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천단각을 나갈 때, 뒤에서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청휘는 돌아보기는커녕 멈추지 않고 천단각을 벗어났다.
이미 그는 신식을 통해 목만청과 기방이 대청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목만청과 기방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은 운청휘와 연을 맺고 싶지 않았으나, 어쨌든, 은인이니 체면상 인사라도 건네야 했다.
목만청도 마지못해 운청휘를 부른 것이고, 기방도 억지로 웃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설마 운청휘가 대꾸조차 하지 않고 가 버릴 줄은 몰랐다.
‘횡련 조무래기가, 정말 자신을 영변경 고수라고 생각하나?’
목만청이 기방과 함께 콧방귀를 뀌었다.
“두 분은 방금 저 사람을 아나요?”
그때, 송병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목만청이 운청휘에게 인사하려는 것을 모두 보았고, 운청휘가 외면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자기소개를 잊었군요. 제 이름은 송병, 천단각 본부에서 왔어요!”
두 사람이 대답은커녕 의심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보자, 송병이 덧붙였다.
“송병? 천단각 본부? 서…… 설마 천단 쌍둥이 중 하나인 그 송병?”
목만청과 기방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천단각의 천단 쌍둥이란, 정주에 이름을 날린 두 기재를 말한다.
그중 한 명이 송병이었고, 소문에 따르면 그는 스무 살 때 영변경에 도달했다고 한다.
“하하. 쑥쓰럽군요. 그러나 사람들에게 과분한 칭찬을 받았을 뿐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송병은 내심 득의양양했으나, 거의 티를 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두 분 친구께서 아직 대답을 주지 않으셨는데, 방금 그분을 아십니까!”
“알죠! 그는 운청휘로, 영변경 무위를 지녔지만 횡련명수예요. 됨됨이는 송 공자께서도 방금 보셨겠죠? 그가 우리를 무시하고 가는 것을요!”
목만청은 분노하며 말했다.
‘무슨 큰 배경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저 횡련명수였다니…….’
송병은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횡련의 길을 따라 영변경까지 이르렀다는 건 대단하군요. 두 분, 제가 일이 있어 우선 물러가겠습니다. 만약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저 송병의 이름을 대시지요. 천단각이 이 할의 가격을 낮춰 줄 겁니다.”
송병이 친절한 웃음을 보이며 안채로 사라졌다.
“고마워요, 송 공자! 소녀 목만청, 옥한성 목가의 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군요!”
“소인 기방, 옥한성 기가 가주의 장남입니다!”
목만청과 기방이 급히 자신들의 이름을 말했다.
“기억하겠어요!”
송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는데, 눈에는 짙은 경멸이 서려 있었다.
‘촌뜨기 두 명이군!’
안채로 돌아온 후, 송병은 옥한성에 데려온 심복들을 불렀다.
그의 유모인 안(安) 노파까지 모두 네 명이었다.
“안 유모는 제 곁에 있어 주세요. 영랑(宁蒗), 주성(周城), 묘무(苗缪). 자네들은 운청휘를 미행해 어떤 수단을 쓰든 데려오세요. 그래, ‘시충명혼향’을 써도 좋아요.”
중년인 셋이 송병의 명령을 받들었다.
객잔으로 돌아가는 길, 운청휘는 기이한 느낌에 신식을 방출했다.
현경의 중년인 셋이 자신을 미행하고 있었다.
운청휘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비록 중상을 입었다곤 하나, 현경의 무인들에게 당하지 않을 테니까. 더욱이 자신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누구든 상관없었다.
객잔에 돌아온 후, 운청휘는 치료에 몰두했다.
그를 미행하던 세 중년인도 방을 빌렸는데, 운청휘가 머무는 객실 바로 옆이었다.
운청휘는 신식을 조금 내보내 그들의 소리를 감지하며, 연화를 시작했다.
매 시진마다 마종 세 개를 꺼냈고, 그럴수록 소요되는 명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3만 개에서 5만 개, 7만 개에 이르도록…….
마침내 밤이 되자, 40만 개의 명석은 9만 개만이 남아있었다.
“진전이 더디군. 이런 식이라면 명석으로도 전부 회복하지 못할 터.”
운청휘는 씁쓸한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로 명계는 산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수련의 속도가 늦어지는 것은 둘째치고, 몸의 회복마저도 제약이 걸리다니.
“응?”
별안간 운청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신식이 옆방의 중년인 셋이 방을 빠져나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다음 순간.
방문 틈새로 옅은 청색 연기가 슬며시 피어올랐다.
‘연무인가?’
소인배들이나 쓰는 행동에 가소로웠지만, 운청휘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조무래기 셋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응? 이 것은……?”
별안간 운청휘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신식이 연기와 접촉한 순간, 그 연기의 정체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시충명혼향.
선계에도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자욱한 연기인 동시에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독무였다!
중독되면 단시간 내에 무위를 쓸 수 없게 되고, 사흘 뒤면 독이 심장까지 침투하게 된다.
그리하면 심장이 멎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죽이려 했으니, 내 탓을 하지 말도록.”
운청휘의 서늘한 음성이 내려앉은 순간, 그는 창문을 열어 연기를 죄다 날려버렸다.
거의 동시에, 다른 손을 휘두르자 객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이윽고 중년인 셋이 흡입력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들어왔다.
