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5화
“운 공자, 노부가 사람을 시켜 ‘천영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심암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얼른 말했다.
금세, 시종들이 천영어를 운청휘의 귀빈실로 가져왔다.
심암이 직접 상자를 열고, 천영어를 운청휘의 손에 넘겼다.
운청휘가 천영어를 거두자, 심암도 250개의 단약을 아공간 반지에 넣어두었다.
“운 공자, 노부는 일이 있어서 우선 운 공자를 접대하지 못하겠네요!”
운청휘에게 말하는 심암의 호흡이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영변경 8단계인 그는 이 단약으로 인해 영변 9단계, 혹은 반절 공적까지 도달할 수 있으리라.
어서 단계를 돌파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기에, 운청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가지!”
운청휘도 어서 적당한 장소를 골라 ‘천영어’를 사용해 보고 싶었다.
자신이 가진 둔천사의 10배나 되는 면적에, 인황경 무인의 속도와 버금가는 속도라면.
참천신검 다음으로 중요한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저 두 얼간이는 나중에…….’
운청휘는 옆 귀빈실에 있는 가, 목 두 가문의 가주들을 감지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들이 경매장을 떠났다.
가, 목 두 가문의 가주들도 경매장 입구로 향했다.
“1,500만 명석으로 천영어를 구입한 사람이 운청휘라니!”
“그 횡련명수가 그만한 명석을 지녔단 말인가?”
두 가주들은 믿지 못하고 연신 중얼거렸다.
그들이라고 해도 단시간 내에 그리 많은 명석을 내어놓을 내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럴 리가 없어. 며칠 전 만청과 기방이 각자 30만 명석을 운청휘에게 보냈어!”
“고작 며칠 전의 일인데 그가 어떻게 많은 명석을 내놓을 수 있는 거지!”
“아비가 구매자고 운청휘가 그녀를 대신해서 값을 부른 것일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 허나 아비도 그렇게 많은 명석을 내놓을 수 없을 텐데!”
“우선 쫓아가 보자…….”
두 가주는 오가는 인파에 섞인 채 앞서가는 운청휘와 아비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을 놓치지 않고 시종일관 쫓았다.
운청휘는 아비와 나란히 걸으며 두 가주를 알아차렸지만, 나중에 처리할 얼간이들이기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운청휘의 주의력은 천영어에만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천영어 안에 봉인이 있다. 엽가 직계 후손의 선혈로 열리는군. 더욱이 인왕경에 이르러야만 둔천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운청휘는 신식을 펼쳐 천영어 안의 구조를 속속들이 알아냈다.
‘인왕경이 나타나지 않으니 엽가도 몰락했나 보군. 인왕경의 수준이 아니라면 애초에 천영어를 조종할 수 없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다 보니 천영어는 장식품 취급을 받게 된 것이군.’
운청휘가 생각에 잠겼다.
천영어에 이런 봉인이 있는 이유는 그도 알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짐작은 가능했다.
이러한 능력이 있는 비행 법보라면, 소유할 만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천영어는 엽가의 멸문지화를 불러오는 근본이 될 터였다.
“운 공자, 당신은 옥한성 사람이 아니군요.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객잔이겠죠?”
천단각에 다다랐을 즈음, 아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렇다만.”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천단각에서 며칠 머무르세요. 천단각에 손님방이 많으니 객잔보다 편할 것입니다.”
아비가 기대하는 시선을 보내며 운청휘에게 요청했다.
“알겠다.”
운청휘는 덤덤한 얼굴로 승낙했다.
이미 그의 주의는 천영어의 봉인에 쏠려 있었고, 신식으로 강제로 봉인을 없애려는 중이었다.
천영어의 봉인은 다소 힘겹게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문제였다.
천단각에 도달한 후, 운청휘는 아비의 안내로 객실 하나를 배정받았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운청휘는 몇 층을 금지로 설정해 두고, 영라 반지에서 천영어를 꺼냈다.
“반지 속에서는 100분의 1에 해당하는 신식만 쓸 수 있었지. 그러나 지금은…….”
