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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323화 (323/430)

제323화

“그러나 저는 일찍이 당대 제일의…… 여자로부터 운 동포를 알게 되었죠!”

당대 제일의 여자?

운청휘는 당대 제일이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한 사람을 생각했다!

이염죽!

“보아하니 운 동포께서 그녀를 알고 있군요!”

흙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온 세상에 그녀가 아니라면 누가 당대 제일에 어울릴까.”

운청휘가 인정하듯 답했다.

“그녀의 행방을 알려 줄 수 있나!”

운청휘는 가까스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말했다.

흙보살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그녀의 행방을 알려 주는 것은 당신들에게…… 좋은 일이 아닙니다!”

운청휘는 재차 묻지 않았다.

이유눈 모르겠으나, 흙보살이 말을 아낀다는 것을 알았기에 몰아붙일 수 없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말해 줄 수 있나?”

운청휘가 또 물었다.

“제가 그녀를 구했고, 그녀는 또 저를 구해줬죠!”

흙보살이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둘은 친구인가?”

“친구? 그렇긴 하죠! 저와 그녀는 마음이 잘 맞아요!”

흙보살이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저와 그녀는 친우입니다!”

친구를 뛰어넘는 친우.

덧붙여 흙보살의 말에는 이염죽에게 어떠한 연심도 없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말했지?”

운청휘가 물었다.

“아주 복잡해요. 줄곧 말하기 어려워했는데 어찌 되든 말은 했네요!”

흙보살이 즉각적으로 말하더니, 낭랑하게 읊조렸다.

“미워하지만 사랑한다!”

선계든 천성대륙이든 누군가 이 말을 꺼낼 때면 ‘사랑하지만 미워한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흙보살은 순서를 바꾸어 ‘미워하지만 사랑한다’라고 전했다.

‘미워하지만 사랑한다, 그녀는 아직도 개운치 않은 것인가…….’

운청휘의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의 기억은 반년 전 천검종으로 돌아갔다.

당시 운청휘는 채아와 이염죽 중 한 명만을 살릴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결국 운청휘는 채아를 선택했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지만, 끝끝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운청휘는 언제든 채아를 고르리라.

이염죽이 추후 마도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생명은 거기서 끝났을 터였다.

“운 동포, 당신이 막주성에 온 것은 나를 찾으러 온 것이군요?”

흙보살이 또 말했다.

“그렇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봉마비 때문에?”

흙보살이 물었다.

“그 생각이 옳다.”

운청휘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숨기지 않고 말했지만, 의외라는 빛을 띠었다.

“내가 봉마비 때문에 왔다고 추산한 것인가?”

흙보살이 고개를 저었다.

“나까지 포함한다면 당신은 내가 운명을 추산할 수 없는…… 세 번째 존재네요!”

운청휘의 눈에 떠올랐던 이채가 사라졌다.

“다른 하나는 염죽?”

선제가 되면 생명의 단계는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간다.

완전히 범인과 선인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운청휘는 그의 오랜 벗인 복제가 선제가 된 후, 운명은 혼돈에 휩싸이게 되리라 말한 걸 떠올렸다.

혼돈에 휩싸이면 백지장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니, 흙보살이 염탐할 수 있을 리가.

더욱이 이염죽은 한때 신들의 주인이었으니, 선제보다 더 심오한 단계에 올라 있었다.

자연히 흙보살이 그녀의 운명을 추산할 수 없다.

“내 운명도 추산할 수 없거늘 어찌하여 내가 봉마비 때문에 온 것을 알지?”

운청휘가 또 물었다.

“간단하죠! 내가 가진 봉마비가 최근 이상한 징조를 보였으니까요. 주인이 나타나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더욱이 봉마비의 주인이 될 자격을 지닌 사람은 온 세상에 몇 되지 않겠죠.”

흙보살이 은은하게 말했다.

“내가 온 목적을 맞췄으니, 봉마비를 줄 수 있나?”

운청휘가 돌리지 않고 말했다.

“주고 싶으나 당신과 인과를 묻히고 싶지 않네요!”

흙보살이 고개를 저었는데 거절한다는 것이다.

“인과?”

그 단어에 운청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복제도 늘 ‘인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까닭 없이 은혜를 베풀거나 물건을 주면 인과를 묻힌다는 게 복제의 설명이었는데, 찬명사에게 인과는 극히 꺼려지는 일이었다.

“동포께 드리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 말에 운청휘가 불쑥 내뱉었다.

“만약 내가 강탈한다면?”

“강탈? 그것은 통하지 않을 텐데요.”

흙보살이 평온한 얼굴로 운청휘를 보았다. 동시에, 대청에는 알 수 없는 은은한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반절 인왕의 무위인데 자체의 전투력은 반절 인황을 이길 수 있고 인황경 다음이죠. 그러나 내 손에서 어떤 물건을 강탈하기엔 부족할 텐데요.”

“강탈이 통하지 않는다면 길을 바꿔야지.”

운청휘의 대답에, 공기 중에 가득했던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흙보살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린아이였지만, 언행은 참으로 깊고도 심오한 이였다.