쿵! 쿵! 쿵!
세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부딪혔다.
“시충명혼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재빨리 몸을 일으킨 세 사람은 의외라는 듯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우리를 발견한 거지?”
“우리가 분명 기를 숨겼는데, 어떻게 발견된 거냐!”
“기왕 발견되었으니, 솔직히 말하지. 우리 도련님께서 네놈을 만나고 싶어 하시니 내일 아침 우리와 함께 가자!”
“도련님? 천단각의 송병?”
운청휘가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그렇다!”
중년인 셋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시간인 데다, 도련님께서는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시니 내일 다시 데리러 오마!”
중년인 셋이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이렇게 떠난다고?”
운청휘가 차디찬 웃음을 흘리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감히 우리를 가지 못하게 하려고?”
중년인 셋은 운청휘를 돌아보더니 비웃음을 흘렸다.
“네놈이 영변경 고수라지만, 그게 뭐 어때서? 우리는 천단각의 사람이니, 우릴 건드리면 정주 전체가 네놈을 노릴 거다!”
“그 전에 우리 도련님이 나서서 네놈을 반죽음으로 만들어 주시겠지. 우리 도련님은 천단 쌍둥이 중 하나로, 영변경 3단계의 고수다!”
“헛소리는 그만하도록.”
운청휘의 두 눈은 한껏 가늘어져 있었다. 이미 살기를 품은 이상, 그들이 어떤 배경을 가졌든 최후는 죽음뿐이었다!
운청휘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지더니.
펑펑펑!
연이어 세 번의 타격음이 나며 중년인 셋은 일제히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네…… 네놈이 감히 우리를 죽이려고 하다니?”
단 한 번의 타격이었지만, 중년인 셋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체내의 모든 기혈이 뒤틀리고 말았다!
운청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조무래기들에게는 마종을 심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이 허리에 차고 있는 아공간 주머니를 전부 가져갔다.
“보잘것없군. 현경 무인 셋이 고작 3만 명석이 전부인가.”
운청휘는 다시 상처 치료에 전념했고, 세 시진 후에 모든 명석을 소모했다.
아직 새벽이 되려면 몇 시간 정도 여유가 있기에, 운청휘는 신식을 방출해 중년인 셋의 시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윽고 운청휘의 눈에 의구심이 차올랐다.
‘이상하군. 명계의 생령은 선계, 인간계의 생령과 내부 구조가 다르다. 그리고, 죽은 인간들이 명계로 오는 게 아닌가? 어찌하여 그들을 한 명도 만나지 않았지? 더욱이 옥한성 주민들도 죽은 인간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들은 외부에서 오는 존재들을 모르는 모양이군. 이후 여정추를 찾았을 때 그 이유를 물어야겠다.’
새벽 무렵.
운청휘는 명계 인간의 신체 구조를 대략적으로 알아냈다.
겉으로는 인간계나 선계의 인간과 별 차이가 없지만, 저승의 기로 호흡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었다.
‘명계의 천도 의지는 선계의 천도 의지와 견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명계의 규모나 강자의 수가 선계와 비슷하다는 뜻이군. 그렇다면 선제 못지 않은 존재도 있을 터. 추후 명계를 다시 방문할 이유가 생겼다.’
지금 운청휘의 목적은 채아의 ‘미움’을 되찾는 것이니, 명계에 오래 머물 이유가 없었다.
운청휘는 불을 일으켜 중년인의 시체를 가루로 만든 후, 객잔을 떠났다.
“다른 이들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건만, 송병은 감히 나를 건드렸군. 이제 천단각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운청휘의 발은 천단각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명석모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치료에 필요한 명석이 부족해 걱정이군.’
운청휘가 생각에 잠겼다.
비록 익숙하지 않은 명계에 왔다지만, 안면몰수하고 살인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한데 송병이 먼저 그를 건드림으로써 구실을 주지 않았는가.
더욱이 옥한성의 천단각은 분점이니, 운청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본부까지 손을 뻗을 작정이었다.
지금 부상이 일 할에 가깝게 나았으니, 인왕만 만나지 않는다면 모두를 휩쓸 자신이 있었다.
이때, 천단각의 안채.
일찍 일어난 송병은 식사를 마치고 대청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도련님, 녕랑, 주성, 묘무 등이 곧 돌아올 시간이네요!”
송병 뒤에 서 있던 노파가 말했다.
송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밤중에 방해받는 걸 싫어하는 것을 잘 아니, 아침에 운청휘를 데려오겠군요.”
‘운청휘’를 말할 때, 송병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운청휘와 아비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듯해요. 무슨 배경이 있을까 싶어서 바로 손을 대지 않았는데, 고작 횡련명수였다니!”
노파가 끼어들었다.
“횡련으로 영변경까지 되었으면 운청휘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도련님을 건드렸군요!”
송병이 웃었다.
“설령 나를 건드리지 않았어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겠죠. 고작 횡련명수 따위가 천급 하품, 품질이 가장 좋은 단약을 내놓았는데, 안 유모.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도련님의 뜻은?”
“나 송병의 명석을 그리 쉽게 가져갈 수는 없어요. 무려 40만 명석입니다. 더욱이 그가 단약을 더 가지고 있다면…… 기대해 볼 가치가 있겠어요.”
송병이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