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7화
백택이 운청휘를 봤다.
“헤헤, 백택 교관님도 운청휘에게 보여 달라고 하는군!”
“보여 주긴 무슨, 모두의 앞에서 운청휘의 거짓말을 폭로하려는 거야!”
적지 않은 생도들이 수군거리며 운청휘를 비웃었다.
그때, 송서항이 일어나 말했다.
“백 교관님, 제가 먼저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제가 익힌 무공은 ‘망우결(莽牛诀)’로, 무공을 쓰면 거친 소의 환영이 나타납니다.”
“좋다, 그대가 먼저 보여 주게!”
백택이 고개를 끄덕이자, 모든 시선이 송서항에게 향했다.
송서항의 말대로, 그가 망우결을 사용하니 금방이라도 숨을 헐떡일 듯한 거친 소의 형상이 그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최소한 현천급의 무공이다!”
“송서항이 우리 고등반에 들어온 것은 자질이 뛰어난 것 외에 망우결도 한몫을 했구나!”
남들이 놀라는 것은 물론 백택도 칭찬의 기색을 보여 줬다.
“송서항, 그대의 시점과 무도가 일치하니, 망우결을 이해한 것 같군. 장래에는 망우결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반절 인황경, 아니, 진정한 인황경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응? 송서항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나 높다니!”
“이렇게 높은 평가라면 고등반에서도 몇 명에게만 말했던 것이야!”
생도들은 놀라 쑥덕거렸으나, 동시에 백택의 평가를 받아들였다.
송서항이라면 이런 평가에 걸맞는 인재였으니까!
“운청휘, 이제 네놈의 차례다!”
송서항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꼭 보여 줘야 하나?”
운청휘가 코를 만지며 머뭇거리는 듯했다.
“물론!”
송서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의 눈빛에는 운청휘의 추한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정 그리 말한다면, 못 보여 줄 것도 없지.”
운청휘가 일어나며 말하는 것과 동시에.
솨! 솨! 솨! 솨! 솨!
연거푸 다섯 번의 소리가 나더니 그의 머리 위로 다섯 가지 환영이 떠올랐다!
사방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운청휘의 머리 위로 떠오른 환영은 모두 동물의 형상이었다.
다리가 하나 달린 소는 작은 번개를 내리쳤는데, 백택은 그 동물이 전설 속의 영수 기우(夔牛)임을 알아차렸다. 뇌수(雷兽)라고도 불리는 전설의 신수였다.
두 번째 환영은 뿔이 달려 있는 호랑이였는데, 전신에 사나운 위엄이 넘쳤다.
세 번째 헛것은 머리가 셋 달린 맹견으로, 흉악한 몰골에 드러난 이빨 하나하나가 험상궂었다.
네 번째 헛것은 미후(猕猴)로, 키는 어린아이만 했으나 수십 장 길이의 꼬리와 날개를 달고 있었다!
백택은 알아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찬천후(窜天猴), 즉 신수였다.
일찍이 하늘에 구멍을 내었다는 신수가 아닌가?
마지막 환영은 하얀 털의 새끼 고양이였는데, 가장 무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고양이가 주는 느낌이 가장 신비로웠다.
기령이 이곳에 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운청휘에게 욕을 퍼부었으리라. 감히 자신을 모형으로 삼은 무공을 창조했으니까.
“정말로 다섯 가지 무공을 수련했다니!”
백택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반응했다. 그는 새삼 놀랍다는 얼굴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운 형제, 이것들은 어떤 등급인 건가?”
담운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머지 생도들은 그저 멍하니 운청휘의 머리 위에 떠오른 환영들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송서항은 경악하면서도 분노가 일었다.
운청휘가 줄곧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였다니!
그를 조롱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얼굴이 절로 화끈거리며 뺨을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운청휘, 정말 의외지만 다섯 가지 무공을 동시에 수련했군.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 전부 소화할 수 없다면 한 가지라도 집중하길 바란다!”
송서항은 끝까지 오기를 부렸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운청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말했을 텐데, 사람마다 무공을 익히는 데에 차이가 있다고. 네가 한 가지 무공에 적합하다고 하여, 나도 한 가지에 적합할 리가 없지.”
“운청휘, 네놈……!”
송서항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운청휘가 또다시 그를 아둔하다 조롱했지만, 하필 대답할 말도 없었다.
그는 알기나 할까, 운청휘가 지금 자신을 얼마나 봐주고 있는지.
더불어 운청휘가 보여 준 무공은 그저 아무렇게나 떠올린 것이었다.
그가 수련한 무공은 셀 수도 없이 많기에, 방금 보여 준 것은 송서항의 망우결을 보고 임시로 생각해낸 것이었다.
운청휘는 수백 가지, 수천 가지의 무공을 보여 줄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적당히 꾸며내었다.
무엇보다 방금 보여 준 무공도 그가 심심풀이로 만들어 낸 무공에 불과했다.
“운청휘, 그 말은 다섯 가지 무공을 모두 통달했다는 것인가?”
백택이 다소 흔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보기에 운청휘가 익힌 다섯 가지 무공은 모두 비범했고, 송서항의 망우결보다 뒤지지 않았다.
만약 운청휘가 정말로 그 다섯 가지 무공을 전부 이해했다면, 과연 그의 천부적인 재능은 어디까지 닿아 있는 것이란 말인가?
“다 이해했소.”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가 창조한 것인데 어찌 이해를 못 할까.
“좋아, 좋아, 아주 좋아!”