“마침 내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그 일을 해 준다면 보답으로 봉마비를 드리지요!”

“천찬학관과 관련이 있나?”

운청휘가 물었다.

흙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뒤에 백원대회(百院大赛)가 열리는데 영흥제국의 모든 학관이 생도들을 참가시키겠죠. 나는 운 동포가 천찬학관을 대표하여 대회에서 종합 1위를 해 주길 바랍니다.”

“종합 1위?”

운청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력 1위! 연단 기예 1위! 연기 기예 1위! 진법 조예 1위! 및 찬명술 1위!”

흙보살이 말했다.

“무력, 연단, 연기 및 진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운청휘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찬명술은…… 자신이 없다만.”

“제가 가르쳐 드리죠!”

흙보살이 은은하게 말했다.

“운 동포의 천부적 재능과 능력이면 두 달 안에 족히 제 뒤를 이을 수 있어요.”

“알겠다. 응하지. 다만 궁금한 것이 있는데, 부디 대답해 주도록.”

운청휘가 우선 승낙하고 생각하다 말했다.

“천찬학관이 종합 1위를 해야 할 이유가 있나? 걸출한 인재는 늘 사람들의 견제를 받는 법, 이 도리를 모릴 리가 없을 텐데?”

무엇보다 영흥제국은 ‘종합 1위’ 학관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을 터였다!

사실상 종합 1위는커녕, 어느 한 분야의 1위도 영흥제국은 용납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지 않다면 제국의 이름으로 영흥성원을 만들었겠는가?

학관은 장기적으로 한 국가가 존재하는 근본으로, 거의 절반 이상의 인재가 학관을 통해 배출된다.

나머지 절반은 각 세력이 스스로 키워낸 결과다.

이들은 제국이 손을 댈 수 없으니, 영흥제국이 학관을 중시할 수밖에.

이런 상황에서 흙보살이 운청휘를 통해 백원대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한다면, 결과는 하나뿐이다.

영흥제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천찬학관을 멸망시킬 것이다.

흙보살은 운청휘가 이 문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뜻밖인 듯 보였다.

“영흥제국이 감히 어쩌지 못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성기에 이미 영흥제국이 나섰겠죠. 천찬학관의 대표가 종합 1위를 차지하길 원하는 건,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동시에 개인적인 욕심과 관련이 있답니다.”

이 말은 운청휘의 마음속에 무수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천찬학관의 배후에 영흥제국이 꺼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인가? 설마 흙보살 본인?

더욱이 흙보살이 말하는 개인적인 욕심은 또 무엇이고?

“당신이 의심하는 것을 알고 있지요!”

흙보살이 갑자기 말했다.

“우선 제 개인적인 욕심을 말하죠. 간단해요. 종합 1위를 차지한다면 저는 저를 몰아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답니다. 영흥제국이 감히 천찬학관을 건드릴 수 없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요.”

“어디로?”

운청휘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영흥제국은 천성대륙 최강의 세력이 아닌가?”

“최강?”

흙보살의 눈에 나타난 첫 감정은 비꼼이었다.

“사람의 수로만 따지면 영흥제국의 용병은 100조가 넘으니, 사람 수는 가장 많은 세력이죠. 그러나 절대적인 실력 앞에서, 수가 의미가 있을까요? 자, 운 동포께 이야기할 게 많았습니다. 이염죽에게 듣자 하니 당신은 선계에서 왔고, 우리가 가지지 못한 식견이 있다죠? 그러니 알려 드리자면, 천성대륙은 당신이 알고 있는 보통의 인간 세계가 아니랍니다!”

이윽고 흙보살은 사람을 시켜 풍성한 술자리를 마련한 후, 입을 열었다.

“일단 운 동포는 천찬학원에 입학해 주셔야겠어요. 학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자세히 설명하죠.”

흙보살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천찬학관의 총학생 수는 천만 명을 넘고, 모두 다섯 개의 과로 나뉜다.

무인을 가르치는 ‘무원’의 수가 가장 많고, 총학생 수의 구 할을 차지한다.

연단사를 가르치는 ‘단원’이 그다음으로, 학생 수는 만 명에 가깝다.

연기사를 가르치는 ‘기원’은 5천여 명으로, ‘단원’의 절반 수준이다.

진법 대사를 가르치는 ‘진원’은 천 명도 되지 않는 학생 수를 지녔다.

마지막으로 찬명사를 가르치는 ‘명각’은 93명이라는 극히 적은 학생 수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명각은 사람 수가 가장 적지만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으며, 무엇보다 흙보살이 직접 제자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운청휘는 이 분포에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본래 무인의 숫자는 다른 직업에 비해 높은 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머지 직업이 이러한 숭배를 받겠는가?

다만 뜻밖인 것은, 93명이나 되는 천단사의 숫자였다.

어찌 되었든 찬명사는 극히 적은데, 93명이나 모았다는 것은 천찬학관의 저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학관을 대표하여 백원대회에 나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운청휘가 천천히 말했다.

“다만 문제는, 당신의 생도들이 나를 천찬학관의 대표로 인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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