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7화
“극비를 제외하고 모르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위경륜은 즉각 대답했다.
찬명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방대한 양의 독서로, 수재는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세상일을 다 아는 법이다.
그러니 위경륜이 영흥제국에 대해 모를 리 없었고, 그의 신분에 걸맞게 보통 사람들은 접할 수 없는 정보를 많이 접한 터였다.
“조만간 영흥제국에 갈 것이다. 채비를 할 동안, 영흥제국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기록하여 내게 주도록.”
위경륜에게 명령을 내린 운청휘는 능천진선을 바라보았다.
“능천, 소인왕과 오래 생활했을 테니 영흥제국에 대해 아는 게 많을 터. 위경륜을 보조해 책을 완성하도록.”
이어서 운청휘가 진법대사 풍음을 봤다.
“풍음, 군성문도 영흥제국에 있으니, 너도 위경륜을 보조하거라.”
운청휘가 임무를 주자 위경륜, 능천진선, 풍음은 책을 편찬하러 갔다.
“도도, 상상, 관해. 나는 이제 명계에 다녀오려 한다. 그동안 천검종에서 무위 상승에 전념하도록. 이것을 주고 가겠다.”
운청휘는 세 사람에게 각각 반절 인왕경의 마종을 심어 두었다.
이 마종은 상고 전쟁터에서 흉수를 사냥해 얻은 것으로, 수가 넉넉하게 있었다.
공적경 마종은 천 개에 가까울 정도로 많았으니, 베푸는 데 아낌이 없었다.
이어서 운청휘는 사촌형과 백부, 조부를 만난 후 그들에게도 반절 인왕경의 마종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후, 운청휘는 명계로 향했다.
천검종에는 명계와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고, 이 통로에는 운청휘의 다른 몸이 주둔하여 지키고 있었다.
명계에서 흘러나오는 저승의 기가 유출된다면 가장 먼저 재앙을 당하는 곳이 천검종이니, 더더욱 지킬 수밖에 없다.
지금의 천검종은 운청휘의 본거지나 다름없었고, 그의 모든 일가와 친구들이 이곳에 있으니 운청휘로서도 다른 몸을 배치하여 신경을 썼다.
통로에 다다르자, 두 명의 운청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거울을 앞에 둔 듯 똑같은 외모와 똑같은 기질, 똑같은 사고방식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는 광경은 꽤나 흥미로웠다.
“오랜만이군!”
성공거수의 운청휘가 말했다.
“푸…….”
인간 운청휘는 대답 대신 작은 웃음을 흘렸다.
자기 자신에게 오랜만이라고 하다니, 우습지 않은가. 거울을 보며 스스로의 외모에 도취하는 것만큼이나 실없었다.
“본제에게도 이렇게 실없는 면이 있군.”
운청휘가 고개를 저으며 다른 몸을 두고 ‘왕생통로’로 향했다.
인간이 죽으면 영혼은 반드시 이 통로를 지나야 명계로 갈 수 있었다.
통로의 입구는 거대한 동굴이었고, 그 너머에는 저승의 기와 명계에서 온 천도의 의지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신검, 지금의 무위로 너를 조종할 수 없으니, 스스로 명계의 천도 의지를 파괴할 수 있겠나?”
운청휘가 참천신검을 불러내어 물었다.
윙윙윙…….
참천신검이 진동을 보냈다.
“그럼 다행이군.”
운청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명계는 영혼이 머무르는 곳이고, 운청휘는 피와 살이 있는 산 사람인데 어찌 운청휘의 진입을 허락하겠는가.
다만 참천신검이 명계의 기를 막아낼 수 있다면, 안심하고 갈 수 있었다.
이윽고 참천신검이 스스로 나와 왕생통로로 날아들었고, 운청휘도 그 뒤를 따랐다.
통로 안에서 참천신검은 신비로운 금빛 광채를 발하더니, 운청휘를 완전히 감쌌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명계의 의지는 신검의 광채에 압축되면서도 꾸역꾸역 밀려왔다.
호시탐탐 운청휘와 신검을 소멸시키려 했지만, 운청휘가 얌전히 당해 줄 리가.
자신도 신검에게만 의지하지 않고, 신식을 이용해 명계의 천도의 의지에 강렬히 저항했다.
“무슨 일이지? 천도 의지가 점점 강해지는군!”
앞으로 나아가던 운청휘의 안색이 조금 굳었다. 통로를 나아갈수록 천도 의지의 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윙윙윙…….
참천신검이 부르르 떨었다. 마치 운청휘에게 전할 말이 있는 듯했다.
“신검도 감당할 수 없단 말인가.”
안색이 어두워진 운청휘는 궁여지책으로 선제의 정혈 한 방울을 참천신검에 뿌렸다.
이 정혈이 있으니 참천신검도 활력을 되찾았고, 억만리 길을 무사히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억만리 길을 나아간 후 다시금 천도의 의지가 강해졌다!
이번에는 신검도 운청휘도 견디지 못했다.
육신과 신식에 타격을 입은 운청휘가 피를 뿜었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찌 된 일인가. 명계의 힘이 선계의 힘에 견줄 정도라니!”
심각한 타격을 입으며 마침내 도착한 명계.
운청휘는 잠시 머무를 곳을 찾아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곳 명계는 운청휘의 예상을 참으로 크게 뛰어넘었다.
