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화
“운청휘, 네놈이 감히 본 성주의 근거지에서 사람을 죽인다고?”
정신을 차린 옥 성주가 침착한 얼굴로 운청휘를 내려다보았다.
본래 운청휘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뿐더러, 그가 횡련명수라는 말에 살기마저 들었던 옥 성주다.
운청휘가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든, 옥 성주로선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그는 반절 공적경이니, 운청휘가 영변경이라면 절대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게 어떻단 말이냐? 또 헛소리를 하거든 성주부도 파괴할 수 있거늘.”
운청휘는 조용하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투에 서려 있는 살기에 옥 성주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너희 다섯. 아주 잘하는 짓이더군. 벌써 두 번째인가, 내 과거를 말하는 것이?”
운청휘가 고개를 돌려 기방 일행을 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그들에게로 걸음을 옮기는 게 아닌가.
“우…… 운청휘,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다섯 사람 모두 동공이 수축하고 몸이 무의식적으로 후퇴했다.
“아무것도!”
운청휘가 무심히 말했다.
“너희의 목숨을 구했으니, 거둬가는 것도 당연하지 않느냐.”
“그,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다섯 사람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감추지 못하는 공포를 드러내었다.
“우…… 우리는 이미 명석으로 은혜를 갚았어. 우리는 네놈과…… 빚진 것이 없잖아!”
“맞아, 만청 언니와 기방 오라버니가 각각 명석 30개로 은혜를 갚았잖아!”
“우리는 이제 빚진 것이 없다구!”
“고작 다섯의 목숨이 명석 60개의 가치란 말이더냐?”
운청휘가 조소를 흘렸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운청휘와 다섯 명의 대화로 그간의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고작 명석 60개를 준 게 아닌가?
“기, 목 두 가문의 후배들 뻔뻔한 건가?”
“명석 60개로 구해준 은혜를 갚다니, 상대를 거지로 아는 건가?”
“게다가 운청휘가 횡단명수라는 것을 폭로했으니, 정말 의리라고는 없구만!”
사람들이 수군거릴 때, 운청휘는 이미 다섯 사람의 앞에 서 있었다.
“운청휘, 지…… 진정하라구!”
“우, 우리 배후에는 기가와 목가가 있는데, 우리를 죽인다면 옥한성 전체에 네놈이 숨을 곳이 없어!”
“게, 게다가 우리 아버지가 지금 연회장에 있는데, 그들도 영변경 고수라고!”
“만약 우리에게 손을 댄다면 성주부조차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어!”
겁에 질린 다섯 명은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그들의 배경으로 운청휘를 압박하려 들었다.
운청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 다섯은 정말 처절하게 실패하기 전까지는 뉘우치지도, 교훈을 얻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배경이라면 왕개와 이학이 더 대단했지만, 운청휘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운청휘가 공격을 준비할 때, 사람들 틈에서 두 신형이 날아들었다.
기가와 목가의 가주들이었다!
“횡련명수 따위가 감히 우리 가문의 후배들을 죽이려고 하다니, 네놈도 죽어라!”
두 가주의 고함이 떨어지기 무섭게, 영변경의 기세가 온 대전을 뒤덮었다.
분노로 요동치는 법칙의 힘이 하나같이 운청휘만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응? 기, 목 두 가문의 가주가 영변경 4단계에 도달했구나!’
상석에 있던 옥 성주의 시선이 굳어졌다.
‘좋아, 저들을 시켜 운청휘의 깊이를 알아봐야겠군!’
두 사람이 운청휘에게 공격을 퍼부은 순간.
운청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흩어지듯 사라졌다!
펑! 펑! 펑! 펑! 펑!
연달아 다섯 번의 소리가 나고, 목만청과 기방 등 다섯 사람이 거대한 힘에 부딪혀 날아가버렸다.
그들의 가슴에는 선명한 다섯 손가락 자국이 남았다.
후드득…….
다섯은 썩은 과일처럼 지면을 나뒹굴었고, 하나같이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아아……!”
기가, 목가의 가주들이 그 광경을 보고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운청휘, 감히 우리 목가의 딸들을 죽이다니, 노부가 네놈의 시체를 찢어 주마!”
“기가의 세 아들을 죽이다니, 노부는 네놈을 갈기갈기……!”
그들은 노발대발하며 굶주린 개처럼 운청휘를 공격해 들어왔다.
전력을 다한 공격에 무수한 법칙의 힘이 폭발했고, 운청휘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까지 휘말렸다.
“죽어!”
담담히 서 있던 운청휘가 별안간 큰 손을 휘둘렀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 끝에, 기가와 목가의 가주는 최후를 맞았다.
폐허가 된 땅 위로 한때 살아 있었던 그들이 눌어붙었고, 사람들은 재차 멍해졌다.
“맙소사, 또다시 일격으로 사람을 죽였어!”
“횡련명수가 어떻게 이렇게 큰 무위를 가진 거지?”
“심지어 저 두 사람은 영변경 4단계의 고수야!”
“소운, 능비 같은 고수가 나서야 이런 결과가 나올 텐데!”
커다란 술렁임이 연회장을 휩쓸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기재들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방금 누군가 말했듯이, 소운과 능비처럼 정주 전체에서 손꼽는 기재가 나서야 운청휘와 같은 위력을 보일 수 있었다.
해당성녀도 이제야 운청휘를 알아차린 것처럼 흐릿한 눈빛을 보내왔다.