백택이 연달아 세 번을 칭찬했다. 운청휘를 보는 눈에 칭찬의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역시나 기재 중의 기재로구나. 조만간 고등반에서도 가장 전도유망한 생도가 되겠군!”
백택의 평가가 어찌나 높은지, 주변의 생도들이 모두 경악했다.
일단 고등반의 생도들만 해도 찬천학원에서 인정한 무도의 기재들이다.
200만 명 중 한 명꼴로 고등반의 학생이 될 수 있건만, 지금 백택은 이중에서도 운청휘가 가장 전도유망한 학생이 되리라 공언했다!
“이렇게 하자…….”
백택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운청휘, 나를 사부로 모실 기회를 주마! 2년 안에 인왕경에 도달한다면, 나 백택은 그대를 직계 제자로 삼겠다!”
주변은 순식간에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금 백택 교관이 운청휘를 제자로 삼겠다고 한 거야?!”
“지금껏 백택 교관의 직계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나. 모두 거절당했었는데!”
“이 기회를 운청휘에게 주다니……!”
주변의 놀라워하는 반응과 달리, 당사자 운청휘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백택은 스스로를 너무 치켜세우고 있는 게 아닌가?
고작 반절 인황경이 선제를 제자로 삼겠다는 망상을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웃음거리가 있을까.
바꾸어 말하면, 백택은 운청휘의 제자가 될 자격도 없었다.
운청휘가 소위 말하는 ‘기회’를 사양하려는데, 송서항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백 교관님, 운청휘 생도가 비록 무위를 증가시키는 무공을 다섯 가지 익히고 통달했다고 하나, 그것이 백 교관님의 제자가 될 자격을 갖췄다는 뜻은 아닙니다!”
백택은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더니, 반절 인황경의 위압으로 송서항을 몰아붙였다.
순간 송서항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송서항, 감히 나를 가르치려는 것이냐?”
“가, 감히 그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송서항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인정했지만, 마지막에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용기를 쥐어짰다.
“본 생도는 그저, 백 교관님의 무위가 절세이자 천하제일인데 어중이떠중이가 교관님의 제자가 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자로 거두시겠다는 의견은 조금 더 신중히…….”
운청휘의 두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그가 지금까지 송서항을 내버려 둔 것은, 그저 상대하기 귀찮아서였다.
지금의 송서항은 감히 운청휘를 마주할 자격도 없는 자였다.
한데 그가 지금 선을 넘었다. 감히 자신을 어중이떠중이에 비교하다니?
“신중? 어떻게 신중하라는 거지?”
백택은 단조롭게 물었으나, 은은한 분노가 솟구치고 있었다.
감히 생도가 사리 분멸도 못하고 교관인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가.
그러나 송서항의 대답은 그의 분노를 진정시켰다.
“백 교관님, 운청휘와 대결할 기회를 주십시오. 제 공격을 10번 피한다면 제자가 될 자질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송서항에게는 백택이 승낙하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은 인왕경 중에서도 손꼽는 기재, 자신의 공격을 10번 피할 수 있는 반절 인왕경이라면 백택의 제자가 될 자격이 있었다.
백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송서항은 그가 묵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백택이 직접 대결을 주도할 수는 없으니, 송서항이 다시 나서기로 했다.
“운청휘, 네놈이 감히 할 수 있겠나?”
송서항은 도발하는 눈빛으로 운청휘를 바라봤다.
“내 공격 10번을 피할 수 있다면 내 패배다! 게다가 네놈은 백택 교관님의 직전 제자가 될 기회를 얻는다!”
운청휘는 송서항의 뒷말은 무시하고 바로 말했다.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해 주마!”
운청휘도 이미 송서항에게 살기를 품고 있었다.
끊임없이 비위를 거스를 뿐만 아니라 자신을 어중이떠중이라 하지 않는가?
“그만. 생사결은 허가할 수 없네.”
침묵을 지키던 백택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마음과는 별개로, 그의 수업에서 불상사라도 생기면 원장인 흙보살이 질책하지 않겠는가?
어찌 되었든 운청휘도 송서항도 고등반의 생도들이니 앞으로 가치가 더 높아질 보배나 다름없었다.
“공자, 어째서 이렇게 빨리 나오셨나요?”
궁전 밖에서 기다리던 위경륜은 운청휘와 송서항이 나오는 걸 보고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경륜 선배,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송서항이 운 형제를 도발하여 지금 그와 대결하려 합니다. 운 형제가 손해가 크지 않을까요?
담운을 비롯한 다른 생도들과 백택이 그 뒤를 따라나왔다.
담운은 위경륜을 보자마자 음으로 상황을 설명했고, 그가 말려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위경륜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평온하게 답했다.
-손해? 누가 죽을지는 모른다네!
-네……?
위경륜의 대답이 뜻밖이었는지, 담운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이때, 송서항과 운청휘는 주변에 피해가 없도록 나란히 공중으로 올라갔다.
“운청휘, 공격 10번을 피하면 내 패배다. 피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잘 알겠지. 자, 간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송서항의 신형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그는 속전속결로 승부를 매듭지을 작정이었다. 운청휘가 속도가 빠르긴 하나, 가까이에서 하는 공격마저도 속도로 이길 수 있을까?
사방이 별안간 흐려지더니, 송서항이 일으킨 불꽃만이 번쩍이다 흩어졌다.
“대비라수(大悲罗手)!”
별안간 검은 구름이 성을 덮은 듯 하늘이 어두워졌다. 운청휘가 있는 지역 위로 거대한 손 형상이 떠올라 있었다.