명계가 천성대륙이 존재하는 세계에 걸쳐져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고, 명계의 주인이 인왕경의 무위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왕생통로에서 명계의 천도 의지를 느끼고, 운청휘는 생각을 고쳤다.
‘천성대륙의 생명이 죽으면 명계로 오는 것이 아니라, 제천 만계의 모든 생령이 죽으면 명계로 오는 것이었군. 그렇지 않다면 명계의 의지가 이리 강할 리가 없다.’
운청휘가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참천신검도 검집에서 휴식하고 있었다.
신검도 중상을 입었는데, 운청휘를 대신하여 육 할 이상의 천도 의지를 견뎌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치료를 마친 뒤 운청휘는 연화를 시작했는데, 이 각 후에 눈을 뜨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손에 든 반절 인왕경의 마종은 극소량의 힘만 연화된 상태였다.
분명 지금 그의 무위라면 인왕경 마종을 이 각 만에 연화시킬 수 있건만, 여기서는 반절 인왕경의 마종 하나도 연화하지 못했다.
‘명계 곳곳에 저승의 기가 있어, 살아 있는 나를 곳곳에서 방해하는군. 수련 속도가 천성대륙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천성대륙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만이 천지의 영기를 흡수할 수 있듯이, 명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운청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금 느려지더라도, 억지로 마종을 연화시켜야 했다.
다시 이 각에 걸쳐 남은 마종도 연화시키니, 고작 일 할의 힘을 연화할 수 있었다.
어찌하겠는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언정, 시도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음? 50리 밖에서 전투가 있군.”
그때, 운청휘의 신식에 전투가 감지되었다.
세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늑대처럼 생긴 야수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명계에도 흉수가 있나?”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운청휘가 신식으로 살펴보니, 저 야수들은 전투력은 강하나 피에 굶주리고 본능만을 따르는 흉수와 다름없었다.
“그들을 명수(冥兽)라고 부르는군!”
운청휘는 야수와 맞서 싸우는 이들의 대화를 통해, 야수의 호칭을 알아냈다.
‘저들을 구해 좋은 인연을 맺고, 명계의 정보를 얻어야겠군.’
지금의 운청휘는 명계의 정보에 까막눈이나 다름없으니, 인연 하나하나가 귀했다.
운청휘는 즉시 마종을 거두고 전투가 일어나는 구역으로 날아갔다.
비록 중상을 입어 무위를 100분의 1밖에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도, 50리의 거리는 눈 깜짝할 새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섯 명 앞에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낸 운청휘가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서 거대한 손이 나타나 명수들을 내리쳤다.
이 일격으로 백여 마리 중 50마리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윽고 운청휘가 발을 구르니, 지면에서부터 대지가 솟구치며 충격파가 몰아쳤다.
펑펑펑!
나머지 절반의 명수들이 충격파에 휩쓸려 허망하게 죽어나갔다.
“맙소사, 영변경의 선배로군!”
운청휘가 구한 다섯은 얼떨떨한 정신을 수습하고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후배 목만청(木晚清)!”
“후배 목만추(木晚秋)!”
“후배 기방(纪方)!”
“후배 기한(纪寒)!”
“후배 기현(纪玄)!”
다섯 사람이 이름을 말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쉬운 일이니 그렇게 할 필요 없다.”
운청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선배님, 어린 나이에 이미 영변경의 강자이신데 옥한성(玉寒城) 밖에서 오셨겠군요?”
목만청이라는 여자가 한 걸음 나아와 말했다.
“그 말이 맞다.”
운청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말투를 들어보니 옥한성 출신이로군? 마침 가는 길인데 길 안내를 부탁하마.”
“물론이죠, 선배님을 위해 일할 수 있으니 저희들의 영광입니다!”
“저희는 옥한성의 목가와 기가에서 왔는데, 옥한성에서 명문가로 꼽히죠. 옥한성에 도착하면 선배님을 초대하여 저희를 구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게 해 주세요!”
다섯 사람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속으로는 어떻게 운청휘와 인연을 맺을지 분주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 목가, 기가의 가주도 영변경의 무위인 만큼 운청휘와 인연을 맺고 싶은 게 당연했다.
심지어 옥한성의 제일 고수인 성주도 고작 영변경 9단계의 무위였다.
다섯 사람 중 목만청과 목만추 두 자매가 열성적이었는데, 거리낌 없이 명계의 지식을 늘어놓았다.
가령 명계의 무인은 모두 ‘명근’이라는 것이 있어 이 명근이 강할수록 천부적인 재능이 강하다는 점이 그러했다.
“청휘, 어린 나이에 일방을 지배하는 고수가 되었군요. 이변이 없다면, 당신도 최소 2품 상 단계의 명근이겠죠?”
목만청은 운청휘의 이름을 안 뒤로부터 매우 친근하게 그를 대했다. 운청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경외감이 어려 있었다.
“언니, 청휘 오라버니가 이렇게 대단한데 2품 상 단계의 명근은 아닐걸요, 내 느낌에는 최소 3품 하 단계의 명근이에요.”
목만추도 급히 받아쳤다. 그녀 역시도 운청휘를 경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만추, 알긴 뭘 알아. 2품 상 단계 명근도 이미 하늘을 거스르는 일이야! 설령 일방의 명주여도 3품 하 단계의 명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