“운 형제, 무위가 대단하군요!”
상석에서 갑자기 청량한 목소리가 울렸다.
“단번에 영변경 4단계의 무인을 둘이나 죽이다니, 운 형제의 무위는 정주 전체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입니다. 이 소운, 형제를 알게 되어 기쁘군요!”
청량한 목소리의 주인이 날아와 운청휘 앞에 와서 예의를 갖추었다.
“이 능비도 운 형제의 수단에 탄복했습니다!”
뒤이어 날아온 능비도 운청휘의 앞에 서서 예를 갖췄다.
운청휘는 미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기재들과 달리, 이들은 운청휘가 신식 낙인을 찍어 둔 이들이었다.
“운청휘다. 좋은 인연을 만나 기쁘군.”
운청휘가 옅은 미소를 띠며 예의를 갖췄다.
며칠째 그들의 행적을 신식으로 추적하고 있었으니, 소운과 능비의 품성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오만방자하지만, 명문가 특유의 악습에는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다.
다만 그들은 둘 다 해당성녀에게 구애하고 있었고, 같은 목적을 지녔는데…….
운청휘는 신식으로 들었던 그들의 혼잣말을 떠올렸다.
“젠장, 저자보다 먼저 해당, 그 여자를 넘어뜨리겠어!”
그들 두 사람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해당성녀를 낮잡아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구애하는 것도 그저 몸을 노릴 뿐더러, 서로 간에 경쟁 의식이 깔려 있을 뿐.
“운 형제, 소인 문백열, 어림문에서 왔소!”
또 한 명의 청년이 상석에서 날아오더니 운청휘에게 인사를 했다.
“운청휘!”
운청휘도 인사를 했는데, 문백열은 소운과 능비 같은 열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엽종 막소휘, 운 형에게 하나 물어볼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막소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상석에 앉은 채 물었다.
“운 형, 정말로 횡련명수입니까?”
“난 명근이 없다.”
운청휘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명근이 없다는 것은 운 형은 횡련명수군요.”
막소휘의 삭막한 얼굴에 희롱하는 기색이 스쳤다.
“해당성녀, 아직도 ‘천영어’를 보고 싶나요?”
막소휘가 고개를 돌려 해당성녀를 봤다.
“몰락했다고 하나 엽가는 한때 명성이 지고했던 가문이죠. 그 가문의 보물인 ‘천영어’의 가치가 높으니 한번 보고 싶었으나, 운 공자께서 이미 거절하셨으니…….”
해당성녀가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가련한 옆모습은 보는 이에게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게 만들었다.
“걱정 마세요. 내가 ‘천영어’를 구매하여 성녀께 선물하리다!”
막소휘가 미소를 짓더니 일어나 운청휘에게 다가왔다.
“운 형, 보다시피 해당성녀께서 천영어에 관심이 크오. 이 막소휘의 체면을 봐서라도, 천영어를 내게 팔지 않겠소?”
이때 막소휘는 운청휘 앞에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얼마를 부를 것이지?”
운청휘가 물었다.
-운 형, 마음이 맞는 것 같으니 말씀드리자면 막소휘는 음험하고 교활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멀리하는 게 옳소.
-운 형, 막소휘는 좋은 녀석이 아니니, 그를 거절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소운과 능비가 일제히 음을 보냈다.
운청휘가 보기에도 그들은 막소휘를 꺼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문득 기억을 더듬어 보니, 소운과 능비가 막소휘와 겨루었으나 모두 패배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다만 무위로 보자면 운청휘에게 막소휘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소운와 능비는 영변경 7단계, 막소휘는 영변경 8단계의 무위였으니까.
“운 형이 1,500만 명석으로 낙찰받은 걸 알고 있습니다. 운 형의 손해를 막기 위해, 2천만 명석을 드리겠소. 어떻습니까?”
그가 제시한 가격은 운청휘로서도 뜻밖이었다.
이는 소운과 능비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네, 막소휘의 간사하고 음흉한 성격으로 어떻게 2천만 명석에 구매하려는 것인가?’
이때 막소휘가 입을 열었다.
“다만 운 형, 내가 급하게 나온 터라 그리 많은 명석이 없소. 우선은 150만 명석을 지불하고, 사후에 1,850만 명석을 드리려 하는데 어떻소?”
-젠장, 이 녀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득을 챙기려는 것이야!
-사후 지불? 정말 뻔뻔하구나!
소운과 능비가 서로 음을 보내 욕을 했다.
“문제없다!”
운청휘는 선뜻 대답했지만, 곧 말을 이었다.
“다만 나는 돈을 먼저 받고 물건을 주는 습관이 있…….”
“하하하, 운 형이 문제없으니 괜찮소!”
막소휘가 크게 웃더니 운청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로챘다.
이윽고 그가 손을 휘두르자, 오른손 중지에 끼고 있던 아공간 반지에서 명석 더미가 쏟아져 나왔다.
운청휘는 신식으로 수량을 정확히 확인했고, 가타부타 말없이 명석을 영라 반지에 넣었다.
“운 형, 차후에 남은 명석을 드릴 테니, 어서 ‘천영어’를 주시오!”
막소휘가 웃으며 말했다.
“음? 나도 서둘러 나오느라 ‘천영어’를 놓고 나왔다만.”
운청휘가 안색을 고치더니 막소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걱정 말도록. 차후에 반드시 ‘천영어’를 두 손으로 건네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