨지.’
뜻밖에도 통치자의 자질을 보이는 운현의 활약을 상기하며, 운청휘는 전송진을 탔다.
천검종에 돌아온 후, 운청휘는 가장 먼저 내성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운청휘의 부모님이 계시니, 안부를 묻기 위함이다.
눈 깜짝할 새에 내성으로 날아간 운청휘는 호화로운 저택 상공에 멈춰 섰다.
그의 신식에 수려한 중년인과 아름다운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 소자 돌아왔습니다!’
속으로 중얼거린 운청휘는 저택 마당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그의 부모님은 지금 수련 중이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이 각을 기다렸다.
두 사람이 수련을 마친 뒤에야, 운청휘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 소자 돌아왔습니다!”
운청휘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지기 무섭게, 방문이 벌컥 열리며 두 사람이 뛰쳐나왔다.
“아들……!”
아버지와 어머니가 운청휘를 끌어안았다.
명계가 천검종을 침범한 일은 천검종 내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운청휘의 부모가 걱정하지 않도록, 다른 몸은 줄곧 이 소식을 숨겨왔다.
이와 동시에 성공 거수 운청휘는 명계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기 바빴기에, 부모님과 함께 지내지 않았다.
자연히 운청휘의 부모님은 두 몸이 다 영주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들, 잘 왔다. 채아를 깨울 방법은 찾았니?”
안부 인사가 오간 후, 세 사람의 화제는 채아가 되었다.
운청휘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채아는 ‘미움’을 잃어버렸는데, 명계의 주인이 뺏어갔습니다. 소자, 이제부터 채아의 ‘미움’을 되찾아오겠습니다.”
세 사람은 채아가 잠들어 있는 밀실로 향했다.
이 밀실은 운청휘가 겹겹이 두른 진법으로 보호되고 있는데, 운청휘만이 진법을 해제할 수 있었다.
채아는 칠백에서 하나가 부족했던 터라,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였다.
“채아…….”
그 모습을 보고, 운청휘의 부모가 눈물을 흘렸다.
“채아는 참으로 불쌍한 아이다. 네가 사라진 뒤, 채아는 우리가 기댈 유일한 자식이었어. 천검종으로 끌려간 뒤 궁우신의 자양분이 되었음에도, 채아는 우리를 위해 수련을 멈추지 않았단다. 아들아, 이 어머니는 네게 부탁한 것이 없으니 이번 한 번만 부탁할게. 꼭 채아를 살려 주렴. 응?”
“청휘야, 이 아비도 부탁하마. 부디 채아를 살려 다오.”
운청휘의 부모가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워 울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운청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운청휘는 코가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마저도 울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지금 채아를 살려낼 수 없는 현실이, 이렇게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안심하십시오.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채아를 반드시 살려내겠습니다. 맹세하지요.”
운청휘는 굳건한 맹세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을 위한 선물입니다.”
운청휘는 부모의 걱정을 덜 겸 화제를 돌렸다.
이윽고 그가 영라 반지에서 인왕경의 마종 두 개를 꺼내 보였다.
“두 분이 이제 선천경에 이르셨으니, 마종을 천천히 연화시킬 수 있습니다.”
말을 하며 운청휘는 마종을 두 사람의 몸에 넣었다.
비록 그들이 운청휘처럼 단시간 내에 마종을 연화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련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터였다.
심지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무위가 오르게 된다.
‘아무런 도움이 없다면 연화에 최소 10년이 걸릴 터.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일단 명계에 다녀온 후, 마종의 연화를 돕자. 그때라면 단번에 인왕경에 오르실 수 있다.’
운청휘가 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사실 인왕경의 마종은 운청휘에게도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인왕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영주 전체를 살펴도 세 자릿수를 넘지 않으니까.
그러나 운청휘는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들은 자신의 부모님이었으므로.
더욱이 그의 수련은 선의 절정에 도달하는 것 외에도, 그가 아끼는 이들을 보호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그의 길은 늘 그렇게 누군가를 지키는 과정이었다.
부모님에게 휴식을 취하게 한 후, 운청휘는 다시 채아가 있는 밀실로 돌아갔다.
혼수상태의 채아는 분홍빛 옷을 입고 침상에 누워 있었는데,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
의식을 잃었어도 그녀에게서는 고귀하고 거룩한 기운이 흘러나왔고, 외모는 창세신이 다듬은 옥처럼 아름다웠다.
“날아오르는 새처럼 경쾌하고, 승천하는 용과 같이 거룩하니 참으로 절세의 기재군. 나의 채아로구나.”
운청휘가 나직이 속삭이며 채아의 이마를 다정히 어루만졌다.
그가 실종되기 전까지만 해도, 채아에게 자주 하던 것이었다.
채아는 늘 얌전히 받아들였는데, 운청휘의 손은 크고 따스해 그녀의 마음까지도 따스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만히 채아를 내려다보며, 운청휘는 추억에 잠겼다.
채아가 7살 때, 넘어지며 왼쪽 무릎이 자갈에 찢기고 말았다.
피가 흐르는데도 채아는 울지 않고 운청휘가 상처를 싸매도록 얌전히 있었다.
그때의 운청휘는 습관적으로 채아의 이마를 쓰다듬고, 채아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가벼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상처를 치료했다.
이야기를 들은 채아가 어떻게 말했던가. 작고 동그란 얼굴 가득 진지함을 담았던 것 같았다.
“청휘 오라버니, 채아가 크면 시집가도 돼?”
당시 운청휘는 혼인에 대한 개념이 없었지만, 채아가 시집오면 그들은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다.
마치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그리하여 선뜻 대꾸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수 있지!”
과거의 일을 떠올리자 운청휘의 마음이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채아와 자신 간의 남녀의 정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채아는 그에게 부모님 못지않게 소중한 존재였다.
채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고, 그로 인해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린다 해도 상관없었다.
밀실을 나온 뒤, 운청휘는 천검종의 대전으로 향했다.
소도도와 진관해, 능천진선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과연, 대전에는 그들과 함께 찬명사 위경륜, 진법 대사 풍음도 함께 있었다.
“주인님을 뵈옵니다!”
찬명사 위경륜과 진법 대사 풍음이 운청휘를 보자 무릎을 꿇었다.
위경륜은 영흥제국 출신으로, 진흙보살의 제자였다.
예전에 위경륜은 운청휘에게 자신의 사부가 얼마나 대단한지 늘어놓았는데, 영흥제국, 아니 천성대륙 전체에서도 최강이라 자신했다.
그런 위경륜이 운청휘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은, 그와의 내기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위경륜은 내기의 결과를 선뜻 받아들였고, 마종을 받아들였다.
군성문 출신인 진법 대사 풍음 또한 운청휘와의 내기에서 패배하여 운청휘를 주인으로 섬기게 되었다.
“위경륜, 영흥제국에 대해 얼마나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