운청휘의 낮은 음성은 천영어에게 직접 말하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이 내려다보는 듯한 위엄을 지닌 신식이 전부 방출되었다.
이번에는!
천영어에 있던 봉인이 말끔히 지워졌다.
지금의 천영어에는 누구든 힘을 주입하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을 위해 나도 봉인을 새겨야겠군!’
운청휘는 신식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봉인을 새로 새겨넣었다.
저녁 무렵.
인황의 극한 속도와 같이 날아가는 천영어에 올라, 운청휘가 품에서 정주의 지도를 꺼냈다.
낮에 아비에게 요청해 얻은 물건이었다.
‘옥한성에서 수도 정주성까지 전송진을 이용할 필요가 없겠군. 천영어를 탄다면 한 시진 반만에 도착할 수 있으니!’
운청휘는 천영어를 운전하면서 정주성으로 향했다.
육안으로는 둔천사의 주행 궤적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이동하며, 운청휘의 예상과 같은 시각에 정주성 밖에 도착했다.
정주성이 어찌나 거대하던지, 영주 최대의 성인 영주성과 비견될 만했다.
운청휘는 성 밖에 천영어를 멈춰세웠다. 지금 힘의 1할도 회복되지 않아, 인왕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이때 명왕 여정추가 자신을 발견한다면 결코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힘이 2할 정도 돌아오면, 그때 다시 오자.’
운청휘는 미련없이 천영어의 선미를 돌렸다. 다만 원래의 길로 가지 않고, 크게 한 바퀴 돌아 세 시진을 소모하여 옥한성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정주의 명소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유명한호(幽冥寒湖), 현음곡(玄阴谷), 흑요늪(黑耀沼泽), 이 세 곳은 훗날 가봐야겠군.’
그 세 장소는 운청휘에게마저 신비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더불어 그 장소 중 일부 지역은 신식으로도 탐지할 수 없었다.
옥한성으로 돌아가며, 운청휘는 천영어를 거두었다.
생각만 했을 뿐이지만, 거대한 천영어는 단번에 엄지손가락 크기에 조그마한 배 모형이 되었다.
천단각으로 온 후, 운청휘는 아비가 보내준 아침을 들고 상처 치료에 전념했다.
더불어 그녀에게 빌린 명석도 그대로 돌려주었는데, 100만 명석을 끝끝내 거절하여 빌린 만큼만 갚아 주었다.
낮동안 운청휘는 250여만 개의 명석을 소모하여 1할이 조금 넘는 정도로 몸을 회복했다!
“전투력은 인왕과 견줄 수 있으나, 명석을 다 쓰고 말았군.‘
운청휘는 다시 명석을 걱정하게 되었다. 송병과 천단각의 저장실을 털어 얻은 250여만 개의 명석을 다 쓰고 말았다. 상처를 계속 치료하기 위해서는 명석이 더 필요한 상황이건만.
“기, 목가가 충분히 명석을 마련해 놓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운청휘가 중얼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어느새 하늘은 황혼에 물들어 있었고, 곧 강림할 어둠을 알리고 있었다.
그대로 안채의 대청에 들어서니, 마침 아비가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손에 금박을 입힌 서한을 들고 있었는데, 운청휘를 보자 웃으며 다가왔다.
“운 공자,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오늘 성주부에 연회가 있어서 초대장을 보냈는데, 저는 당신과 함께 가고 싶네요.”
운청휘가 거절할까 걱정하면서도 아비가 또 말했다.
“최근 소문에 따르면 옥한성 일대에 명석모가 나타날 것이라,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어요. 소가의 소원, 능가의 능비, 어림문(御临门)의 문백열(门百列), 가엽종(迦叶宗)의 막소휘(莫少辉), 도화원(桃花苑)의 해당성녀(海棠圣女)까지……. 정주의 젊은 기재들은 다 옥한성으로 모인다고 해도 되겠어요. 이에 성주부가 연회를 열어 초청한 자리인 만큼, 옥한성의 대가문인 기가, 목가, 서가도 초청받은 것 같아요.”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대단하다면, 가 보지.”
