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6화
가주들이 연달아 말했다.
어제 운청휘와 아비를 미행한 후, 그들이 천단각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았다. 그후 두 가주는 사람을 보내 천단각 입구를 지켜보게 했다.
바로 조금 전, 자신들이 보낸 사람이 전하기를, 운청휘와 아비가 성주부 연회에 참석했다는 내용이었다.
“설마 아비 소저는 운청휘가 횡련명수라는 것을 모르나? 그를 영변경으로 오해한 건가?”
“아니야. 나와 만청이 천단각에서 송병을 만났을 때 운청휘가 횡단명수라는 것을 말했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송병은 이 소식을 아비에게 전했을 거고.”
목만청과 기방의 눈에 의혹이 감돌았다.
그들이 보기에 운청휘가 아비의 곁에 있는 것도 이상했을뿐더러, 아비가 운청휘에게 보이는 태도도 미묘했다.
그들의 의혹은 뒤로하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상석의 성주의 젊은 기재들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담소를 나누었지만, 기재들의 관심은 성주보단 해당성녀에게 쏠려 있는 듯했다.
“옥(玉) 성주, 듣자 하니 어제 누군가 만보 경매장에서 1,500만 명석으로 엽가의‘천영어’를 낙찰받았다지요?”
해당성녀가 별안간 옥한성의 성주에게 운을 떼었다.
그 목소리가 마치 노래하는 꾀꼬리처럼 감미로워, 듣는 이의 표정이 저절로 풀릴 정도였다.
더욱이 거룩한 느낌까지 드는 그녀의 외모는 감히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뭐? 어떤 얼간이가 1,500만 명석이나 내고 그걸 구매했단 말입니까?”
“천영어는 누구도 사용 방법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엽가가 내놓을 리가 없지요.”
“엽가도 사용 방법을 모르는데 외부인에게는 그저 고철일 뿐!”
“그러나 누군가 1,500만 명석을 내놓았다는 것은 상당히 뜻밖입니다.”
해당성녀의 말에 기재들이 일제히 떠들어 댔다.
동시에 그들은 옥한성주에게로 호기심 어린 시선을 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이 일을 알았을 때는 경매가 끝난 뒤였소. 책임자 심암에게 물었으나, 심암은 상대바으이 신분에 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더군.”
옥한성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마침 성도 옥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옥 성주라 불렀다.
옥 성주는 80여 세의 노인으로 보였으나 백발홍안이었고, 몸에서 은은한 위엄이 흘러나왔다. 언제나 타인의 위에서 군림하던 이만이 풍길 수 있는 기운이었다.
신식으로 그를 살피던 운청휘는 그가 외부에서 말하는 대로 영변경 9단계의 무위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는 반절 공적경의 무위였다!
“제가 듣기론, 천영어를 구매한 사람은 경매 당일 천단각의 아비 소저와 같은 귀빈실에 있었다더군요.”
해당성녀가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소?”
옥 성주가 의혹의 눈초리로 말했다.
“아비 소저가 연회에 있으니, 내가 지금 물어보리다.”
옥 성주의 시선이 사람들을 훑었고 곧 상석 아래에 있던 아비를 발견했다.
“아비 소저, 본 성주가 듣기로 어제 만보 경매장에서 천영어를 낙찰받은 이가 있다던데, 그 사람을 아시오?”
자신을 부를 때는 성주의 호칭이 바뀌었지만, 아비는 개의치 않고 운청휘에게 눈짓을 보냈다.
운청휘가 뜻대로 하라는 눈빛을 보내자, 아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요. 아비 옆에 있는 운 공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운 공자?”
옥 성주가 잠시 사색에 잠겼다. 옥한성에 있는 가문 중 운씨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공자, 옥한성 출신이 아니오?”
옥 성주가 물었는데, 말투는 습관적으로 오만했다.
“아니다.”
운청휘는 성주를 보지도 않은 채 답했다.
