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324화 (324/430)

제324화

“마침 제가 얘기하려고 했던 것이네요!”

흙보살이 말했다.

“이미 사람을 시켜 당신의 입학 수속을 마쳤습니다. 내일부터 당신은 천찬학관의 생도이자, 동시에 다섯 과에 소속된 생도예요. 앞으로 두 달 동안 다섯 과에서 시합을 열 텐데, 3위 안에 드는 생도는 학관의 대표로 나갈 수 있지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겠지요?”

운청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3위 안에 들지 못하면, 기회는 자연스레 오지 않는다.

이는 운청휘의 재량을 시험해 보는 것이기도 했다.

“참, 당신이 부린 말썽은 안연이 해결해 두었습니다. 낙가는 표면상으로는 더는 귀찮게 굴지 않을 거예요!”

흙보살의 말에 운청휘의 눈에 의혹이 떠올랐다.

“운 공자, 낙가가 막가에 종속한 가문이지만 나는 낙가에게 어떠한 일도 명령할 수 없어요.”

막안연이 갑자기 말했다.

“표면상으로나마 그들의 복수를 멈춘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습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막 소저에게 감사하지.”

막안연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감사할 필요는 없어요. 운 공자께서는 이제부터 조심하셔야 합니다. 낙가는 천찬학관에 뿌리가 깊으니,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명각뿐만 아니라 모든 과에 낙가의 사람들이 있죠. 특히나 무원에서 실력이 열 손가락에 꼽는 이들 중 두 명은 낙가의 자제예요!”

술자리가 끝난 후, 흙보살은 사람을 시켜 운청휘를 거처로 안내했다.

이때 운청휘에게 낙가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그의 무위는 진정한 인황경이 아니라면 누구도 막을 수 없었으니.

심지어 인황경이라 해도 운청휘에게는 천영어가 있으니, 반드시 도주할 수 있다.

다만 지금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은 세 가지 문제였다.

첫째, 이염죽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왜 그녀의 행방을 물으니 흙보살이 말을 아꼈을까?

더욱이 이염죽의 행방을 알게 되는 것은 운청휘에게도, 이염죽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운청휘는 추궁하지 않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쩐지 이염죽이 감금된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흙보살의 신분.

운청휘는 그가 복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복제의 외모는 흙보살처럼 여덟 살의 어린아이로, 두 사람 모두 조예가 깊은 찬명사다.

그러나 운청휘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그의 오랜 친구 복제는 인간이 아니라 반석족이었다.

흙보살은 어딜 보나 인간이었다.

한 사람이 아무리 교묘하게 위장한다 한들, 영혼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영혼마저 똑같다는 건, 복제는 반석족에서 인간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해 운청휘는 답을 찾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그가 떠올린 답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복제는 죽었고, 영혼이 윤회의 통로에 떨어져 지금의 흙보살로 환생했다.

환생이란 아주 신묘한 일이니 다른 생물로 태어나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복제가 죽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선제이고 선계의 최절정에 도달한 존재다.

누구도 그를 죽일 수 없건만, 대체 어떻게 죽었단 말인가?

더욱이 시기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운청휘는 천성대륙으로 돌아오기 전 복제와 마주쳤고, 천성대륙의 3년은 선계의 3천 년이니 시간 대비가 1:1,000이라는 말이 된다.

위경륜의 말에 따르면 흙보살은 천 년 이상 살았으니, 선계의 시간대로라면 백만 년 전에 복제가 죽었다는 뜻이 되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다른 가정으로는, 복제가 운청휘처럼 두 개의 몸을 지녔고, 다른 몸을 환생시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다만 그리했다면 복제의 의도를 짐작할 길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흙보살의 개인적인 욕심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운청휘가 백원대회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한다면, 흙보살이 돌아갈 곳은 어디란 말인가?

천찬학원과 관련이 있고 영흥제국이 꺼리는 곳 또한, 어디인가?

만약 그곳은 이염죽이 있는 곳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운청휘는 밤늦도록 생각에 잠겼지만, 명확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운청휘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천성대륙에 돌아온 후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는 항상 모든 일의 배후에 독보적인 어떤 존재가 자신을 감싸는 것만 같았다.

마치 바둑판의 바둑알처럼, 운청휘는 누군가의 의지에 이끌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인간계에서 선계로 떨어진 후 다시 천성대륙으로 돌아온 것도, 어떤 인위적인 힘이 개입한 것은 아닐까?

‘됐다. 계속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오지 않으니 머리만 아플 뿐. 지금은 무위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마침내 운청휘는 고개를 저으며 모든 상념을 떨쳐내었다.

그는 수련 대신 침상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이날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아주 길고 긴 꿈을 꾸었다.

꿈속의 그는 어린 모습이었는데, 아무런 걱정 없이 채아와 놀다 약육강식의 선계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는 무수한 생사의 시련을 겪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가, 마침내 10대 선제 중 한 명이 되었다.

선제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 지요 여제의 도움이 컸다.

꿈속에서 운청휘는 참으로 감격했는데, 만약 어떤 일이 없었다면 그와 지요 여제는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신선 연인이 되었으리라.

애석하게도 그들은 친구의 선을 넘고 말았다.

천성대륙으로 돌아오고 이염죽을 만났던 일도 운청휘의 꿈에 나타났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요 여제와 이염죽은 많이 닮았다.

그들은 고금을 넘어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고, 자신과 싸우는 막강한 존재들이었다.