운청휘와 아비가 성주부로 가는 동안, 성주부의 연회에 참석하는 이들에 대한 소식을 무수히 들을 수 있었다.
“소원은 유명세를 탄 지 오래된 영변경 고수야! 듣자 하니 이번 연회에서 다른 기재들에게 도전한다던데?”
“능비도 소운에 버금가는 천재라구. 그들은 100번을 싸웠는데 매번 승부가 나지 않았다더군!”
“어림문의 문백열도 빼놓을 수 없지. 약관도 되지 않았는데 무위가 출중해. 소운과 능비라도 문백열을 건드리지 않는다고 들었네!”
“가엽종의 막소휘는 명성은 덜하지만, 진정한 기재라고 들었네. 소운과 능비도 막소휘 덕분에 한참 고생했다지?”
“하지만 가장 이목을 끄는 기재는 도화원의 해당성녀가 아니겠는가! 그 무위며 재능이 못지않고, 절세의 미인이라 정주의 젊은 기재들이 대부분 그녀에게 구애한다 들었네!”
운청휘는 해당성녀의 이름이 나올 때, 아비의 미간이 슬며시 찌푸려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론 아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운청휘도 묻기 귀찮았다.
그렇게 이각여 쯤 걸었을까, 두 사람은 성주부 바깥에 도달했다.
“아비 아가씨,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비가 초청장을 내밀기도 전에, 시종이 아비를 알아보고 안내했다.
아비와 함께 온 덕분에, 운청휘도 주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다만 소운이나 능비에 비해 그의 자리는 말석이라 해야겠다.
소운과 능비를 비롯한 10여 명의 기재들은 모두 주인석과 나란히 있는 자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청휘는 신식으로 익숙한 몇몇 얼굴들을 알아차렸다.
목만청, 목만추, 기방, 기한, 기현과 목가 가주, 기가 가주였다.
다만 그들의 지위는 아비보다 낫기에, 말석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어디에 앉아 있든, 목만청과 목만추, 기방 등 다섯 명은 흥분한 얼굴로 여기저기 훑어보느라 바빴다.
이런 연회에 참가하는 것이 그들에게 큰 영광이라도 되는 듯했다.
“소운, 능비, 문백열, 막소희, 해당성녀…… 모두가 정주에서도 최절정의 기재들인데, 그들과 같은 연회에 참가할 줄이야! 하지만, 헤헤……! 해당성녀가 만청 언니보다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목만추는 해당성녀를 보고 눈에 불꽃이 튀었으나,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내뱉었다.
“만추야, 입조심 해. 우리끼리 하는 말이면 모르지만, 새어 나가면 네 언니가 큰 화를 입을 거야!”
기방이 황급히 주의를 주었다.
만약 목만추의 말을 듣는다면 해당성녀가 넘어간다고 해도, 그녀의 구애자들이 넘어갈 리 만무했다. 그들이 보는 해당성녀가 어찌 목만청과 견주겠는가?
“기방의 말이 맞아.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 해당성녀와 비교되겠어!”
목만청도 여동생을 노려봤지만, 불쾌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비 소저 옆의 저 남자, 눈에 익지 않아?”
별안간 기한이 아비의 옆에 있는 붉은 장포의 남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저 외관을 보아하니, 운청휘잖아!”
“뭐? 운청휘?”
“횡련명수라고 하지 않았어? 무슨 자격으로 이곳에 있는 거지?”
“게다가 아비 소저 옆에 앉아 있잖아!”
그들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목가와 기가의 가주가 다가와 말했다.
“어제 만보 경매장에서 운청휘와 아비가 함께 있는 것을 봤단다!”
“운청휘가 아비 소저에게 빌붙었다니!”
다섯 사람이 말을 듣고 눈에 질투가 번뜩였다.
아비의 신분은 비록 소운, 능비, 해당성녀 등보다 못하나 그들이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운청휘를 미행하며 발견했는데…… 그와 아비가 천단각에 들어가더구나. 그리고 밤새 나오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