옥 성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운청휘는 상석에 앉은 기재들처럼, 자신에게 어떤 존경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공자님, 해당이 천영어를 보고 싶습니다. 공자께서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자리에서 일어난 해당성녀가 천천히 이동해 높은 곳에서 운청휘를 내려다보았다.
“싫군.”
운청휘는 해당성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젓가락을 놀려 음식을 입에 넣었다.
이윽고 음식을 씹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의외라는 시선을 보냈다.
특히나 해당성녀의 뒤를 지키고 있던 십여 명의 기재는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운 공자, 해당성녀는 도화원의 성녀로서 도화원은 여자 명왕 여정추가 연루되어 있죠.
아비가 전음을 보냈다.
-그녀와 아는 사이지만 관계는 좋아 보이지 않더군. 한데 왜 내가 천영어를 보여 줘야 하는가?
운청휘는 생각지도 않고 대답했다.
운청휘에게 있어 천영어를 보여 주는 건 어떠한 손해도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봉인되어 있을뿐더러, 운청휘를 제외하면 누구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도 속 좁은 사람이 아니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거절한 건 아비를 위해서였다.
운청휘가 보기에 아비는 해당성녀와 아는 사이지만, 사이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최근 며칠간 자신을 보살피며 환심을 산 아비를 친구로 여기고 있으니, 운청휘의 마음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단연 아비가 우선이었다.
“공자님, 당신이 거절한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옥 성주의 안색이 침울해졌다.
“해당성녀가 관심을 보이니 영광으로 알아도 모자랄 판에! 감히 호의를 무시하지 말거라!”
기재 한 명이 몸을 일으키며 얼굴을 찌푸리고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운씨 성이라고? 내가 알기에 정주의 어떤 가문도 운씨 성은 없다. 혈혈단신으로 보이는데 해당성녀의 제안도 거절할 줄이야!”
또 한 기재가 콧방귀를 뀌며 운청휘를 내려다봤다.
“내 물건을 내가 보여 주기 싫다는데 감히 핍박하려는 것인가?”
마침내 운청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시선을 상석에 주었다.
옥 성주는 반절 공적.
해당성녀는 영변경 8단계.
다른 두 기재는 영변경 2단계.
비록 부상이 낫지 않았다곤 하나, 일격으로 그들 넷을 죽일 자신이 있었다.
“운 공자, 오해입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해당은 당연히 압박하지 않겠어요!”
해당성녀가 웃으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오히려 옥 성주와 다른 두 기재들마저 달래는 게 아닌가.
“옥 성주, 왕개(王凯), 이학(李鹤). 나 해당의 체면을 봐서라도 저 공자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나를 난처하게 한다고? 고작 땅강아지들 따위로?”
운청휘가 비웃음을 흘리더니 아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영라 반지에서 조그마한 박옥처럼 생긴 천영어를 꺼냈다.
“아비, 내가 ‘천영어’를 낙찰받고 당신에게 아직 보여 주지 않았군?”
운청휘의 시선을 받은 아비의 앙증맞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홀린 듯이 운청휘가 내미는 천영어를 받아들었다.
조그마한 천영어는 매끈하고 섬세한 조각처럼 보였다. 만지면 박옥처럼 편안한 느낌이 있어, 아비마저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천영어라는 걸 몰랐다면 그녀도 이것을 진짜 박옥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 앞에서 해당성녀의 요구는 거절하고, 아비에게는 보여 주다니!”
“운가는 고의로 해당성녀를 망신 준 거지? 해당성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겠어!”
“운가는 끝났어. 해당성녀의 안색을 봐!”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만청, 우리의 기회가 왔어!”
연회 구석에 있던 기방이 목만청에게 말했다.
“설마……!”
목만청의 눈빛도 빛났다.
“가자!”
기방이 목만청, 목만추, 기한, 기현을 데리고 상석으로 걸어갔다.