꿈속에서 그들을 만나고 있던 운청휘는 문득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정을 하게 되었다.

만약 이염죽과 지요 여제, 그리고 채아까지 아내로 삼는다면 그의 일생은 완벽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터무니없는 가정일 뿐이다.

이염죽도, 지요 여제도, 채아도. 모두 남편을 공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운청휘가 죽을지언정 다른 남자와 아내를 공유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곧, 혼돈영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계에서 천성대륙으로 오는 통로를 개척하는 동안 마주친 혼돈영수, 기령이다.

이때 운청휘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와 혼돈영수가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주 희박하여 만날 수 없는 것이 옳지 않은가?

드넓은 우주에서 그들이 만날 확률은 억만 분의 1도 되지 않건만, 그들은 정말로 만나고 말았다.

아침이 되어, 위경륜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 순간 운청휘는 긴 꿈에서 깨어났다.

밤새 꾼 꿈은 운청휘에게 지나온 일들을 재확인시켰다.

“수천 년을 살았지만 꿈에서의 순수함을 이기지 못하는구나.”

눈을 뜨는 순간, 운청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간밤의 꿈은 운청휘에게 많은 감정을 정리해 주었다.

채아에 대한 감정은 정말로 가족에 불과했을까?

또한 지요 여제를, 정말로 친우로만 여겼을까?

사람이 바위도 아니건만, 영원히 무정할 수는 없었다.

지요 여제가 그에게 바쳤던 모든 것을, 운청휘는 꿈속에서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나와 그녀는…….”

운청휘의 눈에 짙은 슬픔과 한이 맺혔다.

동시에, 이염죽이 떠오르지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그녀를 한 번 저버렸으니, 이번 생에…… 다시는 저버리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운청휘의 생각은 기령에게로 향했다.

“기령을 만나게 되면 그때 공간 통로에서 만났던 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야겠군.”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위경륜은 운청휘를 천찬학원으로 안내했다.

“공자, 스승님께서 다섯 과에 입학 수속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스승님께서 등록하신 곳들 모두가 ‘고등반’이 있는데 이 절차를 밟으셔야…….”

위경륜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이윽고 그가 운청휘를 데리고 무원의 절차를 밟았다.

운청휘라서 다행이지, 다른 이들이라면 이 절차는 매우 복잡하다.

고등반은 과마다 최절정의 기재들을 모아놓은 반으로, 무원의 고등반을 예로 들자면 천만 명에 가까운 생도들 중 고등반에 든 이들은 50여 명에 불과했다.

가장 어린 사람도 열여덟이었고, 가장 나이가 많은 이도 서른 살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막론하고, 가장 무위가 낮은 이도 인왕경의 무위였다.

위경륜이 말하는 절차란, 고등반의 자체적인 시험을 통과해야 고등반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으로, 흙보살이 밟아 둔 입학 절차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정말 고등반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운청휘는 스스로의 실력으로 증명해야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장엄한 궁전 바깥으로 향했다.

운청휘가 신식으로 훑어보니, 안에서는 52명의 젊은이가 반절 인황경에게 무도의 지식을 가르침 받고 있었다.

“위경륜, 그가 고등반에 들어오는 운청휘인가?”

그때, 70여 살의 노부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건만, 노부인은 뚜렷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자, 이분은 낙가기(骆佳琪)로 무원의 교관 중 하나죠. 게다가 낙휘와 낙건의 고모입니다!

위경륜이 몰래 음을 전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적개심을 드러낸다더니.

위경륜은 운청휘의 자료를 낙가기에게 전달했고, 낙가기는 그 자리에서 읽어나갔다.

“운청휘, 18세. 혈살군에서 왔다라? 이런 곳은 들어 본 적도 없어! 응?”

낙가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작 반절 인왕경의 무위라고?”

“낙 교관님, 무슨 문제라도?”

위경륜이 물었다.

“당연히 문제가 있지! 무원의 고등반이 30세 이하의 인왕경 무인만 모집하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반절 인왕경의 폐물은 들어올 자격이 없다!”

낙가기가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특히나 폐물이라는 말을 할 때는 운청휘와 위경륜을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위경륜의 눈에 분노가 떠올랐다.

“낙 교관님, 제가 반절 인왕경이긴 하나 명각의 생도이고, 전공은 무도가 아닙니다!”

위경륜이 목소리를 낮췄다.

“뭐? 명각의 학생이 말대꾸를 하는 것이더냐?”

낙가기가 미움을 숨기지 않고 위경륜을 바라봤다.

“내가 말한 폐물은 운청휘다.”

“내가 폐물?”

운청휘가 갑자기 입술을 핥았다.

“18세의 반절 인왕이 폐물이 아니더냐?”

낙가기가 냉소했다.

“네놈 같은 폐물이 무원의 고등반에 들어오고 싶다니, 꿈도 꾸지 말거라!”

“18세의 반절 안왕이 폐물이라면 80세의 인왕은 폐물보다도 쓰레기군!”

운청휘도 비꼬았다.

“뭐라고?”

낙가기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나를 폐물이라고 욕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욕은 가능하나 다른 사람이 욕하는 것은 안 되나?”

운청휘가 낙가기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게다가, 나는 욕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다. 40살 때 단약의 힘으로 인왕경에 도달하지 않았나. 그 후로 30여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무위는 제자리로군. 정말 모를 일이다, 이런 쓰레기가 무슨 용기로 남을 폐물이라 하는가?”

낙가기가 눈을 부릅떴지만, 곧 알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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