“해당성녀, 옥 성주, 많은 분들을 뵈옵니다!”
“소인 기한, 기현, 소녀 목만추 들은 옥한성의 기가와 목가에서 왔습니다!”
다섯은 상석에서 이름을 알리고, 가문의 이름을 밝혔다.
그 후 그들의 시선이 운청휘에게 향했다.
“운 형,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운 형, 어제 만보 경매장에서 엽가의 ‘천영어’를 낙찰받았다죠?”
“운 형은 횡련명수인데 어떻게 거액을 낼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횡련명수를 말하며 특별이 발음에 힘을 주었다.
“횡련명수?”
상석에 앉아있는 소운과 능비, 문백열과 막소희 등의 안색이 천천히 굳더니, 곧 코웃음을 쳤다.
“알려지지 않은 대가문의 자제인 줄 알았는데, 고작 횡련명수?”
“보아하니 해당성녀에게 인정을 베풀 수 있겠어.”
“제대로 된 가문이라면 후손이 횡련명수가 되게 두지 않지. 저 녀석은 제대로 된 배경도 없는 게 확실해!”
상석에는 해당성녀를 제외하고도 젊은 기재 15명이 앉아 있었다.
이전에는 두 명의 기재가 해당성녀를 위해 나섰고, 나머지들은 사태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그만한 명석을 내놓으려면 무명소졸 따위가 아니건만, 생각지도 않게 고작 횡련명수일 줄이야.
“운가야, 이 몸 왕개는 동산령(东山岭), 제녕성(济宁城) 왕가의 후계자다. 네놈에게 명령하니 ‘천영어’를 해당성녀에게 선물하라!”
“이 몸 이학도 제녕성에서 온 이가의 후계자다. 어서 천영어를 해당성녀에게 주지 못할까!”
왕개와 이학은 아예 상석에서 뛰어내려 운청휘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도 줄곧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아주 높은 곳에서 운청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해당성녀는 이 광경을 보지 못한 것처럼,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왕개와 이학은 운청휘가 앉아 있는 탁자에 거의 근접했다.
운청휘가 거대한 손을 휘두른 순간, 왕개와 이학은 냉소를 머금었다.
“감히 우리 앞에서 공격을 한다고?”
“네놈이 스스로 내놓지 않겠다면, 우리가 빼앗겠다!”
두 사람도 일제히 손을 내뻗어 응수하려 했으나, 그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왕개와 이학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은 순간.
콰르릉!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고, 왕개와 이학이 몸을 날렸던 곳에는 사람 모양의 구덩이 두 개가 파였다.
왕개와 이학은 그 구덩이 안에서 기괴한 형상으로 죽어 있었다.
운청휘가 단번에 영변경 고수를 죽였다!
연회석에는 일제히 침묵이 내려앉았고, 조용한 공포가 사람들의 눈에 깃들었다.
“일장으로 왕개와 이학을 죽였어!”
“목가와 기가의 후배들이 횡단명수라고 말했잖아? 어떻게 한 번으로 두 영변경 고수를 죽이냐고!”
“응? 저자가 비록 횡단명수지만, 영변경인 운청휘라 들었는데?”
“영변경의 횡단명수는 극히 드물어. 간혹 도달하더라도 대부분 1단계에 그친다고!”
“왕개와 이학은 모두 영변경 2단계의 무위인데 단번에 죽인 것은 설마 운청휘가 최소 영변경 3단계?”
“그건 아닐 거야. 횡단명수는 같은 계급에선 무적일 뿐 아니라 단계를 뛰어넘어 적을 상대할 수도…… 심지어 죽일 수도 있어!”
“운청휘는 아마도 영변경 2단계의 무위겠지만, 횡련명수인 관계로 단번에 왕개와 이학을 죽인 것이야!”
무리들은 우선 경악했고 운청휘의 무위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횡단명수로서 운청휘가 보여 준 무위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